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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夫唱婦隨(부창부수)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따른다[가정(家庭)에서의 부부(夫婦) 화합(和合)의 도리(道理)를 이르는 말임]
요즈음 언짢은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그 중에서도 부부싸움 소식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싸움 끝에 집에 불을 질러 아내가 중태인 부부도 있다. 끝내는 아내에게 흉기를 들이대는 싸움도 있었다. 부부 싸움을 하다 분을 못이긴 부부가 농약을 들이켜 졸지에 아이들이 고아가 되었다고도 한다.
출처:전남일보 정유철 기자의 한자이야기
믿기 어려운 이야기
고려 명종 때 노극청(盧克淸)이란 사람이 있었다. 살림이 빈한하여 집을 팔려고 내놓았으나 팔리지가 않았다. 마침 일이 생겨 출타했을 때 그의 아내가 현덕수(玄德秀)라는 사람에게 백은(白銀) 열 두근을 받고 집을 팔았다. 서울로 돌아 온 노극청이 제 생각보다 집값을 더 받은 것을 알고 백은 세 근을 가지고 현덕수를 찾아가 “전에 내가 이 집을 살 때 아홉 근 밖에 주지 않았고, 몇 해 동안 살면서 수리한 것이 없으니 세 근의 이익을 내는 것은 경우가 아닙니다. 돌려 주겠소”하였다.
현덕수 또한 의로운 사람이었다. “댁 혼자만 경우를 지키고 나는 못하게 하는 게요?”하며 끝내 받지 않았다. 그러나 노극청은 “내가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재물을 탐내는 짓을 어찌 할 수 있겠소? 댁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집값을 다 돌려드릴테니 내게 집을 돌려주시오”라고 하였다. 할 수 없이 은 세 근을 받은 현덕수는 그 은 세근을 절에 바쳤다.
고려 500년의 문학을 대표하는 문인 이규보(李奎報)가 지어 전하는 노극청의 사연이다. 노극청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런 얘길 듣고서 실록을 편찬하던 이규보가 그 사실을 실록에 기록하고 자신의 문집에도 수록했다. ‘고려사’ 중 ‘현덕수 열전’에 노극청의 사연이 실리게 된 연유다.
김재해(金載海)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과부로부터 집을 사서 수리하다 집값의 두 배에 해당하는 백 냥이 담긴 항아리를 발견했다. 김재해는 아내를 시켜 본주인에게 돌려 주라고 했다. 그 과부는 뜻밖의 재물에 감사하면서 “꼭 제 물건이라 할 수도 없으므로 반씩 나누자”고 했다. 하지만 김재해의 아내는 “이 재물이 부인의 소유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남편이 있어 살만하니 사양하지 마세요”라고 하며 돌려주었다. 조선시대 영조 때의 일이다.
기대한 것 보다 백은 세 근을 더 받았다면 아내를 칭찬할 법 한데 노극청은 주인을 찾아가 더 받은 돈을 돌려 주었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재물을 늘리는 행위를 탐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남편이 있어 살만하니 사양하지 말라”고 했던 김재해의 아내야말로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전형이다. 노극청과 그의 아내, 그리고 현덕수, 김재해와 그의 아내, 그리고 어느 과부의 심성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형용키 어려운 감동을 준다.
출처:경기일보 글.임병호 논설위원 |
첫댓글 "댁 혼자만 경우를 지키고 나는 못하게 하는 거요?" 이 아름다운 다툼을 자주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