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동마을이 안동 풍산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World Heritage)이 되었다.
세계유산에는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이 있는데
양동마을과 하회마을은 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세계유산 목록을 보면 대개 유럽대륙-그것도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 서유럽에 편중되어 있고 기타 대륙에는 몇 없다.
아직까지는 흰둥이들 판인 것이다.
타대륙-유럽 이외 대륙 치고는 인구비례나 면적 비례나
우리나라가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우리가 일사불란(?)하게 열심히 챙겨 온 덕일 것이다.
한국사람이라면 모두 이번 양동/하회마을 지정이 자랑스러울 것이다.
관계 당국과 해당 주민들에게 축하드린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걱정스럽다.
세계유산 등재시키고 와 참 잘했어요!
우리 민족은 역시 달라요 ! 하면 끝인가?
되었다고 자랑하고 나서는 바로 훼손 순서로 들어가는,
그것도 관계 당국이 앞장서는 것은 무슨 경우인지?
그 자랑스러워 죽겠다는 종묘 앞에 고층빌딩
그것도 한 두채가 아니고 군(群)으로 빽빽이 세우는데
민간도 아닌 서울시가 앞장서고 있다.
또한 서울시는 서울 성곽을 세계의 유산으로 추진한다면서
한편으로는 그 주요유구나 나오고 있는 동대문운동장 터에
거대 복합 쇼핑몰을 기어코 짓고 말았다.
세계의 유산 밥 먹여 주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강만수 씨가 그랬다던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놓고 살면
좋기야 좋겠지만, 그런 것은 후손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린 당장 먹고 사는게 급하다 !
라는 주장도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세계의 유산 쪽은 포기해야 옳지,
문화유산 아끼는 척 있는대로 폼 다잡고 나서,
뒤돌아서 가지고는 부수고 있으니,
이게 시방 장난 치자는 것인지?
작년인가 조선 왕릉이 세계의 유산으로 되었다.
그러나 그 탐스런 사도세자와 정조의 능-융건릉 앞으로는
멋대가리 전혀 없는 몰취미, 몰개성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며
앞을 가로막고 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세계유산 관련 유네스코 회의에서
독일 엘베 계곡을 지정 해제하는 결의를 했다.
그러자 회의장 앞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는데 바로 독일인들이었다.
이 독일인들이 앞장서 엘베 계곡을 세계유산에서 해제해 달라는
청원을 넣었고 그것을 유네스코가 받아 들인 것이다.
그 독일인들은 비국민(非國民)이었을까?
개발 충동을 못 이기는 정부에 압력을 넣어
어떻게든 엘베 계곡을 지켜보려는 충정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도 종묘 정도를 시범삼아 세계유산 지정에서
철회해 달라는 청원을 넣으면 어떨까 하고.
언론을 앞세워 이 매국노 새끼들 하고 있는대로 씹어 대겠지만,
정신 못차리는 정부와 무슨 무슨 위원회에 압력행사 정도는 되지 않을까?
문화유산 지정에서 해제된다고 종묘가 어디 가나?
하회마을
내가 하회마을을 처음 간 것은 1972년-대학 다닐 때였다.
돌이켜 보니 그것이 진정한 하회마을을 본 마지막이었다.
1990년 대 초 여름 다시 찾아 갔을 때다.
집집마다 국수에 부침개를 지져서 팔고 있어
온 마을에 음식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핫팬츠에 쓰레파 신은 남녀는 이 집 저 집 아무데나 기웃거린다.
물이 돌아드는 그 강가 모래 밭에는
라면 봉지들이 삐죽이 튀어 나와 있고
속을 헤집으면 검붉게 변한 찌게 국물 흔적과
먹다 버린 왕건이 건데기가 튀어 나왔다.
그 옛날 난지도와 지금 인천 쓰레기 매립지가 뭐 따로 있겠나?
1970년대 초 하회를 기억하고 있던 나는 눈을 감고 싶었다.
그뒤 엘리자베스 여왕이 생일잔치를 거기서 하건 말건 다시는 가지 않았다.
다행히 옆 골짜기 병산서원은 옛 모습이 남아 있어 해 마다는 아니지만 자주 간다.
양동(良洞)마을
내가 양동 마을에 간 것은 재작년-2008년 8월 초 였다.
사진: 2008년 8월 양동마을 (아마 수졸당에서 내려다 보고 찍었을 것이다)
안동 하회는 낙동강이 굽어 도는 물가 평지에 머을이 늘어섰다면,
경주 양동은 이 골 저 골, 위 아래로 빼곡하게 마을이 들어섰다.
먹자골목, 만들어진 민속촌 같은 하회에 비하면
양동마을에는 옛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올라와서 경주답사 자주 다니는 지인(知人)에게
양동마을 참 좋습디다 했더니, 에이 이제 다 버렸어요 한다.
그 말 나는 이해 할 수 있었다.
경상도 특히 경북 안동 일대에는 기와집-양기와/납짝기와가 아니라
옛날 골기와 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이 꽤 남아 있다.
그런데 근년 도비(道費)인지, 국비(國費)인지가 나왔는지?
기와장 싹 갈고, 헌 나무 모두 새로 반짝거리는 나무로 갈고
아니면 아예 통으로 새로 짓고들 있다.
보기에 좋고 주민들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푸른 이끼낀 기와와 그 사이 잡초로 덮힌 지붕,
세월의 때가 은은히 묻어나는 나무기둥을 기억하는 이들은
철렁하는 기분이 들수도 있다.
아래 사진 두 장은 2005년 10월에 찍은 경북 봉화 닭실마을이다.
풍수 상 금계포란(金鷄抱卵)형에 충재 권벌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안동 권씨들 집성촌이다.
고향 가는 길에 지나다니며 언제 한번 사진 찍으러 들어가야지
하면서도 그냥 지나치곤 했는데, 2005년 가을에 지나가며 보니
사진과 같이 그만 면모가 일신되어 버렸다. 아차 싶었다.
깨끗하게 새로 고치니 주민들은 좋을 것이다.
그럼 된 것이지,
나 보기 좋으라고 무너져 내리는 집에 계속 사세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못내 아쉽고, 어쩐지 펜션 촌(村)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양동마을요? 에이…
하던 사람도 아마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주차장
재작년-2008년 주차장은 양동초등학교 앞에 있었다.
아직은 좋았다.
사진: 항공지도로 본 양동마을. 당시 주차장은 양동초교 앞이다.
그런데 세계의 문화유산이 되었다고 관광객이 대형 버스로 몰려 들면
주차장을 대규모로 짓자는 주장이 틀림없이 나올 것이다.
나는 주차장을 여하히 짓느냐가 양동마을을 지키는 관건이라고 본다.
하회마을은 걸레가 되었어도, 바로 옆 병산서원이 보존된 것은
들어 가는 길이 아슬아슬한 절벽을 끼고 있는데다, 비포장이라서
개나 소나 다 차 몰고 가기에는 상당히 거시기 하기 때문이다.
사진: 병산서원 가는 길-벼랑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2006년 9월)
(낙동강 사진을 보니 4대강 문제가 떠오르지만 그 이야긴 하고 싶지 않다.)
작년 담양 일대 누정(樓亭)을 돌아볼 때였다.
담양 누정(樓亭)의 대표격은 당연히 소쇄원(瀟灑園)이다.
현장 설명이나 인터넷을 뒤지면 한국의 대표적 정원이네,
소쇄원 48영(詠)이 어떻네 하며 요란하게 나온다.
다 좋다.
그러나 정원은 자그마한데, 코 앞에 거대한 주차장을 만들어 놓아
붕붕거리는 소리와 매연을 맡으며, 먼지 날리고 들어가는데
그 길 옆에는 또 좌판 벌린 할매, 아지매들이 줄을 이어 있다.
그래도 그윽한 조선조 정원을 느낀다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라.
소쇄원이고 뭐고 다 개콩이라고 하고 싶었다.
사진: 소쇄원 앞 주차장
담양은 소쇄원보다 차라리 명옥헌이 좋았다.
발갛게 핀 배롱나무도 좋았지만, 조용해서였다.
시장판 같은 소쇄원이나 식영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대포알 같은 망원렌즈 달린 사진기 든 사람들은 꽤 있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주차장이 약 700m 정도 떨어져 있어 차 세우고 10분 정도 걸어
언덕을 넘어가서야 비로소 나올 정도로 접근하기가 좀 불편했다.
그러나 진정 보려는 사람에게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
80년대 중반 파리 출장 갔을 때, 일요일 할 일은 없고 해서
모네가 수련을 그리던 집이 코스에 들어있는 관광버스를 탄 적이 있다.
모네의 집은 파리 북방 100km 쯤이었다.
프랑스 농가로서 우리 전통가옥들 보다는 훨씬 컸다.
정원도 넓었다. 하여튼 소쇄원 보다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버스를 세운 곳은 모네의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바로 코 앞에 버스가 설 수 있는 대형 주차장을 지었다가는
옛날 모네가 살던 정취가 다 사라져 버릴까 걱정되어서였다.
모네와 수련을 보러 갔는데 막상 가니 주차장만 있더라 하면 누가 가나?
그 촌스러운 무위사는 주차장을 바로 코 앞에 지어 놓았다.
사진:무위사 주차장(2009년 3월).일주문지나 해탈문 앞까지 차가 들이 닥친다.
운주사 앞 주차장은 떨어졌지만 내 생각에는 더 떨어뜨렸어야 했다.
고창 선운사 앞 주차장은 생각도 하기 싫다.
관광객을 싹슬이 하고 싶은 모양이다.
또 주차장에서 절가는 길 옆으로는 전어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아무리 집나간 며누리도 돌아온다는 전어지만 꼭 절 앞에서 구워야 하나?
아무튼 주차장 보러 가는지,
뭘 보러 가는지 구별은 지어야 한다.
양동마을을 진정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몇 백 미터 아니 1키로쯤 걷는 것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지금 어떤 계획인지 모르지만 제발 주차장 좀 멀찌감치 떨어뜨렸으면 한다.
식당
재작년에 보니 양동마을에도 벌써 식당이 몇 개 생겼다.
사진: 우향다옥 (2008년 8월). 이런 식당이 몇 있었다.
아직은 괜찮았다.
관광객이 목 축이고 입 다실 곳은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냥 놔두면 먹자 골목으로 변하고.
민박촌 되는 것이 아주 잠깐이란 점이다.
위 사진은 심수정 옆 길을 2008년에 찍은 것인데,
갓 쓴 선비가 금방이라도 걸어 나오는 듯 한 느낌이었다.
재작년에 이미 에이 다 버렸어요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 보기에는 아직 좋았다.
양동-양자월 마을 어르신네들이 그 분위기를 부디 이어나가기를 바란다.
사진: 양동마을 동구(洞口)에서-2008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