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이 장기화되어 병원에 갔다가 의사 선생님께 혼이 났습니다. 평소 제 체력과 건강을 믿기에, 기침이 간헐적으로 나는 따위 정도는 그냥 지나면 괜찮아질 거로 생각했는데, 최근 백일해, 천식, 폐렴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는 일단 병원 가서 진단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으로 가는 병원이라 기본사항 적어내고 나니 수부의 간호사가 최근 병력, 먹는 약 등을 확인하고 나서 혈압약 처방을 해주는 병원에 전화해 먹는 약 리스트를 확인하더군요. 신뢰가 갔습니다. 진료 후 약 처방을 할 때 혹 진료 결과에 따른 처방 약과 함께일 때 부작용일 일어나지 않게 처방을 내주가 위함이란 걸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의사가 밤에 기침 많이 하는 건 역류성식도염 가능성이 있다고 며칠 술을 끊어보라기에 사흘간 참았더니 한밤중 기침은 확실히 줄었습니다. 두 번째 진료에서는 큰 이상은 없다고, 이번 약까지 먹고 나아지면 안 와도 되지만, 언제든지 기침이 장기화되면 바로 병원 가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당연히 그러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십 수년 전 브라질 출장 이후 걸렸던 기관지확장증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브라질 출장 3주 동안 길거리카페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 낮에는 업무 보고 밤부터 새벽까지 거리악사의 연주를 들으며 길거리카페의 낭만을 즐기고, 술과 담배를 연이어 피우고 마셨던 탓에 귀국 후 기침이 멈추지 않았는데, 이를 방치했다가 한 달여 뒤에 병원에 갔더니 기관지확장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걸리면, 더 나빠지지 않게 관리는 되지만, 불치병이라고... 충격이 대단했습니다. 이후 담배는 끊었고 언제부터인가, 건강검진 결과에 기관지확장증이라는 꼬리표는 떨어져 나갔습니다.
의정갈등이 장기화되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환자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대다수의 병원과 의사들이 그 자리를 잘 지켜주고 계시기에 그나마 안심이 됩니다. 의정갈등 이후 모임에 나가보면 본인이 의사이거나, 의사 가족이 있는 이들, 그리그 그들의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논쟁이 항상 격렬합니다. 제 생각이 있지만, 저는 듣기만 합니다. 모임에서 ‘종교 이야기’,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얘기는 전부터 있었지만, 의료개혁이 어떤 형태로든 완결되기 전에는 ‘의정갈등 이야기’도 대화의 주제에서는 빼야 할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대다수의 의사가 본연의 책무인 의술을 펼치는데 열과 성을 다하듯, 우리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인생의 가을 무렵에 서 있는 저는, 세월이 갈수록 멀리해야 할 목록과 함께, 세월이 가기 전에 가까이해야 할 것의 목록도 채우고 실천해 나갈 겁니다.
그중 하나, 환경감수성이 풍부하신 어머니와 팔공산에서 가을의 끝자락을 잡으며 참 행복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668448684
세월이 갈수록 멀리해야 할 것들(모셔 온 글)=============
세월이 갈수록 멀리해야 할 것들이 있다. 따뜻함 없는 인연,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 창고, 넘치는 감상, 감당할 수 없는 열정, 차가운 미소, 과장하는 버릇, 참견하려는 습관. 세월이 갈수록 삶은 모시적삼처럼 헐렁하고 여유로와야 한다.
교감선생님으로 정년퇴임하신 그분은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인연은 좀 줄여가고, 세뱃돈 같은 칭찬과 덕담을 넉넉히 준비하라고 하신다. 그분의 수첩에 적혀 있는 '세월이 갈수록 멀리해야 할 것들'의 목록을 옮겨본다.
세월이 갈수록 멀리해야 할 것들.
따뜻함 없는 인연,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 창고, 넘치는 감상, 감당할 수 없는 열정, 차가운 미소, 과장하는 버릇, 참견하려는 습관.
따뜻함 없는 인연은 자칫 상처를 만들기 쉬우니 인연을 없애기보다는 인연 속의 따뜻함을 되살릴 것. 넘치는 감상은 자칫 사람을 가볍게 만들 수 있으니 자제할 것. 감당할 수 없는 열정은 치명적인 노욕을 부르기 쉬우니 가라앉힐 것. 입은 웃고 눈과 마음은 웃지 않는 차가운 미소는 관계를 외롭게 만들기 쉬우니 진정한 미소를 보낼 수 있도록 마음 온도를 올릴 것. 과장하는 버릇은 사람을 질리게 하니 온유한 삶을 위해 과감히 폐기할 것. 여기저기 참견하려는 버릇과 올바른 소리만 하려는 버릇도 멀리할 것. 내가 아는 것은 남들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 단 도움을 요청할 때만 간결히 답할 것.
지혜로운 노년은 열심히 살아온 세월이 준 선물이다. '노년의 수첩'에 세월이 갈수록 멀리해야 할 목록이 적혀 있듯 청춘의 수첩에는 세월이 가기 전에 가까이 해야 할 것의 목록이 적히기를 소망한다.
-----김미라의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