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이 세운 나라 이름은 고조선인가
단군이 세운 나라 이름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으면 고조선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게 과연 정답일까? 이와 관련하여 삼국유사 고조선 조를 다시 한 번 보자.
위서(魏書)에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고 불렀으니, 요(堯) 임금과 같은 시기다.
이 기록을 보면 단군이 세운 나라 이름은 고조선이 아니라 조선이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왜 단군 관계 글을 실으면서 글의 제목을 고조선(古朝鮮)이라 했을까?
이에 대한 연유를 "삼국유사"의 판본 간행에서 찾으려는 주장이 있다. 고려 때 지어진 "삼국유사"는 필사본으로 전해 오다가 조선 초기에 와서 비로소 목판본으로 인쇄되었는데, 이때 목판으로 새기면서 자신들이 속해 있는 이름인 조선과 옛날의 조선을 구분하기 위하여 ‘고(古)’ 자를 앞에 새겨 붙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속단하기 어렵다.
그것은 아마도 일연의 주체사관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일연은 단군 신화의 말미에 기자 조선과 위만 조선에 대해 간단히 덧붙이고 있는데, 그는 이들 양 조선과 구분하기 위하여 단군이 세운 조선을 고조선이라 한 것 같다. 즉 중국인들과 관련 있는 기자․위만 조선보다 훨씬 앞선 옛날에[古] 우리가 주체적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음을 강조하여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거듭 말하자면, 기자와 위만이 세운 조선은 단군이 세운 조선을 계승한 것이라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고조선이라 적은 제목 바로 밑에 잇달아서 왕검조선(王儉朝鮮)이라 부기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마치 이승휴가 "제왕운기"에서 단군 조선과 기자․위만 조선을 구분하여, 전자를 전기 조선이라 하고 후자를 후기 조선이라 한 것과 유사하다.
어떻든 단군이 세운 나라 이름은 고조선이 아니라 조선이다. 우리 선인들도 단군 조선을 조선이라 하였을 뿐, 고조선이라고 부른 적은 한 번도 없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 시조 혁거세거서간 조에도 “일찍이 조선의 유민들이 이곳에 와서 산곡간에 헤어져 여섯 촌락을 이루었다.”고 하였고, 제왕운기에도 “단군이 조선의 땅을 차지하여 왕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성계는 1392년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우면서, 새로운 나라 이름을 정하기 위해 예문관 학사 한상질을 명나라로 보내어, 명나라 황제에게 ‘조선(朝鮮)’과 ‘화령(和寧)’ 가운데 하나를 새로운 국명으로 채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주원장은 “동이(東夷)의 이름은 오직 조선(朝鮮)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름다우며, 그것이 오래된 이름이니 이 명칭을 근본으로 삼으라.”고 하였다.
이 이름을 받고 정도전은, 옛날부터 우리가 써오던 조선이란 이름을 쓰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기뻐할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중국의 음흉한 잔꾀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명이 ‘조선이 오래된 이름’이니 그것을 사용하라고 한 의도는 기자 조선을 의식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논어에 등장하는 은나라의 현인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하여 백성을 교화시켰으며, 이에 주나라가 기자를 조선의 제후로 봉했다는 한서의 내용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조선이 자기네들의 제후국임을 넌지시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 조선이란 이름은 무슨 뜻일까? 사마천의 "사기"에는 조선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장안(張晏)이 말하기를, 조선에는 습수(濕水), 열수(洌水), 산수(汕水)가 있는데, 이 세 강이 합쳐져 열수를 이룬다. 아마도 이에서 낙랑(樂浪)과 조선(朝鮮)이란 이름이 나온 것 같다.”
이에 근거하여 양주동은 조선이란 말이, 洌 자의 훈 ‘밝’과 汕 자의 음 ‘샌’을 합하여 ‘밝샌’의 뜻이라고 하였다. ‘밝센’은 ‘밝게 샌’이란 뜻으로 조선은 ‘(날이) 밝게 샌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해석에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있다. 洌 자가 ‘벌이다’의 뜻인 ‘列’ 자와 훈이 통한다는 것에 유추하여 ‘밝’으로 해석했는데, 중국사람 장안(張晏)이 과연 우리가 읽고 있던 한자의 훈(訓)을 그렇게까지 알고 열수(洌水)를 끌어왔을까 하는 점이 의문으로 남는다. 아무래도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조선이란 말은 그 도읍지 아사달(阿斯達)과 관련지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나라 이름과 도읍지는, 옛 국가에서는 유관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신라의 초기 국호 ‘서라벌’도 도읍지 경주의 이름이다. 이 서라벌이란 말이 오늘날 ‘서울’이란 말로 변한 것에서도 그러한 사실을 크게 시사 받을 수 있다.
아사달은 우리말 ‘아사’와 ‘달’이 합해진 말이다.
‘아사(앗, 앛)’는 원래 ‘시초, 첫, 작다’의 뜻을 가진 말이다. 아우란 말도 ‘아시’에서 왔고, 처음 하는 빨래를 ‘아시’ 빨래라 하는 것이나, 설이 시작되는 전날을 ‘아찬’ 설이라 하는 것도 다 여기서 왔다. 처음 시작하는 것은 다 작기 때문에 이런 말들로 분화된 것이다. 하루의 처음인 아침도 이 ‘아사(앗, 앛)’에서 왔다. 아침을 뜻하는 일본어 ‘아사(朝)’도 여기서 건너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선이란 말의 ‘조(朝)’가 ‘아사’임을 암시받을 수 있다.
그러면 ‘달(達)’은 무슨 뜻일까? ‘달’은 ‘땅’을 뜻하는 옛말이다. 그러니 아사달은 아침의 땅 곧 ‘새 땅’이란 뜻이다.
조선 역시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즉 ‘조(朝)’는 ‘아사(앗, 앛)’요, ‘선(鮮)’은 ‘샌’ 즉 날이 ‘샌’ 것을 뜻한다. 그러니 조선은 ‘날이 샌(아침이 밝은) 땅’ 즉 ‘새 나라’를 가리킨다. 요약하면 나라 이름의 ‘조(朝)’는 아침을 한자로 적은 것이고, 도읍지 이름의 ‘아사(阿斯)’는 한자를 빌려서 우리말을 적은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바를 요약하면, 단군이 세운 나라는 조선이고 고조선은 시대적 명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