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나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보다 더 어려운 경쟁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했습니다. 경사가 났다고, 행운아라고, 하늘의 은총을 받은 자라고 하나 같이 축하해 주었지요.
오직 나만 들어가 하나가 되자, 집도 생겼습니다. 좀 어두운 점만 빼 놓으면, 그 궁궐 같은 집은 너무 아늑하고 편안했습니다. 어둡다는 것도 남들의 이야기지 나에게는 적합했으니까요. 남이 뭐라하든 나에게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따스하고 포근한 그 곳에 사는 동안, 다양한 양질의 음식을 무상으로 공급받았습니다. 음식만인가요? 생활에 필요한 일체의 모든 것도 제공받았지요.
천국도 그런 천국이 어디 있을까요. 하루하루가 무척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꿈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삶의 활력소지요. 밝은 내일이 약속된 가운데 평안한 오늘을 사니, 내가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가슴 벅찬 날들입니다 .행복한 생활이 한 주 한 주 지나갔습니다. 저의 몸과 마음이 살쪘구요.
그런데 석 달 째 되는 어느 날, 저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밖에서 들어온 소리였지요. 남, 녀의 목소리가 섞여서. 좀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기도 했습니다. 남자가 고함을 지르더니 여자가 "그렇게 못해!"하며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저는 말소리를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으나 느낌은 분명 불길했습니다.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한참 갔습니다. 저도 덩달아 우울해졌습니다.
혼자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혹시 이 집에서 쫓겨나는 것은 아닌가?'
'행복한 생활이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그날부터 불안이 엄습해, 잠을 제대로 못 이루었습니다. 어느 날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별 방정맞은 생각을 다 하기도 했지요.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부터 이상 조짐이 나타났습니다. 음식공급이 부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음식을 먹은 제가 자주 체하기도 했구요. 독한 술이 들어온 때도 있었습니다.담배 연기에 질식할 뻔도 했지요. 아무튼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일주일 뒤, 급기야 어느 병원 수술실에 눕게 되었습니다.
누운 채, 손을 꼽아가며 세어보니, 그 집에 산 지가 꼭 19 주가 되었군요.마른하늘에 날벼락 맞는다는 게 이런 건가요?
모든 것을 체념했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수 없습니다. 아니 안타까움보다 더 다스릴 수 없는 마음은 분노입니다. 아빠 ,엄마에 대한 분노지요. 머리끝까지 올라와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두 분이 순간적인 충동으로 나를 임신해 놓고, 이제 와서 간단히 지우려는 것에 대한 화를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억울한 게 많아요.
나를 죽이는 일에 대해 세상은 왜 이리 조용한가요?
생명을 이렇게 취급해도 되는 건가요?
두 사람,비록 결혼한 부부지만 충동적인 욕정에 의해 잉태시켜 놓고, 이제는 둘만의 이기적인 계산에 따라 생명을 죽여도 됩니까?
이 생명이 그들의 것인가요.
재판도 없나요?
거리의 사람들에게라도 하소연 하고 싶어요.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도 최후진술이라는 걸 하던데, 그런 기회도 없나요?
제가 잘 못한 게 뭔가요.
그냥 한을 품고 가야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인가요?
눈물만 납니다...
저와 같은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이 우리나라에서만 일 년에 150만이 넘는다지요. 태어나는 아이의 두 배입니다. 하루에 4천 명 꼴이고요.
넋두리를 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수저 같이 생긴 기구가 가까이 왔네요. 고리 모양의 강철나이프, 큐렛입니다. 그 악명 높은 살인기구.
큐렛을 노련하게 다루는 의사가 지체 없이 제 목부터 절단하는군요. 그 다음엔 머리부터 시작해 사지를 절단, 분쇄합니다. 유혈이 낭자합니다.
사실 엄마의 생명도 손상되지요. 불쌍합니다. 걱정입니다. 공연히 나 때문에 위험해 질까봐서요. 이 수술을 하고 나서도 몸조리를 산후조리처럼 잘 해야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괜찮을까요? 글쎄요...
내 몸을 산산조각 낸 의사는 능수능란한 솜씨로 나의 분신들을 밖으로 긁어냅니다.신속합니다.속전속결입니다.이제 태반만 남았습니다. 태반과 잔유물은 진공흡입기를 사용하여 처리할까하다가 그냥 마는군요.
이미 산산조각 난 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을 다 아는가하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겠지요. 하지만 사람은 단지 육체 덩어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영혼이 있지요. 육체는 죽여도 영혼은 남아 있는 거지요. 내 영혼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다 보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렵니다. 나처럼 빛을 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요. 거기서 우리는 밤낮 호소합니다. 아벨의 핏소리가 창조주 앞에 호소했듯이(창세기 4:10)...
피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김달성목사(십자가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