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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二 )
갈홍아는 아침녘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머리가 팅한 가운데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돌이켜 보
았다.
정신없이 달리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밀려들었다. 전에는 한번
도 없었던 일, 일순 당철휘의 느글느글한 웃음이 떠올랐다.
다른 생각은 할 틈도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어지러
움에 하마터면 말 위에서 떨어질 뻔했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자 객잔이 보였다.
거기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정신이 드나요?"
옆에서 옥구슬 굴러가듯 영롱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다행이군요. 우선은 좀 쉬세요. 한잠 더 자고나면 괜찮을 거
예요."
한연지는 갈홍아의 수혈(睡穴)을 가볍게 눌렀다.
갈홍아는 금방 깊은 잠에 파묻혔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한연지는 한 인간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독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앞뒤 상황을 추려 보면 누구의 소행인
지 명백한 일이 아닌가. 굳이 호아산에서 쉬어 가자고 우기던
당철휘가 가증스러웠다.
오는 도중 관도(官道)의 말발굽 자국을 관찰하던 행동이 겨우
여자 하나를 농락하기 위함이었던가.
그렇다면 정녕 문주감이 못 된다. 설혹 그런 일을 벌일지라도
자신조차 모를만큼 감쪽같이 저질렀다면 웃고 말았으리라.
'내가 잘못 생각했나...'
하독 솜씨만큼은 훌륭했다. 야생녀는 중독당한지도 몰랐을 게
고 객잔에 와서야 정신을 잃었다. 말 달리는 속도와 관도의 상
황을 꿰뚫어보고 격발 시기를 조절한 솜씨 정말 훌륭했다.
"말(馬)!"
한연지는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터뜨렸다.
단비하가 말의 꼬리에 불을 붙이지만 않았어도 틀림없이 성공
했을 계획이었다.
'호오! 당철휘 운이 나빴군. 내가 성급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좋은 한수였어.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았군.'
한연지는 낯빛을 풀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치밀한 사내라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인간적인 약점을 잡은 것도 유용하게 쓰여지리라. 다른 여인에
게 눈길을 돌렸다는 정도는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 여자에게 관심이 있단 말이지.'
"호호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야생녀를 잘만 이용하면 당철휘를 완전히
손에 넣을수 있을것 같았다. 그렇다고 육체적인 접촉을 용납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점찍은 사내를 누구와 나눠 갖는단 말
인가.
깊은 잠에 빠진 야생녀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자신을
위해 미끼가 되어 줄 몸이니까.
갈홍아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뒷머리에서 전해 오는 묵직한 통증이 기분 나빴지만 그외에 별
다른 이상은 없었다.
두두두...!
말발굽 소리, 흔들리는 몸, 객잔은 분명 아니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았지만 아직도 정신이 멍했다. 그만큼
미혼약의 독성이 강했던 탓이다. 사흘내리 혼수상태를 만들 만
한 분량이었으니 오죽하랴.
"깨어났군요."
기억 속에 새겨진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언제 들었더라. 언제...아! 객잔에서...'
눈을 뜨자 맞은편 자리에 곱상한 청년이 보였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었는데 매우 경직된 표정이었다.
순간 갈홍아의 눈꼬리는 저도 모르게 치켜졌다. 한데 자신의
손을 잡아오는 새하얀 손길은...
"갈길이 바빠서 마차에 동승시켰어요. 아직 성치 않은 사람을
객잔에 남겨 놓을수도 없고 해서..."
갈홍아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당문 사람들이니 자신에게 일어
난 증세는 이들의 소행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기분
나쁠 정도로 반반한 놈의 짓거리, 살살 웃음짓는 눈초리가 마
음에 들지 않더니...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이야?"
퉁명스런 말투로 물었다. 혹시 납치는 아닌지 더럭 의심이 든
것이다. 강호에는 초출이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우리는 형산까지 가요. 동생은 어디까지 가죠?"
한연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 했다.
"흥! 누가 동생이야?"
"어머! 너는 나이가 나보다 어린 것 같아서 그랬는데...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요."
정말 미안하다는 듯 고개까지 살짝 숙였다. 그러나 갈홍아는
본 척도 하지 않고 당철휘를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눈길을 느
꼈는지 그는 아예 눈을 감은 상태였다.
"마차 세워 줘."
"음? 마차를 세워 달라고요? 안돼요. 아직 여독(餘毒)이 말끔
히 가시지 않은 상태라 찬바람을 쐬면 건강에 안 좋아요."
"흥! 병주고 약주는 짓거리하지 마. 너희들 아니었으면 내가
왜 쓰러졌니?"
순간 당철휘의 눈이 번쩍 뜨이며 싸늘한 냉기를 뿜어 냈다. 하
지만 그 눈빛은 나타날 때보다 더욱 빠르게 사라졌다.
한사람, 한연지만이 그 눈빛을 읽었다.
"빨리 마차 세우라니까! 그리고 야! 낯짝 두꺼운놈, 너 좀 내
려봐."
마차가 들썩일 정도로 커다란 고함 소리였다.
갈홍아는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자신의 검을 찾는 중이었다.
'감히 독을 풀어! 심장을 꺼내 버릴까 보다.'
전에는 멋진 남자를 그려 보기도 했지만 선상에서 요상한 일을
당한 후부터 남자는 모조리 늑대로 보였다.
히히힝...! 푸드득! 푸드득...!
사마전은 말고삐를 낚아챘다. 마차 안에서 오고 가는 소리를
전부 들었고 파렴치한 당철휘 편에 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사전에 한연지에게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계속 달려 달라는 부
탁을 받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갈홍아는 마차 문을 벌컥 열고 내려섰다. 검집을 빠져 나온 검
이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거렸다.
"야! 너 이 새끼, 안 내려와!"
마차 밖에서 들려 오는 소리, 당철휘는 더 이상 모욕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번쩍 떴다.
"만약 내린다면...실망이 커요."
한연지의 얼굴은 동지섣달 북풍한설처럼 차가웠다. 모멸에 가
까운 비웃음을 던졌다는 표현이 딱 알맞았다.
"에잇! 끄응...!"
당철휘는 다시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모든 사실이 드러나
리란 것쯤은 예측했다. 말들이 날뛸 때부터...수습 방안은 없
었다. 그런데도 한연지는 태연하게 대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연지는 그런 당철휘에게 야차 같은 웃음을 던
진 뒤 마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단비하, 저놈이 또...'
갈홍아와 사마전은 멍청하게 넋을 잃어버렸다. 아니 그 누구라
도 이같은 상황에 직면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리라.
단비하. 그는 서슬퍼런 야생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분위기가 어떤지는 아예 관심도 없었고 자신이 하는 행동의 뜻
도 모르는 듯 했다. 신기한 장난감을 본 듯 파릇한 풀잎을 뽑
아 검날에 갖다대는 장난을 반복했다.
"히이 잘 베어진다. 정말 잘 베어진다. 그지? 이거 나주면 안
돼? 갖고 싶은데..."
"저, 저리 비키지 못해!"
"무, 무섭다. 화내지 마라. 그런데...정말 이거 나 주면 안
돼?" 너는 또 만들면 되잖아."
일견하기에도 평범한 검은 아니었다. 호수(護手)에는 봉황이
양각되었고, 검배(劍背) 중앙에는 한줄기 혈선(血線)이 음각되
었다. 일세를 풍미했던 명검(名劍)이 틀림없었다. 그런 검을
달라니...
"저리 비키란 말야!"
"피이 주기 싫으면 안주면 되지. 소리는 왜 질러!"
몸을 일으키던 단비하는 한연지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히히히! 저 여자 검 되게 좋다. 그런데 내가 달라니까 안줘
네가 달라고 해서 나주면 안돼?"
"자리에 가서 앉아라."
한연지의 음성은 냉막했다.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 멍청이, 그와 이야기 한다는 자체가
수고라 생각했다. 대학(大學)을 논하고 시경(詩經)을 읊을때는
천하에서 가장 좋았었는데 하루 한시도얼굴을 보지 않으면 잠
이 오지 않았는데...
그러나 지금 생각은 또 달랐다. 우연이 두번 이상 겹치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그리고 그럴때면 생각하는것 중에 가
장 최악의 상황이 어김없이 일어난다.
단비하가 멍청하지 않고 가식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면?
무려 십이년 동안 절정고수들의 이목을 속였다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간과할 일이 아니었
다.
"왜들 나만 가지고 그래? 하루종일 마차만 타고 와서 엉덩이가
아프단 말야."
한연지는 단비하를 의미 심장하게 쳐다본 후 갈홍아에게 다가
섰다.
"왜 그러죠? 우리는 소저의 목숨을 구해 준 것 뿐인데...생각
해 보세요. 우리에게 무슨 흑심이 있었다면 지금 무사할것 같
아요?"
"시답잖은 소리 하지마. 당문 놈들 아니면 내가 독에 중독될
이유가 어디 있어? 내가 만난 연놈들은 너희들 뿐이란 말야!"
"어머! 무언가 오해하고 있군요. 지금은 봄이에요. 만물이 소
생하는 봄이요. 온갖 종류의 곤충들이나 균(菌)들도 활발하게
움직이죠. 게다가 봄에는 풍토병(風土病)이 만연해요. 혹시 무
슨 꽃가루 같은 것을 흡입하지는 않았나요?"
갈홍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연지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런것 같기도 했다. 정신없이 말을 타고 있었으니 꽃가루를
흡입했는지 독가루를 마셨는지 어찌 알겠는가? 특히 말을 하는
한연지의 얼굴은 한 점 가식(假飾)도 없어 보였다.
"저, 정말이야?"
"마차에 타고 있는 남자는 당문 독제실의 부실장인 당철휘라고
해요. 혹시 이름을 들어 봤나요?"
갈홍아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한결 분기가 가시고 한연
지의 말에 감응되는 눈치였다.
"하기는...독제실은 거의 무림에 나서지 않으니 알지 못할수도
있겠군요. 그럼 내 명호는 들어 봤을지 모르겠군요. 무음무영
이라고..."
"빙지설화 한연지!"
갈홍아는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무음무영, 빙지설화의
명호는 사천성을 벗어나 중원 전체에 널리 알려졌다. 성급한
이는 중원제일 미인으로 서슴없이 그녀를 꼽았다.
"호호호! 제 명호를 기억하고 있다니 영광이군요. 하지만 저의
무공은 당철휘에 비하면 한수 아래죠. 어때요? 이래도 우리가
한짓 같아요?"
갈홍아는 고개를 다시 살래살래 흔들었다. 비록 강호에는 초출
이지만 빙지설화의 미모에 대한 칭송은 한두 번 들은 게 아니
다. 어쩐지 너무 예쁘다 했는데...직접 일면식하니 소문이 조
금도 과장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여인이 옆에 있는
데 자신에게 하독할 이유가 없을것 같았다. 선상에서 본 이들
한쌍은 그림 같았기에...
"미, 미안..."
기어이 사과의 말이 튀어나왔다.
"어디까지 가죠?"
"혀, 형산."
"어머! 우리도 형산까지 가는데...거기는 무슨 일로 가는 거예
요?"
갈홍아는 완전히 마음을 풀었다. 같은 여자이기도 했지만 미안
한 마음이 그렇게 만들었다.
"형산에 혈반사접이란게 나타났대. 구경 좀 하려고..."
"독에 대해서 알아요?"
"아니 하지만 나는 몰라도 세 할아버지는 알아."
"그들이 누군데요?"
"무산삼괴(巫山三怪)."
순간 한연지는 봉목을 부릅떴다.
천하에 독문(毒門)이 어찌 당문뿐이겠는가. 어림잡아 이백여
개로 추산되는 독문들 그 중에서 강성한 여덟 가문이 사천성에
밀집했을 뿐이다. 그랬기에 당문이 천하제일 독문으로 발돋움
하는 기반이 되기도 했지만...
칠가(七家)가 당문에 합병되자 위기를 느낀 다른 독문들은 일
제히 모습을 감줬다. 그속에는 당문과 필적하던 독문들도 다섯
이나 있었다.
무산삼괴.
무산파에 남아 있는 마지막 장로들, 엄격히 말하면 무산파파
(無産婆婆)의 사제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선보인 독술은 완
벽 그 자체였다.
어떤 독에 어떻게 중독된지도 모르고 죽어야 했다. 그러니 무
산파파의 독공은 어디에 닿아있겠는가?
형산, 형산에 파리 떼들이 꼬이고 있다. 하기는 독을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리라. 어쩌면 독접을 만들어
낸 독문의 윤곽이 쉽게 드러날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연지는 갈홍아를 의미 심장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소저하고 무산파파하고는 어떤 사이죠?"
"엉? 우리 할머니를 알아?"
"할머니요! 그런데도 독을 익히지 않았어요?"
"나는 독을 배우지 말래. 아빠하고 엄마가 독 때문에 죽었거"
든."
"호호호! 그럼 같이 갈까요? 방향도 같으니..."
"나는 빨리 가야되는데...할아버지들보다 한참 뒤떨어졌거든."
"왜 그들과 동행하지 않았어요?"
"동행? 할머니가 알면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을것 같아? 몰래
도망 나왔어. 지금도 잡히면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 거야."
한연지는 피식 웃었다.
야생녀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했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위
해 장미빛으로 물든 것 같았다. 예상치도 않았던 일들이 벌어
지고 모든 일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풀린다.
"가요, 우리도 빨리 가야 되거든요."
비로소 갈홍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이미 검집에 들어간
상태였다. 적대감(敵對感), 모든 적대감이 순진한 처녀의 가슴
에서 지워진 것이다.
"아까 욕해서 미안해. 네가 안 그랬다고 말하면 되잖아. 왜 가
만히 있었어?"
당철휘는 철없는 갈홍아의 말에 희미한 미소로 응답했다. 한연
지를 보기가 부끄러웠지만 눈길에 고마운 뜻을 담아 보냈다.
그녀가 먼저 눈을 흘기며 미소를 보내 왔기 때문에 어색함이
많이 줄었다.
'얼굴뿐 아니라 마음도 아름다운 여자...'
당철휘는 한연지가 천상 선녀처럼 고귀하게 보였다. 그리고 마
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녀를 놓치지 않
겠다고, 다른 여자에게 결코 한눈을 팔지 않겠다고...하지만
채 일 각이 지나지 않아 갈홍아의 탄탄한 종아리로 향하는 눈
길을 제지하지 못했다.
갈홍아 역시 나름대로 환상속에 파묻혔다.
눈앞에 있는 귀공자풍의 사내는 어디 한군데 나무랄 곳이 없었
다. 특히 누명을 쓰면서도 담대했던 마음에 감명받았다.
'내가 착각했어. 이 사람은 색마(色魔)가 아냐. 부끄러워 죽겠
네, 혹시 선실에서 나를 구해 준 사람도 이 사람이 아닐까? 그
러면서도 일부러 아닌 척...그랬을 거야. 내가 무안해 할까 봐
일부러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거야.'
예쁘게 보기 시작하면 얼굴에 난 점까지도 예쁘게 보인다고,
당철휘의 모든 면모와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 자연히 눈길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은근 슬쩍 종아리를 훔쳐보는 모습까
지도 귀여웠다.
한연지는 마음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당철휘는 참을성이 있지만 목표한 것을 놓치지 않는 아집(我
執)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망된 행동만 조절할 수 있다면
훌륭한 효웅(梟雄)이다. 그는 틀림없이 미혼약을 다시 사용할
것이다. 자신과 사마전이 없는 틈을 이용해서...
그리고는 어떻게 처리할까? 그의 성격대로라면 죽일 것이다.
후환의 여지를 한 올도 남기지 않는 것이 그의 신조이니까.
형산에 있다는 무산삼괴도 아마 무산파파까지도 죽이려 할 게
다. 그리고 그가 독아(毒牙)를 드러내는 날 그들은 틀림없이
죽으리라.
좋은 현상이다.
당문이 천하제일 독문으로 성장하려면 중원에 산재한 모든 독
문을 통합해야 한다. 설혹 다른 문파의 질시를 받아도 힘만 있
다면 두려울게 없다.
가장 근접한 청성파(靑城派), 아미파(峨嵋派)의 압력은 이루말
할수 없을테고 나머지 칠파일방(七派一房)도 만만치 않을게다.
그러나 그런 점을 두려워 한다면 당문은 영원히 한 지방의 일
각에서 맴돌아야 한다.
문제는 문주가 얼마만한 그릇인가에 달렸다. 조그만 일에 쉽게
자족(自足)해 버리는 인물이라면 거사를 같이할 수 없다.
당철휘는 장작만 끊임없이 제공한다면 끝없이 끓어오를 가마솥
이다. 천하를 준다해도 사양하지 않을 인물이다.
한연지는 뒤를 받쳐 줄 능력이 있다고 자부했다. 천하를 경영
할 웅대한 계략이 준비되었다. 그리고 앞에 내세울 꼭두각시의
약점을 움켜쥐고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먼저 패배를 안겨 줘야 한다. 아픔을 모르면 성장할수 없지.
갈홍아는...형산에 도착하기 전까지 마무리하자.'
한연지는 눈을 감아 버렸다. 두 남녀가 마음껏 눈길을 주고받
을 수 있도록...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에는 실타래처럼 복잡하
게 엉켰던 생각들이 줄줄이 풀어졌다. 단비하도 이용할 생각이
었다. 실제로 멍청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용할 가치는 충분
했다. 그런 모든 생각이 정리되는 중이었다.
사마전은 고삐를 힘차게 잡아당기며 단비하를 쳐다보았다.
'밉지 않은 놈...'
무공을 익히기에 아주 적합한 체질이었다. 딱 벌어진 어깨, 균
형 잡힌 몸매, 알맞게 부푼 근육은 아주 이상적이었다.
단비하는 심심한듯 길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흘렸다.
"심심하냐?"
"따분해서 죽겠어. 이게 뭐야? 계속 달리기만 하고..."
"세상 나들이는 처음일 텐데. 그래도 심심해?"
"이렇게 앉아만 있으니까 그렇지 뭐, 좀 쉬었다 가면 안돼?"
"후후후! 지루하긴 지루한 모양이구나. 하기는 지루할 수밖에
없겠지. 아저씨가 좋은 거 가르쳐 줄까?"
단비하는 금세 눈을 빛내며 가까이 다가 앉았다.
"뭔데? 재미있는거야?"
"처음에는 재미없어. 하지만 자꾸 연습하다 보면 정말 재미있
단다."
"빨리 가르쳐 줘. 빨리이..."
"후후후!"
사마전은 참선(參禪)을 생각했다. 운이 좋으면 머리가 깨일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대로 두기에는 불쌍한 놈
그렇다고 마음이 넓거나 인정이 많아서는 아니었다. 만약 당문
에 그대로 있었다면 평생을 가도 아는 체를 안했을 것이다.
여행하는 동안 단비하와 마찬가지로 사마전도 외톨이였다.
당철휘와는 계속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하는 행동마다 심사가
뒤틀렸다. 그런 점은 한연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야생녀에 대한 그녀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다.
며칠간의 여정에서 생긴 정(情).
단순히 그것뿐이었다.
"우선 결가부좌(結跏趺坐) 자세로 앉아라."
"결가부좌가 뭔데?"
사마전은 실소를 흘렸다. 배운 것 없는 어린아이한테 천지 자
연의 이치를 설명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이에게는 아이
의 눈이 있다. 아이가 보는 눈으로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다.
몸집은 장성한 청년이지만 정신은 아이 수준.
사마전은 정통선(正統禪)을 포기했다. 그대신 생활선(生活禪)
을 풀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구양명(歐陽明)의 귀전록(歸田錄)을 보면 그의 작품들 대부분
이 마상(馬上), 침상(寢上), 측상(厠上)에서 이루어졌다고 한
다.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허심(虛心)이 되어야 한
다. 그리고 허심의 순간은 삼상(三上)에서 가장 이룩하기 쉽
다.
"행주좌와(行做座臥) 어묵동정(語默動靜). 따라서 해봐라. 행
주좌와 어묵동정."
"행주좌와 어묵동정."
"그래, 다시 한번 해봐라."
"행주좌와 어묵동정."
"무슨 말인지 설명해 주마. 걸으나, 서 있으나, 앉으나, 누우
나 모두 선이라는 뜻이다."
"그럼, 나 지금 앉아 있으니 선이겠네?"
"그럼 그게 바로 선이야. 또 말하는 것, 입 다물고 있는 것,
움직이는 것, 가만히 있는 것이 다 선이란다."
단비하는 사마전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앞을 뚫어
지게 주시하면서 말을 잇고 있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
었다. 먼 기억속에서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읊조리는
것 같았다.
"상행삼매(常行三昧)라는 수련법이 있단다. 행선(行禪)을 한다
면 걷는 데 모든 의식을 집중하고 무심으로 걸어라. 코와 배꼽
과 앞발 발톱 끝과를 일직선으로 만들고 땅이 꺼지도록 힘차게
딛어라."
사마전의 얼굴이 암울한 기운으로 덮였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
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좋지 않은 일만은 틀림없었다.
"상행삼매에서는 걸으면서 경(經)을 읽는 경우도 있단다. 경
대신 검을 쥐었다면 언제 어디서 적이 나타나더라도 번개같이
대처할수 있는 경지가 바로 걷는 선이란다."
사마전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단비하를 돌아보았다.
그는 재미없는지 홀러가는 풍경에 한눈을 팔았다.
'후후후! 사가(査家)에도 법도(法道)가 있었는데...'
무리(武理)였다. 참선을 말하려고 했는데 말하다 보니 사가의
무리를 말하고 말았다.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말
과 사가의 무리는 일맥상통(一脈相通)했다.
"이놈아! 알아 들었느냐?"
느닷없는 일갈에 단비하는 펄쩍 놀랐다.
"응! 으응."
"그럼 지금부터 눈을 반개(半開)하고 정신을 집중해라. 다른
짓 하면 혼난다."
"으응."
단비하는 맥빠진 음성을 흘렸다. 그러나 마음은 급하게 뛰었
다. 사마전이 말한 오의(奧意)를 깨달은 까닭이다.
아버지도 참선에 대해 언급한 적은 있었다. 사마전이 말했던
생활선이란 것도...하지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가 너
무 어렸던 탓인가. 어쩐지 사마전이 말한 무리와 단가의 무리
가 맞물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루 십이시진(十二時辰) 최선을 다하는 검(劍)과 생명을 존중
하는 마음이 깃들인 검(劍)은 다른 듯 하면서도 동질의 것이었
다. 단가에서 추구하는 활검과 사가의 생검(生劍)은 같은 강
(江)을 흘렀다.
단비하는 어린 시절 감흥 받았던 활검에 대한 정의를 뚜렷하게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습관처럼 생각을 접었다.
정녕 바보라면 집중시간이 채 반각을 넘지 못한다. 차라리 어
린아이는 순수한 마음이라도 있는데 천치는 그런 마음과는 달
리 무척 산만하다. 그래서 집중하는 시간도 짧다.
몸이 찌뿌뚱한 것처럼 길게 기지개를 켰다.
"재미없어. 다른것 가르쳐 주면 안돼?"
"재미없어도 꾸준히 연습해라. 그래야 예쁜색시 얻어 장가를
가지."
"히! 나도 장가갈 수 있어?"
"그럼."
"그런데 너는 왜 못갔어?"
"너? 허허! 그놈 참... 이 아저씨는 장가를 못간게 아니고 안
갔단다. 할일이 너무 많았거든."
"나도 할일이 많으면 장가 못가?"
"뭐? 하하하...!"
"그렇구나. 씨이! 그럼 나 이번 일만 마치면 다시는 일하지 않
을 거야. 그래야 한연지같이 예쁜 색시를 얻지."
"한연지가 그렇게 좋니?"
"세상에서 제일 예뻐."
사마전은 단비하가 부러웠다. 똑같이 멸문한 가문의 자손인데
이렇게 다른 행로를 걷다니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편
한가.
"끼랏!"
사마전은 힘차게 고삐를 잡아당겼다.
* * *
호남성(湖南省) 형산(衡山)은 장사성(長沙省)으로부터 남쪽으
로 사십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옛이름은 남악(南岳), 중원
오악(五岳)중 하나이다.
태산(泰山)처럼 웅장하지도, 험하지도 않으나 상강(湘江)을 끼
고 형성된 칠십이 봉은 돌고 돌아, 혹은 마주보고, 혹은 등을
돌리니 이를 일컬어 구향구배(九向九背)라 한다.
그 중 가장 높은 봉우리는 사백 장 높이의 축융봉(祝瀜峰)이며
정상이 항상 희뿌연 안개로 가려 있어 운봉무쇄(雲封霧鎖)라는
말이 생겼다.
일행이 찾는 무애곡은 천향봉(天香峰) 북쪽산 자락에 자리했
다. 장장 보름 만에 천향봉에 도착한 일행은 선명히 드러나는
천향봉의 자태를 보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다. 모든 야망의 출
발점이기 때문이었다. 자칫 실수하면 천길 낭떠러지, 파멸의
길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없을것이다.
갈홍아는 무산삼괴를 찾아간다는 목적을 잊고 당철휘에게 마음
을 빼앗겼다. 뜨거운 열정의 눈길은 곱상한 얼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강호로 도망쳐 나와 처음 만난 사내가 영웅호걸이니 얼마나 뿌
듯한가. 괄괄한 성격의 할머니도 당철휘를 만나 보면 한풀 꺾
일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손녀가 다 컸다고 칭찬할것 같았
다.
천향봉을 쳐다보는 당철휘의 눈에는 야망과 욕정의 눈길이 섞
여 나왔다. 그동안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갈홍아의 공세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척박한 산골에서 천방지축으로 자란 소녀
답게 애정 표현도 노골적이었다. 한연지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
고, 마치 자신만의 연인인양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 점이 싫지 않았다. 아니 잘 익은 홍시처럼 손만 대면 톡
떨어질 여인을 눈앞에 두고 참아야 한다는 것이 고역이었다.
아무리 얼굴이 두꺼운 당철휘 일지라도 한연지가 두눈을 빤히
뜨고 있는데 어설픈 행동을 할수는 없었다.
갈홍아의 몸매에 끌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모로 보나 한연
지에게는 뒤 떨어졌다. 갈홍아로 인해 한연지를 놓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연지 또한 스스로 굴러온 떡, 불감청
이언정 고소원이라,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형산에 온 목적
두가지 중 하나는 성취한 셈이다.
이상한 것은 한연지의 태도였다. 그녀는 갈홍아의 애정 공세를
빤히 보면서도 살짝 웃을 뿐이었다. 질투를 전혀 못 느끼는 목
석(木石) 같은 여자인가.
"히히히....!"
단비하는 연신 기음을 터뜨리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사천과
너무 다른 생활환경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 점은 사천을 벗
어 난적이 없었던 당철휘나 갈홍아라는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사천 요리는 맵고 개운한 맛을 낸다. 맛이 짙고 섬세하며 향이
진하다. 고추, 생강, 마늘, 파, 그리고 약재를 썩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대표적인 음식 천채(天菜)는 중원 칠대요리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호남 음식은 남방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쇳덩이만 빼고 모
두 음식 재료로 쓰일 정도로 다양했다. 특히 뱀, 고양이, 개,
오리의 요리가 별미였다. 하지만 너무 담백하여 사천 사람의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산악지대인 사천과는 달리 드넓게 펼쳐진 평야지대인지라 가옥
구조부터 모든 풍습이 달랐다.
당철휘는 간단한 경장차림으로 나서는 한연지를 보고 눈을 크
게 떴다. 길 떠나는 차림새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디 가려고?"
"천향봉에요. 혈반사접이 얼마나 극성을 부렸는지 보고 와야
죠."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나도..."
"아니에요. 간단한 답사(踏査)니까 그럴 필요 없어요."
"하지만 그러다가 독접이라도 만난다면..."
당절휘는 굳이 따라갈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자리를 피해 주
는 한연지가 고맙기조차 했다. 군침만 삼키기에는 아깝고 곁에
두기에는 부담스런 여자를 처리할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사(査) 대협(大俠)하고 같이 갈 거예요. 살짝 둘러만 보고 올
거니까 위험은 없어요. 그런데 지금...저를 걱정해 주는 건가
요? 아니면 괜히 미안해서 그러나요?"
"내가 걱정하지 않으면 누가 걱정하겠소."
"고맙군요."
한연지는 봄날처럼 훈훈한 미소를 보냈다. 완전히 당철휘를 믿
고 의지한다는 뜻 같기도 했다.
당철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꼭 자신의 마음 한구석을
읽어 버린 것 같았다. 훈훈한 웃음이 비웃음으로 비춰져 얼굴
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그런 점을 내색할 정도로 어리석은 당
철휘는 아니었다.
"그럼 갔다올 게요."
한연지는 사마전과 함께 가벼운 몸놀림으로 신형을 띄웠다.
순간 당철휘의 눈은 갈홍아에게 돌려졌다. 마침 갈홍아도 그를
쳐다보고 있는 중, 그들의 눈은 허공에서 불꽃을 튕겼다.
"이, 이러지 마세요."
"왜? 원하던 게 아니었나?"
"할머니라도 뵙고 나서..."
"빌어먹을! 할머니, 할머니,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닌데
언제까지 할머니 타령만 할 거야."
"미안해요. 하지만 제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에요. 원하신다
면 모든 걸 다 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저를 사랑하신다면 조
금만 참아 주실 수 없나요?"
천하의 야생녀도 당철휘 앞에서는 양순한 고양이였다. 그의 손
길을 거부하면서도 혹시나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안절부절 못
했다.
"선택해라. 거부한다면 손대지 않겠다. 그러나 거절당한 치욕
만은 잊혀지지 않겠지. 그러고도 우리 관계가 유지될까?"
당철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속으로는 웃으면서 그는 갈
홍아가 거절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강호 노기인 무
산파파의 손녀치고는 너무 때묻지 않은 처녀였다.
"꼭, 꼭...그렇게 말씀하셔야 해요. 제 입장은..."
순간 당철휘는 등을 돌렸다.
"나중에 우연히라도 만날 기회가 있다면...웃어 보도록 노력하
지."
갈홍아는 다급해졌다. 이대로 보낸다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것
같았다. 짧은 보름간의 여정이었지만 그 동안 마음에 싹튼정은
순진한 처녀의 모든 것이 되었다.
"드, 드릴게요. 흑...흑흑...!"
왜 눈물이 나올까? 설움이 밀려온 것도 아니고 그를 받아들인
다는 것이 싫은 것도 아닌데 왜 눈물이 쏟아질까?
당철휘는 갈홍아를 보듬어 안았다.
"울지 마라. 바보같이...이렇게 자꾸 울면 할 기분이 나겠어?"
"미안해요. 울지 않을게요."
갈홍아는 정녕 울지 않겠다는 듯 널찍한 당철휘의 등을 힘껏
껴안았다. 그러자 마음이 든든해졌다. 괜히 울었다. 몸에서 풍
기는 강렬한 남자의 체취는 어떠한 방향제(芳香劑)보다도 향기
로웠다.
당철휘의 손이 옷섶을 헤치고 미끄러져 들어왔다.
"헉!"
예상은 했지만...부끄러운 기분. 스물두 해 동안 고이 간직했
던 순결이 드디어 주인을만났다.
주인은 난폭했다.
등에 닿은 풀잎의 감촉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싱그러운 냄새가
스며들었다. 그러나 파과의 고통은 너무 아팠다. 눈물, 눈물이
왜 또 흐를까?
'한연지만 아니라면...이제 어떻게 한다.'
당철휘는 자신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는 흑색 미녀의 알몸을 보
듬어 안았다.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몸매는 최상이었다. 여태
껏 스쳐 간 그 어느 여자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한연지만 아
니라면 결에 두고 싶었다.
"저...너무 모르죠?"
"아니, 잘했어."
"정말요?"
"그럼. 자, 이제 슬슬 돌아가야지."
"조금만 더 있으면 안되요?"
갈홍아는 떨어지기 싫다는 듯 아쉬움을 표시했다.
"한매하고 사귀신이 돌아왔을 거야."
"저...우리 사이 말할거예요?"
"말해야겠지."
당철휘는 가는 목소리를 흘렸다. 지금 머릿속은 팽팽하게 돌아
가는 중이었다. 절대 말해서는 안 된다. 미쳤는가? 말하게 갈
홍아가 가만히 있을까? 분명 입방아를 찧고 돌아다니겠지 마누
라나 된 듯이 행동하겠지. 그래서는 안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죽이는 것. 한연지에게는 무산삼괴를 찾아
갔다고 말하면 된다. 형산에서 무산삼괴를 만난다면 그들도 죽
여야한다.
입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확실한 죽음이다.
생각을 굳힌 당철휘는 몸을 일으켰다.
"자, 어서 일어나. 앞으로는 계속 같이 있을건데 뭐."
갈홍아도 몸을 일으켰다. 순간,
"아야!"
하복부를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 붉은 앵혈도 보였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님이기에, 님의 모든 것이기에.
통증을 참으며 가죽옷을 걸치고 허리띠를 동여맸다.
봄날이라서인지 바람이 무척 싱그러웠다. 풀냄새보다 좀더 진
한 향(香)이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입었어요. 이제 가....헉!"
가슴에서 바늘로 찌르는 고통이 몰아쳤다. 숨을쉴 수가 없었
다. 머릿속이 텅 비면서 손발에 힘이 빠졌다. 무릎 관절이 힘
을 잃고 몸이 앞으로 무너졌다.
급히 눈을 들어 당철휘를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도움의 눈길이었으나 차츰 원한의 광망으로 바뀌었
다. 전신의 피가 거꾸로 흘렀다. 처음 본 인상이 옳았다.
이 인간은 파렴치한이다. 이런 인간을 이런 인간에게...
당철휘는 웃었다. 그에게는 갈홍아란 여자는 쾌락의 대상외에
아무 가치도 없었으니까. 그나마 온정을 베풀어 가장 빠른 죽
음을 선물했다.
"후후후! 아주 좋은 몸이었다. 다음 세상에서도 한 번 더 부탁
할까?"
"더, 더러운...놈!"
힘껏 악을 썼지만 모기 소리보다 미약했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당철휘가 내력을 실어 일퇴(一
腿)를 전개한 것이다.
갈홍아는 눈도 감지 못하고 허공을 날아 풀숲 깊숙한 곳에 떨
어졌다. 밖에서는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늦었군."
당철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휘익!
그가 떠난 자리에 한 인영이 내려섰다. 한연지, 그녀는 천천히
갈홍아의 시신이 떨어진 풀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호호호! 과연 깨끗하군."
벌써 푸르스름하게 변한 피부, 발길질 한번에 내장이 터졌는지
입가에는 검붉은 선혈이 홀러내렸다.
한연지는 갈홍아의 검에서 봉황 무늬가 새겨진 호수(護手)를
뽑아내 품속에 넣었다.
"이것으로 승부는 끝났어."
어쩔 줄 몰라하는 당철휘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때 부드럽게
용서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저분한 과거가 어디 가겠는가.
추궁할 시기(時期) 역시 잘 고려해야 한다. 자신의 행동이 일
개 여인의 투기 정도로 그려져서는 안된다. 오가지 못할 입장
에서 공통적인 유대감을 형성해야 한다.
"호호호...!"
한연지는 신형을 날리며 교소를 터뜨렸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 또한 인영이 내려섰다.
"자포독(刺脯毒)! 당문 십대절독 제십위의 독. 독랄한 심성이
군."
자포독의 주성분은 피살리해파리의 촉수(觸手)에서 추출한 독
이었다. 어떤 독문에서 그 사실을 알고 피살리해파리를 분석했
지만 가공 과정에 포함된 이십여 가지의 독이 무엇인지 몰라
자포독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신경독의 일종으로 호흡을 막아 사망케 한다. 처음에는 기도를
막고 점차 심장으로 침투한다. 일 각이 지나면 심장에 수십 개
의 구멍이 뚫려 설사 편작(扁鵲)이 온다해도 살릴 수 없다. 독
성이 너무 강해 필살독으로 분류된다.
당문 역사 이래 자포독을 전개하여 살아난 사람은 없었다.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군."
가볍게 중얼거린 인영은 품속에서 옥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마개를 열어 밀랍에 싸인 단환(丹丸) 한개를 꺼냈다.
"중독된지 일 다경을 넘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야."
단환을 갈홍아의 입에 넣은 다음 액하(腋下)로 두 손을 넣어
쇄골(鎖骨) 상변(上邊)의 결분혈(缺盆穴)을 가볍게 눌렀다.
꾸르륵...!
단환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인영은 곧바로 하퇴부 중간 다리 안쪽에 위치한 축빈혈(築賓
穴)과 늑골 마지막 뼈 밑 경문혈(京門穴)에 침을 놓은 다음 명
문혈(命門穴)에 손을 얹고 내기(內氣)를 방사(放射)하기 시작
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오늘두 좋은날
감사드려요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고맙습니다
즐감함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감사합니다
즐독 입니다
즐독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