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층 교육실을 찾느라 좀 헤맸다. 평소 다니던 유방암센터에는 용도에 따라 방이 7개 있다. 오른쪽 세개는 진료실로
쓰이고 다른 하나는 간호사실로 쓰인다. 왼쪽 하나는 소수술실, 또 다른 하나는 비너스회실, 나머지 하나는 처치실로
쓰인다. 그곳을 기웃거리다가 결국은 간호사에게 물었다. 교육장은 다른 방향이란다. 같은 층, 같은 곳에 있되 입구가
다른 곳, 수납 카운터 앞, 의자들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인턴인 듯한
의사 한 명이 PPT, 강의 자료를 만지고 있다.
"안녕하세요."
"강의 들으러 오셨어요?"
"네. 언제 시작하나요?"
"금방 시작할 겁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런데 아무도 안 오시네. 어제 수술받은 환자 한 분만 오시고."
정말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나 혼자인 것이다. 그는 정말 나 한 명만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한다.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문이 열리고 한 명이 들어와 앉는다. 그녀의 차림은 나와는 다르다. 고운 화장과 세련된 옷차림으로 보아
그녀는 수술 전이나 다름없이 활동하는 듯 싶다. 그리고 또 한 명, 연달아 사람들이 들어와 강의 끝나기 직전까지
계속 들어와 교육장 의자는 거의 들어찼다.
임파선 절제로 온 팔의 부종이 무섭다. 코끼리 다리만큼이나 부은 팔을 가진 여성의 모습이 PPT에 등장한다. 엎드린
여인의 모습, 팔 한쪽은 정상이고 다른 한쪽은 부어 압박붕대를 감았음에도 정상인 팔의 세배는 되어보인다. 충격적인
영상을 보아서인지 강의가 끝나자 수술한 지 일년이 지났는데 팔의 부종으로 고생한다는 여인이 질문을 던진다.
"팔의 부종을 치료할 방법은 없나요?"
"근본적인 치료방법은 없습니다."
무서운 선고다.
"압박붕대와 운동을 병행하는 수밖에 없어요."
유방을 절제하면서 겨드랑이의 임파선을 절제했기 때문에 림프액이 원래대로 흘러가지 못한다. 따라서 림프액이
고여서 생겨난 병이 임파부종인데 근본적인 치료 방법은 없다는 것. 나 역시 임파선을 32군데 절제했기 때문에 팔의
부종은 남의 말이 아닌 셈이었다. 이 때만 해도 나는 임파선 절제가 얼마나 심각한 고통을 유발할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당면한 외상, 가슴 절제의 아픔이 먼저였던 것이다.
한 시간이 걸린 교육이 끝나고 다시 지하 복도를 걸어 온다. 그것도 외출이라고 몸이 힘들다. 가던 길을 고스란히
되짚어 지하에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강의를 주도하던 의사가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내 걸음이 아무래도 느렸던
탓일게다. 정상인인 그는 여인네들의 물음에 답하고 자료를 챙기고 왔는데도 나보다 빨랐던 것이다. 그렇게 차이가
나는가 하는 생각에 쓴웃음을 짓는데 그가 묻는다.
"어제 수술하셨죠? 강의가 도움이 되던가요?"
어제나 그제나 그게 그거다.
"네. 팔이 부은 걸 보니 무섭던데요. 도움이 될 거예요. 한데 팔을 운동시키는 방법을 프린트물로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그걸 보고 집에 가서 운동할 수 있을텐데요."
"팔의 운동 방법은 퇴원하실 때 드릴 주의 사항에 나와 있어요. 그걸 보시고 그대로 운동하세요."
"네. 고맙습니다."
그 운동방법은 퇴원할 때 주는 인쇄물이 아니라 입원시 나눠준 유방암 환자 주의사항에 들어 있었다.
병실로 돌아와보니 딸아이가 와 있다.
"어떻게 왔어?"
"지하철 타고 왔어."
침대에 눕는다. 딸아이는 보호자 침대에 자리 잡는다. 벽에 등을 대고 온몸을 구긴 채 노트를 들고 있는 모습이 여간
불편해보이지 않는다.
"여기 가방 갖다가 벽에 대고 기대봐. 벽이 차갑잖아."
입원할 때 들고온 여행용 가방은 침대 옆 벽쪽 공간에 기대 세워져 있다.
"괜찮아. 난 이게 편해."
"김XX님, 김XX님."
이제는 익숙해진 모습이 병실 문밖에 나타나 내 옆 환자를 부른다. 이동침대를 잡고 반팔 옷을 입은 남자 간호사.
그는 수술실로 환자를 데려가는 수술실의 전령이다.
"네."
옆자리 그녀가 대답을 하고 일어난다. 수술을 몹시도 무서워하던 그녀다.
"무서워할 거 없어요. 한숨 자고 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거예요."
"네. 그럴게요."
조그마한 몸집의 그녀가 이동침대에 오른다.
"보호자분 안계세요?"
"네. 이따가 올 거예요."
"엄마, 내가 갔다올까?"
"그래. 네가 같이 갔다와."
수술실까지 가는 그 짧은 시간의 두려움은 누군가 함께 있음으로서 많이 상쇄된다. 그 누군가가 아직 어릴지라도,
낯선 이일지라도 혼자보다는 한결 낫다. 그래서 딸아이는 그녀와 함께 갔다. 보호자가 되어.
"저런. 그집 딸은 우리 병실 환자 모두의 보호자네요. 아직 어린데 기특하기도 해라."
제주도 할머니 보호자의 칭찬에 내 마음이 뿌듯해진다. 딸은 한참 뒤 돌아왔다.
"이층으로 갔었어?"
"아니, 엄마 수술한 데랑 달라. 암센터로 가던데."
얼마나 걸렸을까. 그녀는 두시간 후 돌아왔다. 환자 모두가 김연아의 올림픽 우승을 보느라 정신 앗기던 시간에.
그녀 역시 티브이를 보느라 아픔도 많이 잊었을 것이다.
첫댓글 "엄마, 내가 갔다올까?" 기특하네요. 병은 사람을 강하게 하기도 하는가 봅니다. 비록 옆에 있는 사람이라도...
누구가 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딸아이가 불쑥 그 소리를 해서 반가웠어요. ^^
맞아요. 독실이나 2인실 보다 여러명이 사용하는 병실의 불편함이 참 많지만 좋은 이유도 가끔 있더군요. 예를 들면 희야님의 따님같은 분이 보호자로 계시는 병실이라면요.
예. 지나고 보니 이런저런 좋았던 이유들이 자꾸 생각나더군요. 서로 적당히 예의를 갖춘다면야.^^
그런데, 전 운 없게도 1인실만 비더라구요. 다른 방은 비지 않으니, 회복실에 머물 수도 없고, 허텔비 겨자먹기로 물면서 들어갈 수밖에 없었죠. 따님이 정말 훌륭하세요. 요즘 젊은이들은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다는데, 정말 잘 기르셨네요. 가슴이 따뜻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죠.
아이고. 역쉬 부자는 어딜 가나 알아주네요. ^^ 호텔에 계셨으니 간호사도 더 잘 해주었잖아요. ^^
전혀 아니었어요. 창녕조씨 종씨 간호사가 주로 밤에 근무했는데, 딱딱거리기만 디따 딱딱거리고, 보조기 한번 풀어 놨다가 별 야단 다 맞고, 아주 지옥였어요. 그점 아주 맘 편하기도 했죠. 더 연세 높으신 할배들 보기 민망하지 않았으니까요. 특별대우 받았다면 화장실 다니기도 불편했을 터인데...
할배들도 계셨네요. 그럼 다른 병실로 마실 다니셨나봐요. 못말리는 더바님!
요즘 엄마가 다쳐서 보호자 입장이 되어 보는데요. 생각은 엄마 원하는대로 다 해야지 싶어도 내 몸이 귀찮고 그렇네요.고집 센 엄마가 벅차기도 하고...... 늘 받기만 해서인지 보호자 역할이 영 어색합니다.
저런. 힘드시겠어요. 적당히 타협하세요. 보호자가 모든 것을 다 해줄수는 없어요. 너무 잘하다보면 보호자에게 기대는 마음이 한결 커진답니다. 전 그렇게 될까봐 많이 경계했고요 아픔을 혼자 다스리려고 애썼어요. 일으켜준다는 것도 마다하고 혼자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애썼고 옷도 혼자 입었지요. 퇴원해서는 제가 운전하고 혼자 병원에 다녔답니다. 물론 어머님이 몸을 다치셨다면 그 부분이야 어쩔 수 없지만 혼자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모든 것을 보호자에게 의존하면 환자의 몸이 말을 안듣게 됩니다. 당장 힘들고 고통스러우니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는 거지요. 나영님이 잘 판단하세요.
부종은 생기면 심각해집니다.수술한 쪽 팔은 무조건 쓰지않고 아끼는 겁니다.그것도 평생을요.어제 저는 깁스를 풀고 재활치료 들어갔습니다. 아끼고 안쓰던 쪽을 조심스레 썼야 했는데 깁스 푸니 날갈것습니다. 재활치료 해야 되지만 시간이 해결해줄테고요.
아? 지난 번에도 그 말씀 하셨는데. 어쩌다가 깁스를 하셨어요? 저도 오른팔은 될 수 있는대로 안 쓰고 있습니다. 가벼운 물건은 들어올려요. 그래야 근력이 생기더군요. 재활치료, 많이 아프시겠어요. 전 아직 어깨가 많이 아파요. 회전운동도 하고 팔 만세 할 수 있는데도 아프네요.
두손을 깍찌하시고 머리위로 들어올려보세요.잘안되실겁니다.천천히 하시면 나중에 결국은 쭈우욱 되실거네요.글고 갓난애 처럼 쥐암쥐암을 반복하시면 팔의 근력이 나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