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9] 이방인에게도 생명을 얻게 하심(행 11:1~18)
베드로를 통한 고넬료의 가정에 체험된 성령 충만의 사건이 예루살렘에 전해졌습니다. 본문은 그것으로 인해서 베드로가 받게 되는 비난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장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사명을 크게 감당할수록 주위의 오해와 비난을 받는 일이 허다하지만, 그것까지도 넘어서야 복음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 베드로가 비난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간청에 의해 가이샤라에서 얼마나 더 머물러 있었는지, 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는지에 대하여서도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고넬료의 가정에도 성령님이 내려오신 사건과 세례를 준 소식이 급속도로 퍼져서 예루살렘까지 전하여짐으로 말미암아 그 사건을 설명하려고 방문한 것이 아닌가 사료가 될 뿐입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칭찬이 쏟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난이 쏟아졌습니다(행11:1~3). 왜 그랬습니까? 1) 이방인들과의 교제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12절) 할례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방인과 교제한 것을 가지고 비난하였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할례 받은 유대인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들과 식사를 하는 것은 허락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베드로가 모를 리가 없는 것입니다(행10:28). 그러기에 처음에는 베드로도 명령을 받았을 때에 당황하였던 것입니다(행10:12~15). 2) 더욱 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오려면 마땅히 유대교의 율법 예식을 거쳐 교인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방 선교 계획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푼 베드로의 행동을 비난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비난에 앞서 그 이유부터 알아보려 했어야 옳았습니다. 사실 우리들도 유대인들과도 같이 피상적인 안목과 편견 때문에 진실하게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들도 편협한 생각이나 편애를 가지지 말고 구원의 복음은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 베드로의 설명 베드로는 그들의 비난에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조용히 자신이 왜 그렇게 비난 받을 행동을 했는지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행10:1~22, 11:4~16). 이미 베드로는 성령님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기에 기도하는 중에 본 환상을 의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가르침과 생각나게 하심을 통한 역사를 즉시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 충만을 받자 말씀을 들을 때 바로 깨닫고 실천에 옮기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비난 앞에서도 이제 침착 하게 되었고, 자신의 감정이나 뜻을 내 세울 필요도 없었으며, 온전히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이 왜 고넬료의 집에 갈 수 밖에 없었고, 그들에게 성령 충만을 받게 했는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설명하였던 것입니다.
▣ 베드로의 설명을 들은 사람들에게 임한 새로운 깨달음 베드로가 왜 하나님께 순종하였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성령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받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영광을 돌리게 했습니다(행11:17~18). 만약 성도들이 성령님의 역사에 대하여 믿지 않고 베드로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예루살렘 교회에는 파벌과 분쟁만 있었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베드로를 비난하고 불신했던 감정들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화해와, 성령님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행하신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사실은 초기 예루살렘 교회에 더 큰 은혜와 축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을 이뤄 하나가 된 성도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는 선교에 대한 사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말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이 깨달은 것을 다른 제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을 보고 우리들도 깨달아야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사55:8~9).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가지고 있는 고집에서 벗어나야 하고, 자신이 틀렸다고 판단되었을 때는 미루지 말고 바로 바꾸어야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택되었다는 그 기쁨과 자만심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들만을 위한 하나님이라고 고집하면서 선민의식과 성민의식에 사로잡혀 남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며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반대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모든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내가 모르면 안 되고, 내가 관여해야만 되고, 내가 주장하는 일이 통과되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어느 사이에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주님께서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앉아서 내 중심으로 모든 논리를 바꾸어 갑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바로 그것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를 배워야 합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며 설득할 때 세 번씩 부인한 걸 보면 그에게 무척이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을 뛰어넘은 베드로는 순종하여 고넬료의 집에 가서 고넬료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을 통하여 베드로는 드디어 변하기 시작합니다(행10:34~35). 베드로와 같이 자신이 잘못됐다고 판단되었을 때 비겁하게 따지거나 물고 늘어지지 마시고,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는 바른 신앙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다는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잠잠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잠잠하기 바랍니다. 쓸데없는 편견과 잘못된 비판, 남을 업신여기는 것에서 비롯된 부정적 시각을 지성이라고 착각하는 오만에 빠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열심이라는 이유로, 내가 헌신한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열심과 고집으로 하나님이 아닌 내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과 다르고,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바꾸어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