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길찾는 中企, 화장품 온라인 수출 4년새 550배
[中企 수출, 新일본 시대] 〈上〉日 사로잡은 화장품-의류
“한국 상품 값싸고 품질 뛰어나” 의류-커피-축산품까지 수출 급증
中企 “배송비 너무 비싸 부담 커”… 한일 화해무드엔 긍정효과 기대
일본 시장을 노리는 ‘K중소기업’의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 의류를 주로 판매하는 와이디어는 일본 소비자들의 ‘직구’가 이어지며 현재는 일본 매출이 전체의 35%에 달한다.
《최근 일본 도쿄를 방문한 30대 회사원 김모 씨는 시내 곳곳에서 한국 제품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전인 3년여 전에도 일본에 한국 제품이 간간이 있었지만 이번엔 차원이 달랐다. 한국 제품이 일본 시장에 일상적으로 파고든 분위기였다. 김 씨는 “드러그스토어에서 판촉행사(프로모션)를 벌이는 브랜드 셋 중 하나는 한국 브랜드였고 한국 소주도 판매대 좋은 자리에 올라와 있었다”고 했다. 지난해 말 일본 후쿠오카를 다녀온 박모 씨(29)도 “만두나 떡볶이 등 한국 음식들을 일본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정부가 대일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하며 이 같은 해빙 무드가 중소기업 대일 수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일본 하늘길’이 사실상 막혀 있었는데도 일본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국내 중소기업 제품 구매에 나서 이들의 한국 화장품과 의류 온라인 구매액 증가율이 최근 4년간 연평균 390%, 26.1%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품질이 높고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K중소기업’ 제품 수출 규모가 화장품, 식재료, 의류 등의 소비재 품목에서 온라인 등을 통해 급성장하고 있어 이번 방일을 수출 확대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6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의 대일 수출은 109억 달러로 전년(107억 달러) 대비 1.9% 증가했다. 중소기업 전체 수출액(1175억 달러)의 9.3%로 중국, 미국, 베트남에 이어 4위 규모다. 중기부 관계자는 “코로나19와 한일 관계 경색 등의 영향에도 일본 시장에서 국산 제품이 꾸준히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대일본 중소기업 수출 성장세가 가장 큰 분야는 의약품을 비롯한 소비재 시장이다. 의약품 수출액(4억2300만 달러)은 전년 대비 333%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진단키트 등의 수출이 늘면서 수출액이 급증했다.
‘K뷰티’ 유행으로 화장품 역시 순풍을 타고 있다. 일본에 거주하는 A 씨는 “일본 소비자들은 쓰던 제품을 잘 바꾸지 않는 보수적인 소비 성향인데, 최근에는 ‘한국에서 인기 있다’는 게 마케팅 포인트가 될 정도”라고 했다. 실제로 ‘한국 화장품’을 뜻하는 일본어 ‘韓国コスメ’라는 해시태그는 소셜미디어 ‘틱톡’에서 8억56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바람을 타고 일본은 국내 중소기업이 화장품과 의류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1위 국가가 됐다. 한국 중소기업이 온라인을 통해 화장품을 수출한 액수는 지난해 1억1300만 달러에 이른다. 2018년(20만 달러)에 비해 550배 이상 증가했다. 의류 온라인 수출액 역시 지난해 3640만 달러로 2018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한국산 식재료에 대한 선호도도 높아지면서 커피, 차, 인삼류 등 기호식품이나 축산가공품 수출액도 급증세다.
일본 매출이 35%에 이르는 의류 중소기업 ‘와이디어’는 코로나19로 국경이 막힌 2020년 일본에 진출했다. 홈페이지에 영어, 일본어 등 언어 설정을 해놓은 뒤 별다른 마케팅을 안 했는데도 일본 소비자들의 접속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일본 시장이 승산이 있다고 본 것. 와이디어 강하늘 대표는 “일본에서 한국 패션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K패션 시장이 성장했다”고 했다. K팝,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한국 패션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데다 가격 경쟁력도 있어 일본 소비자들의 관심이 컸다는 설명이다. 한국 의류 주요 소비층인 10, 20대 여성층이 한국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점도 도움이 됐다.
가성비와 품질을 모두 잡은 ‘메이드 인 코리아’의 특징도 일본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일본 시장에서 한국 제품은 일본 제품보다 가격이 낮으면서도 중국 제품에 비해 품질과 신뢰도가 높은 ‘알짜템’으로 꼽힌다. 자전거 헬멧을 판매하는 나인오투랩은 자전거 문화가 발달한 일본 시장을 노리고 일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마쿠아케’에서 펀딩을 받아 일본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과 아마존저팬에 입점했다. 나인오투랩 문승화 대표는 “중국산에 비해 한국산은 가격과 품질에서 모두 인정받고 있다”며 “애프터서비스(AS) 등 서비스도 좋아 보수적인 일본 소비자들의 마음을 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과제는 남아 있다. 운송비 부담이 대표적이다. 의류의 경우 일본에 운송을 할 경우 2kg당 배송비가 2만∼2만5000원 수준으로 여전히 비싼 편이다. 매출 자체가 크지 않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배송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판로 개척도 문제다. 한번 구매처를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이는 일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선 충분한 판촉이 필요하지만, 국내 중소업체에는 여력이 충분치 않은 경우가 많아 현지 업체들과의 협력 등에서 애로를 겪고 있다.
홍지상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엔데믹 이후 해외 교류를 통한 바이어 미팅 등 마케팅이 활발해지고 있다”며 “(대면 마케팅이) 직관적이고 기업의 호응도 좋은 만큼 정부 차원에서 현지 기업과 한국 중소기업을 연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서영 기자
“중소 제조업 분야 韓日 교류 더 늘려야”
금형-車부품 등 작년 日수출 줄어
“국산화 노력-양국 협력 병행 필요”
각종 제품 생산을 위한 ‘틀’을 만들어내는 금형기업들이 모인 한국금형협동조합은 4월에 일본에서 금형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일본 현지 전시회 개최가 2019년 이후 중단된 지 4년 만이다. 신용문 조합 이사장은 “그간 일본에서 나오는 일감이 절반으로 줄었는데 앞으로 한일 교류가 늘면 수주도 늘 것”이라며 “국내 일감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에서 일본 기업의 금형 주문은 중요한 먹거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화장품과 의류 등 소비재 분야 중소기업 수출이 최근 급성장한 것과 달리 제조업 분야 수출은 한일 관계 경색과 코로나19 확산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16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중소기업의 대(對)일본 10대 수출품목 중 금형 수출액은 전년 대비 15% 감소한 2820만 달러로 3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자동차 부품 수출액 역시 전년 대비 4.4% 줄었다. 다만 반도체 제조용 장비(26.2%) 석유제품(18.9%) 등은 수출이 증가했다. 엔데믹 등으로 반도체와 석유제품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무너진 공급망을 복원하고 일본 기업과의 교류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공급망 위기가 가시화된 상황에서 일본처럼 경쟁력 있는 공급자이자 수요자가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건 국내 기업에도 비용 절감, 품질 향상, 안정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며 “소재, 부품, 장비 분야의 국산화 노력은 지속하면서 일본과의 협력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