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뜸을 뜨다가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바람에
차의 달인이 달인 차를 마시고 싶은 충동을 참아가며 썼다는 장유(張維)의 시(詩).
장유(張維)가 병든 노년 시기에 지은 칠언율시(七言律詩)입니다.
그러니까 7자씩 4줄이 2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시의 제목은 ‘쑥뜸을 뜨고 나서, 서재에 앉아 붓 가는 대로 시를 짓다(灼艾後齋居漫筆)’입니다.
장유(1587~1638)는 조선의 16대 임금인 인조 때의 명신(名臣)이자 학자였습니다.
그의 호(號)가 谿谷(계곡)입니다. 인조반정(仁祖反正:1623) 에 공을 세워서 대사간과 대사성을 지냈고,
정묘호란(丁卯胡亂:1627) 때 강화(江華)까지 임금을 수행(遂行)한 공로로 우의정(右議政)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육자(陸子)라는 사나이는 중국 당(唐)나라의 선비인 육우(陸羽)를 말합니다.
그는 760년 경에 다도(茶道)의 고전(古典)이라 일컬어지고 있는《茶經(다경)》3권을 지어,
차를 파는 상인(商人)들로부터 다신(茶神)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유명하긴 유명한 자인 모양입니다.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 지은 <五臺山記(오대산기)>에도 그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죠.
《茶經(다경)》은 국역본도 있다고 하니 차와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곁에 두고 보시면 좋을 것 같고,
일본에는 에이사이(榮西:1141~1215) 선사(禪師)가 지은 『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도 국역본이 있습니다.
그럼, 노년에 병든 몸으로 써내려간 조선의 명문장가의 시를 한번 감상하시겠습니다.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의 국역을 참조로 했습니다.
아래의 <주(註)>도 함께 보시면 이해하시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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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봉지며 책갈피며 널브러진 거사의 집 / 藥裹書籤居士家
이 비야(毗耶)에는 문병 오는 사람조차 없는데 / 無人問疾到毗耶
야윈 몸뚱이에 좋다는 쑥뜸 한번 떠보니 / 羸軀乍試仙姑艾
입술만 바짝 타고 육자차(陸子茶) 생각뿐이로세 / 燥吻頻思陸子茶
붓끝에 이는 물결도 게으름에 줄어들고 / 筆底波瀾慵後減
우두커니 앉았노라면 정적만이 감돌아 / 蒲團功課靜來加
어찌 차마 이번 한가위를 다시 맞으오리 / 何堪更値中秋夕
썰렁하고 추운 방에는 달빛 한 점 없는데 / 寂歷寒房閉月華
*출전: (<谿谷集(張維:1587~1638), 卷30, 七言律, 灼艾後齋居漫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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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주)> *灼(작):태우다|艾(애):쑥.쑥뜸|藥裹(약과):약(藥)을 담은 봉지|書籤(서첨):책갈피.책찌|羸(이):마르다|乍(사):잠깐|吻(문):입술|頻(빈):자주|波瀾(파란):작은 물결과 큰 물결|慵(용):게으르다|筆底(필저):붓끝|蒲團(포단):부들방석|功課(공과):일과(日課)|堪(감):견디다|値(치):만나다|寂歷(적력):쓸쓸하다.적막하다|月華(월화):달빛| **居士(거사):여기서는 장유(張維) 자신을 가리킨다. 생전에 스스로를 ‘嘿所居士(묵소거사)’라 불렀다|毗耶(비야)=毘耶離城:유마거사(維摩居士)는 인도(印度) 비야리성(毘耶離城)의 큰 아들로서, 석가(釋迦)의 교화(敎化)를 도운 사람인데, 중생(衆生)이 병(病) 들었기에 자신도 병 들었다고 자리에 누운 뒤, 병문안을 온 여러 보살들에게 불이법문(不二法門)의 《維摩經(유마경)》을 말해주었다고 한다|仙姑艾(선고애):효험(效驗)이 좋은 쑥. ‘仙姑’는 신선(神仙)할멈 또는 선녀(仙女)인 서왕모(西王母)를 뜻하기도 한다|/
첫댓글 명품시에 훌륭한 해설 역시 대단 하십니다. 초의선사의 동다송을 대하듯 반가운 싯귀 입니다.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