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골목마다 구성진 "아이스케~키~"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사각 통 메고 다니며 나무 꼬챙이 꽂힌 얼음과자를 팔았다. 코 묻은 돈 내밀면 드라이아이스 김 자욱한 통에서 '케키'를 꺼내줬다. 분말 주스를 물에 타 얼렸을 뿐이어도 달고 시원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10여년 어른·아이 모두가 즐기던 여름 주전부리였다. 60년대 중반 비닐로 포장한 빙과 회사 '하드'가 나오면서 아이스케키는 차츰 거리에서 사라졌다.
▶노점들은 달걀같이 생긴 얼음과자를 마술처럼 빚어냈다. 단물을 달걀 모양 주석 틀에 붓고 나무통에 넣어 굴리면 딱딱하게 얼었다. 통 안에 버무린 얼음과 소금이 영하 십 몇 도까지 떨어뜨린 덕분이다. 빙수도 여름 호사였다. 재봉틀 비슷한 기계에 얼음 물리고 옆 바퀴를 손으로 돌렸다. 얼음이 돌아가면서 아래 대팻날에 깎여 눈처럼 그릇에 쌓였다. 고명은 미숫가루와 식용 색소 같지 않은 빨강·노랑 시럽이 다여도 부러울 게 없었다.
▶팥빙수는 더 큰 뒤에야 제과점에서 맛봤다. 달콤한 팥과 고소한 우유, 차진 인절미가 기막히게 어울렸다. 작년 여름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그 맛을 만났다. '책엄팥'을 판다는 학문서점 안 찻집에 들어갔다. '책방 엄마가 직접 팥 삶아 만든 빙수'란다. 조리대에 반가운 물건이 놓여 있다. 파란 칠까지 똑같은 옛 무쇠 삭빙기(削氷機)다. 바퀴 돌려 갈아 낸 빙수는 입자가 거칠다. 3000원짜리 팥빙수를 아끼듯 비벼 먹으며 고향을 떠올렸다.
▶3년 전 제주도 카페 '키친애월'에서 맛본 팥빙수도 잊히지 않는다.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다 서울 삶을 정리하고 온 이가 카페를 차렸다. 주인은 "둘이서 먹기엔 6000원 하는 '소짜'가 알맞다"고 했다. 큰 사발에 담긴 얼음이 안 보이도록 땅콩·건포도·옥수수칩을 얹고 아이스크림을 고봉으로 세웠다. 뒤적여 보니 키위·바나나·파인애플도 수북하다. 팥과 우유는 따로 넉넉하게 차려준다. 아름다운 애월 바다를 보며 입술이 얼얼하도록 한참을 먹었다.
▶요즘 팥빙수 값은 월급쟁이 점심 한 끼보다 비싸다. 중국산 통조림 팥을 쓰는 곳이 많으면서 보통 1만원 안팎이라고 한다. 특급 호텔 빙수는 3만원을 넘어 7만5000원에 이른다. 오늘이 초복이다. 펌프 물로 등목하고 평상에서 뒹굴며 나던 어릴 적 여름을 생각한다. 빙(氷)자 깃발 매단 가게에서 얼음 한 덩어리 사 와 바늘로 쪼개 띄워 먹던 수박화채. 거리의 아이스케키와 보리 냉차와 달걀 얼음과자와 빙수…. 특급 호텔 팥빙수가 그 맛을 따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