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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 비노쉬는 연기를 하고, 춤을 추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도전의 이유를 그녀의 다재다능함에서 찾는 것은 옳지 않다.
그녀는 인생을 탐구하는 아름다운 철학자다.
줄리엣 비노쉬 Juliette Binoche
무용은 가장 정직하고 인간적인 그리고 철학적인 예술 장르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과 정신을 다른 어떤 도구나 재료 없이 몸으로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2차적인 어려움이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실연할 수 있는 기계로서의 몸을 만들기 위해 무용수들은 먼저 오랜 세월 혹독한 훈련을 견뎌낸다. 무용수 출신의 여배우는 더러 있어도, 여배우가 무용수가 되는 일은 없는 것은 그래서일지 모른다. 아름다운 무용수는 많지만,수는 없다. 평생 춤을 배워본 적 없었던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세계적인 안무가 아크람 칸과 사랑의 열네 가지 감정을 극으로 풀어낸 라는 무용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서울을 찾는다는 소식은 그만큼 별난 것이었다.
더구나 그녀는 1964년생, 우리 나이로 마흔여섯 살이다.
한참 그녀의 영화를 챙겨 본 건 대학 때였다. 그 무렵에는 남들처럼 나도 있지도 않은 답을 찾아 헤매면서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세상이 온통 막막하고 두려웠다. <프라하의 봄>이나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 <데미지> <세 가지 색 : 블루> 같은 비노쉬의 영화들은 삶의 해답을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친구처럼 해답 없는 시간들을 벗해주곤 했다. 매번 배역은 달랐어도, 어떤 역할을 연기할 때나 줄리엣 비노쉬라는 배우의 본질은 배어나왔다.
그녀에게서는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 자신과 직면해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는 사람의 용기가 느껴졌다. 나이 먹으면서 시드는 대신, 짙어지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신이 프랑스에 내린 축복이라는 프랑스 여배우들의 매력이다. 내 기억 속의 줄리엣 비노쉬는 누구보다도 더 프랑스 여배우답다.
그녀가 무대에 나타났다. 줄리엣 비노쉬의 목소리가 조용하고 차분하다는 건 가상의 기억이다. 무대 위의 비노쉬는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로 소리치고, 웃고, 속삭인다. 무대는 동적이고 열정적이다. 그녀는 질투와 권태, 열정, 집착 같은 사랑의 다른 모습들을 춤으로 표현했다. 완벽한 테크닉을 선보이는 댄서의 춤보다는, 춤을 통해 연기하는 여배우의 그것이었지만, 그녀의 춤은 아름다웠고 생동감이 넘쳤다. 마흔을 훌쩍 넘은 여배우는 무대 위에서 자유로워 보였다. 사실 인터뷰에 앞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던 나는 이미 공연 하루 전에 기자회견장을 찾아갔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인터넷을 뒤져 분단의 역사를 가진 한국에는 아직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얘기할 때의 그녀는 확실히 비빔밥과 불고기를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할리우드 여배우와는 달랐다. 그녀에게 춤을 통해 배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가 답했다. “불이에요. 나는 춤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불을 찾았죠.” 그리고 그녀가 서울을 떠나던 날 아침, 우리는 다시 만났다. 격렬한 공연으로 무릎에 통증이 느껴진다면서도 그녀는 자주 큰 소리로 웃었고, 어느 철학자보다 더 깊고 내밀한 생의 비밀들을 얘기해줬다.
지금까지 당신은 많은 영화에 출연해왔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모두 강한 자아를 가진 여자들이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얘기해줄 수 있나?
어렸을 때도 나는 내가 어떤 임무를 맡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을 갖고, 사랑하고, 탐구하고 싶었다. 춤추고, 그림도 그리고, 온갖 종류의 게임도 했다. 인생을 위한 일종의 준비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신념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놓아버려야’ 하는 것도 겪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사람은 어려운 시기에 가장 많은 것을 배운다고 믿는다. 우리 모두가 피하고 싶어 하는 굴욕감도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힘일 것이다. 굴욕을 느끼며 우리는 놓을 줄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욱 인간적인 존재가 되고, 생각도, 확신도, 삶에 대한 확실성도 줄어든다. 굴욕이라는 건 어떤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경험이다. 그건 외로움, 열망,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으로서, 굴욕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해방시킨다.
당신은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받는 스타다. 그러나 그런 사랑은 사생활과 자신을 지키기 어렵다는 뜻일 것도 같다. 어떻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나가나?
배우라는 건 자신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사람들의 눈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이런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노출된다는 것은 선택이다. 그들에 대한 나의 의무인 것이다. 나는 내가 애정과 관심을 갖고 고른 작품을 통해 나 자신을 넘어설 수 있을 정도로 용감해지려는 의지, 그러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지와 바람은 순진하게 남들에게 노출되는 것도, 순진한 소녀의 꿈도 아니다. 내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뜨거운 바람이다. 내가 꿈을 이룬다, 내가 적어도 어떤 방식으로든 일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때 내 삶은 완성될 것이다. 레드 카펫이며 포토그래퍼들이 항상 편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 가운데서 배우는 것도 있다. 사람들의 눈에 노출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가끔은 어떻게든 대처해야 한다. 행사에 주로 혼자 참석하는데, 그건 내 사생활을 공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랑콤 모델이 된 후 랑콤과 한 인터뷰를 읽었다. 여성과 아름다움에 관한 당신의 생각이 마리끌레르가 지향하는 것과 너무 똑같아서 놀라웠다. 둘의 공통분모는 프랑스다. 당신이 생각하는 프랑스 여성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다.
프랑스 여성들은 독립적이고 진실하다. 삶에서 예술을 추구하기 때문에 특별하다는 말을 듣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프랑스인이 자유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와인과 치즈에 열광하기 때문에 쾌락주의자로 불리기도 하고. 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세련됨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프랑스인은 뭔가 다르게 보이게 만들고, 그런 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당신이 생각하는 여성적인 아름다움과 남성적인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남성미 없는 여성미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상호작용이 우리를 하나의 완전한 형태를 갖춘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몹시 선머슴 같았다. 하지만 영화를 하면서 좀 더 부드러워졌다. 결국 카메라 앞에서는 내 속마음을 완전히 드러내놔야 하니까. 여성미는 컬러로 치자면 핑크색이 아닐까? 나도 이제는 핑크색을 좋아한다. 예전의 내가 레드나 다른 밝은 컬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좀 더 옅고 부드러운 색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어쩌면 새로운 여성미를 품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나는 여성미가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남성적이고, 거칠고, 공격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적인 매력이다. 완전함, 복잡함, 진실성을 지닌 여성의 아름다움 말이다.
그림 작업도 한다고 들었다. 어떤 작업인가?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데생에 먼저 관심이 있었다. 어머니가 어느 날 책을 1백 권 사주셨는데 책에 나온 판화를 열심히 따라 그렸다. 그게 아홉 살 때다. 지금은 그림의 세계를 탐구하고 춤의 움직임과 그것을 연결해보고 싶다. 내게 모든 움직임의 원천은 한곳이다. 바로 열정이다. 열정은 자연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어야만 하고, 어떠한 설명도 필요가 없다. 나는 내 그림이 인생, 새로운 것,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동요에 대한 표현이길 바란다. 그림은 항상 그려왔고, 시도 많이 쓰고 있다. 그림은 어렸을 때부터 그려왔기 때문에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특히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시력을 잃어가는 화가를 연기하면서 촬영 내내 밤새 그림을 그렸다. 잠을 못 자야 초췌한 모습으로 연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연기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시간을 많이 보내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지는 못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해오던 것이 그림 그리는 것이었다. 시를 쓰는 것과 관련해서는 언어, 단어 이런 것들을 상당히 좋아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성경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이런 구절이 있었던 것 같다. 말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그걸 연구하고 있다.
공연을 봤다. 당신은 춤을 통해 집착이나 권태 같은 사랑 안의 감정들을 얘기하고 있었는데 뭐랄까, 슬펐다.
어두운 곳으로 내려가면서 파고들어야만 궁극적으로 우리 안의 빛을 찾을 수 있다. 밝은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밝음 곁에 있는 어둠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렇게 계속해서 어두운 곳으로 내려가면서 파고들어야만 궁극적으로 우리 안의 빛을 찾을 수 있다. 어려움을 극복해봐야만 우리가 가진 진정한 강점이 무엇인지, 마음과 진심이 무엇인지, 빛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다. 공연 자체가 아래로 계속 내려가면서 어두운 면을 보다가 궁극적으로 빛을 찾아가는 내용인데 그런 구조 자체가 고대 수메르의 신화에서 차용한 부분이다. 사랑의 여신이 지옥의 신을 찾아가서 지옥에서도 가장 아래쪽 바닥까지 내려가 스스로 재물이 되지만 그녀를 찾아온 연인 덕에 지옥을 벗어난다. 는 이런 수메르 신화의 구조를 따라가기 때문에 슬프고 어두운 면들을 경험하다가 끝에 가서는 행복한 느낌으로 공연이 마무리된다.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뭔가?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언어는 그리스어다. 사랑을 종류별로 열네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단계의 사랑은 엄마의 젖이 필요한 어린아이가 엄마에 대해 품는 사랑이다. 기본적인 욕구, 필요에 바탕을 둔 사랑이다. 가장 궁극적으로 높은 사랑은 아가페다. 아가페는 영적인 사랑인데, 나 자신과 나의 에고를 초월한 그런 사랑이다. 나는 를 시작할 때 그 밖의 사랑들, 가족간의 사랑, 에로스, 열정, 우정, 집착, 질투 같은 사랑의 감정들에 매료됐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나 자신은 ‘살면서 이 열네 가지 사랑을 다 제대로 겪어보고 살아왔나?’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경험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더라. 우리는 쉽게 자기 존재에 얽매인다.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변화다. 사랑은 자기 문제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걸 테니까. 궁극적으로 사랑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사랑은 사랑하는 행위 그 자체, 사랑을 위한 사랑일 때 진정성을 갖는다. 사랑의 영역을 확장해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내가 모든 것을 사랑할 때 내가 제자리에 있구나, 느낀다. 그건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 큰 사랑이다.
그런 사랑이 가능할까?
(웃음) 관심을 기울이면 된다. 삶의 순간들을 의식하고 그 순간을 제대로 느끼면서 살기 위해 노력하면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관심과 주의를 충분히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랑콤과 한 인터뷰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은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동의한다. 하지만 그건 아주 고통스러운 일 아닐까?
진실을 알고 싶나? 맞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은 무척 용감한 사람이다.
(웃음) 삶은 언제나 우리가 용감해지도록 강제하니까. 그렇지 않나? 우리는 어려움을 만나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그런 극복이 없다면 결코 자기 존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완벽하고 착하고 예쁘기만 해서는 결코 자신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은 세계적인 스타고, 당신이 속한 세계는 특히나 위선과 거짓이 난무한다. 그 가운데서 진실을 발견하고 따르는 것은 특히 더 어렵지 않을까?
그렇지만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항상 한 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면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다른 면을 본다면 우리가 스스로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항상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열린 자세로 다른 사람을 대하다 보면 그 사람들도 계속 변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일하면서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변화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우리는 자꾸 다른 사람을 ‘저 사람은 어떤 것 같아’ 평가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그러다가는 자기 자신도 그 평가에 얽매여서 노예가 되고 만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런 면에서 동양의 철학 사상에서 배울 것이 많다. 동양의 철학은 항상 그 이면을 볼 수 있는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철학이 모든 것에 대한 정의와 판단으로 가득하다면, 동양철학은 판단하기보다는 비워두는 철학인 듯하다. 우리의 잠재력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게 두려운 것은 단순히 눈가의 주름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를 테면 그것은 인생의 가능성과 기회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인생의 답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당신은 나이 먹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인생은 쉽지 않다. 쉽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도전이 된다. 만약 내 접시 위에 도전할 무엇이 있다면 그건 멋진 일이다.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니까. 하지만 그 접시 위에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웃음) 나이를 먹어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들을 내가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는 도전 과제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당신은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같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태생적으로 기쁨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다. 중국 고대 사상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1백 세까지 살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 나는 내가 그 1백 세를 다 누리지 못하고 죽게 된다면 그건 어쩌면 내가 충분히 자연 속에서 이뤄야 하는 조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생은 하나의 순환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때로는 더디게 진행되는 시간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슬픈 시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순환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런 시간을 견뎌내면 다시 좀 더 활기차고 행복한 삶이 돌아온다. 자연이 계절의 순환을 겪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도 그렇게 순환하는 과정인 것이다. 나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평생 그렇게 활기찼던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연기하는 게 몹시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때로는 연인과의 사랑에 괴로워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다시 새로운 생이 찾아온다. 중요한 건 우리가 자신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갈 다음 길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항상 그렇게 귀를 열어놓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해가 되나?
이해는 되는데,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사는 일이 뭔들 쉽겠나? (웃음) TV에서는 모든 것이 쉽게 될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인생은 끊임없이 무언가로부터 이별하고 분리되는 과정이고, 그 이별을 통해 배워나가야 한다. 이별하는 법도 배워야 하고. 그래서 더 큰 관점으로 인생을 보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별의 과정, 어려움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성장을 이뤄내는 도구가 될 것이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장애물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어려움 자체를 친구처럼 여겨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나는 무릎이 아프다(이어지는 격렬한 공연 탓에 그녀는 방한 기간에 병원을 찾아야 했을 정도로 무릎이 아픈 상태였다). 이럴 때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운 일만 닥칠까’ 하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런 상황을 배움의 과정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앞으로 공연이 다섯 번이나 더 남았는데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하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이런 고통도 배움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여성이 일을 하면서, 그중 상당수 여성이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거부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어떤 시스템에 들어가게 되면 그 시스템 덕분에 보호받는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구속되는 부분도 있다. 속박되고, 얽매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가족간의 이별을 많이 경험했다. 부모님께서 이혼하셨고, 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다. 나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자라면서 현실 세계에서 남녀가 오래 함께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무척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보니 타인과 함께하는 것이 쉽지 않은 점이 많았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프랑스에 나폴레옹 법이라는 게 있었다.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면서 여러 가지 법을 제정해서 주변국들에게 법을 따르도록 했다. 그 중에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다행히 조르주 상드 같은 사람처럼 여성은 남성에게 복속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혁명적인 생각을 한 사람들을 선두로 많은 여성들이 구시대적 사고를 거부하면서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지금까지도 나폴레옹 시대적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적인 삶에 대해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이제까지 많은 아티스트들, 그리고 소위 오픈 마인드를 가졌다는 남자들과 사귀어봤지만 그 남자들조차도 여자는 이래야지, 남자는 이래야지 하는 식의 틀에 박힌 사고를 하는 경우를 많이 봤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관계 속에서 스스로 인격체로서 독립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나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당신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인가?
하나의 도구다. 아티스트들은 감수성이 몹시 풍부한 사람들이고, 연기자들도 대부분 기복이 심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과정에서 감수성이 발달한 사람들이다. 나도 누군가 자기 얘기를 하면 그 사람 인생인데도 내 얘기처럼 느껴지고 공감이 되는 감수성을 갖고 있다. 영화가 그런 감수성을 공유하는 매개가 되는 것 같다. 영화를 통해서 잊고 있던 나 자신과 만나게 되는 것 같고, 또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던 나만의 감수성을 다시 마주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영화는 내게 인생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는 생각들, 여러 감정들, 그래서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일깨워주는 그런 도구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사랑. 특히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지가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사랑하는 방법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끊임없이 경험을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줄리엣 비노쉬 Juliette Binoche
줄리엣 비노쉬는 1997년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앤소니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았으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오랜 동안 크리스토프 키에슬로브스키 감독과 작업하면서 그 작품 '삼색'에 모두 출연했다. [블루]에서는 남편과 아이를 잃은 슬픔에 직면한 작곡가로 분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예술학교를 나온 후, 장 뤽 고다르의 [해일 매리]로 데뷔했으며 [랑데뷰]에서 앙드레 역을 맡았고 [퐁네프의 연인들] [나쁜 피], 제레미 아이언즈와 함께였던 [데미지], [지붕위의 기병]등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비노쉬는 최근에 다이안 커리의 [세기의 아이들], 앙드레 테키네의 [엘리스와 마틴]에 출연했다. 그녀의 차기작은 파트리스 레콩테의 [성 피에르의 창]과 다니엘 오뗄과 미셀 하넥의 [미지의 코드]가 있다. 지난해, 비노쉬는 알미디어 프러덕션의 [네이키드]로 첫 번째 런던 무대에 데뷔하게도 했다.
감독이자 배우였던 부모님의 피를 물려받은 줄리엣 비노쉬는 17세부터 연기를 시작, 영화와 연극을 넘나드는 눈부신 재능을 발휘하며 프랑스를 사로 잡았다. <블루>, <초콜렛>, <잉글리쉬 페이션트>, <빨간 풍선> 등 주옥 같은 영화들을 통해 수많은 남성 팬들의 여신으로 자리잡은 그녀는 <댄 인 러브>를 통해 보다 발랄하고 상큼한 만인의 연인으로 변신했다. 두 남자 사이에서 복잡해져만 가는 여자의 심리를 무겁지 않지만 진지하게 연기해낸 그녀에게 제작진은 '줄리엣 비노쉬는 앤 마리 그 자체'라는 찬사를 보냈다.
<퐁네프의 연인들>, <블루>, <나쁜 피>로 세계적인 배우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줄리엣 비노쉬는 최근 할리우드 작품 <댄 인 러브>까지 끊임없이 다양한 필모 그래피를 채워나가고 있다. 특히 오는 3월 최초 내한으로 더욱 주목 받는 그녀는 스크린이 아닌 무대로 국내 팬들과 만날 예정. 무용가로 변신한 줄리엣 비노쉬가 다재다능한 안무가 아크람 칸과 만나 선보일 <in-i>가 바로 그 첫 무대이다. 그녀는 이 공연을 통해 인기와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예술가로서의 진면목을 보여 줄 것이다.
1964년 파리태생. 프랑스 파리에서 무대감독인 아버지와 영화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1985년 앙드레 테시네 감독의 <랑데뷰>로 데뷔했다. 레오 카락스 감독의 <나쁜피>, <퐁네프의 연인들>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세계적인 여배우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프라하의 연인>, <데미지>, <블루>, <잉글리쉬 페이션트>등 거장 감독들의 작품들을 통해 이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연기로 그녀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첫댓글 인터뷰 기사는 10여년전 기사인듯, 우리나라에도 여러번 방문한 여배우이자 철학자(?) 줄리엣 비노쉬를 올립니다.
인터뷰를 보니 지적 감성이 엄청 놀라워, 수박이가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넹. " 퐁네프 연인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