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작은 일탈은 사소한 행복의 하나다. 봄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3월말이다.
이미 벛꽃이 피기 시작하였고 산수유는 어느 곳이나 만개한 상태이다.
등산 마니아 몇 명은 1박2일의 일정으로 제천에 있는 금수산(錦繡山)으로 가기로 하였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로 제천에서 근무하는 재훈이를 만나는 또 하나의 목적도 있다.
당일치기만 하다가 오랜만에 하룻밤 자는 일정이다. 일상에서의 작은 일탈은 작은 기쁨중의 하나다.
아침 8시에 논현동에서 4명(성진, 승훈, 풍오)의 등산 마니아는 종국이가 운전하는 스포티지에 몸을 실었다.
죽전에서 원재를 태우고 불원천리 쉬지 않고 제천으로 내달렸다. 두 시간 조금 더 걸려 제천의 금수산 입구인
상천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미 그곳에는 재훈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수산(1,016m)은 본래 백암산이라 불리웠으나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임시에 가을 단풍이 마치 비단에
수놓은 것 같다 하여 금수산이라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우리는 등산 준비를 마치고 산의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인데 집집마다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여기를 지나 더 들어가면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재훈이는 “지난 주말에 구례에서 열리는 산수유축제에 갔다 왔는데 여기가 훨씬 낫다.”라고 말했다.
마을을 지나 금수산 기슭에서 산을 바라보니 과연 풍광이 뛰어나다.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인데다
어젯밤 내린 비로 공기 중의 미세한 입자마저 여과된 공기가 그렇게 상쾌하고 좋을 수가 없다.
서울에서 거의 한 달 동안 황사니 미세먼지로 스트레스 받은 걸 생각하면 가슴이 후련해지고
그 스트레스가 청풍에 다 날려 가는 느낌이다. 발걸음도 가볍게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30분여를 가니 금수산의 자랑인 용담 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용담폭포의 물은 용처럼 기세 있게
내리치며 새하얀 물보라를 일으킨다. 주위의 경관과 더불어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기분 좋은 것은 거기까지였다. 등산길이 점점 험해지는 것이었다. 바위산답게 곳곳에 난이도가
있는 구간이 있어 힘이 들었다. 국립공원인데 그런 위험한 곳에 밧줄하나 설치한 곳이 없다.
힘들게 올라가면서도 바위 한가운데에 아름드리가 될 정도의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그 끈질긴 생명력에 찬탄하곤 하였다. 재훈이는 어제 온 비로 미끄러운 바위 때문에 넘어지기도 하였다.
총산에서 이곳을 왔을 때 선배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었다는 승훈이의 말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3주 동안의 감기와 연이틀 동안 술자리의 여파로 몸상태가 안 좋은 성진이는 매우 힘들어 하였다.
그러나 고진감래라 했던가. 망덕봉에 이르니 금수산의 진면목이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팔등신 미인이 누워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부드러운 산세와 아름다운 풍경이 그동안의 힘들었던 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동쪽으로는 소백산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월악산이 그 웅장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그림처럼 휘감아 도는 충주호(제천 사람들은 청풍호라 부른다)가 보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옅은 안개로 인해 시야가 탁 트이지 못한 점이었다.
망덕봉에서 한 시간 정도 가면 금수산 정상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팀은 둘로 나뉘어져 나를 비롯한
성진이와 원재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단양쪽 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종국이를 비롯한 정상팀은 정상으로 향했고 나중에 만났을 때 말이 역시 하산길도 험했다고 한다.
산을 다 내려와 콜택시를 불러 제천으로 갔다. 저녁에는 제천의 제일가는 삼겹살집에서 소주와 맥주를
곁들인 삼겹살로 저녁을 먹었다. 그날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승훈이는 다음 날 약속이 있다고
기어이 9시발 청량리행 기차를 타고 먼저 갔다. 이 나이에도 어떻게 그런 열정과 부지런 함을 간직하고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우리는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종국이가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처음에 간 곳은 세명대학교 앞에 있는 ‘솔밭공원’이었다. 소나무가 기품있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고
다양한 조각품들은 찾는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다음에는 의림지였다.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부터 있었다는 대표적인 수리시설이다. 오래된 소나무와 수양버들,
자연폭포 등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하고 있다. 우리는 계곡으로 내려가 풍광을 감상하고 다음 목적지인
덕동계곡 으로 향했다.
덕동계곡은 백운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약 8km의 계곡으로 경치가 아름답다. 계곡을 따라 다양한
디자인의 펜션이 손님을 부르고 있다. 우리는 계곡에 내려가 올해 처음으로 족욕(足浴)을 하여 이틀
동안 수고한 발에 최소한의 예의를 보였다. 계곡에 설치된 간이 테이블에 앉아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원재가 가져온 매실주를 마셨다. 풍광 좋은 계곡에서 좋은 친구와 좋은 술을 마시니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종국이의 마지막 안내는 제천의 맛집으로 알려진 ‘자연식당’이라는 칼국수집이었다. 그는 멋진 가이드다.
이틀 동안 차를 몰고 명소를 안내해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에 눈이 호사하였고 맛있는
음식으로 입이 호사하였으며 맑은 공기로 코가 호사하였다. 무엇보다도 우리들 마음이 호사하였다는 것이다.
즐거운 봄나들이였다.
첫댓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고...
내가 먼저 글을 올려 금수산의 명성을 떨어뜨렸네...
뒤늦게 받은 산행기 때문에 남은 사진 올려 드리니 이해하시고.
다음에도 계속 풍성하고 멋진 기행문 부탁드립니다...
정말 맛깔나는 글이로다~^^
전문산악인의 전문산행기를 읽고나니,
가슴이 따뜻해 지네요.
풍오님의 순수,열정,또한 샘솟는 감동이 now & forever.............
역시 신춘 문예에 수필가로 등단한 김풍오총무의 글솜씨가 구수하네요!!!
옛날 총산에서 간 금수산이 변함 없구만!! 그런데 제천에서 제일 간다는 삼결살집
고기는 왜 안보여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