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21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그는 흠 없는 수컷으로 가져 올지니
“만일 그의 예물이 가축 떼의 (곧 양이나 염소 떼에서 취한) 번제이면 그는 흠 없는 수컷으로 가져올지니 그는 제단 북편에서 주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아들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의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그 각을 뜨고 그 머리와 기름을 베어낼 것이요, 제사장은 그 조각들을 제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 가지런히 놓을 것이되 그는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불로 드리는 제사라.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1:10-13/제네바 한글 성경)
('If his offering is of the flocks--of the sheep or of the goats--as a burnt sacrifice, he shall bring a male without blemish. 'He shall kill it on the north side of the altar before the LORD; and the priests, Aaron's sons, shall sprinkle its blood all around on the altar. 'And he shall cut it into its pieces, with its head and its fat; and the priest shall lay them in order on the wood that is on the fire upon the altar; 'but he shall wash the entrails and the legs with water. Then the priest shall bring it all and burn it on the altar; it is a burnt sacrifice, an offering made by fire, a sweet aroma to the LORD.)”
임마누엘!!
모세 오경과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제물(예물)을 드릴 때 반드시 수컷으로 드려야만 하였습니다.
‘수컷’은 히브리어 'zakar(자카르)'. ‘수컷(male)’입니다.
'남성(male)‘, ’남자(man)'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남자와 동물의 숫컷을 나타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83회 나옵니다.
1) 창 1:27에서 이 단어는 기본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인류의 창조를 묘사할 때 '여성'(네케바)과 함께 사용됩니다. 또한 동물의 암수(창 7:3, 창 7:9, 창 7:16 등) 뿐만 아니라 인간의 양성을 나타낼 때 네케바와 함께 흔히 사용됩니다. 요약하면 이 단어는 성적 구별을 언급하는 곳에서 '남성'에 대해 사용됩니다.
2) 자카르는 할례 의식에 참여하는 남자에 대해 사용되며(창 17:10, 창 34:15, 출 12:48 등), 흔히 이스라엘 사회에서 인구 조사의 대상이 되는 '남자'를 나타냅니다(민1:2, 민 3:15, 스 8:3 등).
3) 자카르는 남자 간의 성적 교합을 금하는 구절에서 나오며, 성교에서 남자 상대자를 가리킵니다(민 31:18, 민 31:35, 삿 21:12). 에스겔은 남자 형상에 대해 이 단어를 사용하여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이 남자 형상과 함께 우상 숭배와 간음을 행한다고 말하였습니다(겔 16:17).
레위기는 구약성경이요, 특히 율법의 핵심인 제사법에 관한 말씀이 매우 많은 성경입니다.
율법 시대의 특성이 남성 위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장, 대제사장, 왕 선지자 등이 거의 남자였습니다. 여성 왕과 제사장은 없으나 여사사(士師)요, 선지자인 드보라가 유일합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망하였을 때 새로운 이스라엘의 역사를 창출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은 엄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막이나 성전에도 이방인들의 출입이 완전 차단되었습니다. 유대인 남자만이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 곧 예물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이나 여자들은 성전 밖 마당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지만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으로 만드셨습니다. 여기까지는 남자, 여자는 물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다른 표현을 한다면 이방인이나 여자도 다 하나님의 생령을 코에 불어 넣어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대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론(異論)이 매우 많았습니다. 이방인들 특히 흑인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주장과 함께 여자에게도 영혼이 없다는 주장을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주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흑인이나 여성을 노예를 판매할 때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로 사용하였던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저들의 주장은 분명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물들이 다 수컷이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교회와 나라와 사회에서는 남자들에게만 통치권이나 지도력을 주셨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구약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런 논리가 지금의 교회에서도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교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일치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교단은 여성 안수를 하여 교회의 지도자로 세워 놀라운 사역을 하게도 하고 있으나 어떤 교단은 여성 안수 절대 불가를 고수하여 오고 있습니다.
이런 시각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것이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디모데전서 2:8-15의 말씀입니다.
“또 이와같이 여자들도 단정한 옷으로 자기를 꾸미되 얌전하고 정숙하며 장식한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경건을 고백하는 여자들에게 합당한)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여자는 전적으로 순종하며 조용히 배울지니라.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그 후에 이브이며 또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범법 가운데 있었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녀가 해산함으로 구원을 받으리라.”
이 말씀을 읽으면서 사도 바울의 또 다른 말씀을 생각합니다.
갈3:26-29 “너희가 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나니 참으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없고 종이나 자유인이 없으며 남자나 여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진 것과 같이 율법과 복음의 칸막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유대인도 헬라인도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부릅니다.
이를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열 처녀 비유를 주셨습니다. 여기 ‘처녀’라고 하심은 온 인류의 그리스도를 믿고 주 예수님을 신랑으로 믿고 준비하는 모든 자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처녀’는 ‘여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는 모두가 여성입니다. 그러므로 신랑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하여 기름을 준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통칭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통일성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전서 2장에서 주신 말씀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하고 순종하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믿기로는 딤전 2장의 ‘여자’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이해하고 그리스도인 모두의 품위를 말씀하고 있다고 맏습니다. 특히 여자에게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36)는 말씀을 ‘여자’에게 국한해서 주신 말씀이 아니라 온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교회를 위하여 더욱 유익할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이에대하여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한다면 남자들은 교회에서 마음껏 자기주장을 마음껏 말하여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 오늘 한국 교회 모임에서 남자들만 목소리를 높이는 결과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신령한 몸을 존귀하게 여겨야만 할 것입니다. 교회에서 남자라고 목소리를 높이다보니 분열의 아픔을 가지게 된 것 아닐까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믿음으로 정숙하고 품위있는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신랑을 대하는 모습을 가지도록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의 자세일 것입니다.
오순절날 사도 베드로는 요엘선지자의 예언이 응하였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오히려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이것이니라. 일렀으되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날들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 위에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행2:16-18)
사랑하는 여러분!!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응하여 남종들이나 여종들이 그 육체에 성령의 부으심이 있었으냐? 아니면 없었느냐?가 문제이지 남자냐? 여자냐? 논쟁이나 제도의 주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성령 충만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어 이 시대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느냐? 가 더욱 중요하다고믿습니다.
한국교회 사역자 중에는 매우 훌륭한 여성들이 많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예를 든다면 ‘할렐루야! 아줌마 최자실 목사’ 같은 여성 사역자들이 더욱 많아져 유리 방황하는 이 시대인들의 영적인 어머니 역할을 잘 감당하여 주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다시 이 말씀을 남깁니다.
“너희가 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나니 참으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없고 종이나 자유인이 없으며 남자나 여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는 어떤 모양의 차별도 없어야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