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 춘 수 -
샤갈의 마을에는 3월의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핵심정리
* 표현상의 특징: 현재형 시제 사용(생동감 있는 생명의식 표현에 적합)
* 주제: 맑고 순수한 생명감
감상포인트
▶ 봄의 생명감을 이미지로 포착하는 데 성공한 작품
▶ 이미지즘 시
▶ 이미지의 연결
눈 : 생동감 있게 온 천지를 덮는 주(主) 제재
새로 돋은 정맥(靜脈) : 퍼져 나가는 봄의 생명감
올리브빛 : 메마른 겨울 열매들에게 생명을 부여함
불 : 아낙의 맑은 마음
김춘수
1922.11.25-2004.11.29. 시인. 경남 충무시 동호동 출생. 경지중학을 졸업하고
니혼대한 예술과 3학년 중퇴. 통영중학교. 마산고등학교 교사. 마산대학 교수.
부산대학 연세대학(부산분교) 강사를 거쳐 경북대학 문리대 교수.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장.
1946년 해방 1주년기념 시화집 <날개>에 시 '애가'를 발효하면서 시작을 시작했으며,
대구지방에 발행된 동인지 <죽순>에 시 '온실'외 1편을 발표.
첫 시집 <구름과 장미>가 발행됨으로써 문단에 등단, 이어 시 <산악>, <사>, <기(旗)>,
<모나리자에게>를 발표,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주로 <문학예술>,
<현대문학>, <사상계>, <현대시학> 등에서 창작활동과 평론활동을 전개했다.
시집으로는 첫 시집 외에 <늪>, <기>, <인연(隣人), <제일시집>, <꽃의 소묘>,
<부타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처용>, <김춘수시선>, <남천(南天)>,
<근역서제>, <비에 젖은 달>, <김춘수전집>, <처용이후>, <김춘수> 등과
시론집으로는 <세계현대시감상>, <한국현대시형태론>, <시론> 등을 간행,
그의 초기의 경향은 릴케의 영향을 받았으며, 시가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사물의 정확성과 치밀성 , 진실성을 추구하였으나, 50년대에 들어서면서
릴케의 형행에서 벗어나, 이른바 의미의 시를 쓰게 되었으며 사실을 분명히 지시하는
산문적인 성격의 문장을 시의 형식으로 도입하였는데 <현대시학>연재 장시
'처용단장'에서 부터는 설명적 요소를 거세해버린 이미지 작품으로 변모하였다.
해설
단연 형태로 씌어진 이 작품은 순수한 생명 의식을 잘 포착했다.
이 작품 속 공간인 '샤갈의 마을'은 가공의 세계이다. 화가인 샤갈의 그림인
<눈 내리는 마을>이 연상이 되기도 하지만, 샤갈의 화풍인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품 세계와도
연결이 된다. 시적 의미를 형상화한다기보다 그저 마음 속에 떠오르는 '순수한' 심상들을 엮어
놓았는데, 이는 순수한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 절대시(혹은 무의미시)추구의 경향을 보인
김춘수 시인의 60년대 작품 경향을 잘 드러내 준다.
(50년대의 관념적인 시인 <꽃> 시리즈 작품과는 구별된다.)
2. 꽃을 위한 서시 - 김 춘 수 -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핵심정리
* 성격: 관념적, 주지적, 상징적
* 어조: 사색적, 열정적 어조
* 특징: 단순한 산문체의 시 같으면서도 깊은 의미를 지닌 난해다.
꽃으로 대표되는 사물 속에 담고 있는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세 그 자체에 그친다.
* 주제: 꽃의 참모습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존재의 본질 인식에의 염원)
* 의의: 이 시는 초현실주의적 경향과 존재론적 내면 추구의 시로
릴케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감상포인트
▶ '나'와 '너'의 관계: 인식 주체와 인식의 대상이다.
시적 대상인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내가 알 수 없는 존재)이며,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다가가고 싶으나 쉽사리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즉 '나'는 '너'의 실체를 알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는 드러내지를 않는다.
▶ 말하고자 하는 것: 사물의 본질은 영원히 우리의 인식 저편에 불가지(不可知)의 상태로
남아 있다.끈질긴 의식 주체의 인식 노력.
▶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 =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 = 무명의 어둠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
해설 1
릴케(R. M. Rilke)의 영향을 받아 존재론의 입장에서 사물의 내면적 깊이를 추구한
김춘수의 초기시에 해당한다. 그의 시 『꽃』이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존재가 남에게 바르게
인식되고 싶어하는 소망을 노래한 것이라면, 이 시는 반대로 인식의 주체로서의 화자가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하는 욕망을 읊은 것이다
사물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할 능력이 없는 '나'(위험한 짐승)가 '너'(꽃)를 인식하려고 시도하면
'너'는 더욱 미지의 세계로 숨어 버린다. 그리하여 꽃은 아무런 의미도 부여받지 못한 채,
불안정한 상태에서 무의미하게 존재하고 있다.
제3연의 '무명(無名)의 어둠'이란 존재의 의미, 본질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을 말한다.
이 무명(無名)의 상태를 보다 못한 '나'는 의식을 일깨우는 불을 밝히고 인식을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나'의 이 노력이 돌개바람처럼 문득 큰 힘으로 변하여 사물의 본질을 꿰뚫기만 한다면
'나'는 드디어 꽃을 똑바로 인식하고 알맞은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꽃은 수줍은 신부(新婦)처럼 너울을 드리운 채 그 정체를 끝내 드러내지 않는 것을......
1950년대 김춘수는 '꽃'을 제재로 한 일련의 시로 우리 시에 존재론의 문제를 끌어들임으로써
한국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는데, 이 시는 그 서시(序詩)에 해당하는 의의를 지닌다.
해설 2
존재론적 입장에서 사물에 내재하는 본질적 의미를 추구하는 이 시는 앞에서 설명한 시
<꽃>에 대한 '서시(序詩)'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꽃>이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화자가
남에게 바르게 인식되고 싶어하는 소망을 노래한 것이라면, 이 시는 그와 반대로 인식의
주체로서의 화자가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하는 소망을 읊은 작품이다.
이 시에서 '꽃'이 사물의 본질을 상징한다면, '미지'·'어둠'·'무명' 등은 사물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뜻하며, 화자는 그 무명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물의 본질,
즉 꽃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몸부림치는 존재이다.
1연에서 화자는 사물의 본질을 모르는 자신을 '위험한 짐승'이라 하여 무지에 대한 자각을
보여 주고 있으며, 2연에서는 자신의 자각 없이는 '꽃' 역시 불완전한 상태임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3연에서는 '추억의 한 접시 불'이라는 모든 지적 능력과 체험을 다하여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화자의 몸부림과 절망을 '나는 한밤내 운다'로 표현하고 있으며,
4연에서는 비록 존재의 본질을 깨닫지는 못했어도 그것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 '나의 울음'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라는 역설적 깨달음을 보여 주는 한편, 마지막 연에서는
결국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만 자신의 안타까움을 '얼굴을 가리운 신부'
- 꽃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해설 3
'꽃'은 사물에 내재해 있는 본질, 혹은 본질적 의미이며, '나'는 그것에 접근하여
본질을 해명하고자 노력하는 인식의 주체이다. 그러나 '나'의 간절한 노력과 욕구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삶의 상태에서 꽃은 '이름도 없이' 머무르다가 사라지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고 만다.
때문에, 어두운 삶의 상태를 밝히기 위해 모든 경험과 감성의 빛을 모두어 의식을 일깨우고
밤을 지새며 사물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꽃)을 포착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다. 사물의 본질은 마치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처럼 영원히
그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지 않고 베일 너머에 숨어 있기만 하다.
고인의 명복을 비옵니다
<퍼온글>
첫댓글 의미론의 시인, 존재론의 시인이라고도 하지요. 좋은 시 두 편을 소개해 주셨네요. 생시의 선생님 모습을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