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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빅토르 위고의 <파도바의 폭군 안젤로>
대본 아리고 보이토(토비아 고리오라는 필명으로 발표)
초연 1876년 밀라노 라 스칼라
배경 17세기 베네치아 공화국 내의 여러 장소들
<1986 빈 국립극장 / 169분 / 한글자막>
빈 국립극장 오케스트라 & 합창단 & 발레단 연주 / 아담 피셔 지휘 / 필리포 산후스트 연출&미술
라 조콘다..............가희(歌姬), 노래하는 여자라는 뜻...............................에바 마르톤(소프라노)
라 치에가..............장님,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라는 뜻, 조콘다의 어머니.....마르가리타 릴로와(알토)
바르바나...............베네치아 10인 위원회의 비밀 첩보원............................마테오 마누구에라(바리톤)
알비제 바도에로.....베네치아의 대귀족이자 종교재판장..............................쿠르트 리들(베이스)
라우라..................알비제 바도에로의 아내.............................................루드밀라 셈추크(메조소프라노)
엔초 그리말도........추방된 산타피오르 공작으로, 선장이 되었음..................플라시도 도밍고(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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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초연 당시 오리지널 세트를 고스란히 재현한 폰키엘리의 대표작
<라 조콘다>는 밀라노 음악원에서 푸치니를 가르치기도 했던 아밀카레 폰키엘리의 대표작이다. 엔초(테너)의 아리아 '하늘과 바다', 조콘다(소프라노)의 아리아 '자살!', 그리고 극중에 삽입된 관현악곡 '시간의 춤' 등 유명한 곡이 많다. 1876년에 초연된 이 오페라는 19세기말에 붐을 이룬 베리즈모(사실주의) 오페라의 효시로 불리기도 한다. 이름 대신 사람들로부터 그저 조콘다, 즉 거리의 가희(歌姬)로 불리는 천한 신분의 여인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베네치아에서 추방당했다가 몰래 돌아온 귀족 엔초와 사랑을 나누지만 그는 옛 연인 라우라와 재회하자 조콘다를 마음속에서 지워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악랄한 밀정 바르나바는 눈먼 어머니만 남은 조콘다에게 도저히 못할 짓을 하고 만다. 이 공연은 큰 화제를 모았던 1986년 빈 국립오페라 실황이다. 처절하게 버티다가 비극에 굴복하는 조콘다 역을 에바 마르톤이 열창했고, 플라시도 도밍고는 과연 위대한 테너답다. 그러나 진정한 화제는 연출을 맡은 필리포 산주스트가 초연 당시와 똑같은 무대 세트를 재현했다는 것이었다. 구식처럼 보이지만 19세기의 무대전통을 확인하는 귀한 실황이다.
○ 아밀카레 폰키엘리(1834~1886)는 베르디의 그늘에 가려있지만 명작 <라 조콘다>로 이탈리아 오페라 전통에 새로운 색채를 더한 작곡가이자 밀라노 음악원에서 푸치니와 마스카니를 길러낸 뛰어난 스승이기도 하다. <라 조콘다>는 그의 대표작인데, 동료 작곡가이자 문재가 뛰어났던 아리고 보이토의 대본을 사용했다. 보이토는 베르디의 <오텔로>와 <팔스타프>의 대본은 물론 <메피스토펠레>를 직접 작곡한 당대의 박학다식형 예술가였다.
○ 주인공 조콘다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인물에 해당한다.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거리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으로 생계를 잇고 있으며 눈먼 노모도 지켜야 한다. 그런 그녀에게 엔초의 존재는 그야말로 단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마저 옛 애인에게 돌아가고, 이전부터 조콘다를 유혹한 밀정 바르나바는 오로지 그녀의 육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런 극단적 상황에서 조콘다는 어머니를 한번 구해 준 자신의 연적 라우라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의 목숨을 구한다. 조콘다에게 끝내 거절당한 바르나바는 눈먼 모친을 살해하고, 엔초와 라우라는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자신들의 행복을 향해 떠나버린다. 모든 것을 잃은 그녀에게 남은 선택은 이제 단 하나뿐...
○ 오페라의 대단원에서 조콘다가 부르는 비극적 아리아 '자살!'은 위대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죽은 후에 그 메모가 그녀의 집에서 발견되었다. 물리적인 자살은 아니었으나 죽음이 오기를 기대한 칼라스의 속내가 이 쪽지에 담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 작품 해설 === <2005 리세우 대극장 영상물 내지 해설 / 박종호>
라 조콘다
전부를 가진 연적을 위해 전부를 포기하는 여인
이탈리아 오페라의 도도한 흐름에서도 가장 큰 봉우리인 베르디는 또 하나의 빼어난 작곡가 푸치니에 의해서 이어진다. 낭만 오페라의 융성기이자 낭만주의 음악의 바다인 19세기 내내 8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던 베르디는 그 어떤 이탈리아 작곡가들도 넘볼 수 없었던 최고로 빛나는 거성(巨星)이었다. 그런 베르디의 시대에 자신의 가장 큰 잘못이라고는 베르디보다 늦게 태어나서 베르디보다 일찍 죽은 것이었던 불행한 작곡가가 있었으니, 아밀카레 폰키엘리(1834~1886)였다.
폰키엘리는 재능있는 작곡가였으나, 베르디라는 빛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내기에는 그의 빛은 너무나 평범했다. 즉 폰키엘리는 평생 동안 자신보다 영원히 20년의 대선배로 군림하고 있는 베르디에 맞서서, 어쩌면 너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개성이 희미해질까봐 겁내고 어쩌면 베르디로부터 너무 떨어져 나가 오페라계의 주류로부터 무시당할까를 평생 걱정하면서 살았던 불행한 예술가였다. 또한 그렇게 존경하는 선배 베르디조차 폰키엘리의 진가는 커녕 그의 실체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한마디로 별로 잘나지 않은 작곡가가 폰키엘리였다.
그러나 이 팔레르모에서 태어나 베르디의 후계자를 꿈꾸며 밀라노로 상경하여 활동한 폰키엘리의 9개의 오페라들 중에서 단 하나 <라 조콘다>만은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즉 <라 조콘다>는 베르디의 28번째 오페라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재미있으며 또한 개성적인 작품이다.
사실 <라 조콘다>는 여러 가지 점에서 베르디의 오페라를 연상시키고 있다. 첫째 베르디가 선호하던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사용하고 역시 베르디의 명파트너였던 아리고 보이토의 대본이라는 점, 둘째 <가면 무도회> 또는 <운명의 힘>의 여주인공과 흡사한 성질(聲質)과 음색을 요구하는 강인한 프리마 돈나를 내세웠다는 점, 셋째 <아이다>를 연상시키는 두 여성 즉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의 치열한 대립을 기본 구도로 한다는 점, 넷째 이아고처럼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철저한 악역 바리톤인 바르바나의 존재, 다섯째 베네치아의 리얼한 배경과 실제 장소들을 이용한 드라마의 전개, 여섯째 4막으로 만들어진 이태리 오페라 세리아의 전통적인 구성, 일곱째 각 성부(聲部)를 대표하는 여성 3인, 남성 3인의 여섯 주인공들에게 명 아리아들을 골고루 분배하고, 각 성부 상호간의 갈등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극적인 아리아들과 중창들을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여덟째 흥행에 가장 효과적이었던 '베르디의 극장'인 라 스칼라에서 베르디란 별이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던 1870년대에 발표(이 앞에 스칼라에 올려졌던 베르디의 작품이 <아이다>였으며 이 뒤가 <오텔로>였다)되었다는 사실 등이다.
이상 열거한 점들은 바로 베르디가 흔히 쓰는 수법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그 시기에 그 극장에서 그런 작품을 올린다는 것이 안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또한 베르디의 걸작들 사이에 그냥 파묻혀 버려서 잊혀지기도 쉬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라 조콘다>는 중간중간에 긴장미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그만큼 폰키엘리의 실력이 탄탄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찌되었건 폰키엘리는 <라 조콘다>란 한 작품으로 오페라사에 분명한 이름을 남겼으며, <라 조콘다>는 베르디에서 푸치니에 이르는 동안 가장 중요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사실 <라 조콘다>에는 앞에서 비교했던 베르디 오페라와는 다른 뛰어난 몇 가지 미덕들도 보인다. 물론 이것들은 아쉽게도 흔히 간과되고 있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첫째 이것은 다분히 베리스모적인 스타일이 가미되어 있다. 이것은 베리스모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나오기 14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분명 곳곳에서 베리스모적인 정신이 보이는데, 특히 마지막에 기기묘묘한 웃음을 지으며 달아나는 바르바나의 장면은 그 어떤 베리스모 오페라보다도 더욱 리얼하다. 둘째 분명 전통적인 '여대여의 장면'을 넣어서 극적인 효과를 노리는 것은 드물지 않은 수법이지만, 여기서는 두 여성의 성격이 정반대로 설정되어 있다. 흔히 소프라노는 가련한 스타일이며 테너에게 선택되는 대신에 목숨은 잃게 되는 것이 그동안의 설정이었다. 반면 메조소프라노는 테너에게 선택되지 않지만 강인하고 사회적 승리자이다. 하지만 <라 조콘다>에서 소프라노는 보다 격정적이고 공격적이며 대신 메조소프라노가 보다 부드럽고 온유하다. 그리고 테너는 메조를 선택하고 소프라노는 철저하게 모든 것을 잃는다. 그동안 소프라노에게 허용되던 단 한 가지 사랑마저도 그녀는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셋째 이 오페라에는 이태리 오페라 사상 가장 뛰어난 발레곡이 들어있다. <시간의 춤>이라는 이 곡은 본 곡인 오페라보다도 더욱 유명한 곡으로서 독립된 관현악곡으로도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네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마치 시간의 한 순간순간이 음표가 되어 튀어 오르는 듯한 명곡으로서, 시간적 개념이 음악으로 변환된 최고의 예를 보여준다.
이 극적인 오페라와 떼어놓을 수 없는 성악가가 마리아 칼라스이다. 이 그리스의 대형 소프라노가 자신의 생애 처음으로 서방 무대에 선 작품이 바로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올려졌던 <라 조콘다>이다. 처음 그녀는 큰 덩치와 큰 목소리만으로 유명했는데, 이 드라마틱한 역으로 아레나 디 베로나의 야외무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릴 소프라노가 흔치 않아서 그녀가 선택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1947년 아레나에서 올려진 공연에서 주역을 맡은 칼라스는 소리뿐만 아니라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조콘다 역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유럽 정상급의 소프라노로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 베로나에서 남편까지 만나서 결혼하였으니, 칼라스 개인으로도 베로나와 <라 조콘다>는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칼라스는 그 후 라 스칼라 극장에서 최고의 <라 조콘다> 공연과 최고의 <라 조콘다> 실황 녹음과 최고의 <라 조콘다> 스튜디오 녹음을 남겼다.
그후 칼라스를 계승하는 조콘다들로는 레나타 테발디를 위시하여 몽세라 카바예, 에바 마르톤 등이 있었다. 현역으로 비올레타 우르마나, 안드레아 그루버, 데보라 보이트 등이 일류 조콘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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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 === <2012년 11월 7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명곡 명연주
폰키엘리, 라 조콘다
빅토르 위고의 희곡 <안젤로>를 각색한 사실주의 성격의 오페라
1876년 4월 8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
"세상의 모든 도시들은 다른 어떤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베네치아만은 다르다. 베네치아는 세상 어떤 도시와도 비슷하지 않다." 18세기 이탈리아 극작가 카를로 골도니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이름을 듣자마자 [시간의 춤(Danza delle ore)]이라는 곡 제목을 떠올리게 하는 작곡가 폰키엘리는 바로 이 특별한 도시의 특별한 계절인 카니발 시즌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작곡가 아밀카레 폰키엘리(Amilcare Ponchielli, 1834-1886)는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부터 밀라노 음악원에서 음악이론, 작곡, 피아노를 공부했습니다. 1856년 오페라 [약혼자들]로 크레모나에서 데뷔했고, 이 작품의 밀라노 공연도 호평을 받았죠. 크레모나와 베르가모 성당 등에서 오르간 주자, 악장으로 일하다가 밀라노 음악원 교수로 생의 후반을 보내며 푸치니,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등의 작곡가를 제자로 키운 인물입니다. 모두 11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지만 오페라 작곡가로서 그의 명성을 가장 드높인 작품은 오페라 작곡 20년 만에 발표한 [라 조콘다] 한 편이었습니다. 이 오페라 속의 관현악곡 [시간의 춤]은 오페라와 무관하게 자주 연주되는데요. 실제 오페라 공연에서는 화려한 발레를 볼 수 있는 최고의 장면이기도 합니다. 폰키엘리는 19세기 음악사에서 오페라 작곡가로서보다는 음악 교육자로서의 비중이 더 큰 사람이죠.
빅토르 위고의 [파도바의 폭군 안젤로(Angelo, tyran de Padoue)]를 토대로 토비아 고리오가 오페라 대본을 썼는데요, '토비아 고리오(Tobia Gorrio)'라는 이름을 다른 순서로 조합하면 대본작가이자 작곡가이며 베르디의 친구였던 '아리고 보이토(Arrigo Boito)'의 이름이 나옵니다. 보이토는 베르디의 [오텔로]와 [팔스타프] 대본을 썼고 스스로도 오페라 [메피스토펠레]를 작곡했습니다. [라 조콘다]의 대본작가로 가명을 사용했지만, 당시 예술계에서 보이트를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가명 속에서 그의 본명을 읽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베네치아 카니발의 빛과 어둠
‘사자의 입'이라는 부제가 붙은 1막. 17세기 베네치아의 카니발 시즌입니다. 베네치아 정부의 밀정 바르나바(바리톤)가 '라 조콘다('노래하는 여인'이라는 뜻. 소프라노)'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추방된 젊은 공작 엔초 그리말디(테너)를 사랑하는 조콘다는 바르나바를 거절합니다. 거절당한 데 대한 앙갚음으로 바르나바는 군중을 선동하여 조콘다의 눈먼 어머니 '라 치에카(장님이라는 뜻. 알토)'를 마녀로 몰아 죽이려 하죠.
그때 엔초가 나타나 사람들을 막아섭니다. 엔초는 옛 연인 라우라(메조소프라노)를 다시 만나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선장이 되어 베네치아에 숨어들어왔는데, 그 사이 라우라는 종교재판장인 대 귀족 알비제(베이스)의 아내가 되어 있습니다. 알비제의 아내 라우라는 조콘다의 어머니를 보고 "묵주를 들고 있으니 마녀일 리 없다"면서 풀어주라고 남편에게 간청합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알비제가 어머니를 풀어주게 하자 어머니는 라우라에게 감사의 표시로 묵주를 선물하며 행운을 기원합니다. 바르나바는 엔초의 정체를 알아보고 '오늘밤 라우라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덫을 놓지요. 그런 다음 부하를 시켜 알비제에게 보내는 밀고장을 쓰게 합니다. 그의 아내 라우라가 엔초와 함께 도망갈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베네치아 '사자의 입'에 넣을 밀고장을 작성하는 바르나바를 어머니와 함께 몰래 숨어 지켜본 조콘다는 엔초가 자신을 버리려 한다는 것을 알고 절망합니다.
2막에는 '로사리오(묵주)'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바르나바는 밤의 어둠 속에 라우라를 엔초의 배로 인도해줍니다. 두 연인은 다시 하나가 된 황홀한 기쁨을 노래하며 이 밤에 베네치아를 떠나기로 합니다. 그런데 엔초가 출항을 준비하러 갑판 아래로 내려간 사이 혼자 남은 라우라 앞에 가면을 쓴 조콘다가 나타납니다. 두 여인은 엔초에 대한 사랑을 경쟁적으로 토로하며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이 오페라에서 관객에게 가장 큰 갈채를 받는 '라이벌의 이중창'입니다.
조콘다가 칼을 빼들고 라우라를 죽이려는 순간 남편 알비제의 배가 다가오자 라우라는 조콘다의 어머니가 준 묵주를 꺼내들고 기도하는데, 그 묵주를 본 조콘다는 라우라가 바로 자기 어머니를 살린 은인임을 알아보고 그녀를 작은 배로 피신시킵니다. 엔초가 나타나자 조콘다는 라우라가 가책을 느껴 도망갔다고 거짓을 말합니다. 이제 알비제는 엔초의 배를 포위하고, 도망칠 길이 막힌 엔초는 라우라의 이름을 외치며 바다에 뛰어듭니다.
3막에는 '황금의 성'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아내의 배신에 격분한 알비제는 라우라에게 독약을 주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때 조콘다가 나타나 가사상태에 빠지는 약을 주며 독약 대신 그 약을 마시라고 라우라에게 말합니다. 방 옆의 홀에서는 알비제에게 초대된 손님들이 발레 '시간의 춤'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라우라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엔초는 흥분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알비제를 맹비난합니다. 조콘다는 바르나바에게 '엔초를 살려주면 내 몸을 주겠다'고 제의합니다. 알비제는 방을 열어 손님들에게 '부정한' 아내의 시신을 보여주고, 엔초는 알비제에게 달려들다가 병사들에게 붙잡힙니다.
4막은 '주데카 섬'입니다. 조콘다는 친구들에게 부탁해 라우라를 섬의 저택으로 옮기게 합니다. 조콘다는 엔초의 사랑을 되돌릴 수 없음에 갈등하고 절망하면서도 라우라와 엔초의 도주를 돕기로 결심하지요. 그때 조콘다 덕분에 감옥에서 석방된 엔초가 나타나 '라우라 없는 세상에 왜 자기를 살려놓았느냐'며 조콘다에게 화를 냅니다. 하지만 곧 라우라가 가사상태에서 깨어나 엔초와 다시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두 사람은 조콘다에게 감사하며 준비된 배를 타고 떠나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잃고 비탄에 잠긴 조콘다는 '자살'을 생각하며 처절한 아리아를 노래합니다. 이때 바르나바가 나타나 조콘다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죠. 조콘다는 일부러 명랑함을 가장하며 '몸단장을 할 테니 좀 기다리라'고 바르나바에게 말하고는, 단도로 자신의 가슴을 찔러 자살합니다. 조콘다의 죽음에 경악한 바르나바는 '내가 네 어머니를 죽였다'고 조콘다에게 외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듣지 못합니다.
베리스모 오페라의 예고편
1876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한 [라 조콘다]는 정통 이탈리아 오페라와 신생 베리스모(Verismo.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사실주의 사조) 오페라의 경계에 위치한 작품입니다. 작곡 시기로 볼 때 베르디의 [아이다]와 [오텔로] 사이에 놓인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베르디 오페라의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베르디를 넘어 베리스모로 향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큽니다. 실제 현실보다 더 극적이고 처절한 현실을 무대 위에서 노래로 표현하는 베리스모 오페라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죠.
빛과 어둠, 건조함과 음습함이 공존하는 기막히게 아름답고도 지저분한 도시 베네치아는 베리스모 분위기를 띤 오페라의 배경으로 대단히 잘 어울립니다. 오페라 [라 조콘다]의 무대는 행인이 배를 타고 오가는 물 위의 도시, 카니발과 가장무도회의 도시, 카사노바의 도시인 베네치아의 특징을 고루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간의 춤'은 '낮 시간의 춤', '저녁 시간의 춤', '밤 시간의 춤'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먼저 여명을 상징하는 무용수들이 무대에 나와 춤을 추다가 사라지고 다음으로는 낮, 저녁, 밤을 상징하는 무용수들이 차례로 나타나죠. 그리고 음악의 피날레 부분에서는 이들 모두가 함께 춤을 춥니다. 물론 안무에 따라 같은 무용수들이 계속 이 세 부분을 춤출 수도 있습니다.
이 음악은 각 시간대의 정서와 분위기를 밝고 즐겁게 혹은 열정적이고 관능적으로 표현하는데요, 여기서 '시간'은 사회의 온갖 위계질서가 뒤집히는 카니발 기간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한 때일 뿐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시간과 함께 소멸해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라 조콘다]에서는 테너 주인공이 소프라노와 사랑하는 대신,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소프라노를 버리고 메조소프라노를 사랑한다는 설정이 일반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의 인물구도와는 다릅니다. 특히 악역 바리톤 바르나바의 개성과 집요함은 [오텔로]의 이아고나 [토스카]의 스카르피아를 뛰어넘을 정도로 강렬합니다.
밀라노 초연 때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고서도 폰키엘리는 같은 해 베네치아 초연, 1877년 로마 초연, 그리고 다시 1880년 라 스칼라에서 공연했을 때 매번 이 작품의 개정판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라 조콘다]에는 모두 다섯 가지 버전이 존재합니다. 이 작품은 곧 칠레 산티아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바르셀로나, 런던, 부다페스트, 뉴욕 등에서도 공연되어 인기를 끌었고, 베로나 야외 오페라 극장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었으며,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는 1947년 이 조콘다 역으로 최초의 국제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추천음반 및 DVD
[음반]마리아 칼라스, 피에르 미란다 페라로, 피에로 카푸칠리, 피오렌차 코소토 등, 안토니오 보토 지휘,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1959년 녹음. EMI
[음반]몽세라 카바예, 루치아노 파바로티, 셰릴 밀른즈, 아그네스 발차 등, 브루노 바르톨레티 지휘,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런던 오페라합창단, 1981년 녹음. Decca
[DVD]데보라 보이트, 리처드 마기슨, 카를로 구엘피, 엘리자베타 피오릴로 등, 다니엘레 칼레가리 지휘,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피에르 루이지 피치 연출, 2005년 리세우 극장 공연 실황(한글자막). TDK
[DVD]에바 마르톤, 플라시도 도밍고, 마테오 마누구에라, 루드밀라 셈추크 등, 아담 피셔 지휘, 빈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필리포 산후스트 연출, 1986년 빈 국립오페라 실황. Arth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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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1년 2월 10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하늘과 바다
폰키엘리 <라 조콘다>
이 작품 [라 죠콘다(라 조콘다)]는 복잡한 줄거리의 멜로드라마이며 신파조여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본국 이탈리아 이외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는 것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뛰어난 공연을 만나면 아름답고 친밀감이 있으며 강한 호소력을 지닌 아리아나 중창이 계속 이어진다. 보이토(Arrigo Boito)가 가명으로 쓴 대본도 구성이 확고하고 이를 뒷받침한 작곡가가 여유 있게 드라마를 유지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퐁키엘리(폰키엘리, Amilcare Ponchielli, 1834-1886)는 베르디를 이은 낭만파의 가극 작곡가이지만 베르디보다 일찍 죽었다. 그는 푸찌니와 마스카니의 좋은 스승이었으며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가교(架橋)였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들으면 이 그랜드오페라 속에서 다음 세대의 베리즈모 양식의 싹을 느낄 수 있다. 소개할 ‘하늘과 바다’ 이외에 제3막 제2장의 우아한 발레 음악인,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시간의 춤’도 유명한 곡이다.
복잡한 줄거리의 멜로드라마
17세기의 베네찌아(베네치아)이다. 밀고장(密告狀)을 넣는 ‘사자의 입’이 보이는 공작의 저택 중간 정원에서 군중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가수 죠콘다에게 연정(戀情)을 호소하는 재판소의 밀정(密偵) 바르나바는 그녀에게 거절당한 보복으로 눈먼 그녀 어머니 치에르카를 소동(騷動)에 말려들게 한다. 엔쪼(지금은 방랑의 산타 휘오르 공작)와 죠콘다는 그 소동 속에서 치에르카를 구출할 수가 없다. 그때 공작의 저택에서 재판소 장관 알비제가 아내 라우라와 함께 나타나 치에르카가 구출된다. 그녀는 라우라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로사리오(rosario, 黙珠)를 준다.
한편, 엔쪼도 뜻밖에 옛날의 연인 라우라를 다시 만난 일에 놀란다. 음흉한 바르나바는 둘 사이의 심상치 않은 눈치를 알아채고 사람들이 가버린 뒤 엔쪼를 돕겠다고 제의하는 한편 알비제에게는 아내의 불륜에 대한 밀고장을 공증인이 쓰게 만든다. 그 사실을 엿들은 죠콘다는 엔쪼의 변심을 슬퍼한다. 바르나바에게 인도되어 엔쪼의 배에 온 라우라는 그와 사랑의 2중창을 부른다. 그러나 배 안에 숨어 있던 죠콘다가 나타나 두 여성은 심하게 말다툼을 한다. 그때 밀고를 받은 알비제 일행의 배가 다가온다.
사태는 급변을 맞아 성모마리아에게 비는 라우라. 그녀의 가슴에 매달린 로사리오를 보고 죠콘다는 라우라가 어머니의 은인이었음을 깨닫는다. 죠콘다는 라우라를 도망치게 하고 엔쪼는 배에 불을 지른다. 알비제는 부정(不貞)한 아내에게 독약으로 죽으라고 한다. 저택에 스며든 죠콘다는 마취제를 마시게 해서 라우라를 가사(假死) 상태에 빠지게 한다. 무도회장에 나타난 엔쪼는 라우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알비제에게 도전하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제압당한다.
오르화노 운하 가의 집에 가사 상태의 라우라가 죠콘다의 수하 사나이들에게 운반되어 온다. 다른 한편 죠콘다는 바르나바의 뜻을 따르겠다는 조건 아래 엔쪼도 감옥에서 구출한다. 라우라가 되살아나 죠콘다가 준비한 배로 둘은 고마운 뜻을 말하고 떠나간다. 이윽고 바르나바가 죠콘다의 앞에 나타난다. 각오하고 있던 죠콘다는 단도로 자살한다. 놀란 바르나바가 화가 나서 “네 어머니를 죽였다!”고 외치지만 죠콘다의 귀에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하늘과 바다'
하늘과 바다여! 가벼운 안개가
성스러운 제단처럼 빛나고 있다.
하늘에서 오는가, 나의 천사는?
바다에서 오는가, 나의 천사는?
여기서 기다리면, 따뜻이 불어온다,
오늘, 사랑의 바람이.
아! 당신 때문에 슬퍼하는 사나이가
당신을 얻을 수 있는 황금의 꿈.
아! 당신 때문에 슬퍼하는 사나이가
당신을 얻을 수 있는 황금의 꿈.
아득히 저 멀리까지
대지도 안보이고 산 그림자도 없이,
수평선은 물과 입을 맞추고
물은 수평선과 입을 맞춘다!
여기는 어둡고, 마음은 갈증으로 허덕이며
힘없이 나는 있다,
오라, 사랑하는 사람아, 와서 입맞춤을,
생명과 사랑의 입맞춤을.
오라, 사랑하는 사람아, 여기서 나는 기다린다
마음은 갈증으로 허덕이며.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가 느껴지는 매혹적인 테너의 아리아
함정인 줄을 모르고 라우라의 도착을 기다리는 엔쪼가 배 위에서 지평선을 바라보며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로만짜이며 리리코 스핀토 테너의 대표적인 아리아이다. 이 ‘하늘과 바다’는 시원하게 펼쳐진 공간을 느끼게 하며 광채를 지닌 테너가 부르면 혹하게 반할 정도로 매력이 있는 노래이다. 가사도 더 이상 가릴 것 없는 사랑의 표현이며 “오라, 사랑하는 사람아, 와서 입맞춤을(vieni, o donna, vieni al bacio)” 이하는 이후에 몇 번씩이나 성가실 정도로 되풀이된다. 아무도 없는 밤하늘을 향해 호소하듯 부르지만, 물론 불륜의 상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추천 VD 및 DVD
[CD] 가바쩨니 지휘, 휘렌쩨 5월 음악제 관현악단․합창단, 델 모나코(T), 1957, Decca
1950년대 중반, 유럽의 주요 가극장을 석권한 드라마틱 소프라노인 체르케티(Anita Cerquetti)는 최고 전성기에 치명적인 병으로 은퇴했다. 스투디오 녹음의 오페라 전곡은 이 [라 죠콘다]하나뿐이다. 녹음 당시 나이는 26세이며 찌르는 듯 날카로운 목소리는 공연한 델 모나코에게 한 치도 밀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밖에 시미오나토, 시에피, 바스티아니니 등 역시 전성기의 목소리를 배역한 명가수를 총동원한 음반이다. 치밀하게 엮어나가는 가바쩨니(Gianandrea Gavazzeni, 가바체니)의 음악도 그랜드오페라다운 풍성한 음향으로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CD] 보토 지휘,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합창단, 훼라로(Pier Miranda Ferraro)(T), 1959, EMI
칼라스는 죠콘다로 이탈리아 오페라계에 데뷔하여 인정받았기에 그녀와는 깊은 인연이 있는 역이다. 그 후 그녀가 아직 건재할 때 스테레오로 녹음된 것은 고마운 일이다. 복잡한 여성상(女性像)의 입체적 조탁(彫琢)은 칼라스 말고는 없다고 할 정도이다.
[CD] 가르델리 지휘, 산타 체칠리아 관현악단․합창단, 메릴(T), 1967, Decca
가르델리가 정공법(正攻法)으로 마무리한 그랜드오페라이다. 테발디, 베르곤찌, 메릴, 혼 등 명가수를 갖춘 호화반이다. 그리고 그들의 유종의 미를 남긴 기록이 되기도 했다.
[CD] 바르톨레티 지휘, 내쇼널 휠하모니 관현악단/런던 가극단 합창단, 밀른즈(T), 1980, Decca
바르톨레티(Bruno Bartoletti)의 직선적인 힘이 있는 지휘는 그랜드오페라에는 무리 없는 전개가 상쾌하다. 까발레, 파바로티, 밀른즈, 발짜, 기어로프 등 호화로운 성악진의 포석도 으뜸이지만 그들 목소리가 흐르는 듯 아름다운 음악에 녹아 들어 단숨에 음악에 빠져든다.
[DVD] 휘셔(Ivan Fischer) 지휘, 빈 국립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 도밍고(T), 산저스트 연출, 1986, Virgin
유려한 퐁키엘리 음악의 아르다움을 빈 휠하모니의 현(弦)은 직선적으로 전해준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베리즈모풍의 드라마를 마르톤, 셈처크(Ludmila Semchuk), 도밍고 외의 출연진이 정확한 노래로 엮어 나간다. 산저스트(Filippo Sanjust)의 장치와 연출도 정공법을 따랐다. 이 오페라를 이해하는 데는 알맞은 영상이다.
[DVD] 칼레가리 지휘, 리세우 대극장 관현악단․합창단, 마르기슨(T), 피찌 연출, 2006, Arthouse-Aulos
피찌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연출가의 한 사람이며 특히 이 [라 죠콘다]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주 간단한 단순한 형상과 상징적인 색채만을 쓴 것이 특징이다. 그는 베네찌아를 단 3가지 상징물로 표현했다. 곤돌라, 다리, 우물이다. 그리고 세트와 의상의 고급스러운 마감 처리가 그의 아이디어를 돋보이게 한다. ‘시간의 춤’ 역시 특유한 안무로 눈을 사로잡는다. 성악적으로 어려운 이 작품을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가수들은 출중하게 소화하고 있다. 죠콘다의 보이트(Deborah Voigt), 라우라의 휘오릴로(Elisabetta Fiorillo)가 내뿜는 소프라노와 메쪼소프라노는 돋보이는 열창이다. 특히 죠콘다 역의 보이트는 미국 쉬카고 출신이며 1985년에 메트로폴리탄의 오디션에 합격하여 1991년에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서 레바인의 지휘로 데뷔하여 그 후 세계 주요 극장에 초청되어 유명해졌다. 보이트는 완성도 높은 테크닉과 힘찬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자랑하는 가수이다. 엔쪼 역을 맡은 테너 마르기슨(Richard margison)의 고음도 인상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하늘과 바다 - 폰키엘리, [라 조콘다]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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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5년 12월 9일 네이버캐스트 /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김성현 글>
문학과 클래식
희곡 <앙젤로, 파도바의 폭군>과 오페라 <라 조콘다>
모든 걸 잃은 여인의 아리아
174센티미터의 키에 90킬로그램을 웃도는 거구의 그리스계 소프라노가 1947년 6월 미국 뉴욕을 떠나 이탈리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이 소프라노는 오페라의 신대륙에서 성공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2년 전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단 한 건의 공연 계약도 성사되지 못했다. 시카고에서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투란도트(Turandot)]에 출연하기로 하고 리허설까지 마쳤지만, 합창단 노조에서 출연료 지급에 필요한 보증금을 요구하는 바람에 막판에 공연이 무산되고 말았다.
신의 계시와 같은 오디션 무대
실의에 빠져 있던 이 소프라노에게 이탈리아 베로나 페스티벌(Verona opera festival)에 출연할 성악가를 뽑는 오디션에 참가해보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축제 예술감독인 이탈리아의 테너 조반니 체나텔로(Giovanni Zenatello, 1876-1949)가 아밀카레 폰키엘리(Amilcare Ponchielli, 1834-86)의 오페라 [라 조콘다(La Gioconda)]에서 여주인공을 맡을 소프라노를 찾는 것이었다. 기원후 1세기에 건립된 베로나 오페라 극장은 빼어난 음향으로 최대 3만 명까지 수용 가능한 야외 공연장이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그리스 아테네 음악원에서 공부했던 이 소프라노는 그때까지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무대를 밟아본 경험이 없었다.
이 소프라노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라 조콘다]의 아리아 [자살(Suicidio)]을 불렀다. 오디션에서 노래를 듣던 체나텔로는 일흔의 나이도 잊은 채 오페라 악보를 넘기더니 테너와 소프라노의 4막 이중창을 함께 불렀다. 체나텔로는 “오디션이 아니라 신의 계시를 받은 듯했다”라고 회고했다. 신인 소프라노는 그 자리에서 오디션에 합격했다. 당시 24세의 이 소프라노의 이름은 안나 마리아 소피아 칼로게로풀로스. 훗날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77)였다.
마리아 칼라스의 두 남자
고대했던 이탈리아 데뷔 무대였지만, 공연 직후의 리뷰는 다소 엇갈렸다. “더할 나위 없이 감동적이며 개성적 특징을 지닌 금속성 목소리”라는 호평처럼, 칼라스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고음은 당시에도 두드러졌다. 하지만 평단의 반응보다 중요했던 것은 칼라스가 자신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이었다.
그 한 남자가 칼라스의 진가를 처음으로 알아본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Tullio Serafin, 1878-1968)이었다면, 다른 한 사람은 칼라스의 첫 남편이 된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Giovanni Battista Meneghini, 1896-1981)였다.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음악감독을 지낸 세라핀은 칼라스의 목소리를 들은 뒤 “이처럼 풍성한 성량과 배짱을 지닌 소녀라면 베로나 같은 대형 야외무대에서 엄청난 충격을 출 것이라 확신했다”라고 말했다. 실제 베로나 공연 직후, 칼라스는 세라핀의 지휘로 베니스 오페라 극장에 서면서 이탈리아 음악계에서 발판을 다졌다.
베로나 출신의 메네기니는 이탈리아 전역에 10여 개의 공장을 소유한 부유한 건축 자재업자이자 오페라 애호가였다. 이미 50대에 접어든 독신남이었지만 그는 첫 만찬 이후 27세 연하의 칼라스에게 후원자를 자처하며 애정 공세를 퍼부었다. 다음 날 입을 옷이 없어서 저녁마다 단벌 블라우스를 빨곤 했던 칼라스가 쇼핑의 즐거움에 빠져든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들은 1949년 결혼했고 그 뒤 칼라스는 마리아 메네기니 칼라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이들의 결혼 생활은 1959년 칼라스가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사랑에 빠져 남편을 떠날 때까지 10년간 지속됐다.
폰키엘리, 이탈리아 오페라의 가교
칼라스에게 이탈리아 데뷔 기회를 선사한 [라 조콘다]는 19세기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폰키엘리의 작품이다. 스트라디바리(Stradivari)와 과르넬리(Guarneri) 같은 현악기 제조 명가의 본산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의 인근 파데르노가 작곡가의 고향이다. 인구 1400여 명의 이 마을은 작곡가를 기념해서 지금도 ‘파데르노 폰키엘리’로 불린다. 크레모나 오페라 극장도 1907년 작곡가의 이름을 따서 ‘폰키엘리 극장’으로 개명했다.
지역 성당 오르간 연주자의 아들로 태어난 폰키엘리는 9세 때 밀라노 음악원에 입학하고 이듬해 첫 교향곡을 작곡한 전형적인 음악 영재였다. 하지만 음악원 졸업 직후의 초반 경력은 보잘것없었다. 고향 크레모나 등에서 오르간 연주자나 브라스밴드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200여 곡의 관악 합주곡을 틈틈이 썼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국부(國父)’로 추앙받았던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와 동시대를 살았다는 점도 작곡가로서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그는 총 10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지만 지금까지 오페라 극장에서 정기적으로 공연되는 작품은 [라 조콘다] 한 편뿐이다. 하지만 스승으로서 그는 1881년 모교인 밀라노 음악원 교수로 부임한 뒤, 푸치니와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3-1945) 같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요컨대 폰키엘리는 음악적으로 베르디와 푸치니 세대를 이어주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가교 역할’을 했다.
[시간의 춤], 화려한 볼거리
그의 출세작이자 유일한 성공작으로 남은 [라 조콘다]는 오페라 여주인공인 여가수의 이름이자 ‘즐거운 여인’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콘다는 제노바의 공작 엔초를 사랑하지만, 엔초는 베니스 종교재판관 알비세의 부인이 된 라우라를 잊지 못한다.
여기에 종교재판관 알비세까지 얽히면서 오페라는 팽팽한 4각 관계를 형성한다. 작품의 비중이 한두 명의 주역에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음역이 다른 등장인물들이 입체적인 긴장 관계를 구성하면서 치밀한 심리 드라마를 빚어내는 건, 베르디 중후기 걸작의 특징이기도 했다.
정작 작품에서 관객을 매료시켰던 건 3막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발레곡인 [시간의 춤]이었다. 오페라 중간에 발레를 삽입해서 화려한 볼거리를 강조하는 특징은, 프랑스의 그랜드 오페라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다. 극의 자연스러운 진행을 가로막고 표면적인 효과만을 노린다는 비판 때문에 19세기 말에 자취를 감췄지만, 이 작품에서는 결말 직전의 클라이맥스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1922년 소설 『율리시스』에서 주인공이 떠올렸던 선율도, 1940년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환타지아] 가운데 타조와 하마, 악어와 코끼리의 군무 장면에서 흘렀던 곡도 [시간의 춤]이었다. 시쳇말로 ‘불세출의 히트곡’이 된 것이었다. 예전에는 콜레스테롤의 주범으로 인식됐던 소고기의 지방이 육류 등급 분류의 기준인 마블링이 된 것처럼, 프랑스의 구시대 음악 유산이 오히려 작품을 살려주는 매력 포인트가 된 것일지도 몰랐다.
<라 조콘다>에 스민 베르디의 흔적
폰키엘리의 이 작품은 베르디 오페라의 강력한 영향권 안에 있었다. 그 유력한 물증이 원작자인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85)와 대본 작가인 아리고 보이토(Arrigo Boito, 1842-1918)였다. 셰익스피어와 월터 스코트 등 문학 작품에서 오페라의 소재를 즐겨 찾았던 베르디는 『에르나니(Ernani)』와 『환락의 왕(Le Roi S’amuse)』 등 위고의 희곡도 빼놓지 않고 오페라로 옮겼다.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는 위고의 희곡 『앙젤로, 파도바의 폭군(Angelo, Tyrant of Padua)』을 원작으로 보이토가 쓴 대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보이토는 [오텔로(Otello)]와 베르디의 마지막 오페라 [팔스타프(Falstaff)] 등 작곡가의 말년에 두 차례 호흡을 맞췄던 대본 작가다. 어쩌면 위고 원작과 보이토 대본은 당시 이탈리아 오페라 최고의 ‘흥행 공식’인지도 몰랐다. 폰키엘리는 “오직 진정으로 뛰어난 대본만이 작곡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으며, 그럴 때 작곡가는 대본에 전념해야 한다”라고 편지에 적었다.
위고의 희곡과 베르디의 오페라는 등장인물의 이름만 달라졌을 뿐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희곡의 제목에 등장하는 앙젤로는 베니스에서 파도바로 파견한 총독으로, 오페라에서는 알비세에 해당한다. 사랑과 욕망, 배반과 음모가 뒤엉켜 파국으로 치닫는 드라마의 전개 방식은 위고 희곡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고결한 여성상
오히려 이 희곡에서 두드러진 차별점은 여주인공인 티스브(오페라의 조콘다)가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티스브는 로돌포(오페라의 엔초)를 사랑하지만, 로돌포는 파도바의 독재자 앙젤로의 아내인 카타리나를 잊지 못한다. 결국 티스브는 카타리나와 연적(戀敵) 관계가 됐지만, 카타리나가 자신의 눈먼 어머니를 구해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티스브는 이들의 탈출을 도운 뒤 죽음을 택한다. 특히 티스브의 고결한 희생은 극중 남성들이 그 어떤 고뇌나 갈등도 보여주지 않는 평면적인 인간형이라는 점에서 더욱 감동적이다. 『파리의 노트르담』의 꼽추 카지모도와 『환락의 왕』의 궁정 대처럼 위고의 작품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여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희곡에서만큼은 남녀의 역할이 뒤바뀐 것이었다.
작곡가 폰키엘리는 음악적으도 오페라의 기존 공식을 뒤집었다. 이전까지 오페라에서는 음역이 높은 소프라노가 공주 역할, 상대적으로 음역이 낮은 메조소프라노는 시녀나 악녀 역할을 맡는 것이 암묵적인 법칙이었다. 하지만 폰키엘리는 [라 조콘다]에서 거꾸로 소프라노에게 조콘다 역을, 메조소프라노에게 라우라 역을 맡겼다. 이런 반전(反轉)을 통해 이전 오페라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소프라노 배역이 탄생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걸 양보하고 목숨까지 희생하는 고결한 여인상이었다. 이전까지 소프라노의 역할은 모든 걸 갖고도 고마운 마음조차 내색하지 않는 ‘깍쟁이’가 많았다는 점에서 지극히 대조적이었다.
[라 조콘다]를 통해 이탈리아에 데뷔했던 칼라스는 평생 13차례 이 작품을 무대에서 공연했다. 1952년과 1959년 두 차례 전곡 음반으로도 녹음할 만큼 애정을 쏟았다. 칼라스의 전성기는 눈부셨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1959년 7월 메네기니와 칼라스 부부는 선박왕 오나시스의 초청으로 3주간의 요트 여행에 동승했다. 5층 높이의 이 대형 요트는 프랑스와 그리스 전문 요리사와 웨이터, 재봉사와 안마사까지 60명의 승무원이 탑승한 ‘바다 위의 궁전’이었다. 칼라스의 가방에는 벨리니의 오페라 악보가 들어 있었지만, 칼라스는 그 가방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이 여행에서 칼라스는 오나시스와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불과 넉 달 뒤에 메네기니와 칼라스는 10년간의 부부 관계를 청산했다.
이 사랑의 치명적인 역설
그 무렵 칼라스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새장 속에 갇혀 있어서 그런지 활기차고 매력 넘치는 오나시스와 그의 친구들을 만나던 그날, 나는 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가 된 듯했다"라고 설레는 감정을 기록했다. 노래 대신에 사랑을 택한 셈이었지만, 정작 노래하지 않는 칼라스는 오나시스에게 별다른 매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야말로 이 사랑의 치명적인 역설이었다. 칼라스는 1965년 파리와 런던을 마지막으로 오페라 극장에 이른 작별을 고한 이후에는 리사이틀 무대에만 간간이 섰다.
오나시스는 2년 뒤 칼라스를 떠났고, 이듬해인 1968년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식을 올렸다. 칼라스는 인터뷰에서 “그의 곁에 있으면 결국 모든 걸 잃게 된다. 맨 처음에는 체중을 잃었고, 그다음에는 목소리를 잃었으며, 이제는 오나시스마저 잃었다”라고 말했다. 칼라스는 오랜 친구인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와 1974년 한국과 일본이 포함된 마지막 순회공연을 마친 뒤 파리의 아파트에 칩거했다. 그녀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비극적 오페라가 된 것이었다. 1977년 칼라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 전 남편 메네기니가 공개한 칼라스의 메모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이 끔찍한 순간에 내게 남은 건 너뿐이구나. 너만 나를 유혹하는구나. 내 운명의 마지막 목소리, 내 여행의 마지막 십자가여.”
폰키엘리의 오페라 [라 조콘다] 가운데 아리아 [자살]이었다. 이탈리아 베로나 축제의 출연자를 선발하기 위한 오디션에서 칼라스가 불렀던 바로 그 노래였다.
첫댓글 <불멸의 오페라 1 / 박종호> ★★★
지금 유일하게 나와 있는 <라 조콘다>의 영상물인데, 다행히도 연주가 뛰어나다. 무엇보다도 아담 피셔의 지휘가 절도 있고 쉽게 음악을 전달한다. 에바 마르톤(조콘다역)은 뛰어난 노래와 연기를 선보인다. 강인하고 격정적이며 처절하기까지 하다. 루드밀라 셈추크(라우라 역)는 마르톤에 뒤지지 않는 가창을 보여서, 마치 과거 칼라스와 바르비에리의 콤비를 연상시킬 정도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엔초를 열심히 연기했으며, 마테오 마누구에라(바르나바 역)와 쿠르트 리들(알비제 역) 역시 만족스럽다. 발레 신도 흥미롭다. 다만 무대미술은 조악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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