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여름철의 고온다습한 기후, 그리고 소금기와 독성이 가득한 땀 등과 같이 피부로 느껴지는 위험이 없어서 비교적 악기 관리를 수월하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연주자들은 겨울이 되면 가습기를 틀고 댐피트(dampit)에 물을 적시는 정도로 월동 준비를 끝내고 있다. 그러나 겨울철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여름보다 오히려 ‘예기치 않은 크랙(crack)’으로 악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많다고 스트라디 공방의 김동인은 말한다.
기온이 떨어지면?
기온이 떨어지면 모든 물질이 조금씩 작아지거나 움츠러든다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무로 제작된 현악기는 그 재질 특성상 이러한 수축운동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소리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크랙은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든 찾아오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그러나 고온으로 인해 악기 마디에 있는 아교가 녹아서 틈이 벌어지는 여름과는 달리, 겨울은 나무의 수축으로 인한 뒤틀림 때문에 악기 자체에 손상이 가므로 더욱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실내와 실외를 자주 오가며 급격한 온도변화에 노출시키면 크랙의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그런데 악기가 중구난방으로 수축하는 것이 아니라 앞판과 뒤판이 각각 수축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진1-a)와 같이 악기의 뒤판은 위 아래로 수축한다. 뒤판이 판 중심을 향해 잡아당기는 힘이 강해지다 보니 그 힘으로 인해 자연히 지판은 올라가게 된다(사진1-b). 여름에는 지판이 내려가고 겨울에는 올라가는 이유가 바로 뒤판의 팽창과 수축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두자. 지판이 높아지면 소리는 가늘고 거칠어지기 때문에 전문 수리가를 찾아 사운드포스트 및 브릿지의 셋업을 바꿔줘야 한다. 만약 증세가 심할 경우 지판 각도를 전체적으로 내리는 수리를 해야 할 경우도 생긴다.
반면 위 아래로 수축하는 뒤판과는 달리 앞판은 미들바우트(middle-bout) 부분이 안쪽으로 수축된다(사진2-a). 이로 인해 균열이 생기는 부위는 어퍼블록(upper block)과 엔드 블록(end block) 주변이다(사진2-b).
움츠러드는 것은 비단 악기의 몸통뿐만은 아니다. 펙(peg)은 계절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위라고 할 수 있다. 겨울이 되면 줄이 대책 없이 풀리는 것도 펙이 수축되어 펙홀(peg hole)이 헐거워지기 때문이다.
습도 조절에 소홀해진다
지금 당신의 악기가 놓여있는 방안 습도를 알고 있는가. 일반 아파트의 평균 습도가 20~30%라는 사실을 알면 모두 놀랄 것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온도계 및 습도계를 이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막연하게 가습기 한 대와 댐피트 하나로 모든 관리를 끝낸 셈 치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현악기에게 이상적인 습도 50~60%는 가습기를 두 대와 댐피트 두 개를 사용해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바이올린 제작자 김동인의 설명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선 40%를 목표로 습도를 관리할 것을 권한다. 또한 댐피트는 두 개를 사용하되 연주 중에는 반드시 빼도록 한다.
평소에 악기를 놓는 위치에 대해서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온돌문화를 갖는 우리나라는 방바닥이 뜨겁기 때문에 악기를 바닥에 그대로 놓으면 그 열기로 인해 아교가 녹을 뿐만 아니라 나무가 지나치게 건조해져서 곧바로 크랙으로 이어지게 된다. 건조로 인한 크랙은 주로 씨바우트(c-bout)와 손이나 몸이 닿는 부분, 그리고 퍼플링 부분인데 비전문가는 거의 알아볼 수 없으므로 악기 소리가 이상해지면 곧바로 전문가에게 맡기도록 한다.
계절용품 올바로 사용하기
· 댐피트
<댐피트 사용하기>
(1) 물을 받아 댐피트를 넣고 호스 속 스펀지에 물이 충분히 흡수되도록 한다.
(2) 댐피트의 물기를 꼭 짜낸다. 만약 이 과정에서 물이 많이 남아있으면 스펀지에 있던 물이 새어나와 나무를 변질시킬 우려가 있다.
(3) 겉에 묻은 물기를 흡수력이 좋은 타올로 닦아낸다.
(4) 댐피트를 들어보면 호스가 한쪽 방향으로 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휜 부분이 c-bout를 따라 놓일 수 있도록 f홀의 눈(eye)에 조심스럽게 넣는다.
(5) 연주할 때는 반드시 빼도록 하는데 악기에 따라서 f홀의 구멍이 작은 것이 있으므로 꺼내면서 f홀이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루도록 한다.
· 펙도프
펙은 여름에는 뻑뻑하고 겨울에는 미끄러지기 쉽다. 그래서 연주가들은 임시방편으로 팩이 뻑뻑할 때는 비누를, 미끄러질 때는 분필 혹은 송진가루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료들은 계절이 변하면 오히려 악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여름에 비누를 묻혀놓으면 겨울에 대책 없이 풀리게 될 것이고 겨울에 송진을 바르면 여름에 그 송진이 녹아 펙 부분이 엉망이 되기 십상이다. 만약 피치 못할 사정으로 송진을 사용했을 경우 팩 부분만 따로 빼서 알코올로 닦아내면 된다. 단, 알코올은 악기 바니시를 상하게 할 수 있으므로 절대로 악기에 닿지 않도록 유의한다.
요즘 시중에는 이러한 재료들의 난점을 보완해주는 펙 전용 제품인 펙도프(pegdop)를 판매하고 있다. 일명 브라운 초크(brown chalk)라 불리는 이 제품은 계절에 상관없이 펙 상태가 여의치 않을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악기에 무리를 주는 일 없이 상태를 완화시켜 준다. 펙도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코팅작업’을 해야 한다.
<펙도프의 코팅작업>
(1) 우선 줄을 풀러 펙을 악기에서 분리한 후 휴지나 수건 등으로 펙의 더러움을 제거한다.
(2) 펙도프를 펙에 바르되 두 개의 펙구멍과 마찰하는 부분을 신경 써서 바른다.
(3) 펙을 펙구멍에 넣고 앞뒤로 돌리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펙도프가 펙구멍에 충분히 발리도록 하는 코팅작업을 한다.
(4) 줄을 끼워 사용한다.
· 습도계 및 댐피트 시트
정확한 습도 측정을 위해 습도계의 위치도 고려해봐야겠다. 습도계나 담피트 측정 시트를 벽에 걸어놓는 사람들은 즉시 악기케이스 내부 혹은 보면대에 거는 등 벽과 떨어진 곳에 위치를 바꿀 것을 권한다. 벽은 원래 습기가 모이는 곳이므로 방안 습기보다 높은 수치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보온 주머니
실내와 실외를 자주 드나드는 학생이나 연주가는 보온 주머니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보온 주머니는 악기를 케이스에 넣기 전에 악기를 넣는 주머니인데 겨울철에는 악기 보온효과를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중에는 판매되는 곳이 거의 없으나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보온력이 있는 원단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런 악기관리요령도 있다
악기 관리는 무척 까다로우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관리하기가 어려운 작업이다. 바이올린 제작자 김동인은 그런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한 가지 제시한다.
“아무리 습도·온도를 조절한다고 해도 올드악기의 경우 가정집 방에서 관리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공방에 오는 손님 중에 올드악기를 매우 좋은 상태로 관리하고 있는 학생이 있습니다. 어떻게 관리했나 물어보니 방에 유리관을 짜 넣고 성능이 좋은 온·습도계를 그 유리관 안에 넣은 후 연습할 때가 아니면 그 안에 악기를 보관한다고 하더군요. 방 전체의 습도를 관리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악기 사이즈만한 작은 유리관은 습도를 조절하기가 용이한 것이죠. 그래서 여름에는 그 유리관 안에 제습제를 넣어놓고 겨울에는 물을 한 컵 넣어놓으면 쉽게 관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학생이 악기를 점검하러 오면 거의 손볼 곳이 없을 만큼 상태가 좋습니다. 유리관이 부담스럽다면 요즘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아크릴판으로 만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공간에서 악기를 관리하는 것, 정말 기발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공간을 따로 마련할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은 유리관 대신 악기 케이스를 활용하여 케이스 내부 습도를 유지하여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물기를 꼭 짠 손수건에 마른 손수건을 다시 한번 감아 습기가 직접 악기에 닿지 않도록 하면 훌륭한 가습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김동인은 독일 미텐발트 국립바이올린제작학교를 졸업한 후 1997년부터 바이올린 제작의 명인인 요셉 칸투샤(Josef Kantuscher)를 사사했다. 또한 독일 정부가 주최하는 마이스터 시험에 합격하여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하였으며 2003과 2004년에는 영국의 세계적인 딜러인 J&A Beare에서 수리·복원을 연수하기도 했다. 그는 ‘제4회 국제바이올린제작콩쿨(Mittenwald,독일)과 제10회 Henryk Wieniawski 바이올린제작콩쿨(Poznan,폴란드) 등에서 입상하여 그 실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현재 (주)송우무역(J&A Beare 한국지사)의 수리·복원 파트 및 금호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현악기들의 보존·관리를 담당하고 있으며, 부친 김현주와 함께 스트라디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음연 정리·김유경 기자 | 사진·윤윤수 기자
스트라디바리 카페 네이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악기 감정 및 제작자 연구
http://cafe.naver.com/stradivari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