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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들
이 문 열
읊어지지도 씌어지지도 않은 시가 시일 수 있을까. 듣는 이도 읽는 이도 없는 시가 시일 수 있을까. 오직 자신만을 목적으로 의식 속에서만 눈부시게 피어올랐다가 스스로 완성됨을 흐믓해하는 미소 속에 스러지고 마는 시, 그리하여 ‘짓는’ 것이 아니라 ‘하거나’ ‘사는’ 시도 시일 수 있을까. 그런 시를 하고 그런 시를 사는 사람도 시인일 수 있을까.
아마도 있겠지만 ― 그런 시도 시인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고, 어쩌다 만난다 해도 알아보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시인과 마침내 그가 이른 그런 시에는 한 사람 그 예외가 있다. 바로 시인의 둘째 아들 익균(翼均) 이었다. 시인이 죽기 3년 전 익균은 남도(南道) 어디에서인가 아버지를 찾아 집으로. 모시려 한 적이 있어, 세상에서 그가 시인인지를 알고 그를 본 마지막 사람이 되었다. 그 익균에게서 끝내 아버지를 모셔가지 못한 연유를 들음으로써 우리의 시인과 그의 시가 마지막에 이른 곳을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해 보자.
형 학균(學均)이 자식 없이 죽은 큰아버지 병하 앞으로 양자 가는 바람에 익균은 일찍부터 어머니 황씨 밑에서 외아들루 자라 세상 사람들에게는 오직 그만이 시인의 아들로 알려졌다. 익균은 어른이 되어 어느 정도 살림살이가 자리 잡혀 가자 아버지를 찾아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외롭고 고단하게 떠도는 아버지를 모셔와 잘 봉양해야 한다는 유교적 효심에 내몰리기도 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일생을 과부나 다름없이 살아야 했던 어머니 황씨를 위한 배려도 있었을 것이다.
통신도 잘 이어지지 않고 교통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그 시대에 살아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을 찾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풍문으로 아버지가 있다고 들은 곳을 어렵게 찾아가 보면 시인은 이미 그곳을 지나간 뒤이기 일쑤였다. 어떤 때는 풍문이 잘못된 것이라 천 리 길이 헛걸음이 되는 수도 있었고, 드물게는 전혀 엉뚱한 사람이 삿갓과 대지팡이만으로 시인 행세를 하다가 찾아온 익균을 보고 무안해하며 달아나기도 했다.
거기다가 무엇보다 익균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버지 자신이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해 마지막으로 찾아 나서기 전에도 익균은 이미 두 번이나 어렵게 찾아낸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가는 도중에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한번은 경상도 안동 땅에서였는데, 아버지는 익균에게 자신이 신고 갈 짚신을 구해 오게 해 놓고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리고 또 한번은 황해도 구월산 쪽에서였는데, 함께 집으로 돌아오다가 용변을 핑계 대고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익균이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남도 하동(河東) 땅에서 찾아냈을 때 결심은 아주 단단했다. 이번에는 결코 놓아드리지 않으리라,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으리라, 잠을 잘 때는 옷고름을 서로 매어 두고 아무리 고단해도 결코 깊이 잠들지는 않으리라. ― 그렇게 마음을 다지는 익균에게는 그사이 길러진 오기와 원한 같은 것도 얼마간은 섞여 있었다.
‘당신이야 일평생 좋아서 떠도셨겠지만 나는 뭐고 어머니는 뭔가요. 당신은 당신의 한을 이기지 못해서라지만 그게 새로운 한을 기르고 있었다는 것은 모르셨겠지요. 당신은 아비 없는 후레자식 소리를 들으며 자라야 했던 내 한을 아시는지요. 그 가난과 외로움이 내 어린 넋을 할퀴어 남의 아비 된 지금에조차 아물지 못한 상처로 욱신거리고 있음을 짐작이나 하실는지요. 더 있습니다. 꽃 피는 봄 잎 지는 가을밤에 잠 못 들어 하며 밤새도록 한숨으로 뒤척이던 어머님의 한을 아실는지요. 미움도 원망도 세월과 더불어 사위어 이제는 임종이라도 곁에서 보고 싶다는 비원만으로 당신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애달픈 삶을 한번 헤아려 보신 적이나 있으신지요. 아니 됩니다. 부여잡는 제 손을 또다시 뿌리치셔서는 아니 됩니다. 이번에는 결코 놓아드리지 못합니다…….’
실제로도 익균은 자신의 결심에 충실하게 아버지를 감시했다. 잠잘 때는 아버지의 삿갓과 짚신을 감추고, 깨어서는 아버지로부터 한 자 넘게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세수조차도 나란히 개울가에 서서 아버지의 움직임을 살펴 가며 하고, 심하게는 뒷간까지 아버지를 따라가 지키기도 했다.
이번에는 시인도 이상하리만치 그런 익균의 성화를 순순하게 받아 주었다. 그렇게 여러 말은 않아도 이번에는 굳이 아들을 따돌릴 생각이 없음을 틈만 나면 은근히 내비쳤다. 시인의 나이도 어느덧 쉰넷, 과객으로는 너무 늙었고, 서른 해 가까운 떠돌이 삶의 조식(粗食)과 피로에도 어지간히 지친 듯했다. 거기다가 구경꾼까지 꾈 만큼 떠들썩하던 그 시도 그 무렵은 더 나오지 않는지, 그전에 만났을 때처럼 아버지 주위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몰려 있지 않던 것도 얼마간 익균의 마음을 놓게 했다.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 집을 향해 떠난 지 이틀 만에 익균은 참으로 놀라운 일을 겪게 되었다. 험하다는 함안(咸安) 산청(山靑) 어떤 영마루를 넘을 때였다. 고갯길이라 숨이 차는지 노송 그늘에 앉아 쉬는 아버지를 두고 대여섯 발짝 떨어진 참나무 뒤에서 소피를 보고 나오니 아버지가 없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따돌리고 어디론가 사라진 줄 안 익균은 또 속았다는 느낌에 일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이 어른이 끝까지…… 하며 가만히 이를 악물고 아버지가 몸을 숨겼음 직한 곳을 차례차례 눈길로 헤집듯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때 더욱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얘야, 뭐 하느냐? 뵐 잃어버렸느냐?”
그 같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 퍼뜩 돌아보니 아버지가 원래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어딜…… 갔다 오셨습니까?”
워낙 땅에서 솟듯이 나타나 놀라기도 하고, 어쨌든 아버지를 잃은 것이 아니라 반갑기도 해서 익균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왜 무슨 일이 있었느냐?”
익균으로서는 까닭 없이 으스스하게 들리는 물음이었다. 조금 전 자신이 그렇게도 눈을 부룹뜨고 살퍘지만 틀림없이 그 소나무 아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되묻고 있는 아버지는 또 아버지대로 그새 거기서 손가락 하나 까닥한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았다. 실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그 뒤로도 더 있었다. 그날 그 고개를 다 넘은 뒤에 어떤 작은 계곡을 만났을 때였다.
“얘야, 저기서 발이나 좀 식히고 가자꾸나. 오늘 길은 이만하면 어지간하지 않느냐?”
아버지가 그러는 바람에 익균도 계곡 개울가로 가게 됐는데, 거기서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물가 바위에 걸터앉은 아버지가 버선을 벗고 물에 발을 담근 걸 보고서야 다소 마음이 놓여 한눈을 팔다가, 이상한 느낌에 퍼뜩 돌아보니 여남은 발짝 저쪽의 아버지가 안 보이지 않는가. 익균이 놀라 화닥닥 뛰어 일어났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가장 큰 바위에 올라가 사방을 살피는데 아까의 그 자리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 있느냐?”
익균이 내려다보니 아버지는 두 손으로 물에 담긴 발을 주무르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원래 앉았던 자리 그대로였다.
익균이 어렴풋하게나마 그 이상한 현상의 원인을 짐작하게 된 것은 그런 일을 몇 번이나 더 겪은 뒤였다. 그다음 날 어떤 바위산 기슭을 지날 때 익균은 마음먹고 아버지에게서 멀어지면서 어떻게 아버지가 없어지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때 아버지는 바위산 기슭으로 비어져 나온 청석 끝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익균이 대여섯 발짝 떨어지면서부터 벌써 아버지의 형태는 희미해져 가기 시작했다.
익균은 놀라면서도 몇 발짝 더 떨어져 보았다. 아버지가 또 없어졌다 싶었으나 눈여겨보니 그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틀림없이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었다. 그러나 삿갓을 벗고 망연히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게 그대로 그만한 청석 덩이 같았다. 그것도 수천 년 전부터 원래 그 자리에 있어 퍼렇게 이끼가 낀. 따라서 주위의 경물과 너무도 잘 조화를 이룬 까닭에 아버지가 거기 있다는 걸 자신이 얼른 알아보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길을 함께하면서 익균이 겪어야 했던 놀랍고 이상한 경험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시였다. 아니, 소문으로만 요란하게 전해 들었던 그 시일지도 모르는 어떤 웅얼거림이었다.
겨우 콧등이나 울리고는 입안으로 어물어물 잦아들어 버리기는 하지만, 그전에도 이따금씩 아버지는 길을 가다 무어라 웅얼거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익균은 짐짓 그 소리를 못 들은 체해 왔다. 그게 시란 짐작은 있어도 아버지가 누구보고 알아듣게 읊조리는 게 아닌 데다, 애써 알아듣는다 해도 학문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익균으로서는 뜻을 알 길이 없었다. 어쩌면 서른 해 전 아버지를 집에서 끌어내 일생을 과객질로 떠돌게 한 게 바로 그놈의 알지 못할 시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은근한 반감만 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버지가 무언가를 웅얼거릴 때는 달랐다. 이미 그 며칠 여러 가지로 놀라운 경험을 한 터라, 그 웅얼거림이 바로 시이며 거기에도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익균은 난생 처 음으로 아버지에게 시를 물었다.
“저기 저 꽃이 아름답다고 했다.”
아버지가 애매한 표정으로 길가의 바위 벽을 가리켰다. 아버지가 손가락질할 때는 틀림없이 벌건 바위 벽이었는데 ― 익균이 바라보자 놀랍게도 그 바위 벽을 쪼개고 한 줄기 눈부신 자색(紫色)의 천남성(天南星) 꽃이 피어오르는 게 아닌가. 마치 완강한 바위 벽에 갇혀 있다가 아버지의 손가락에 끌려 나온 듯이, 또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그 순간 바위 위에 빚어 놓은 것처럼.
처음 익균은 그 신비한 느낌이 무언가 헛것을 본 것이거나 눈길이 닿는 순간의 차이가 일으킨 미묘한 혼란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뒤 익균은 그 신비한 느낌이 무엇 때문인지를 알아보려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웅얼거림을 들을 때마다 거기 대해 물어보았는데, 매번 앞서와 비슷한 경험을 해야 했다.
“저 구름이 참 유유하구나.”
마지못해 하는 듯한 그런 풀이를 듣고 아버지의 손가락 끝을 올려다보면 그때껏 무덤덤하던 하늘 한곳에서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잘생긴 구름이 불려 나와 유유하게 흘러갔고,
“저 잉어가 참 한가롭다 했다.”
하는 소리를 듣고 언덕 아래 강물을 보면, 조금 전까지도 아무것도 안 보이던 물속에 마치 아버지의 웅얼거림에 이끌려 온 듯 미끈한 잉어 몇 마리가 떼를 지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아버지가 새를 읊으면 새 중에서도 가장 깃털 예쁘고 소리 고운 새가 어디선가 날아와 지저귀었고, 바람을 읊으면 바람 중에서도 가장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들 부자의 땀을 씻어 주었다.
오래잖아 익균은 그런 아버지의 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어렴풋한 짐작은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기실 그 시로 원래 없는 걸 불러내거나 만드는 게 아니라, 거기 있었지만 자신은 볼 수 없었던 것들을 홀로 알아보았거나 찾아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익균의 짐작은 겨우 그뿐, 그게 왜 자신에게는 없는 걸 새로 빚어내거나 다른 곳에 있는 것을 그리로 불러오는 것처럼 느껴지는지는 끝내 알 수가 없었다.
한번 아버지를 살피는 눈길이 되자 익균에게는 그 밖에도 또 다른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것은 아버지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 특히 대처 저잣거리로 들어설 때 그랬다. 자연의 경물 사이를 지나올 때와는 달리, 아버지는 여러 사람 가운데만 끼어들면 금세 그들 중에 가장 초라하고 지쳐 빠진 늙은이로 불거지는 것이었다. 마치 화려한 봄꽃 밭 가운데 꽂힌 삭정이처럼. 아버지의 말도 마찬가지였다. 시를 웅얼거릴 때의 그 신비한 힘은 어디 갔는지 사람들은 거의 아버지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자신의 통변(通辯)이 필요할 정도였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껏 굶어 죽지 않고 과객 노릇을 해 왔다는 게 영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럭저럭 길 떠난 지 이레째 되는 날이었다. 어느새 경상도가 끝나 부자는 죽령(竹嶺) 아랫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아버지를 집으로 데려가겠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던 익균에게 문득 한 물음이 일었다.
‘결국 아버지는 무엇일까. 내 아버지만일 수도, 어머님의 지아비만일 수도 없이 일생을 떠돌며 살게 한 아버지의 다른 이름과 쓰임은 무엇이었을까. 또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런 아버지를 이제 와서 굳이 집으로 모시고 돌아가는 게 옳은 일일까.’
그 며칠 경험한 일들이 익균의 머릿속에서 한 방향으로 천천히 종합되면서 생긴 물음이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시인이라 했다. 시를 잘 짓는 사람. 그러나 어린 날의 익균에게 시란 저주나 재앙과 동의어였다. 더러는 아버지를 과객이라 했다. 머리와 몸이 너무도 지나치게 따로따로 노는 그 사람들. 몸은 유리걸식의 진창을 헤매면서도 머리는 글과 학문이 지어내는 꽃구름 위에 떠 있는 사람. 어렸을 적부터 몸에, 현실 쪽에 무게를 주고 살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켜 온 익균에게는 과객이란 그럴싸한 호칭 또한 거지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를 그 두 가지 불행한 운명에서 빼내 온다. ― 그게 아버지를 향한 익균의 소박한 효심(孝心)이었다. 일생을 외롭게 지낸 홀어머니를 향한 절실한 효도와는 거리가 멀지만 진심의 일부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런데 며칠 사이에 갑자기 그 모든 자명했던 이치들이 의심스러워지고, 아버지를 모셔간다는 결의마저 흔들어 놓았다.
하기야 아버지가 빠져 있는 것이 불행도 저주도 아닌지 모른다는 의심은 이미 첫 번째 만남에서 느껴진 바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한사코 돌아가기를 마다하는 데는 어딘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듯한 기색이 엇보였다. 그러나 익균은 그 누림을 어떤 적극적인 권리이기보다는 소극적인 휘피나 면제로만 이해했다.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의 삼엄한 규정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가장(家長)에게 요구되던 여러 책무들로부터 독서인(讀書人) 의 사회적 기능에 이르기까지, 일찍 이 아버지가 지기를 마다하고 떠나온 그 모든 성가시고 난감한 짐들. ― 그리하여 아버지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일은, 살아가며 두고두고 그 불이행을 추궁당할 지난날의 책임과 구차하고 힘들어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될 앞날의 책임으로 다시 끌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아버지가 두 번이나 거짓말에 속임수까지 써 가며 일껏 먼 길을 찾아간 자신을 따돌린 뒤에도 익균의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만나 본 뒤 기꼇 변한 게 있다면, 그런 아버지의 의식을 이해하는 데 그 두려움 외에 홀림 〔魅惑〕을 하나 덧보탠 정도일까. 모든 불행과 저주가 적건 크건 반드시 지니고 있기 마련인 그 알지 못할 불길한 힘, 어떤 뿌리치기 힘든 홀림도 아버지를 일생 길 위에서 헤매게 한 것들 중에 하나일지 모른다는 게 그때 새로 품게 된 익균의 짐작이었다.
그런데 그 닷새, 가까이에서 아버지를 보는 동안에 익균의 가슴을 점점 무겁게 짓눌러 오는 것이 있었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무엇에 홀리거나 져야 할 짐이 두려워 길 위로 내몰리게 된 것이 아니라, 드물지만 드높고 값진 무언가를 누리기 위해 스스로 떠돌고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이었다. 그런 의심을 이내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 아버지와 함께한 지난 며칠의 여러 놀랍고 신기한 경험들이었다. 그러자 다시 익균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 오는 물음들이 있었다.
‘이제 돌아가면 머물게 될 내 초라한 초가 사랑채에서도 아버지는 과연 푸른 하늘에 구름을 불러내고 벌건 바위 벽에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그 낮은 추녀 밑으로 울음소리 곱고 깃털 예쁜 새들을 불러들이고, 산가(山家) 좁은 뜰에서도 미끈한 잉어 떼와 노닐 수 있을까. 나와 아내와 어머니의 수고로움에 얹혀, 또는 그 보잘것없는 생산을 함께 거들면서, 늙은 소나무처럼 이끼 낀 바위처럼 멋스러울 수 있을까, 꿋꿋할 수 있을까. 또는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돌아온 늙은 떠돌이를 보는 차가운 눈길 속에서, 혹은 당신이 젊어 한때 드날렸다는 그 허황된 이름을 좇아 부나비 떼처럼 몰려들지 모르는 어중이떠중이 문사(文士) 들 속에서, 아버지는 변함없이 시인일 수 있을까. 하늘을 지봉 삼고 땅을 돗자리 삼아 매인 곳 없이 떠돌던 그 시인일 수 있을까…….’
초저녁부텨 코를 고는 아버지 곁에 누워 익균은 그 같은 상념에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피의 동질성이 그 자신의 배움이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이해를 끌어내 익균을 느닷없으면서도 마음 무거운 망설임에 몰아넣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줄곧 그침 없이 코를 골았다. 이윽고 밤이 깊어 얼마 전까지 들리던 아랫방 주막집 내외의 두런거림도 그치고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 고요 속에서 자신의 상념을 좇던 익균도 아슴아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깜박 잠이 들었던 익균은 야릇한 허전함에 눈을 떴다. 옆 자리는 비어 있고, 대신 윗목에서 무언가 사르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구나. ― 익균은 직감으로 그렇게 느꼈다. 그날 밤은 자신이 감추지 않은 삿갓과 두루마기를 챙기는 듯했다.
그러나 익균은 왠지 몸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기어이…… 하는 알 수 없는 체념이 먼저 일며 온몸에서 스르르 힘이 빠졌다. 이어 되살아난 간밤의 상념도 집을 나설 때의, 그리고 어렵게 아버지를 찾아낸 순간의 굳은 결심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사이 아버지는 챙겨야 할 것들을 다 챙긴 듯 문께로 갔다. 이제는 일어나야 한다. ― 익균은 그제야 슬며시 조바심이 일었으나 몸을 일으킬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갑자기 아버지의 동작이 멈춰졌다. 어둠 속이지만 익균은 한동안 얼굴에 따스한 햇살 같은 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날 굽어보고 계시는구나……. 익균은 그런 느낌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눈길을 피하듯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런 그의 귀에 문득 담담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들아, 아무래도 나는 돌아갈 수가 없구나. 아비는 일찍이 신하 되기도 마다하고, 아비 되기도 마다하고, 어른 되기도 마다하고, 벗도 끊고, 지어미도 버리고, 너희 세상을 떠나 시인이 되었다. 마땅히 져야 할 그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삶을 흥겨운 이승 나들이로 여겨 시로 떠돌며 이 한살이를 때우려 했다. 그런데 해 기울고 날 저물려는 이제 와서 다시 아비가 되라 하고 지아비로 돌아가라 하느냐. 받아들여지지 않는 신하로, 받들어 주지 않는 어른으로, 미쁨 얻지 못한 벗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냐. 아니 되겠다. 그것들은 모두가 처음부터 이 아비에게는 맞지 않는 옷과 같은 것이었다. 더구나 아비에게는 그것들과 맞바꾸어 일생을 함께한 시가 있다. 나는 그 시로 내내 평온하고 넉넉하였다. 더군다나 ― 이미 너무 멀리 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그 시의 길은 또 어찌할 것이랴. 아들아, 나를 이만 놓아주려무나. 이대로 시인으로 살다 비 걘 뒤의 노을처럼 스러지게 버려두려무나…….’
익균이 다시 눈을 뜬 것은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나서였다. 바깥의 어스름한 하현(下弦) 달빛 때문에 삿갓을 끼고 구부정히 방을 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마당으로 내려서기 전에 힐끗 돌아보는 품이 아들이 깨어 있는 걸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마비에 빠져 있던 익균이 비로소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일으킨 것은 마당으로 내려선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제야 다급해진 익균은 엉금엉금 기어가 문지방을 잡고 밖을 내다보며 소리쳤다.
‘아버지…….’
그러나 익균의 목소리는 그보다 앞서 눈에 들어온 아버지의 뒷모습에 막힌 듯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희끗희끗 멀어져 가는 아버지는 이미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시인일 뿐이었다. 세상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시인일 뿐이었다. 어느 새 주막 사립문을 벗어난 아버지는 풀숲 길로 들어서는가 싶더니 이내 자취가 사라졌다. 나무가 되었거나 돌이 되었거나 꽃 하얀 찔레 넝쿨이 되었거나 혹은 짙어지기 시작하는 새벽 안개가 되어…… 라는 생각이 들자 익균은 아직 못 뱉어 낸 만류의 말을 얼른 축원(祝願)으로 바꾸며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안녕히 가십시오, 아버님. 부디 당신의 시 속에서 내내 평온하고 넉넉하십시오…….’
그는 시인의 아들이었다.
그 뒤 그들 부자는 살아서는 다시 만나지 못했고, 그래서 그 새벽 그들이 가슴으로 주고받은 말은 그대로 이 세상에서 나눈 마지막 별사(別辭)가 되었다.
(1990년)
2016년 12월 5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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