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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용진·곽승한 기자
▲ 지난 12월 18일 경기도 남양주시 천마산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석양 속에 한 해가 또 저물고 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
01 ‘노딜’로 끝난 세기의 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2월 27일부터 1박2일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났다. 북한의 비핵화와 유엔의 대북 제재 해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두 정상이 회동한 뒤 미·북 관계가 급속도로 ‘화해 무드’로 접어들면서 당초 세계는 두 정상이 순조롭게 비핵화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28일 업무 오찬이 돌연 취소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백악관의 샌더스 대변인은 두 정상의 오찬이 취소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과 북한이 아무런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다”며 협상 결렬을 인정했다. 이후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최종합의에서 북한은 영변 비핵화를 조건으로 한 대북 제재 완전 해제를 제안했지만, 미국은 영변 외 다른 지역의 핵시설까지 완전히 비핵화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합의에 이를 경우 두 정상이 공동 발표할 선언문도 미리 준비돼 있었지만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이후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돼 2019년 12월 현재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던 2017년과 비슷한 단계까지 회귀한 모양새다.
02 패스트트랙이 부른 ‘빠루 국회’… 정치가 무너졌다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20대 국회의 하이라이트는 지난 4월 ‘빠루 국회’였다. 당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안, 2건의 검경수사권조정법안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상정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법안을 반대하는 한국당은 법안 제출을 막기 위해 국회 의안과 사무실을 몸으로 막았고 이 과정에서 한국당과 민주당이 9시간 동안 몸싸움을 벌이며 충돌했다. 급기야 문희상 국회의장은 경호권을 발동했고, 방호과 직원들이 국회 의안과 진입을 시도하면서 누군가 ‘빠루’로 불리는 쇠지렛대를 가져와 문을 훼손했다. 나경원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는 다음날 긴급 의원총회에 ‘빠루’를 들고 나와 여당을 향해 거칠게 항의했다.
볼썽사나운 모습에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여야의 대립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은‘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공조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려 하고 있고, 한국당은 결사저지에 나서고 있다.
03 봉준호 감독 ‘기생충’ 세계를 사로잡다
지난 5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이룬 업적이다. 황금종려상은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칸영화제의 본선 경쟁 부문 초청작 가운데 최고 작품에 수여되는 상이다.
2003년 개봉한 ‘살인의 추억’으로 국내외 관객들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봉 감독은 2010년 ‘괴물’, 2013년 ‘설국열차’, 2017년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옥자’로 해외에도 이름을 알리는 감독이 됐다. 봉 감독은 영화 ‘기생충’을 통해 세계적 화두인 ‘빈부격차’를 섬세한 스토리와 인물 설정, 강렬한 연출로 풀어냈다. ‘국민배우’로 불리는 서민 연기의 달인 송강호는 이 작품의 중심인물인 가장 ‘김기택’ 역을 맡아 극의 중심을 잡고 끌고 나갔다. 영화는 해외 평단의 호평과 미디어의 조명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1000만 관객을 넘는 등 흥행에 성공했고, 봉준호는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잡는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국내외에 우뚝 서게 됐다.
04 한·일 가른 화이트리스트 배제
지난 7월에는 일본이 한국을 무역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백색국가는 자국의 안전보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첨단기술과 전자부품 등을 타국에 수출할 때 관련 절차에서 우대를 해주는 국가를 말한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1차 제재로 일본산이 세계시장을 석권한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을 수출 금지했고 이후 실제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
한국 정부도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했고, 민간에서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확산됐다. 특히 정부는 일본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을 종료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또 다른 논란이 생겨났다. 이에 대해 동맹국인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냈고, 11월 한·일 양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조건부 연장이라는 형식으로 유지시키고 WTO 제소를 잠정 중단했다. 한·일 양국은 백색국가 제외는 유지하지만 수출규제 품목을 재검토하며 대화를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05 조국이 두 동강 낸 조국
지난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며 조국 전 민정수석을 차기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그가 장관에 지명됨과 동시에 일가를 둘러싼 온갖 의혹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활동 전력으로 시작해 정체불명의 사모펀드 투자, 동생 부부의 위장이혼 의혹, 부친이 이사장이었던 웅동학원 재산 빼돌리기 의혹, 부동산 위장매매 등의 논란은 전초전이었다. 조 전 장관 딸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재학 중 장학금 수령, 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재학 시절 병리학 논문 제1저자 기재 논란에서 여론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부인 정경심 교수가 자신이 재직하던 동양대 총장 표창장을 위조해 딸에게 줬다는 의혹까지 더해졌다.
윤석열 검찰은 지난 8월 27일 부산대 의전원을 비롯해 20여곳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 9월 6일 조 전 장관의 청문회가 끝나기 1시간 전에는 부인 정씨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했다. 추석을 전후해 분노한 민심이 광화문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그를 비호하려는 친문 지지자들은 ‘조국 수호’ ‘검찰 개혁’ 피켓을 들고 서초동에 모였다. ‘조국 사태’는 그가 이전에 남겼던 수많은 트위터 글과 함께 ‘조로남불’ ‘조스트라다무스’ ‘조국의 적은 조국(조적조)’ 같은 웃지 못할 유행어를 만들었다.
06 함박도 미스터리
‘주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97. 하지만 북한군이 레이더를 설치하고 주둔 중. 국방부는 “북방한계선(NLL) 이북의 북한 땅이 맞는다”고 했지만 부동산 등기부등본에는 산림청 소유의 국유지.’
‘함박도 미스터리’는 주간조선이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5차례에 걸쳐 보도해 세상에 알린 사안이다. 취재 초기 국방부와 국토부는 “그것 참 희한한 일”이라며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다 논란이 커지자 부랴부랴 민관합동검증TF를 꾸렸다. 국회 국정감사 이후 현재는 감사원에서 함박도와 관련해 감사를 진행 중이다. 당시 국방부는 함박도에 설치된 북한 레이더를 두고 “군사용이 아닌 중국 어선 단속용”이라며 “물론 우리 어선을 단속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민간용 레이더도 군사적 목적으로 쓰일 수 있지만 꼭 그렇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설명한 바 있다.
07 친문 3종 게이트
우리들병원의 1400억원 불법 대출 의혹은 주간조선이 올해 2월부터 연속 보도해 세상에 알린 사안이다. 2012년 9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우리들병원 이상호 원장의 개인회생 전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들병원 측에 1400억원을 대출해줬다. 이 원장 측이 연대보증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신한은행의 문서위조 의혹도 불거졌다. 우리들병원 이 원장과 전 부인인 김수경 우리들리조트 회장은 대표적인 친노·친문 인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자유한국당은 이 사건을 ‘금융농단’으로 규정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감찰 무마 의혹도 현재 진행형 사건이다. 유 전 부시장이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시절 개인 비위 혐의로 민정수석실 감찰을 받던 중 ‘윗선’의 지시로 감찰이 중단됐다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다. 유 전 부시장은 과거 노 전 대통령 수행비서 역할을 했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탈선’은 선거개입 의혹까지 이어졌다. 작년 6월 지방선거 전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절친으로 알려진 송철호 후보(현 울산시장)의 당선을 돕기 위해 당시 김기현 울산시장에 관한 비위 첩보를 울산지방경찰청에 하달해 ‘하명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이다. 경찰은 김 전 시장의 공천이 확정된 날 시장 집무실을 압수수색했고, 김 전 시장은 이후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러나 그와 관련한 비위는 법원에서 무혐의 처리됐다.
08 청담동 건물주 된 6살 유튜버
요즘 초등학생들이 장래희망으로 ‘유튜버’를 써낸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어른들이 이 뉴스를 접하고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지난 7월 말 어린이 유튜버 이보람(6) 양의 가족회사 ‘보람패밀리’가 95억원 상당의 5층짜리 청담동 건물을 매입했다는 사실이 전해져 화제가 됐다. 잘나가는 유튜버들의 수입이 연예인 못지않다는 건 알려져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보람튜브는 현재 2개 채널에 총 360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한 달 광고 수익은 평균 10억~2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어린아이에 대한 지나친 ‘혹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6살 아이가 하기에 자극적이고 가혹한 콘텐츠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보람 양의 부모는 2017년 일부 콘텐츠에 아동학대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보호처분 결정을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자녀 생일 선물로 유튜브 촬영 장비를 사주는 부모들이 부쩍 늘었다는 후문이다.
09 18번째 대책에도 미친 집값
“이제 서울에 ‘내 집 마련’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기 “부동산만큼은 확실하게 잡겠다”고 공언했지만 집값은 결국 잡히지 않았다. 서울 주택가격이 지난 7월 첫째 주부터 24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2018년 정부의 9·13대책 이후 잠시 주춤하는 듯 보였던 집값은 서울뿐 아니라 광명, 의왕, 용인 등 수도권 전체로 폭등세를 이어갔다. ‘미친 집값’이라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나오는데 대통령은 11월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고 있다”고 말해 듣는 이들의 귀를 의심케 했다.
지난 12월 11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전·현직 공직자 76명 중 아파트와 오피스텔 보유 현황을 신고한 65명의 부동산 가격 변동을 조사한 결과, 현 정부 출범 이후 평균 40%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더욱 강력한 정책이라며 12·16대책을 내놨다. 이 정부 들어 18번째 고강도 대책으로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높이고 투기과열지구 등지에서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를 구입할 때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주간조선 [2588호] 2019.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