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정군수
산도 가끔씩 세상이 궁금해서
한밤중이면
달팽이같이 머리를 틀어올리고 슬금슬금
마을로 내려온다
신통하게도
산이 내려오면 개들도 짖지 않고
고샅도 고요하고 대문도 열려있다
산은 살강의 숟가락도 세어보고
부엌의 온기도 만져보고
화단의 꽃에게 말도 걸고
밝기 전에 집체만한 몸을 옮겨 돌아간다
산 너머서 인간의 오욕이 들려오면
된통 성을 내고
이틀이건 사흘이건 누워있다가
해 솟는 아침 운무를 씻고 일어선다
산은 청랑한 바람을 키운다
내가 산을 보는 줄 알았는데
산이 나를 보고 있다
나는 바람을 맞으려고 창문을 연다
+ 주제 접근 : 물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산도 걸어서 나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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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퇴고]
정군수
산도 가끔 세상이 궁금하면
사람들이 모두 잠드는 밤중
달팽이처럼 머리를 틀어올리고 느릿느릿
마을로 내려온다
신통하게도
산이 내려오면 개들도 짖지 않고
고샅도 조용하고
우리 할머니도 편히 주무신다
산은 집집마다 살강의 숟가락도 세어보고
부뚜막 소금단지도 들여다보고
울타리 옆 봉선화에게 말을 걸어보고
먼동이 트기 전에
엉덩이로 기어서 천천히 올라간다
검은 구름에 인간의 오욕이 실려오면
이틀이건 사흘이건 누워있가
해 솟는 아침 운무를 씻고 얼굴은 내민다
산을 보려고 창으로 가면
산이 먼저 찾아온다
산은 나를 보고
나는 산을 보며 늙어간다
카페 게시글
교수님 글
산
정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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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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