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한 마리가 가르쳐준 공존의 의미/안성환
육신과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공간, 천마산 농장.
이곳에는 내가 8년 전 처음 왔을 때 보지 못했던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생태계가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며칠 전에는 모처럼 멧돼지가 찾아와 두라(개)와 한바탕 전투를 벌였고, 고라니는 때때로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은 꽃무늬를 가진 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도망도 가지 않은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자기 할 일을 했다. 진흙 속 유충들을 잡아먹으며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결국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다시 길을 걸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뱀을 무섭고 위험한 동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 생태계에서 뱀은 매우 중요한 존재다. 뱀은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대표적인 조절자로서 쥐, 들쥐, 개구리, 곤충 같은 동물들의 개체 수를 조절해 준다. 만약 뱀이 사라진다면 설치류가 급격히 늘어나 농작물 피해는 물론 각종 질병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뱀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라기보다 자연 속의 ‘천연 방제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또한 뱀은 먹이사슬의 중요한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자이면서 동시에 독수리나 매, 오소리 같은 더 큰 동물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즉 뱀이 존재해야 또 다른 생명들도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생태계는 어느 한 생물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뱀 한 종류만 사라져도 자연 전체의 균형은 흔들릴 수 있다.
인간은 독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뱀은 사람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거나 무심코 가까이 다가갈 때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뱀은 두려움의 대상이기 전에 자연의 질서를 지키는 중요한 생명체이며, 인간 역시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이런 존재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뱀은 변온동물이라 포유류보다 훨씬 적은 에너지로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자주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먹이가 부족한 환경에서도 생태계의 고리를 끊기지 않게 유지해 준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태계의 에너지를 다음 단계로 전달하는 효율적인 통로 역할을 하는 셈이다.
특히 뱀은 환경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어떤 지역에 뱀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곳에 뱀의 먹이가 되는 작은 생물들이 풍부하고, 서식 환경 또한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뱀의 존재는 곧 ‘건강한 생태계의 징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뱀이 사라진다면 쥐 같은 설치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농작물 피해와 질병 확산이 우려되고, 뱀을 먹고 살아가는 맹금류와 포식자들 역시 먹이를 잃게 된다. 결국 뱀은 생태계라는 정교한 톱니바퀴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이어주는 핵심 축인 셈이다.
독수리를 비롯한 맹금류들이 뱀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뱀은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해 좋은 에너지원이 되며, 넓은 하늘에서 뛰어난 시력으로 움직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뱀은 몸을 길게 드러낸 채 이동하기 때문에 위에서 급강하하는 맹금류에게는 비교적 사냥하기 좋은 먹잇감이다. 일부 맹금류는 강한 발톱 힘으로 독사조차 머리를 먼저 제압해 안전하게 사냥한다고 한다. 결국 맹금류는 뱀의 개체 수를 조절하고, 뱀은 다시 설치류를 줄이며 서로 균형을 이루게 된다. 자연은 어느 한 생물만 강해지는 구조가 아니다. 서로 견제하고 의지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구조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과도한 팽창을 스스로 절제하게 만들 존재는 없는 것일까. 자연은 이미 오래전부터 공존과 절제를 통해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어쩌면 자연의 그 가르침을 가장 늦게 배우는 존재가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2026년 5월 10일 안성환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