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늘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나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진 것 없어도 사랑하는 어여쁜 청춘이여
<가난한 사랑 노래> 이전에 <너희 사랑>이라는 시가 있었다. 사연은 이렇다.
신경림(73) 시인이 막 50대 초반에 들어섰을 때다. 시인이 자주 가던 식당에 청
초하고 어여쁜 처녀가 있었다. 어느 날 이 처녀가 시인에게 면담을 요청하였다. 사
연을 들어보니, 그녀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신경림 시인의 시
를 무척 좋아한다며 한번 만나달라는 거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인에게
어렵게 청을 넣은 이 식당의 따님의 마음이 어여뻐 시인은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두 남녀는 머지않아 부부 연을 맺었다. 그때 시인은 두 사람을 축복하며 <너희
사랑>이라는 시를 지어 결혼식에서 읽어주었다. 결혼식은 컴컴한 반 지하 방에
열 명 남짓 모여 단출하게 치러졌다. 노동운동을 하던 남자가 수배 중이었기 때
문이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가진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너무도 행복해하는 이
어여쁜 청춘 남녀에게 <너희 사랑>을 선물한 후 이들을 생각하며 또 한편의 시
를 썼으니 그것이 <가난한 사랑 노래>다.
'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러진/ 자잘한 낙서에서 너희 사랑은 싹텄다/ 흙바람 맵
찬 골목과 볼기 없는/ 자취방을 오가며 너희 사랑은 자랐다/ 가난이 싫다고 이렇
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너희 사랑>)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을 읽는 방식은 사랑이다. 부자인 사람들이 세상을 읽어
낼 수 있는 방법도 사랑뿐이다. 우리 모두 영혼이 가난하고 고독한 존재일 수밖
에 없기 때문이다. 내 사랑도 세상 어디선가 모진 몸싸움을 하며 소주잔을 기울
일 수밖에 없고, 자존과 치욕 속에서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울 수밖에 없는 영
혼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촌에 대한 애틋한 헌시인 그의 첫 시집 <<농무>>는 우리 시사에 리얼
리즘 시의 아름다운 시금석을 놓은기념비적 시집이었다. 신경림은 시를 어렵고
관념적인 세계로 느끼던 독자들에게 쉬우면서도 깊은 감동이 있는 세계가 있다
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모든 시집들엔 도시 노동자와 변두리 빈민에 이르기
까지 세상의 약자들을 향한 곡진한 애정이 배어 있다. 민중의 삶이 자연스럽게
노래가 되는 경지를 그는 꿈꾼다. 가난하고 못난 우리가 원래 노래였다고! 그러
므로 '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 는 아픈 고백은, 가난해도
절대로 사랑만은 버릴 수 없다는 사랑의 응원가와 닿아있지 않은가.
ㅡ김선우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