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식 빵은 라틴 지역에서는 8세기이래 누룩 없는 빵을 사용했다. 최후만찬 때 예수께서도 이와 같은 빵을 사용하셨을 것이다. 이른바 matzoh라고 부르는 빵은 파스카 기념에서 “눈물의 빵”, 다시 말해서 정처 없이 방랑 생활하는 백성의 빵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교회 역사에서 초기 천년 동안은 서방이나 동방 교회에서는 성찬례를 위한 빵은 보통의 “일용할 빵”을 사용했다. 다시 말해서 누룩을 넣은 빵이었으며, 동방 교회에서는 오늘날도 이것을 사용한다. 대부분 동방교회에서 누룩넣지 않은 빵 (azymes)을 사용하는 것을 강하게 금지한다. 반대로 라틴 교회는 이 문제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피렌체에서 열린 일치 공의회 (1439)에서 동방과 서방의 서로 다른 사용은 단순히 인식되었고 인준되었다 (DZ 1303). 가톨릭과 일치한 몇몇 동방 교회들은 아직도 누룩넣은 빵을 사용한다. 이는 다른 한편, 밀로 만든 빵은 오늘날 보편적으로 모든 예식에서 사용된다. 지중해 연안의 문화에서 밀로 만든 이 빵은 “좋은” 빵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보리빵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참조 요한 6,9.13). 라틴식 사용을 계속하는 것은 좋은 것이며 빵에 대한 질문에 신학적 이데올로기를 세우는 것은 아니다.
초기에 빵은 확실히 단순한 빵의 모양이었다. 주님께서 하나인 빵을 쪼개셨다. Fractio panis (빵 쪼갬)는 고대 교회에서 아주 오랫동안 실천되었다. 그리고 7세기 이후 서방교회에서는 Agnus Dei를 해석하는 찬가로서 빵을 쪼개는 동안 불렀다. 카롤링거 시대에 매우 이른 시기에 실천적인 의미에서 동전 크기 정도로 된 작은 빵 조각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빵에 대한 상징적인 힘(1고린 10,16-17)은 의심할 것 없이 약해졌다. 오늘날 큰 빵 한 덩어리를 사용하거나 큰 제병 하나를 사용하는 것으로 점차 되돌아오고 있다. 디다케(9,4)와 같은 초기 문헌에서 빵은 하나인 교회의 상징이다: “이 빵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 끝들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
포도주는 “포도 열매” (마태 26,29; 마르 14,25; 루가 22,18)로 만든 순수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사제는 포도주의 순수성을 보살펴야 한다. 구약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포도주는 축제의 상징뿐만 아니라 또한 땅의 상속을 의미했다.
고대에서 일반적으로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포도주에 물을 섞었다. 음식을 들기 전이나 중에 용기에 포도주와 물을 혼합하여 마셨다. 유스티노 이후 전례 사용은 미사에서도 역시 이러한 관습을 사용하였다. 아마도 예수의 최후 만찬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혼합하는 것에서 나온 상징주의 해석이 생기게 되었다. 카르타고의 치쁘리아노 (Ad Caecilianum 13) 이래 이러한 해석은 널리 퍼졌다: “잔에 포도주를 물과 함께 혼합할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결합된다. 만일 어떤 이가 포도주만 바칠 때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없이 남게 된다, 만일 어떤 이가 오직 물만 바칠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 없이 존재한다.” 이 해석은 거의 모든 전례들에 의해 동일하거나 비슷한 형태로 취해졌는데, 병사의 창에 찔려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 (요한 19,34)에 관한 내용을 종종 첨가하였다. 이것과는 예외적으로 단성론 교회는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 위에 신성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피렌체 공의회는 말하기를, “교회는 사제에게 성작에 물을 포도주에 혼합하도록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 아마도 그렇게 하셨으며, 그리고 그분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함께 나왔기 때문이다 (요한 19,34)고 하였다. 이 신비가 혼합에서 새롭게 된다. 그리고 요한 묵시록에서 민족들이 ‘물’로 불려지고 (묵시 17,1.15), 포도주와 물의 결합이 또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결합을 드러낸다” (참조 DZ 1320). 공의회의 이러한 선언은 물론 신앙에 관한 교의적 가르침이 아니다. 그러나 이 선언은 동방과 서방의 서로 다른 교회들, 특히 여기에서는 아르메니아 교회와 로마 교회에서 상징주의의 합의를 가리킨다. 다른 한편, 루터는 주님의 만찬의 거행에서 혼합 안한 포도주를 사람의 도움 없이 그리스도 홀로 이루신 우리의 구원에 대한 모상으로 본다. 또한 그는 이러한 실천을 인간적인 첨가 없이 깨끗한 가르침의 대표로 보았다.
포도주와 물을 혼합할 때 외우는 미사전례서의 기도문은 고대의 전례 전승에서 유래한다: 포도주와 물의 합치는 우리 인간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우리가 참여하는 상징이다.
글쓴이 : 인 끌레멘스 신부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