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오늘 저녁 오리들은 뭘 먹지
그들은 따뜻한 자리를 빼앗기고
맨발로 얼음 위로 밀려나 웅크리고 앉아 있다
낚시꾼들이 떠날 때까지
그들은 인간의 것은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얼지 않은 물을 바라볼 뿐이다
하루 종일
어쩌자고 사람들은 이 오지의 저수지까지 찾아와서
얼지 않고 양지바른 물을 차지하는 것일까
하루 종일
오리라고 찬 바람 부는 하늘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날이 춥기 때문이다
그들이 들어가고 싶은 곳은 오직 낚시찌가 떠 있는
저 찰랑거리는 검은 물밖에 없다
산에 해가 지고 있다
―고형렬(1954~)
날이 추워지면서 두메산골의 저수지에도 얼음이 얼었다. 얼지 않은 수면이 조금 남아 있는데 그곳은 낚시꾼들이 차지했다. 거기는 볕을 잘 받는 곳이요, 그래서 왕겨를 쌓아놓은 듯 포근한 곳이다. 그러나 애초에 그곳은 오리들의 몫이었다. 오리들이 들어가고 싶은 자리였다. 이 시에서는 차가운 얼음 위에 맨발로 웅크려 앉아 떨고 있는 오리들을 바라보며 안쓰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느껴진다.
그러나 이 안쓰러움은 생명에 대한 연민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자연에서든 어디에서든 그 영토의 고유한 어울림이랄까, 순조로움이랄까 이런 것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뜻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시인은 ‘외설악’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청초호 호숫가에 앉아 설악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비한 산의 음악”이 들려온다고 썼다. 그리고 그 산의 음악은 산바람 소리 즉“산뢰(山籟)”이며, “약초의 노래”이며, “물과 바람의 만남과 경계 없는 흐름”이라고 적었다. 어느 것도 밀려나지 않고 제 영토와 노래를 갖는 원만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외설악산/ 고형렬(1954~)
외설악에 나가서 가만히 청초 마리나 의자에 앉아 지척의 설악을 보고 있으면 산골짜기 골짜기와 높고 낮은 능선 곳곳에서 신비한 산의 음악이 들려온다.
목관악기도 금관악기도 현악기도 아니다.
산뢰(山籟)다.
약초의 노래가, 풀과 나무들의 노래가, 물과 바람의 만남이 경계 없는 흐름
그 음악이 호수에 내려앉는다. 나도 설악산처럼 머리를 북으로 두고 남으로 다리를 뻗고 그대의 평상에서 서향을 향해
누워 팔을 베고, 설악산을 마주 바라본다. 이곳 내가 태어날 자리이다. 그는 얼굴을 마주 댄 여자 같다. 그토록 가깝게
그러면 흰 구름의 소요를 시작해볼까. 아무도 모르게
그 옛날 풀만 풀만 하늘로 가득 자라 오르던 바람 불던 그 풀길 속에서 하나의 알로부터
다른 생을 출발해볼까 알이 바람이 되듯이
쌍다리를 지나가던 한 소년 시인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외설악이었다 그곳이 그의 집이고 생이고 노래이다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 창비, 2020년, 78-79쪽
*산뢰(山籟) : 산에서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며 부는 소리.
✵고형렬(1954~) 시인은 속초에서 출생했다. 1979년에 시 「장자(莊子)」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대청봉(大靑峯) 수박밭』『밤 미시령』『유리체를 통과하다』『지구를 이승이라 불러줄까』 등의 시집을 상자했다. 그 외 연어의 일생일란을 그린 장편 산문 『은빛 물고기』 ‘고형렬 에세이 장자’(전7권) 등을 간행하면서 자기 언어를 갱신하고 중심 아닌 주변과 현실 너머의 메타포를 형상하는 데 주력해왔다. 시선집 『바람이 와서 몸이 되다』를 출간하면서 첫 번째 소리 시집을 함께 출시했으며 2024년에 ‘아시아 포엠 주스’ 1호 『몇 개의 문답과 서른여섯 명의 시인과 서른여섯 편의 시』를 기획했다. 현재는 조세 코서(José Kozer), 피터 보일(Peter Boyl), 엠티씨 크로닌(MTC Cronin) 시인 등과 함께 렌시(Renshi)를 진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조선일보 2025년 12월 08일(월)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문태준 시인)〉, 《Daum, Naver 지식백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