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먼저 전쟁터에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올 것이다 단 한명도 남겨놓고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위 워 솔저스 (We Were Soldiers), 2002
감독: 랜들 월리스 / 출연: 멜 깁슨
6·25때 7사단 연대참모 지낸
전쟁영웅 해럴드 G. 무어 장군
지난 12일, 94세 나이로 별세

해럴드 G. 무어(Harold G. Moore) 장군은 지성·용기·결단력을 두루 갖춘 천재 지휘관이었다. 그가 지난 12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장군은 미 1기병사단 대대장, 여단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었는데 6·25전쟁 때 7사단
연대참모를 지냈고, 소장이 되어서는 주한미군 7사단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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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 장군은 주한 미 7사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오른쪽 가슴에 대한민국 대통령부대표창 수상 약장이
보인다. |
“우리는 이제 전투를 하러 떠난다. 나는 제군들이 살아서 돌아오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전투를 나갈 때, 내가 가장 먼저 전쟁터에 발을 디딜 것이고 가장 나중에 발을 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제군들이 살아 있든 전사했든, 단
한 명도 그곳에 남겨 놓고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함께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1965년, 베트남전에서
‘아이드랑 계곡(죽음의 협곡)’으로 출격할 때 미국의 전쟁 영웅 해럴드 G. 무어 장군이 당시 대대장(중령)으로서 병사들 앞에서 한 연설이다.
2000여 명의 월맹군과 벌인 사흘간의 치열한 전투에서 대승한 장군은 약속대로 가장 먼저 헬기에서 내려 싸웠고 가장 마지막 헬기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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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한
장면. |
타인을 배려하는 ‘서번트 리더십’ 전형
장군은 생전에 병사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솔선수범형 리더였다. 장군은 작전 시 병사보다 앞장섰고 부하와 군의 사기를 위해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타인을 배려하고, 조직을 조화롭게 만드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의 전형이었다.
무어 장군의
베트남전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위 워 솔저스(We were soldiers)’다. 호주 출신의 할리우드 영화배우 멜 깁슨이 장군 역을 맡았다.
영화는 무어 장군과 베트남전 종군기자인 조셉 L. 갤러웨이가 공동 집필한 『우리는 한때 꽃다운 군인이었다(We Were
Soldiers Once… And Young)』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1965년 본격적인 베트남전이 시작되기 전 아이드랑 계곡에서 미군과
월맹군 사이에 벌어진 사흘간의 전투를 담고 있다. 이 전투는, 1960년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간의 내전으로 시작해 1975년 미군의 철수로 끝난
베트남 전쟁의 서막이었다.
72시간 전투,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내
종군기자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첫째 날인 1965년 11월 14일, 무어는 400여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아이드랑 계곡에 헬기로
침투하지만 월맹군에 의해 선발대 전부가 희생당한다. 미군 사령부는 작전의 실패를 인정하고 무어에게 본대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무어는 “전투 중인 부하들을 두고 갈 수 없다”며 사령부에 최후의 수단으로 브로큰 애로(적군이 아군을 능가할 경우 아군의 피해를 감수하고,
상부에 무차별 포격을 요청하는 것)를 요청한다. 아군 폭격으로 아군이 죽는 처참한 상황이 된다. 마지막 날인 17일 새벽, 무어는 부하들과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백병전을 펼친 끝에 월맹군을 전멸시킨다.
영화는 72시간의 전투를 다큐멘터리처럼 그려 전쟁의 사실성을 잘 살리고
있다. 무어 장군의 가족애와 전우애에 방점을 둔 영화는 베트남전을 비판적으로 그린 ‘플래툰’이나 ‘풀 메탈 자켓’과는 차별된다. 감독 랜들
월리스는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각본으로 멜 깁슨과 인연을 맺었으며, 멜 깁슨 감독의 신작 ‘핵소 고지’의 각본을 맡기도
했다.
불확실성 극복한 승리의 표본으로
아이드랑 계곡의 전투는 적과 맞닥뜨린 지휘관이 전투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보여준 좋은 사례로 꼽힌다. 무어 장군의 1대대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전세를 역전시켜 북베트남군 600명 이상을 격멸했다. 장군은 이 전투에서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가 역설한 ‘전투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꿰뚫어 보는 지성·용기·결단력을 두루 갖춘 완벽한 지휘관이란 평가를 받았다. 전장환경을 평가한 후 적절한 조치를 취하며
비판적 추론을 통해 전투의 전 단계를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몸소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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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장으로서 베트남전쟁 참전 당시의
무어 장군. |
무어 장군은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 지도층의 덕목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몸소 실천하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 그에게 가장 큰 인상을 준 책은 보이스카우트 행동지침서였다고 한다. 일찍이 남을 배려하고 희생하는 훈련을 쌓고 규범을 준수하는 전통 가치를
몸으로 습득한 것이다. 그래서 미 육사에 입학한 후에도 믿음과 창조적 사고로 자기 방향을 세워나갔으며, 평생 군의 효율성을 높이고 군기가 엄정한
부대를 만들기 위해 애써 명실상부 미군을 대표하는 지휘관이 될 수 있었다. 국가의 리더도, 전쟁의 영웅도 모두 어린 시절 습득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김병재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