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벗과 우정
요즘 나이가 들어가면서 문득 문득 친구와 우정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젊었을 때에는 친구들과 술 마시고, 여행 다니고, 모여 떠들고 하면서도 우정에 대하여 성심껏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젊어서는 할 일이 많아 바쁘고 젊음 자체를 탐닉하다보니 우정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또한 삶에 여유가 부족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고향이고 같은 학교를 나왔다고 하여 모두 친한 친구 일 수는 없다. 나는 친구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며 친구를 사귈 때는 진실하게 친구를 사귀려고 애써 왔다. 어려서 아버지께서는 친구의 사귐에 대하여 가끔 말씀하셨는데, 늘 친구의 숫자 보다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실한 친구를 사귀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더러 명심보감 교우편에 있는 글을 읽어 주시기도 하셨다.
酒食兄弟千個有(주식형제천개유)
急難之朋一個無(급난지붕일개무)
술 먹고 밥 먹을 때는 형, 동생 하는 친구가 천 명이나 있지만,
정작 급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는 도와주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친구는 어려울 때 알아본다는 것이다.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서로 얼굴 아는 사람은 온 세상에 많으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명심보감 교우편」부분
속마음까지도 나눌 수 있는 친구, 내가 진정 어렵고 곤란한 일을 당했을 때 진심으로 선뜻 내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친구가 과연 몇이나 될까? 나에게는 한 살 적은 고등학교 후배 이자 친구가 있다. 고3 때 처음 알게 되었으니 올해로 38년째가 된다. 고등학교 다닐 때 나는 먼 거리를 자전거로 통학하였고, 친구네 집은 학교 근처에 있었다. 나는 가끔 친구 집에 놀러 가곤 하였다. 친구 어머니는 학생들을 상대로 하숙을 치셨는데, 인정이 많으셔서 매번 살뜰히 이런 저런 간식을 챙겨 주시고, 가끔은 밥도 얻어먹었는데 어머니는 유달리 음식 솜씨가 좋으셨다. 특히 된장찌개는 4계절 언제 먹어도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항상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계시며 곱고 단정하셨다. 나를 아들이라고 하시면서 늘 걱정해 주시고 아껴주시며 정말 친 아들처럼 대해 주셨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푸근해 진다. 내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들이 그리울 때면 친구 어머니를 찾아뵙곤 하는데, 여전히 다정다감하시고 고우시지만 근력이 많이 약해지신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
내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다음에는 밤에 친구네 집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대처를 오갈 때 야간열차를 즐겨 타고 다녔는데, 우리 집에서 기차역까지는 너무 먼 거리여서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 어머니가 가족들 보다 먼저 차려 주시는 저녁밥을 먹고 유유히 시오리 길을 걸어서 친구네 집으로 갔다. 친구네 집에서는 기차역까지 20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나는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서울행 야간열차에 오르곤 하였다. 야간열차를 타는 것은 우리 어머니나 친구 어머니나 모두 반대하셨다. 낮에도 열차가 많은데 왜 굳이 밤 열차를 타느냐고 성화셨다. 그래도 대학생이었던 나는 밤 열차를 탄다는 것이 퍽이나 낭만적이고 좋았다.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해 후 부터는 서로 멀리 떨어져 살게 되었다. 친구는 진학과 직장을 따라 포항으로 가고 나는 인천으로 온 후 지금까지 인천에서 살게 되었다. 우리가 비록 거리는 멀리 떨어져 살지만 마음만은 지척에 두고서 자주 만나고 연락하며 참된 우정을 다져가고 있다.
몇 해 전의 일이다. 대학 동창들과 아내들을 대동하고 송년회를 하는 자리에서 한 친구가 조금 늦게 오더니 내게 불쑥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뭐야” 하며 덥석 받았다. 집에 와서 풀어 보니 “거문고줄 꽂아 놓고” 라는 책이 한권 들어 있었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책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책을 책꽂이에 모셔 두고 잊고 지내다가 올여름 방학에 책장 정리를 하다 책이 눈에 띄어 읽어 보곤 적잖게 놀랐다. 책이 너무나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미처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였고 또한 친구의 깊은 뜻을 단 일 푼어치도 헤아리지 못한 것이 많이 미안했다. 아주 아껴서 읽은 이 책은 친구들의 소중한 사귐과 우정에 관한 편지와 글이었던 것이다. 이퇴계, 김시습, 남효온, 이이, 박제가 등등 우리 옛 선조들이 친구를 만나고 사귀는 것에 대한 이야기 인데 정말 정갈하고 감동적이며 지순하고 담백한 글이다. 아주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난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글 한 편을 소개한다.
벗을 기다리는 마음
거문고 줄 꽃아 놓고 홀연히 잠이 든제
시문견폐성(柴門犬吠聲)에 반가운 벗 오는 고야
아희야 점심도 하려니와 탁주 먼저 내어라
김창업의「벗을 기다리는 마음」전문
그리운 친구를 생각하며 거문고 줄을 잘 골라 놓고, 줄을 튕겨 보기도 하고 판을 윤기 나게 닦아보기도 하다가 스르르 설핏 잠이 들었을 적에 사립문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마침내 거문고 연주를 들어 줄 고대하던 친구가 찾아온 것이다. "점심상 올릴까요? "하니 "술상 먼저 내 오너라. “ 하고 힘주어 소리친다. 반가운 친구를 만났으니 우선 술부터 한 잔 하면서 안부도 묻고 우정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에는 거실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데 아내가 옆으로 오더니 “포항
ㅇㅇ씨지요? 두 분 참으로 멋진 우정입니다. 그런 친구를 둔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 이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내심 아내도 부러워하는 눈치다. 가끔 가족들도 함께 만나다 보니 아내도 친구와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터다. 나는 새삼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자식들도 커서 각자의 일을 찾아 떠나서 적조하다 보니 친구가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내나 딸에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들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속내를 다 털어 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이 친구다. 내 곁에 이런 진실한 친구, 지기(知己)가 있어서 다행이고 언제나 마음 든든하다. 너무나 감사하다. 오늘은 우리의 ‘멋진 우정’을 위하여 멀리 있는 친구에게 거문고 연주는 못해 주더라도 안부 전화라도 한통 넣어야 겠다.
첫댓글 소중한 친구가 있어 행복하겠어요.
나는 개별적인 친구는 거의 없고 문봄 회원님들이 모두 친구랍니다. ^^
어린 시절 함게 했던 그런 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되었지요.
나이가 드니 친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나도 가끔 진정한 친구가 누가 있을까 생각할 때가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술친구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진정한 친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진실한 친구 한두명은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도 예전에 지방에서 서울행 밤기차를 즐겨탔습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밤기차의 운치와 낭만을 찾곤 했지요. 지금도 수원에서 서울 중심가에 볼 일 보러 갈 때 일부러 기차를 타곤 한답니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되고 보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친구와 우정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지요.
젊었을 때 보다 나이가 드니 친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 1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리운 친구에게 오늘 전화하세요^^
저는 아직도 술 친구 놀이 친구밖에 없는데, 그 친구들이 진정한 친구인지는 저도 의문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분별할 수 있겠지요..
김 작가님이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
술친구도 좋은 친구고 테니스를 치는 친구도 좋은 친구입니다.
내 마음을 모두 내 줄 수 있다면 그 친구가 진정한 친구겠지요
친구에 대하여 생각할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친구한데 도움을 몇차례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 중 예식날 친구들이 약200명 참여로 큰 도움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현재는 활동을 못한지 20년이 지나다보니 다 잃은 아쉬움 달래며 지냅니다.
혼사날 친구들이 엄청 많이 오셨네요.
부럽습니다. 친구들과 좋은 관계 맺으면서 즐거운 노후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산마을풍경/김홍래 장기간의 침거생활로 다 떨어져 이제 몇 안남았습니다.
잠시 즐거웠던 과거의 기억 일게하심 고맙습니다.^^
인천에 사신다니 깜짝 놀랐어요.
지척에 계시는데 언제 한 번 뵈어요.
네 부평에 살다가 귀촌했어요.
겨울에만 인천에서 유하구요....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