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령 교수의 후회 ]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것이다.
세속적인 문필가로 교수로, 장관으로 활동했으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
겸손이 아니다. 나는 실패했다.
그것을 항상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내게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내 삶은 실패했다.
혼자서 나의 그림자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다.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더러는 동행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경쟁자였다.
이어령 교수님의 '마지막 수업'에서 남긴 말이다.
정기적으로 만나 밥 먹고 술 마시고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떨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야 그 삶이 풍성해진다.
나이 차이,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함께 만나 얘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얘기를 듣고, 얘기를 나누고
조용히 미소짓는 그런 친구가 있다면,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다.
난 그런 진실한 친구가 없어 늙어가며 더욱더 후회스럽기만 하다.
정말 바보스러운 삶이였다.
당신은 수다를 떨면서 서로간 외로움을 달래줄 그런 벗이 있는지요?
오늘도 남녀노소 연령 구분없이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즐거운 놀이와 운동도 함께 하는
코드 맞는 사람들과 성공적인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인생 딱 한번 뿐이니까요
후회 없이 삽시다.
~~~~~~~~~~~~~~~~~~~~~~~~~~~~~~~~~~~~~~~~
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낸 이어령(1934~2022) 이화여대 명예 석좌교수가 별세했다. 고인은 평생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그는 생전 스스로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왜일까.
김지수 조선비즈 기자가 묻고, 이 교수가 답한 인터뷰집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이 교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것"이라고 회고했다.
'성공한 인생을 사셨다고 생각하시냐'는 질문에도 "남들이 보는 이 아무개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보는데, 나는 사실상 겸손이 아니라 실패한 삶을 살았구나. 그거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세속적인 문필가로 교수로, 장관으로 활동했으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 겸손이 아니다. 나는 실패했다. 그것을 항상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게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내 삶은 실패했다. 혼자서 나의 그림자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다.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더러는 동행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경쟁자였다"고 설명했다.
1933년 충남 아산시에서 출생한 고인은 생전 문학평론가, 소설가, 수필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약하며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이자 한국의 대표적 석학으로 불렸다.
이 교수는 1956년 '문학예술'에 '현대시의 환위와 한계', '비유법논고(攷)'가 추천돼 등단했다. 같은 해 문단 원로의 권위 의식을 질타한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며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뒤 평생을 교수로 살았으며, 경향신문 등 주요 언론사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노태우 정부 당시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을 역임해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을 설립했다.
이 교수는 문화예술상(1979), 체육훈장맹호장(1989), 일본문화디자인대상(1992), 대한민국녹조훈장(1992), 대한민국 예술원상(2003), 3·1문화상 예술상(2007), 자랑스러운 이화인상(2011), 소충사선문화상 특별상(2011) 등을 받았다.
그는 2017년 암을 선고받아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지만 이후 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이 목전에 와도 글을 쓰겠다"며 마지막 집필에 몰두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천안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출처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