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더 주: 오랫만에 역사에 대해 말씀드립니다....1999년부터 제가 인터넷에서 누차 경고해온 중국의 고구려 역사 침탈은 이제 본궤도에 이르고 있습니다...그당시 저를 매도 하던 사람들 다 뭐하는 지 모르겠네요...역사를 전공하던 사람들 까지 나서서...
역사를 아무리 많이 알면 뭐합니가.....과거의 역사를 통해 미래의 역사를 볼줄알아야 합니다.
고구려 멸망이 고구려에 대한 당나라의 집요한 스파이전에 의해 결국 연개소문 아들 형제의 분란으로 끝났습니다.
중국대륙과 황해와 남지나의 행상권은 물론 일본열도까지 장악하여 고구려를 능가하던 대제국 백제는 어떠하였을 까요...?.....마찬가지 입니다.
결국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된 것이죠...
우리는 그 교훈을 까마득이 잊고...
외세를 끌여들여 백제를 멸망시켰다고 신라만 욕하고 있죠...
웃기죠....참으로 역사를 편하게 해석하지 않습니까..????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세요...그 내부가 어떻게 무너지고 있지는지....
북한의 철저한 첩보전과 비정규전에 의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보고 있는 것이죠...
이제 서울도 제발로 걸어 나가겠답니다....ㅎㅎㅎㅎㅎㅎ
--- 아래 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백제는 왜 망했는가? 한국역사를 통틀어 가장 의미심장하고 드라마틱한 사건이었건만 웬 일인지 세인들의 관심권에서는 늘 비껴 서 있는 외면된 주제였다. 얼간이들은 쉽게 내뱉고 만다. 아 그거야 신라가 외세인 당나라를 끌어들여 덤벼들었으니 당연히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고.
더 이상 알 필요가 뭐 있느냐는 얘기다. 자세한 역사를 알 필요도 없고 교훈 따위는 더더욱 얻고
싶지도 않다는 이 한심한 태도가 우리역사를 계속해서 어두운 쳇바퀴 속으로 굴러다니게 만들었다면 이제 한번 진실에 접근해 보자.
통일신라시대의 저명한 문사였던 최치원은 삼국시대를 회고하는 글에서 군사력면에서는 삼국 중에서 백제가 가장 호전적이며 강한 군대였다고 평하고 있다. 실제로 백제는 나당연합군이 쳐들어오자 신라의 최정예사단인 5만 명의 김유신부대를 맞아 5천명의 계백장군 결사대가 4전 4승을 거둘 정도로 한수 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후 수도인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항복하자 전국에서 의병들이 들고일어나 치열한 부흥운동을 벌여 수도권을 제외한 250여성을 재탈환하는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했다. 당시 부흥군의 무기가 몽둥이, 죽창등이었다니 그들의 항전의지가 얼마나 굳세었던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로 미루어 멸망당시의 백제는 전반적인 군사력이 절대 열세에 놓여 있지 않았으며 군인들의 전투의지도 나당연합군을 능가하면 했지 결코 뒤지지 않았다. 지휘관들도 계백을 위시해 의직, 복신, 지수신, 흑치상지등 백전노장들이 즐비했다.
군사력의 열세가 아니라면 신라가 외세인 당나라를 끌고 들어왔기 때문인가. 사실 건국이래 끊임없이 고구려와 쟁투를 벌여왔던 백제도 수나라를 끌어 들여 고구려를 거꾸러뜨리려 한 적이 있다. 소위 합종연횡이라 불리는 나라끼리의 공수동맹은 그 당시 전쟁의 기본전략이었으며 어떤면에서 지금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군사전략이다.
합종연횡은 삼국의 전쟁외교사에서 숱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백제, 가야, 일본의 3국연합군이 신라를 협공하자 혼비백산한 신라의 내물왕은 고구려에 급히 구원을 요청, 당시 고구려의 임금인 광개토대왕은 즉각 응원군을 파견해서 신라를 구했다.
====> 광개토 대왕비에 잘 나타나 있슴 (왜가 신라를 유린하자 호태왕이 5만의 군사를 보내서 물리쳤다고)
나제동맹이란 이름의 신라, 백제공수동맹은 더욱 유명하다. 신라의 진흥왕과 백제의 성왕은 한강유역탈환이라는 공동목표아래 일치단결, 고구려를 밀어내고 기어이 한강주변지역을 차지했다. 그후 고구려는 수없이 재탈환을 시도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그렇다면 백제멸망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신라의 주도면밀한 첩보전략에 말려들어 국가정보시스템이 붕괴되고 지도층의 상당수가 적국의 뇌물을 받아먹을 정도로 안보의식이 마비돼 버렸기 때문이었다.
신라의 대장군 김유신은 첩보전의 명수였다. 노회한 그는 정면대결로는 백제를 깨기는커녕 도로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라 차라리 적을 내분으로 약화시키는 작전을 택했다. 첫단계로 백제의 최고위직 대신인 임자의 몸종 조말곤을 매수, 간첩으로 활용했다.
조말곤은
“국가는 꽃과 같고 인생은 나비와 같은 것인데 이꽃 저꽃 옮겨 다니면 꽃이 피고 짐에 상관없이 사시사철을 놀 수 있건만 어찌 구태여 꽃을 위해 절개를 지켜야 한단 말입니까?”
라고 넌지시 임자에게 김유신의 뜻을 전했다. 백제가 망해도 신라에서 고위직을 보장하겠다는
달콤한 미끼였다. 미끼를 덥석 문 임자는 곧바로 신라의 충실한 첩자가 됐다.
최고위층을 간첩으로 포섭한 김유신은 다음 작전에 들어갔다. 금화라는 아리따운 무당을 임자를 통해 의자왕에게 진상했다. 금화의 미모와 쪽집개같은 예언에 미혹된 의자왕은 그녀의 말이라면 콩을 팥이라 해도 믿을 정도가 됐다.
의자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금화는 충신인 성충에게 누명을씌워 죽이고 의자왕을 부추겨 난데없이 호화궁전을 건축, 국가재정을 탕진하는등 백제 멸망의 일등공신 역할을 다했다.
===> 중차대한 시기에 수도 천도는 국가재정을 탕진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예이다.
김유신의 스파이공작이 절정에 달할 무렵, 의자왕의 궁중에는 신라의 간첩들만이 우굴거릴뿐 충신이라고는 개미새끼 한 마리 없을 정도가 됐다. 드디어 신라에게 백제를 완파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후 스토리는 역사책에서 배운 대로 전개됐으므로 생략한다.
천년전의 묵은 얘기를 오늘에 와서 되새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요사이 옛 백제말엽에 있었던 것과 참으로 비슷한 장면이 사비성이 아닌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386세대의 친북세력에 둘러 싸여 있다는 경천동지할 뉴스 말이다.
백제의 고도 부여에 가보라. 부소산성을 따라가다 보면 낙화암이 보인다. 백제가 망하던 날 주인 잘못 만난 죄밖에 없던 삼천궁녀들이 떨어지는 꽃처럼 죽어간 곳이다. 그날엔 궁녀들만 죽은 게 아니다. 수많은 어린아이들과 늙은이들, 그리고 부녀자들이 죽었다. 물론 전장의 병사들도
수없이 목숨을 잃었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경각에 달렸다는 표현이 어찌 농담으로 들릴 것인가? (펀) KOREA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