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소중한 사람
정한경 에세이다.
어린 시절을 간직해요. 어릴 적 친구가 전학을 간다고 했을 때, 밤새도록 울었던 기억이 있단다. 차로 20분 거리로 간 것인데 당시는 전학을 가면 친구 관계가 영영 끝나는 것으로 알았단다.
지금 나는 그때의 나와 무엇이 달라졌을까? 지금도 그때처럼 타인을 향해, 이유도 목적도 없는 순수한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사실 얻은 것들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들을 전부 가려 버린 건지도 모르겠단다.
우리는 언제나 찬란한 풍경 속에 있다. 친구들과 운동장에 누워 가쁜 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보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 남들과의 비교로 한없이 작아지기만 하던 한 소녀는, 자신의 미소가 봄꽃의 싱그러움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일상의 틈에 걸터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왁자지껄 시간을 보내던 친구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어느 노인의 아련한 그리움임을 알지 못했다.
꿈을 적는 난에 대통령을 적어 냈던 아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던 아이, 작가가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던 아이, 어린 시절 우리는 내 마음이 외치는 대로 꿈꿀 수 있는 용기를 품고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적어도 타인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 들어가려 발버둥 치지는 않았다. 남들이 그럴듯하게 포장해 놓은 미래에 내 삶을 맡기지는 않았다.
우리는 포기와 선택 사이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지금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나의 끈기가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오롯이 나의 선택인지, 나 또한 그런 적이 있단다. 나의 선택이 포기를 위한 핑계가 아닐까 전전긍긍하던 때, 미래를 향한 불안함에 무엇도 나의 의지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 때, 도무지 옳은 길이 어디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때,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진정 옳은 길 무엇이 옳은지가 아닌 내가 무엇을 옳게 만들 것인지가 중요하단 것을. 어떤 선택이든 나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 끊임없이 자신만의 선택을 만들어 가려는 의지를 품는 것이야말로 진정 옳은 선택을 위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자신에게 절대로 해선 안 되는 행동이 있단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동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상황이 다른 사람에 비해 좋지 않고 노력과 비교해 나타나는 결과가 크지 않더라도, 그래서 때로 좌절하고, 무너지더라도 결코 자신을 동정해선 안 된다. 동정은 스스로 일어나는 힘을 앗아간다. 자신의 삶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은 자신이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무를 것이라 단정 짓는 것과 같다.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 그로 인해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않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자신은 동정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자신은 불쌍하게 여겨야 할 존재가 아니다. 자신은 사랑해야 할 존재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회적 위치에 따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함께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퇴사 후 자신감을 잃어가는 사람,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한 자신을 끊임없이 비관하는 사람, 원하는 연봉을 달성하지 못해서, 비싼 차를 타지 못해서, 다른 사람보다 높이 올라가지 못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위치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곤 합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욕망하는 동물이기에 자신의 상황에 쉽게 만족하지 못한단다. 계속해서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원하는 자리에 있을 때보다 그렇지 못하는 때가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인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남들이 그저 부러워하며, 원하는 위치에 오르지 못한 자신을 끊임없이 자책하며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위치가 우리의 가치 전부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니까요.
당신은 소중합니다. 당신이라는 존재, 그 자체로 말이죠.
저의 친구는 가구를 만듭니다. 그는 공방에 하나둘 늘어나는 기계를 바라보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라고 합니다. 수입 대부분은 기계를 들어는 데 사용하죠. 기계가 늘어날수록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의 가구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며 아이처럼 좋아하고 했습니다. 그는 늦은 시간까지 자신의 공방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남들이 퇴근할 시간에 저녁을 먹고, 또다시 출근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세상을 어떻게 살아 내야 할지 걱정이 많던 시절, 우리는 20대 초반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때의 우리는 항상 같은 고민을 나누곤 했습니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우리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친구가 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니 문득.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지난날의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을까요. 내 마음이 외치는 것이 아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던 선택들이 많았습니다.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그때는 왜 그리 어려웠는지, 나의 삶을 만들어 가는데 다른 사람의 시선이 뭐가 그리 중요했는지. 이제 친구는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생업을 따로 갖고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즐기며 살아갑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또한, 꼭 좋아하는 것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그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든든한 친구처럼, 때로는 변치 않는 연인처럼, 우리가 등 돌리지 않는 한, 좋아하는 것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어들이 된 우리는 알고 있다. 서로 다른 아픔을 경험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피어나는 두려움을 딛고 서로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지만 그런데도 자신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상대를 향하는 사람을,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어떤 사람은 평범한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광택이 나는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빛나는 사람을 만나지. 하지만 모든 사람은 일생에 한 번 무지개같이 빛나는 사람을 만난단다.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더는 비교할 수 있는 게 없단다“. 영화<폴립>에서 여주인공 줄 리에 향한 고민에 빠진 때 남 주인공 브라이스에게 그의 할아버지가 한 말이다.
사람을 잃고 우리가 배운 것은 충분히 아플 수 있는 용기인가.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만 사람이 하는 방법인가. 돌려받지 못한 마음을 그리며 느낄 슬픔보다,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에 태연해질 내 모습이 더욱 두렵단다.
2021.05.22.
안녕 소중한 사람
정한경 에세이
북로망스 간행
첫댓글 목요일에 올릴 글이 하루 늦었습니다.
수요일 증평에서 공을 치고 청주에서 시조창을 하는 바람에
노트북도 가져가기 번거로워서 그양 하루 미루었읍니다.
늘
바쁘게 사시는 모습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