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우리옛돌박물관'과 '길상사'를 찾았다.
'우리옛돌박물관'은 옛돌조각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자 2015년 북악산과 한양도성으로 둘러싸인 성북동에 문을 열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문인석, 장군석, 동자석, 벅수 등의 석조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옛돌조각에 담긴 선인들의 수복강녕과 희로애락을 이해하고, 우리의 소망도 함께 기원해 보는 공간이다. 전시 관람료는 성인 3,000원(경로없음)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다.
'길상사'는 1987년 '길상화(吉祥華) 김영한'님이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접하고 감동받아 당시 음식점이던 '대원각' 대지 7,000여 평과 지상건물 40여 동 등 부동산 전체를 청정한 불도량으로 기증하고자 법정스님께 오랫동안 청하자 1995년에 스님께서 그 뜻을 받아들이시고 1995.6.13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등록한 곳이다. 그 후 대원각 부동산 일체의 등기를 완료하고 '길상사(吉祥寺)'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97.12.14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역사적인 개원 법회를 봉행하게 되었다.
오늘의 투어코스는 전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출구 - 02번 마을버스 - 우리옛돌박물관(약 10분 소요, 종점 하차) - (걸어서 내려오며)길상사와 성북동성당을 경유하여 한성대입구역에 도착, 전철로 귀가하였다.
우리옛돌박물관
우리옛돌박물관 입구
석호(조선후기)
입구에 들어서니 두 마리의 '석호(石虎)'가 방문객을 환영하고 있기에 기념촬영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석호'는 돌로 만든 '호랑이'로 궁궐이나 건물의 정문에 세워 잡귀를 막아내는 수호신이나 방위신의 기능을 하였다. 이 석호는 평화롭고 온순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완벽하게 균형을 갖춘 신체와 사실적이고도 세련된 조각 솜씨가 뛰어난 석조유물이다.
마애지장보살입상(고려후기 추정)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보살이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관세음보살'과 함께 가장 많이 모시는 보살이다.
동자석(조선시대) - 사진 상
'동자'는 '불교(佛敎)'에서는 부처님이나 보살을 곁에서 모시고, '도교(道敎)'에서는 신선의 곁에서 시중을 들고, '유교(儒敎)'에서는 무덤 주인의 심부름을 하는 아이이다. '동자석'은 16~18세기 중반까지 서울과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왕실 가족과 사대부 묘역에 조성된 석물이다. 엄숙한 묘역에 활력을 불어 넣는 존재로 불교, 도교, 유교, 무속신앙 등 여러 요소들이 혼재되어 다채로운 형태를 지니며, 그 역할 또한 무덤의 수호신, 마을 지킴이 등 다양하다.
벅수(조선시대) - 사진 하
마을 입구나 길가에 사람의 얼굴을 한 '벅수'(경상도나 전라도에서 장승을 부르는 이름)가 서 있으면, 전염병을 옮기는 역신이나 잡귀들이 겁을 먹고 마을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었다. 또, 재화를 막고 복을 가져다주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고 여겨 마을의 벅수에게 갖가지 크고 작은 소원을 정성스레 빌었다.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하지만 그 생김새는 수더분하고 익살스럽다.
제주정낭(조선후기)
'정낭'은 제주도만의 독특한 대문 양식으로,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대문 대신 가로로 걸쳐 놓는 굵직한 나무이다.결쳐 놓은 나무의 갯수에 따라 집에 사람이 있고 없음을 알림과 동시에, 소와 말의 출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전해 진다. 정남 3개가 가로로 모두 걸쳐진 것은 '좀 멀리 갔어요', 2개이면 '저녁 때쯤 와요', 1개이면 '금방 돌아와요', 걸쳐 있지 않으면 '사람이 있어요'를 의미한다.
민불(조선후기) - 사진 중앙
표정이 이웃집 아저씨같이 소박하고 정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기우제단(조선시대) - 사진 우
비(雨)나이다. 비(雨)나이다.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의례를 행하는 제의 장소이다. 농경사회에서 '용'은 '물의 신'으로서 비(雨)를 관장한다고 여겨졌기에 기우제는 용을 조각한 제단이나 용바위 혹은 우물에서 지냈다.
수세식 화장실 화강암 판석(통일신라시대) - 사진 중앙
2017.9월 신라의 별궁인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1300년 전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 고대 화장실 유적 중에 화장실 건물과 변기, 오물 배수시설이 모두 발견된 것은 최초였다. 현재의 전시물은 용도가 명확하지 않아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수세식 변기로 밝혀짐에 따라 재현 설치한 모습이다.
'우물용 석조물'이다. 도르레를 이용한 조상들의 과학적 지혜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염화미소 - 사진 좌
'염화미소'(꽃을 들고 미소를 띠다) 즉,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석조약사여래입상(신라) - 사진 우
환수유물(장명등과 장군석) - 조선중기
2019.5월에 일본인 '오자와 테루유키' 씨로부터 기증받은 유물이다. 조선과 만주를 오가며 사업을 했던 '요시이에 게이조'는 1927년 경매에서 이들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외동딸에게 상속되고, 다시 그의 아들(경매자 외손자)에게 상속되었으나 귀중한 석물을 한국으로 돌려 보낼 생각을 했고, 한국인 지인을 통해 우리옛돌박물관을 답사차 방문하여 둘러본 다음 기증을 결심했다.
이에 천신일 이사장은 2001년 일본인 '구사카 마모루' 씨로부터 문인석·무인석·동자석 등 석조유물 70점을 환수해 온 것을 시작으로, 2019년 오자와 씨로부터 장군석·장명등·비석받침·수병 등 총 8점을 환수하게(기증받음) 되었다. 바다를 건너 다시 돌아온 돌사람은 한국 석조유물의 힘과 위엄을 보여주는 듯 하다.
3층 석탑(통일신라)
2중 기단의 신라식 석탑으로 탑신부가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부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상, 악귀를 물리쳐 질병과 액운을 막는 도깨비 얼굴이 부조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남근석(조선중기)
남성숭배는 남성의 생식기를 인위적으로 조각하여 세우거나 비슷한 형태의 자연 암석을 대상으로 하여 임신이나 자손만복·풍년·풍어 등을 기원하고, 질병이나 악신으로부터 자신과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는 전통 신앙이다.
문인석 - 사진 하
무덤 앞에 배치하는 석물의 하나로 장군석, 석수와 함께 능묘를 수호하는 조각이다. 공복 차림의 문관 형상으로 머리에는 복두나 금량관을 쓰고 손에는 홀(笏)을 들고 있다. 능묘 주위에 문인석을 배치하는 풍습은 신라시대(BC57~AD935)에 당나라의 영향으로 능묘제도가 정비된 이후 조선시대(1392~1910)까지 이어진다.
길상사
길상사 입구
길상7층보탑
'길상7층보탑'은 조선 중기(1600~1650)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혜와 용맹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암수 사자가 기둥 역할을 하며, 입을 연 두 마리는 교(敎)를 상징하고, 입을 다문 두 마리는 선(禪)을 상징한다.
관세음보살상
이곳 '관세음보살상'은 길상사의 뜻과 만든이의 예술혼이 시절 인연을 만나 이곳에 위치하게 되었을 것이다.
박창근...? 하는 순간, '국민가수 박창근'이라는 소개가 있어 사진으로 한 컷 남겨 본다.
법정스님 진영각 - 사진 하
법정스님 진영각 내 담장 아래에 있는 '법정스님 유골' 모신 곳
'법정스님'(1932~2010)은 전남 해남 출생으로 1956년 출가하여 1960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불교사전 편찬, 불교경전 역경에 헌신하였으며, 1975년 송광산 뒷산에 '불일암(佛日庵)'을 짓고 수행했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1992년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청빈과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실천하였다. 2010.3.11 법랍 55세, 세수 78세로 길상사 '행지실'에서 입적하였다. 저서 및 역서로는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소리」, 「화엄경」, 「숫타니파타」 등이 있다.
옛 대원각의 모습이 느껴지는 길상사 내 이모저모
성북동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