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춘 봄봄 방앗간 대표(오른쪽)가 아내와 함께 최근 새로 출시한 제품인 ‘고추씨 가루’와 ‘찐 보리차’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예산=김병진 기자 fotokim@nongmin.com
[농촌 Zoom 人] ‘봄봄 방앗간’ 장시춘 대표
대기업 퇴사 후 방앗간 매력에 주목 경쟁 치열…정착에 어려움 겪기도
친절 무기로 고객마음 조금씩 열어
오래 공들인 농산물 연구도 빛 발해 곡식 특성에 맞게 활용법 제시·상담
‘들깨 현미 가래떡’ 등 상품개발 힘써 건강한 원료로 소비자 입맛 사로잡아
누가 방앗간을 한물간 유물이라고 했나. 충남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한적한 골목 들머리에 들어선 ‘봄봄 방앗간’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지역 농산물을 원료로 주민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매장이자 전국 온라인 거래 소비자와 소통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아울러 고객 입맛에 맞는 신제품을 구상하는 연구실이기도 하다.
2018년 5월 이곳에 터를 잡은 장시춘 ‘봄봄 방앗간’ 대표(54)는 원래 잘나가는 대기업 직장인이었다. 20년 넘게 화학계열 회사와 백화점, 대형마트 등에서 경력을 쌓아온 전형적인 화이트칼라 출신이다. 사정상 갑작스레 퇴직하게 되면서 귀농을 결심했고, 우연히 방앗간 매력과 가치에 주목하게 됐다.
원래 농산물 유통에 관심이 많았던 장 대표는 평소 그려온 사업 구상을 실천하기 위해 바로 방앗간 업종을 선택했다. 대형마트에서 공간을 꾸미고 매대를 배치하는 일을 해온 터라 새 가게를 여는 것도 자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가족끼리 대를 이어 운영하는 방앗간 특성상 새로운 진입자에겐 장벽이 높았던 것. “참기름을 짜는 기계 다루는 법을 배울 곳조차 마땅치 않았죠. 그러다 충남 청양 한 방앗간 주인과 겨우 연이 닿아 그에게 하소연했어요. 다행히 월급 없이 밥만 해결해주는 조건으로 6개월간 그곳에서 일하며 고충을 이겨냈고 경영 비결도 배웠습니다.”
초반에 정착하는 데도 쉽지 않았다. 가게 문을 열긴 열었는데 비슷한 업종이 이미 7개가 넘게 자리 잡고 있어 경쟁이 치열했다. 인근 시장 사람들도 “다른 지역 사람이 구석진 골목에다 방앗간을 열면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다른 일을 찾아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몸에 밴 친절을 무기 삼아 조금씩 고객 마음을 열어나갔다. 멀리서 손님이 걸어오는 게 보이면 짐을 함께 들어주는 건 기본이었고, 고객이 가져온 곡식 특성에 맞게 활용법을 제시하며 상담도 해줬다.
참깨·들깨·고추·쌀과 같은 농산물을 공부하고 연구해온 노력도 주효했다. “같은 농산물이라도 외부 온습도, 함유 수분 등 농산물 특성과 조건에 따라 산출량이 영향을 받거든요. 가공물에서 이물질을 걸러내는 방식도 세심해야 하고요. 장씨네 방앗간에 가면 저울로 장난칠 일도 없고, 결과물도 상대적으로 많이 나온다는 소문이 나면서 단골이 많이 생겨났어요.”
장시춘 대표가 직접 재배한 쑥을 수확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농업기술센터
다양한 상품화 노력도 돋보였다. 여느 방앗간처럼 고객이 가져온 농산물로 떡을 만들거나, 기름을 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장씨가 신제품을 구상하고, 갖가지 원재료를 실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건강한 원료는 물론 고소한 맛으로 온라인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은 <들깨 현미 가래떡>이 대표적이다. 또 직접 농사지은 쑥을 원료로 한 <쑥 미숫가루> 역시 간판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바쁜 시간을 쪼개 ‘얼굴에 바르는 호두기름’을 만들고 있답니다. 자기 전 눈 주위에 바르면 주름 개선에 효과가 있거든요. 실현 가능성이 조금 낮지만 들깨 껍질을 활용한 샴푸, 쫀득쫀득한 맛이 배가된 찹쌀 파이 만들기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장 대표가 그리는 방앗간 미래는 여전히 전도유망하다. ‘건강한 먹거리 위기 시대’에 자신이 직접 구한 믿을 만한 농산물을 이용해 가공해주는 방앗간 수요가 쉬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방앗간 전통 가공방식인 ‘증숙(쪄서 익힘)’이 재조명을 받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문화 속엔 증숙 문화가 넓게 퍼져 있어요. 음식 재료를 쪄내면 농산물 등의 세포벽이 파괴되는 것을 막아 칼슘이나 비타민과 같은 영양분 손실이 적어지거든요. 이런 장점이 부각될수록 방앗간은 농촌만 아니라 도심에서도 경쟁력을 얻으리라 확신합니다.”
장 대표는 온라인 공간에서 존재감을 높이는 데도 심혈을 기울인다. 매일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약 2시간가량 단골손님이 하는 소소한 이야기, 농산물 착유과정 등 방앗간에서 펼쳐지는 평범한 일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다. 방앗간이라는 공간이 생소한 젊은층을 중심으로 하루 평균 방문객이 500∼600명에 이른단다.
“저처럼 농촌에 기반이 없는 사람에게 귀농은 여전히 어려운 시도예요. 도시에서만큼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이곳에 정착했을 때 세운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방앗간 간판에 붙은 ‘봄봄’은 차갑고 긴 겨울을 견디면 반드시 봄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딸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한겨울에도 식지 않는 방앗간 온기를 소중한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농촌 파수꾼’입니다.”
출처 농민신문 예산=이문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