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지탄(黍離之歎)
기장만 무성함의 탄식,
나라가 망하여 그 대궐 터에 기장이 무성함을 보고 탄식하다
黍 : 기장 서
離 : 떠날 리
之 : 갈 지
歎 : 탄식할 탄
이 성어는 나라가 멸망하여 궁궐터에 기장만이 자라 황폐해진 것을 보고 하는 탄식이라는 뜻으로, 부귀 영화의 무상함에 대한 탄식이다.
나라가 망(亡)하고 난 뒤 옛 궁전(宮殿) 터에 무성(茂盛)하게 자란 기장(黍)을 보고 탄식(歎息)하는 말이다. 시경(詩經) 왕풍편(王風篇)의 서리(黍離)에 나오는 다음 구절(句節)에서 유래(由來)하였다.
기장은 우거지고 / 서리(黍離)
彼黍離離(피서리리) : 저기 기장이 우거지고
彼稷之苗(피직지묘) : 피의 싹도 자랐구나
行邁靡靡(행매미미) : 가는 길 머뭇거리니
中心搖搖(중심요요) : 마음이 술렁인다
知我者 (지아자) : 나를 알아주는 사람
謂我心憂(위아심우) : 내 마음 시름겹다 하고
不知我者(불지아자) : 나를 몰라주는 사람
謂我何求(위아하구) : 나에게 무얼 구하느냐고 한다
悠悠蒼天(유유창천) : 아득히 푸른 하늘이여
此何人哉(차하인재) : 이것이 누구 탓인가
彼黍離離(피서리리) : 저기 지장이 우거지고
彼稷之穗(피직지수) : 기장의 이삭이 팼구나
行邁靡靡(행매미미) : 가는 길 비틀비틀
中心如醉(중심여취) : 마음은 술 취한 듯
知我者 (지아자) : 나를 알아주는 사람
謂我心憂(위아심우) : 내 마음 시름겹다 하고
不知我者(불지아자) : 나를 몰라주는 사람
謂我何求(위아하구) : 나에게 무얼 구하느냐고 한다
悠悠蒼天(유유창천) : 아득히 푸른 하늘이여
此何人哉(차하인재) : 이것이 누구 탓인가
彼黍離離(피서리리) : 저기 지장이 우거지고
彼稷之實(피직지실) : 기장의 열매가 여물었다
行邁靡靡(행매미미) : 가는 길 비틀비틀
中心如噎(중심여일) : 마음은 목멘 듯
知我者 (지아자) : 나를 알아주는 사람
謂我心憂(위아심우) : 내 마음 시름겹다 하고
不知我者(불지아자) : 나를 몰라주는 사람
謂我何求(위아하구) : 나에게 무얼 구하느냐고 한다
悠悠蒼天(유유창천) : 아득히 푸른 하늘이여
此何人哉(차하인재) : 이것이 누구 탓인가
부이흥(賦而興)이다. 서(黍)는 곡식(穀食)이름이니 싹이 갈대와 비슷하고 높이는 한 길 남짓이요, 이삭은 흑색이요, 열매는 둥글며 무겁다. 리리(離離)는 드리워진 모양이다. 직(稷)도 또한 곡식(穀食)이다. 일명(一名) 제(穄)이니, 기장과 비슷한데 작다. 혹자는 조라고 한다. 매(邁)는 감이다. 미미(靡靡)는 지지(遲遲)와 같다. 요요(搖搖)는 정한 곳이 없음이다. 유유(悠悠)는 먼 모양이다. 창천(蒼天)이란 것은 먼 곳을 의거(依據)하여 보기에 창창연(蒼蒼然)한 것이다.
주(周)나라가 이미 동천(東遷)함에 대부(大夫)가 행역(行役)을 나갔다가 종주(宗周)에 이르러 옛날 종묘(宗廟)의 궁실(宮室)을 지나가니 아마도, 다 화서(禾黍)가 되었거늘 주실(周室)의 전복(顚覆)함을 슬퍼하여 방황(彷徨)하며 차마 가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본 바 기장의 리리(離離)함과 피의 싹을 보고서 갈 때의 미미(靡靡)함과 마음의 요요(搖搖)함을 흥(興)한 것이다. 이미 당시 사람들이 자기의 뜻을 알지 못함을 탄식(歎息)하고“이 지경(地境)에 이르게 한 것은 과연 누구인가.”라고 상심(傷心)하였으니 추원(追遠)함이 깊은 것이다.
부이흥(賦而興)이다. 수(穗)는 이삭이 팬 것이다. 피의 이삭이 아래로 드리워진 것이 마음이 취한 것과 같았으므로 흥(興)을 일으킨 것이다.
彼黍離離(피서리리) : 메 지장이 자라나 우거지고
彼稷之實(피직지실) : 피의 열매가 여물었네.
行邁靡靡(행매미미) : 가는 길 비틀비틀
中心如噎(중심여일) : 마음은 목멘 듯
知我者(지아자) : 나를 알아주는 사람
謂我心憂(위아심우) : 내 마음 시름겹다 하고
不知我者(불지아자) : 나를 몰라주는 사람
謂我何求(위아하구) : 나에게 무얼 구하느냐고 하네.
悠悠蒼天(유유창천) : 아득히 푸른 하늘이여
此何人哉(차하인재) : 이것이 누구 탓이런가?.
부이흥(賦而興)이다. 일(噎)은 우심(憂心)하며 능히 천식(喘息)하여 목인 멘 것과 같은 것이다. 기장의 열매가 마음이 근심스러운 것과 같으므로 흥(興)을 일으킨 것이다.
서리(黍離) 삼장(三章)이니, 장(章) 십구(十句)이다.
원성유씨(元城劉氏)가 말하였다.
“상인(常人)의 정(情)은 우락지사(憂樂之事)에 처음 만나면 그 마음이 변하고, 다음에 만나면 그 변함이 조금 쇠(衰)하고 세 번 만나면 그 마음이 보통과 같다. 군자(君子)의 충후(忠厚)한 정(情)에 이르러서는 그렇지 않아서 그 행역(行役)하러 왕래(往來)할 적에 진실로 한 번만 본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피의 싹을 보고, 또 피의 이삭을 보고, 또 피의 열매를 보았으나 그 느낀 바의 마음이 시종여일(始終如一)하여 조금도 변하지 않고 더욱 더 깊었으니 이는 시인(詩人)의 충후(忠厚)한 뜻이다.”
송대(宋代)의 유학자(儒學者) 주자(朱子:1130∼1200)는 이 시(詩)에 관하여‘주(周)나라가 수도(首都)를 옮기고 나서 대부들이 옛 도읍(都邑)을 찾아왔을 때 주(周)나라의 종묘(宗廟)와 궁궐(宮闕)은 없어지고 그곳에 기장이 자란 모습을 보며 주(周)나라의 왕실(王室) 권위(權威)가 땅에 떨어짐을 슬피 여기면서 떠나지 못하고 한탄(恨歎)하였다.’라고 설명했다.
나라가 망하자 도성(都城)의 대궐(大闕) 터가 기장밭으로 바뀌어 황폐(荒廢)해진 것을 보고 한탄(恨歎)한다는 뜻으로, 부귀영화(富貴榮華)의 무상(無常)함을 탄식(歎息)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