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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스테레오
퍼질룸살롱에서 계약서에 도치씨의 서명 받은 이감독은 입이 찢어졌다. 30.3cm기본월척만 해도 황감한데 34cm를 보장받았으니 쌍발프로펠러 날개에 제트터보엔진 단 기분이었다.
지난18년 동안 부럽기만 했던 월척을 이제 스스로 수렵하고 가짜 잉어어탁 버리고 근사한 붕어오리지널 어탁을 뜬다는 것 생각만 해도 벌써 하늘을 날았다.
살아서 퍼덕이는 붕어눈을 수건으로 가리고 조심조심 먹물을 바르는 자신을 상상하자, 뭉텅한 코끝에 초가집굴뚝에 저녁연기 피어오르듯 먹 향이 가득 베이는 듯했다.
허지만 문득 의심도 생겼다.
세상이 요즈음 스피치사기가 판치는데 자신의 소망을 염탐한 도치씨가 시장에서 어묵 몇 조각 사들고 사업가 행세하며 자신에게 접근한 건 아닐까? 생각은 생각을 바꾸는 법이고 의심은 의심을 낳는 법이다.
이감독. 한번 의심하자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묵장사 할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세련된 맛도 있고 고결한 품성이 엿보이는 도치씨. 이감독의 의심에 장작불 부채질했다. 맞아! 저렇게 빤질빤질해 보이는 사람은 사기꾼 확률이 63%는 넘어! 아니야! 81%는 충분해! 이름도 좀 이상해? 범죄자들은 관상에 나타나고 사기꾼들은 언변에 들어난다는데 도치씨 음성도 야릇해!
이렇게 의심을 갖자 이감독은 후회가 막급했다.
도치씨의 고단수 지능형사기에 걸려들었을까? 아니면, 최소한 야바위에 걸려 든 건지도 모른다는 의혹으로 살갗이 팽팽해지고 오돌돌한 소름이 돋았다. 카드로 날아 가버린 술값이 대포알처럼 가슴을 뻥 뚫는 것 같았다.
허지만 순식간에 생각을 또 바꾸었다.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지만, 하늘은 스스로 믿는 자를 돕는다 했으니 믿자! 믿어서 남주냐? 도끼도 없는데 발등 찍힐 염려도 없다! 월척 빵구나면 평생 낚시비용 걱정 없잖아? 그렇다면 도치씨의 장담이 허무맹랑한 사기로 판명 나도 걱정할 이유 없다. 쉽게 말해 술값 빼고도 훨씬 이익이다! 이감독은 계약서를 꼼꼼 들여다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단서조항 1.
갑이 계약이행을 하지 못하면 을의 평생조행을 보장하고 그 경비일체를 부담한다.
이감독은 이 구절을 읽고 또 훑어보며 입술을 혓바닥으로 날름날름 닦았다.
한편 도치씨는 도치씨대로 기분이 째졌다.
술자리에서 큰소리 안치는 남자 없다지만, 자신의 호언장담은 1%도 허풍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큰소리 잘 치는 도치씨지만 아직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 못할 큰소리는 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 도치씨의 어묵은 0.1%도 밀가루 섞지 않아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인간들도 죽자 살자 처먹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더구나 도치씨의 큰소리엔 철학이 있다.
허풍은 큰소리하고 차원이 다르다.
큰소리는 자생으로 성장하지 않지만, 허풍은 자고나면 자고 난만큼 쑥쑥 자라는 것이 다르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허풍엔 알고 속는 척 하지만, 큰소리엔 의심하면서 잘 속는다. 그래서 큰소리는 모사꾼이나 사기꾼이 즐기는 수법이라 환멸을 느끼지만 허풍은 인간미가 있고 애교가 있어 귀엽게 봐주는 도치씨다. 쉬운 말로 양심을 파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감독보다 오히려 도치씨 걱정이 태산 같았다.
만약 이감독이 약속을 어기면 어떡하나? 줄 때 다르고 받을 때 다른 것이 인간들의 속성인데, 의구심이 들었다. 월척하고 난 후 이감독이 약속을 어긴다 해도 무슨 수로 보상받나? 검찰에 이런 일로 고소했다간 되레 이상한 놈으로 몰릴 것 같고 심하면 정신병원에 감금될지도 모른다?
언론은 연일 대서특필!
여자에 눈깔이 뒤집힌 추악한 여성편력 금치산자 강도지. 스스로 자수한 꼴!
헤드라인을 상상하자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아 창피하다. 창피정도가 문제 아니다. 들통 난 여자관계로 아내에게 무참하고 처참하게 짓밟힐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했다. 허지만 도치씨도 금세 부질없는 생각을 털어 냈다. 경기는 끝나봐야 승부를 안다고 했고, 골프는 장갑을 벗어봐야 안다고? 맞다 맞아 !
갈 데까지 가보자. 쫘악 빠진 모델이 아니라도 엇비슷하면 그게 어디냐? 타고 노는 말이 조랑말이면 어떻고 경주마면 어떠냐? 어차피 법적소유권인정 받지 못할 바엔, 있을 거 다 있고 나오고 들어 갈 곳 다 실행됐으면 끝!
이감독도 사람인데 사람마다 다 다른 취향을 어떻게 딱 들어 맞추냐? 그저 반반하고 쓸 만한 모델이면 기성품 옷처럼 적당하게 내가 맞춰야지. 이렇게 도치씨는 자신의 생각에 고무줄을 달았다. 그리고 계약서를 다시한번 확인하고 또 읽어보고 읽어보며 흐뭇했다.
단서조항2.
2. 갑의 계약이행이 완료된 시점에서, 제공한 물품이 갑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을은 갑이 만족할 때까지 평생 AS 또는 새 제품으로 교체하고 그 비용일체는 을이 부담한다.
도치씨 이 조항을 네 번째 읽다말고 묘한 생각을 했다.
그렇지! 열 번 찍어 마음에 쏙 드는 여자 안 찍힐 리 없다!
도치씨는 자신했다. 설마 인물이야 아내보다 못하더라도 스타일만 거시기해도 그게 어디냐? 여자가 인물보다 스타일이 좋아야지. 그래야 남자 어깨가 서지. 이것이 처음 생각이고.
아니야! 그건 아니야! 절대 그럴 순 없어! 인물도 아내보다 낫고 스타일도 아내보다 나아야 나중에 들통 나더라도 연애한 이유가 성립되는 거 아냐? 아내보다 못한 여자하고 그랬다간 무슨 개망신이야? 도치씨는 마음을 굳혔다. 열 번 아니라 스무 번이라도 교체할 거야! 어쨌거나 그래서 기분이 흐뭇했다.
지배인의 대감이란 호칭과 영웅호걸이라는 창호에 마취제 맞은 놈들처럼 도치씨와 이감독은 인생을 걸고 월척계약을 체결했다. 도치씨가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끝까지 이감독에게 큰소리 땅땅 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니 이유가 뭐야? 고정되어 있는 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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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낚시를 갔다 온 다음 주일 곡우가 지난 첫 번째 토요일.
도치씨는 낚시회를 따라 서산 쪽으로 밤낚시를 갔다. 겨우내 움츠렸던 낚시동호회원들이 거의 빠짐없이 참석해서 버스 통로에 아이스박스나 낚시의자를 펼치고 앉아 버스는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다행이 도치씨는 제일 뒷자리지만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3시간여.
깜빡 조는데 안총무가 마이크를 잡고 잠을 깨웠다.
“자, 전우여러분! 이제 곧 물이 보입니다. 모두 침착하시고 냉정하시며.”
낚시회 안총무나중에이사람이야기웃김가 포인트 설명을 채 마치기도 전에 버스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출발 전까지 죽네 사네 우정을 앞세우던 사람들이지만 일단 물 앞에 서면 눈깔이 뒤집히는 사람들이 동호회원들이고 낚시꾼들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버스에서 제일 마지막에 내린 도치씨가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지만 앉을 자리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넓은 물가에 50여명 풀었다고 앉을자리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의심할지모르지만 아무리 큰 저수지라도 고기가 나오는 자리가 따로 있다. 사람들이 대가리 디밀고 모여 사는 곳을 시티도시라고 하듯, 물고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을 일컬어 포인트라고 하잖아? 사람도 환경이 적합해야 모여 살지만,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벅적거리는 곳이 아닌 예외의 장소도 있다. 큰손이나 부유층의 별장 말이다. 대물물고기도 대물들만 모이는 은밀한 물속별장이 있다.
이 은밀한 대물별장을 찾으면 대박이다. 허지만 이것은 하늘이 점지해 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도치씨는 두 바퀴나 저수지를 돌았지만 허탕 쳤다. 앉을 만한 곳엔 주낙을 놓았거나 통발부표를 달아 놓았고, 포인트다 싶은 곳은 온통 똥밭이었다. 마지막으로 찾아 간곳이 하류 물넘이수문겸댐였다.
그러나 여기도 앉을 곳이 없었다. 물넘이의 마땅한 곳은 대를 넣을 수 없고, 포인트다 싶은 곳은 자연장애물이 극심했다. 도치씨는 낙담과 함께 버스로 돌아가서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물넘이 위를 걸어 맞은편 버스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러나 물이끼가 끼었고, 파이프 같은 둥근 시멘트 위를 걷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몇 사람의 등을 타고 서커스, 줄타기하듯 아슬아슬 건너는데 허리를 굽혀 주었던 마지막사람이 별안간 등을 곧추 세워버렸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도치씨가 그의 등을 타고 넘는 순간 기다리던 입질을 받았던 것이다.
물에 빠진 친구가 살려달라고 애걸해도 입질 받은 낚시꾼은 ‘친구야 또 사귀면 그뿐이지만 한번 간 입질은 평생 돌아오지 않는다.’ 는 낚시명언이 있는데 도치씨 군말 없이 댐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다행이 10여m 아래의 물받이는 수심이 깊지 않아 상처는 없었지만 온 몸이 젖은 도치씨. 아직 봄 날씨라 여간 추운 게 아니었다.
오들오들 떨며 간신히 버스에 도착한 도치씨를 보고 버스기사가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낚시 온 게 아니고 세탁하러 왔어요?”
도치씨도 어이없어 웃었다. 오는 말이 놀림이었지만, 만약 가는 말에 비수를 꽂았다면 도치씨는 밤새 떨었을지 모른다.
도치씨의 선한 웃음을 보고 기사가 얼른 히터를 틀었다.
히터 덕분에 버스 안에서 한숨자고 옷도 말린 도치씨. 아직도 캄캄한 창밖을 내다 봤다. 간간히 들려오는 회원들의 함성이 도치씨를 조바심 나게 했지만 어쩔 거야? 자리가 없는데?
바로 그때 도치씨 눈에 20배줌으로 클로즈업되는 자리가 있었다.
상류 쪽의 후미진 갈대숲이었다. 아직 여명이 한참 남은 캄캄한 수초 밭은 이상하게 텅 비어있었다.
수초 대엔 작은 슬래브오두막집이 물가에 거의 붙어 있었다. 슬래브오두막의 마당 앞 갈대만 몇 개 부러트리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한군데 눈에 들어왔다. 보나마나 들어가기만 하면 포인트였다. 앞뒤 따져 볼 겨를도 없었다. 새로 산 공작찌 한번 던져 보지 못하고 밤새 버스 안에서 궁색하게 시간을 보낸 도치씨는 이미 이성을 잃었다고 해야 옳을까? 눈이 뒤집혔다고 해야 할까? 이 자리가 남겨 진 이유는 뭘까? 그런 추리는 사치였다.
도치씨는 바로 등 뒤의 오두막에서 한참 새벽단잠에 취해있을 주인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심조심 조용조용 낚싯대를 폈다. 수초가 너무 와일드해서 작은 대 2대만 펼치기로 했다. 첫 번째 대는 지렁이미끼에 1.6호대를 폈다. 바로 수초 앞에 찌가 떨어졌다. 두 번째 대를 절반 쯤 뽑을 때, 캐미라이트가 꿈틀꿈틀 옆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2.0호 대를 펴던 중이어서 도치씨는 흔한 새우입질이나 구구리아주작은검은고기입질이라 생각하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2.0호에 새우미끼를 끼워 목표지점에 던져 넣고 잡어가 끌고 가다 멈춘 1.6호대의 미끼를 갈기 위해 대를 세웠다. 그 순간이었다.
“피피피핑!”
무지막지한 힘이 대 끝에서 전해지며 한겨울 문지방소리가 1번대 끝에서 윙윙거렸다. 혜림이 자신의 불알을 걸었던 그때의 당길 힘보다 더 강렬했다. 도치씨는 엉겁결에 당한 기습을 제어하려고 대를 더 높이 세웠다. 그러나 대는 좀처럼 도치씨를 따라 일어서지 않았다.
“피! 피융! 피잉!”
1번 대 끝에서 울리는 소리가 천년유혼중국영화에서 본 원혼의 피리소리 같았다.
도치씨는 기습적이고 강렬한 물속의 저항에 거의 혼이 나간상태였다. 한 치만 방심하면 짧은 1.6호대가 버텨주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엄습했다. 그냥 대를 45도정도 들고 버티기만 했다.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바로 그때였다.
2,0호대가 화살처럼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예신이고 나팔이고 없었다. 도치씨는 남은 한손으로 수초대로 끌려 들어가는 2.0호대를 겁도 없이 쳐들었다. 거의 빈사상태의 행동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퓽!퓽!퓽!”
1.6호대에서 울리던 소리와 사뭇 달랐다. 1.6호대의 울림소리를 클래식기타 줄 소리라면 2.0호의 소리는 울트라전기기타 소리였다. 비교불가였다. 1.6호는 45도까지 세웠지만 2.0호는 35도 세우지 못했다. 아니 세울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 수없이 많은 월척을 걸었지만 이런 힘은 처음이었다. 사이판에서 4.7m짜리 불루마린을 걸었던 때 보다 더 무지막지하다고 느꼈다.
“퓨웅!”
2.0호대가 거의 수평으로 처박힐 때 대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까님하던 도치씨는 설상가상 발판에서 쫄딱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워터로드 타는 것처럼 발판아래의 물속으로 쭈룩 미끄러져 내려갔다.
“철버덕!”
도치씨는 발판아래 물속에 주저앉은 채 두 대를 높이 쳐들었다.
도치씨는 사망하는 한이 있어도 대를 놓을 수 없었다.
“피잉핑!”
“퓨웅 퓨퓽!”
두 대에서 들리는 바람 가르는 소리는 진짜 자연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고성능 스테레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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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도치와 이감독의 계약 이후 첫낚시에서 바로 성공 직전에 있는듯 하군요..
며칠동한 잘쉬셨나요?
마지막남은 한해 건필 하세요..
그동안 잘 계셨지요?
갑작스러운 계획에 안따를 수 없어 자리 비웠네요
젠틀맨님 댓글 보니 감개가 무량하오이다.....ㅋㅋㅋㅋㅋ
낚시와 계약 장면을 통해서 낚시광들이 할수있는 좋은 예를 보는것 같슴니다.
과연 승부는 누구에게 올것인지 관심사가 아닐수없네요.
한번 알아 맞춰보세요...ㅋㅋ
제가 책임지고 한 사람 소개해드릴께요....ㅎ
고운밤되세요
서로 자신감을 갖으며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 이감독과 도치씨.
고연 누구에게 승자가 될것인지 매우 궁금 합니다.
ㅎ
천기누설이라 절대 시간전에 말할 수 없습니다....ㅋㅋㅋ
고운 밤 되시고 한판 내기 벌려보시지요.
악동클럽님을 승자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도치씨같은 여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월척을 못낚는다해도,
모델같은 여자들생각할때 및처봤지 본전 하겠어요.
그래서 침을 꼴각 러리며 미소를 짓나 봅니다.
ㅎ
세상에 여자 안좋아하는 남자 있을까요?
도치씨만 너무 나무라지 마셔요...ㅎㅎㅎ
오늘도 편한 시간 행복한 밤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