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창식 | 날짜 : 12-11-17 15:21 조회 : 1970 |
| | | 어둠의 기사 배트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가 상영 중이다. 슈퍼히어로 중 '엣지 있고 간지 나기로' 따지면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이 단연 발군이다. 스카이스크래퍼 꼭대기에서 망토자락을 펄럭이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모습은 시쳇말로 끝내준다. 배트맨의 등장을 알리는 한스 짐머의 웅장한 음악과 고담(Gotham)시의 어두운 밤하늘에 떠오르는 푸른색 문양은 전율스럽기까지 하다. 이 기회에 배트맨의 친구들에 대해서도 잠깐 살펴보는 것이 어떨는지? 지구방위대 서열 1위 '슈퍼맨'은 눈에서 레이저 빔을 투사하고, 미사일을 껴안은 채 지구 궤도를 날며, 파도를 일으키고 산을 무너뜨린다. 용모도 고전적으로 잘 생겼고, 동네 헬스장에서 몸도 우람하게 가꾸었다. 평소 뿔테 안경을 쓰고 다니는 데다 어리바리한 신문기자라는 신분 설정이 친근감을 준다. 먼 은하계 클립톤 행성이 고향인 슈퍼맨의 최대약점은 촌스런 패션 감각이다. 쫄쫄이 내복에다 빨강과 파랑 원색 의상이라니. 누가 봐도 점수를 주기 어렵다. 요즘 여자들에게는 옷 잘 못 입는 남자 별로라는데.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는 감당이 안 된다. 멜랑꼴리한 휴머니스트이지만 분노가 폭발하면 '단무지' 스타일로 변모한다는 것이 문제다. 분노 통제가 안 되는 것이다. 보다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그가 초록색 괴물로 변신할 때 상의는 옷이 다 뜯겨나가 3D 입체 영상으로 초콜릿 복근이 드러나지만 팬티는 그대로이다. 왜 그럴까? 혹자는 팬티가 신축성 있는 스판 재질일 거라고 주장하지만, 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은 가족력으로 인한 신체적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헐크가 누구? '슈렉'을 혼동한 것이 아니냐고? '스파이더맨'은 애송이다. 요즘 처자들이 연하 남을 선호한다고는 하나 혼기가 꽉 찬 '샤방샤방한' 처녀가 '대딩' 거미 인간을 좋아할 리 없다. 그는 또 무력도 별 볼일 없는 듯하다. 빌딩 사이를 민첩하게 날아다니게 해주는 거미줄이 유일한 무기이다. 스파이더맨이 성인 세계에서 나름 역할을 하려면 일단 'X-맨 신디케이트' 같은 '조직'에 몸담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양 볼이 능금처럼 빨갛고 월드컵에서 활약한 스페인 축구팀의 공격수 '페르난도 토레스'가 스파이더맨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제 주인공 배트맨 차례. 배트맨은 음울한 반(反)영웅이다. 평소 신분은 재벌총수이지만 회사 운영에는 뜻이 없어 대리인(모건 프리만)에게 위탁 경영케 하고, 자신은 대 저택에서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산다. 그에겐 어린 아이었을 적 부모가 괴한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뼈아픈 트라우마(trauma)가 있다. 기억의 상흔(傷痕)은 두고두고 그를 괴롭히며 악당들에게 가차 없는 폭력을 휘두르는 구실을 제공하기도 한다. 스스로 임명한 1인 자경단(vigilante)이자 사형집행인(私刑執行人)인 배트맨은 폭력을 제거하기위해 과도한 폭력을 사용하며 기물파괴와 법규위반을 서슴치 않는다.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배트맨은 매력적이지만 우수 가득하고 콤플렉스로 완전무장한 인물이다. 뭇 영웅들 중 가장 육탄전을 즐기며, 강적인 베인(톰 하디)에게는 개 맞듯이 얻어터지기도 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도 갖추었다. 만일 충실한 집사 알프레드(마이클 케인)이 아니었더라면, 그러니까 하인이면서도 아버지 역할을 하는 알프레드가 적절히 제어하고 다독이며 보살피지 않았더라면, 미친 배트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광란의 아리아'를 부르는 배트맨이라…! 배트맨은 아이러니하게도 전력을 다해 지키려 하는 고담시(구약성서에 나오는 부패한 도시가 떠오른다. 소돔과 고모라ㅡ>고돔ㅡ>고담)의 시민들에게 배척당하며 아웃사이더에 머문다. 이 대목은 걸작 서부영화 <하이 눈(High Noon)>의 보안관 '윌 케인(게리 쿠퍼)'을 떠올리게 한다. 그도 자기가 수호하려는 공동체의 구성원들로부터 왕따를 당하지 않던가. 침중한 게리 쿠퍼의 얼굴에 스산한 크리스찬 베일의 모습이 겹친다.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본명)'과 '윌 케인', 두 사람의 이름 운율이 비슷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 <<한국산문 10월호>> '김창식의 문화 감성 터치 3' 수록. |
| 김권섭 | 12-11-17 15:57 | | 어둠의 기사 배트맨은 과연 엣지 잇고 간지나기로 두번째 가라면 서운할 명작입니다. 김창식선생님은 우주 첨단 문화의 감성을 제대로 파헤치는 이시대의 파이어니어입니다. 잘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김창식 | 12-11-18 14:54 | | 김권섭 선생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타일리스트 '배트맨'은 무척 연민을 자아내는 인물입니다. | |
| | 정진철 | 12-11-17 18:50 | | 세기를 넘나들며 문명을 희롱하고 ㅎㅎ 뿔테안경의 어리버리한 인물, 촌스러운 패션 스파이더맨 슈퍼맨 배트맨 맨맨맨 입니다~~ 상상의 세계로 몰아 넣고 희화적 묘사로 친근감을 갖게 만드는 기법이 돋보인다고 해야 할것 같습니다 훌륭하고 재미 있는 해부에 무겁지 않게 읽게 하시는 필력에 감탄합니다~~ | |
| | 김창식 | 12-11-18 14:58 | | 제게 영감을 주는 캐릭터는 '배트맨'과 '헬보이'입니다, 정진철 선생님. 사연과 스토리가 있으며 주어진 운명에 힘겨워하는 반영웅들이어서요. | |
| | 김용순 | 12-11-18 08:23 | | 슈퍼맨, 베트맨, 스파이더맨, 헐크, 케리쿠퍼(?) 이들 중 누가 방주, 천주, 지주, 인주, 시다바리 입니까? | |
| | 김창식 | 12-11-18 15:02 | | 나중 글에서 영웅들 간 서열을 공시하겠습니다, 김용순 선생님. 제목(가제)은 "원더(언더) 우먼은 누구를 사랑했나?" 입니다. | |
| | 임병문 | 12-11-18 13:34 | | 오감이 즐겁습니다. 환타지아를 접하는 느낌입니다. 과연 김창식 선생이십니다. | |
| | 김창식 | 12-11-18 15:06 | | 즐거우셨다니 보람을 느낍니다, 임병문 선생님. 그저 한번 웃자고 쓴 글이지만, 웃고나니 쓸쓸한 것은 웬일인지...? | |
| | 임재문 | 12-11-21 01:15 | | 즐겁게 잘 감상했습니다. 저도 배트멘 팬입니다. 앞으로 호방하게 그렇게 살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김창식 선생님 ! | |
| | 김창식 | 12-11-21 12:12 | | 역대 배트맨 중 최고는 초기작에 출연했던 마이클 키튼인 것 같습니다, 임 선생님. | |
| | 박원명화 | 12-11-23 17:29 | | 영화이야기를 보면서 김창식 선생님ㅡ 필력을 세삼 실감합니다. 배트맨 저두즐겨본 영화입니다. | |
| | 김창식 | 12-11-24 22:28 | | 음악, 영화, 문화 현상을 다룬 글 말고 앞으로 정통(?) 수필도 가끔 선 보일까 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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