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쉬는 공부가 선(禪) / 현산 스님
하늘의 해가 떠올랐다 지고,
또 계속 떴다지고 하면서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가
사람은 금방 죽음 문에 당도합니다.
세월이 무상할 뿐만 아니라
이 삶이란 것도 역시 고달파서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법입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석자[三尺]도 못 되는 땅에 내 몸이 묻힐 것을.
요즘에는 납골당이라고 해서 화장해 버리면
금방 한 줌 재로 변해 버립니다.
금생에는 이 몸뚱이가 나[我]라고 생각했지만
한 줌 재가 되어버릴 것 같으면
과연 어떤 것이 나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생들은 이 몸뚱이를 ‘나’라 하고,
보이고 들리는 것, 냄새, 맛, 느낌,
생각이 조건 지어지는 것들을
‘마음’이라 잘못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역대 조사 스님들은 말씀하시길,
“이것이 눈에 있으면 본다 하고,
귀에 있으면 듣는다 하고,
혀에 있으면 맛을 알고,
몸에 있으면 촉감을 느끼고,
손에 있으면 물건을 잡고
발에 있으면 걷는다.”고
아는 이는 이것을 ‘불성’이라 하지만
모르는 이는 ‘영혼’이라 부릅니다.
영혼과 불성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둘 다 알맹이가 없는지라
모습 아닌 모습인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바늘 하나 가져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처자권속이 많더라도
하나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올 적에도 혼자 왔지만
갈 적에도 이렇게 혼자만 가는 것이 인생.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르게 사는 삶이겠습니까?
사람으로 태어나 바른 삶이라는 것은
가장 가깝게 있는 나를 바로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잘 사는 방법입니다.
나를 모를 것 같으면
바르게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참 행복은 얻어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대중 여러분은
오직 이 순간에 가장 가깝게 있는 내 면목을 깨닫는,
그런 법문을 듣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것을 선(禪)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그 선을
요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압니다.
컴퓨터다, 인터넷이다 해서 들어가 보면
갖가지 법문이 다 실려 있어요.
아는 것을 가지고는 절대 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진리입니다.
오조년래적학문(吾早年來積學問)하야
역증토소심경론(亦曾討疏尋經論)이로다.
분별명상(分別名相)을 부지휴(不知休)하니
입해산사도자곤(入海算沙徒自困)이로다.
이것은 영가현각(永嘉玄覺, 675~713) 스님의
<증도가(證道歌)>에 나오는 게송입니다.
영가 스님은
일찍부터 학문을 쌓아 공부를 많이 했고,
출가해서는 경론(經論)과 주소(註疏)에도 밝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도저히 인생 문제,
즉 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쉬지 않고 명(名)과 상(相)을 분별하고
매일 이렇게 여러 가지를 알아봤자
바다 속에 들어가 모래알을 세는 것과 같아서 그칠 날이 없구나.
아무 실질적 도움이 안 된다,
많이 듣고 알아봤자 소용이 없다, 이 말입니다.
아난 스님이 부처님 시봉을 40여 년을 했는데
부처님이 꾸짖기를
“네가 천 날 만 날 배우는 것이
한 날 참선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팔만 사천 대장경을 다 외우다시피 해도
결국엔 생사 문제를,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한다.
금생에 비록 네가 이렇게 많이 알고 있지만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렇게 부처님이 아난 스님을 꾸짖으신 바가 있습니다.
많이 안다고 해서
내 삶에 참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부처님 열반 후에
가섭 존자가 부처님 대를 이었는데,
고심하던 아난 스님이 가섭 존자에게 가서는
“사형님이시여,
금란가사 외에 어떠한 법을 부처님께 전해 받았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난아.”
“예”하고 대답하니까 가섭 존자가 하는 말이
“절 문 밖의 찰간(刹竿)대를 꺾어버려라.
네 묻는 것이 분명하고 대답한 것이 진실하니
바로 이 법을 전수받았느니라.”
이게 무슨 소리여?
찰간대를 꺾어버리라는 소리,
묻고 답한 것이 분명한 그 자리.
그 정도는 여러분이 법문을 하도 많이 들었으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선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공부를 하려면
첫째,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부처님 법을 이은 유명한 거사님이
인도에는 유마거사가 있고
중국에는 방거사라는 분이 있는데
방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있는 것을 비울지언정
비운 것을 채우려고 하지 말라.”
수많은 생각이 얽히고설켜 한 찰나 간에,
찰나라고 하는 것은
손가락을 탁~ 튕기는 순간을 말하는데
우리 중생들은 한 찰나에
생각이 900번이나 일어났다 죽었다 한다. 그래요.
그러한 중생념을 다 지우고 비워야 되는데,
그걸 다 비울 것 같으면
본래 물질이라는 것이 없고 마음이라는 것도 없어서,
물질과 마음이 없을 때
온전한 참 법계가 드러나고
내 마음자리가 드러나게 됩니다.
남악회양(南嶽懷讓, 677~744) 스님께서
육조혜능 스님(六祖慧能, 638~713)을 찾아갔을 때,
“어떻게 이렇게 왔느냐?”
“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니까
육조 스님이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하고 다시 물으니까
딱 막혀.
그 딱 막혔을 때 알 수 없는 그것이
이 몸을 끌고 다니며 법을 배우러 왔다는,
그 자리를 그렇게 공부하기를 8년을 했습니다.
이게 바로 선이라.
그 ‘이뭣꼬’하는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을 공부하는 것이 선입니다.
그래서 8년 만에 확철대오해서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답을 올렸는데
이렇게 많이 아는 것 다 지워버려야지,
생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오로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화두를 들었을 적에
그것이 공부에 바로 들어가는 법입니다.
그래서 나를 깨닫는 가장 빠른 길이요
가장 바른 길이 참선법이요,
부처님께서 역대 조사에게 전해준 법도
바로 이 법입니다.
화두 하나 잘 들어서
나 하나 바로 깨달을 것 같으면
더할 나위 없는 무한공덕, 무한지혜가 드러나서
현실의 삶 속에서 신심이 저절로 실해지고,
현실을 바로 보니
욕망과 그 증애(憎愛)에서 저절로 벗어나게 되고,
지혜심성이라,
마음 편안해지고 깨끗해지고 고요해지게 됩니다.
현실에서 자족을 못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도가 아니에요.
시법(是法)이 주법위(住法位)하야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한다.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무나니
세간상 이대로가 상주불멸이라.
세간사 이대로가 법이라.
부처님 법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서로 싸우고,
부부간에 자식 간에 불화하고.
이게 무슨 도 닦는 사람이에요.
그건 바로 참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이 하는 짓이에요.
진실로 허망한 것을 느껴서
이 세상에서 해야 할 것을 다 하는 것,
이것이 법이라는 것이에요.
열심히 수행한 사람은
절대 싸우는 법이 없습니다.
다투는 일도 없고 항상 신심이 쓰이고.
그렇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을 상대하고
지혜가 드러나서 삿된 데 떨어지지 아니하고
욕심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법이에요.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마음이 곧 부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마음이라고 하느냐.
잘 들어요.
내 말이 아니라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 선사
<유심결(唯心訣>)에 있는 말입니다.
“무한한 지혜와 모든 공덕이
이 마음 가운데 다 들어 있느니라.”
그래서 이것을 마음공부라고 합니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같이 증득한 것이
이 마음을 증득한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이 표현한 것이
이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모든 스님들이 찾아가는 것이
이 마음을 찾아가는 것이요.
모든 역대의 조사가 전해준 것이
바로 이 마음을 전해준 것이로다.
천하의 총림에, 선원의 납자들이 참구하는 것이
바로 이 마음을 참구하는 것이니
온갖 것이 이것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 말에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산산 수수, 싸우는 소리, 게송 읊는 소리
모두 이것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무한한 공덕과 능력이 넘치는 이 마음을
여러분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을 몰라.
어려운 점이 생기면 생각이 복잡하고 혼동이 와요.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제대로 되지도 않고
여러 가지 걱정만 생기고 그럴 때 기도를 하긴 합니다만,
이렇게 바로 인생의 모든 고뇌에서 해탈하는 법.
이 부처님의 법 만나기가 그렇게 힘든 거예요.
여러분도 순간순간을, 하루하루를, 시간시간을
내 마음 깨닫는 데 전력할 것 같으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현실에서 바로 깨끗하고 맑고 고요한 마음자리가 드러날 것 같으면
무엇 하고도 바꿀 수 없는 큰 보배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라는 것은
항상 눈앞에 있다고 합니다.
어려운 게 아닙니다.
쉬운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지극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면 될 수가 있습니다.
마음을 닦는 사람이 항상 주의해야 할 점은
항상 큰 서원을 가지고
중생을 다 구제하겠다는 마음가짐,
넓고 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전 중에 최고 가는 경전이 <화엄경>인데
<화엄경> 중에도 현실에서 바로 도로 들어가는 문이 있습니다.
‘보현행원품’입니다.
이것을 보면 부처님은 자비심 덩어리입니다.
어떤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이라도
미워하는 바가 없습니다.
다 당신 탓이고 다 내 몸과 똑같이 대하셨습니다.
그게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 되려고 하면
그런 마음을 현실에서 쓸 때에 가능합니다.
그럴 때에 현실의 삶 속에서 바로 번뇌가 끊어지면서
도가 발현하는 마음가짐이 넉넉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조금만 미우면
‘저 사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하고.
사람은 그렇습니다.
‘아이고, 저게 인간이냐’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악한 중생도 다 자비심으로 감싸 안아야 합니다.
사랑하고 감싸 안아서
부모가 자식 생각하듯이 감싸 안아서
간절한 자비심으로 말할 때
그 사람도 말을 듣는 것입니다.
이런 자비심을 현실에서 행할 적에 내가 편해지고
현실에서 사람들한테 이익을 줄 수 있고 그런 것이지,
밉고 독한 말로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고,
서로 싸우고 뜯고 하면
그 사람은 공부가 잘 안 됩니다.
서원을 세우고, 모든 중생을 다 내가 건져주리다.
모든 사람을, 지혜를 대신 받아서 해탈케 해 주겠다.
그런 원을 가지면서 공부를 하면 공부가 훨씬 빠릅니다.
오늘 이렇게 인연 있는 법회에
여러분들이 다 이렇게 한량없는 서원을 세우고
속마음으로 발원을 하면서 공부할 적에
공부가 더 빠르게 성취가 되고,
그때부터 가정에서부터 평화가 깃들게 되고
여러분 자신의 행복이 찾아올 겁니다.
현산 스님 화엄사 선등선원장
출처 : 봉은사랑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