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주어라’는 말씀이 살아있는 곳
| ▲ 연수차 방문한 필리핀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10월 7일 꽃동네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 센터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다. 이힘 기자 |
| ▲ 수녀가 아이를 안아주며 미소 짓고 있다. |
‘꽃동네’ 하면 대부분 부랑인 시설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곳에 오갈 데 없는 아기 천사들의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바로 꽃동네 입양기관이자 아동생활시설인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 센터’다. 예수의 꽃동네회 남녀 수도자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곳이다. 꽃동네회 수도자들은 1997년 ‘천사의 집’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이곳이 수도회 영성의 뿌리가 되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랑의 보금자리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프란치스코 교황 꽃동네 방문 1주년을 기념해 증ㆍ개축 공사를 하고 지난 8월 다시 문을 연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 센터에는 50명의 보육교사와 봉사자의 도움을 받으며 3명의 수녀가 1~5세 영ㆍ유아 50명의 엄마로 살고 있다. 24시간 엄마 손길이 있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엄마 수녀들은 숙식은 물론 기도 생활도 이곳에서 함께한다.
아기를 키우는 여느 가정처럼 이곳도 분주하기는 매한가지다. 밥 달라 보채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투정을 부리는 아기도 있다. 아기들이 보챌 때마다 수녀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안다는 듯 안아서 이유식을 먹여주고 젖은 기저귀를 갈아 주고, 목욕물을 받아 씻기고 업어서 잠을 재운다. 그래서 이들 수도자는 늘 앞치마를 두르고 생활한다.
지난달 7일 방문한 센터에서 수녀들은 엄마 품이 그리워 어른만 보면 안아달라 보채는 주원(가명, 3)이를 어르고 달래 웃을 때까지 돌보고 있었다. 말귀를 알아듣는 아이들에게 틈틈이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도 수도자들의 몫. 아이를 낳아본 적 없는 수녀들이지만 아이들을 직접 기르고 함께 지내면서 엄마 마음을 배웠고, 엄마처럼 말하고 생각하게 됐다. 물론 보육교사와 봉사자들의 도움도 받는다.
몇 해 전 한 젊은 여인이 봉사자를 가장해 꽃동네를 찾아와 갓난아기가 울고 있다고 신고했다. 수녀들은 꽃동네의 성모상이 있는 숲 속에서 파랗게 질려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저체중아를 발견하고 아기를 살려줄 병원을 찾아 수소문했고, 결국 대전성모병원 인큐베이터 속에서 미숙아를 구해냈다. 이처럼 누군가 돌봐주지 않았다면 생명을 잃을 뻔했던 아기들의 사연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수녀들은 센터에서 지내는 아기들이 입양을 통해 하루빨리 새로운 엄마 아빠를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센터에선 한 달에 몇 번씩 특별한 날이 있다. 아기가 입양 가는 날이다. 이날 수도자와 직원들은 모두 나와 인사하며 새 삶을 축복해준다. 그러나 수도자들은 정든 자녀를 떠나보내듯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입양 날은 그래서 남몰래 눈물을 쏟는 날이라고 했다.
센터장 김순희 수녀는 “아이들이 말이 늦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 우리가 아무리 잘해줘도 부모 사랑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의 인생을 위해 입양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수녀들은 입양 후에도 아이 가정과 연대해 아낌없는 사랑을 쏟고 있다. 정기적으로 가정을 방문하고 가족들을 꽃동네로 초대해 감사 행사를 열고 면담하며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늘 살핀다.
수녀들은 입양되지 않은 아이는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돌보고 있다. 인근 맹동면 연립 주택 여러 채를 매입 그룹홈 ‘요셉의 집’을 꾸려 유치원과 초중고를 다니고 있다. 또 성인이 된 아이들은 임대아파트를 얻어 살며 대학교에 다니고 취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렇게 사는 요셉의 집 아이들이 80명이 있다.
수녀들은 지적 장애아와 지체 장애아를 돌보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다. 꽃동네 인곡자애병원과 외부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하고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말을 걸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기도 지향의 주인공도 아이들이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꽃동네 특수학교에서 초중고 교육 과정을 받게 한다. 꽃동네학교를 마치면 장애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제과제빵 기술 등을 가르친다. 취업해도 꽃동네를 떠나길 원치 않으면 가족으로 함께 산다.
김 수녀는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성모님의 모성으로 키우는 것이 우리 소임이다. 아이 한 명 한 명을 ‘아기 예수님’으로 사랑과 정성으로 돌본다”며 “성인이 되어 독립한 아이들이 명절에 찾아올 때 더없는 기쁨과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형제회 부총원장 신상현(야고보) 수사는 “꽃동네회 수도자들은 가난하고 버려진 이들을 밭에 묻힌 보물이라고 여기고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예수의 꽃동네 형제ㆍ자매회
예수의 꽃동네 형제ㆍ자매회(이하 꽃동네수도회)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 성심의 사랑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오웅진 신부가 당시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현 추기경)의 승인을 받아 1986년 설립한 수도회다. 꽃동네회의 영성은 ‘사랑의 영성’이다.
꽃동네수도회는 한 사람도 버려지는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같이 우러름을 받으며,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복지ㆍ행복ㆍ사랑ㆍ교육의 네 분야 사도직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국내에선 종합사회복지시설인 음성ㆍ가평ㆍ옥천 꽃동네와 서울 신내노인요양원, 청주 성심노인요양원, 인천 꽃동네 무료급식소, 홀몸 노인 도시락 배달 공동체 등에서 사도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울러 필리핀ㆍ방글라데시ㆍ아이티ㆍ인도ㆍ우간다 등 해외 9개국에 남녀 수도자 50여 명이 진출, 에이즈 등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소외된 계층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2015년 10월 현재 수도회 종신서원자 수는 수사 60명, 수녀 250명이다. 이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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