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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 (딤전 4:7-8)
오늘 말씀의 제목은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입니다. 여기서 연단하라는 말은 연습하라 훈련하라는 의미입니다. 경건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훈련을 통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에 이르도록 자기자신을 훈련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경건을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그리스도인은 경건의 훈련생인 것입니다.
청년이 군에 입대하면 훈련을 통해 군인으로 거듭나는 것처럼 우리가 이전에 옛사람의 죄성과 육신의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영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훈련을 경건의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이 경건의 훈련을 통과하면서 점점 우리의 모습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냥 저절로 신앙생활이 성숙해져서 경건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자신을 부단히 훈련시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훈련은 고되고 힘든 것입니다. 또 훈련은 반복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반복하면 영적으로 성장하고 몸에 베면서 습관이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속에 같은 행동을 반복되면 습관이 됩니다. 그리고 습관이 오랜 시간이 지나 축적되면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아침에 경건에 이를 수 없습니다. 신앙의 가장 기본인 예배생활도, 성경읽기와 기도생활도 모두가 훈련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우리의 영혼이 깨어나게 되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장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경건한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습관이 지속되면 그 사람의 인격이 되고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전 9:27)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부단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훈련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과 훈련이 없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간다는 것은 어리석은 착각인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사람은 경건의 모양만 갖추었지 경건의 능력이 없는 위선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딤후 3:5)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해 이렇게 명령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여기서 경건이란 헬라어 “유세베이안”이라는 말로 유(선한) 세베이안(두려움)의 합성어로 ‘선한 두려움’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공경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경건이란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영어성경에서 경건(godliness)이란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것을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경건은 신앙생활의 핵심과제입니다. 경건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지향해야 할 거룩한 목표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음으로 말미암아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랑과 섬김의 삶까지 포함됩니다. 그리고 '연단하라'는 단어는 당시 헬라어 '구므나조'라는 동사에서 왔습니다. 이 단어의 원뜻을 따져보면 '옷을 다 벗어던지고 피나는 훈련을 하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려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를 가지고 부단히 반복하고 훈련해서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경건해지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경건에 이르기 위해 어떻게 연단되어야 하겠습니까?
1.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려야 합니다.
경건을 위한 영적 연단의 첫 번째 단계는, 우리가 경건하기 위해서 먼저 '해로운 것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본문 7절,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운동선수가 단단한 몸을 만들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영양제 챙겨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야식이나 인스턴트식품을 끊고, 몸을 망가뜨리는 불량식품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보약을 먹고 매일 몇 시간씩 헬스를 해도, 매일 밤 기름진 음식과 술을 먹는다면 그 몸은 결국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경건도 원리가 똑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는 영혼을 병들게 하는 거짓 가르침들이 팽배했습니다. 진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허탄한 신화, 족보에 관한 쓸데없는 논쟁, 그리고 사람들의 호기심만 자극하는 괴담과 세상 소문들이 무성했습니다.
성도들이 마땅히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집중해야 하는데, 자꾸만 이런 허황된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영적 에너지를 낭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호하게 외칩니다. "그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즉시 버려라!" 성도 여러분, 구약 민수기 13장과 14장에 나오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 정탐꾼 사건을 잘 아실 것입니다. 40일 동안 약속의 땅 가나안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 중 10명이 온 회중 앞에서 뭐라고 보고합니까?
(민 13:32-33)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다 잊어버리고,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두려움과 세속적인 계산이 담긴 부정적인 소리를 쏟아냈습니다.
"우리는 죽었다! 우리는 망했다!" 이 허탄하고 불신앙적인 소리가 이스라엘 진영에 퍼지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온 회중이 밤새도록 통곡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불신앙의 소리, 세상의 망령된 소리는 이처럼 누룩과 같아서 온 이스라엘 공동체의 믿음을 순식간에 파괴해 버립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뭐라고 말합니까?
(민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세상의 소리를 거부한 이 두 사람만 끝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TV, 인터넷, 스마트폰을 통해 자극적인 뉴스, 남을 헐뜯고 싸우는 소리, 세상의 음란하고 허탄한 문화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런데 하루 24시간 중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읽고 깊이 묵상하는 시간은 과연 몇 분이나 됩니까? 세상의 온갖 쓰레기같은 소리를 듣는 시간이 훨씬 더 많지 않습니까?
내 영혼 속에 세상의 소리, 욕망의 유혹, 불신의 말을 가득 채워놓고서 내 삶에 거룩한 경건의 열매가 맺히기를 바라는 것은, 가시 밭에 잡초씨앗을 심어놓고 알곡이 맺히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농부와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엡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는 새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이 옛 사람, 세상을 따라가고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사는 우리의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새사람을 입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경건에 이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 내 영혼을 병들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세상의 허탄한 소리, 헛된 세상 자랑, 불신앙의 탄식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끊어내시기를 바랍니다.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한 새사람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갈 2:20에서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날마다 고백하고 내안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지속적으로 훈련해야 합니다.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세상의 헛된 소리를 끊어내고 버렸다면, 이제 두 번째 단계로 경건에 이르도록 말씀과 기도로 나 자신을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훈련해야 합니다. 본문 7절후 다시 보십시오."...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경건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소나기가 아닙니다. 교회를 20년, 30년 오래 다니고 직분을 얻었다고 해서 저절로 경건해지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영적 훈련이 쌓이고 쌓여야 비로소 경건의 거룩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건에 도달하기 위해 날마다 반복해야 할 구체적인 영적 운동법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조금 앞선 디모데전서 4장 5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 명확한 정답을 제시합니다.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할렐루야!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당신의 백성들을 거룩하고 경건하게 만드시는 방편으로 말씀과 기도 외에 다른 길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요, 기도는 우리 영혼의 호흡입니다. 양식을 먹지 않고 호흡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건강한 영적 근육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말씀과 기도는 따지고 보면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시간이고 우리의 영혼이 깨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이는 결국 우리의 영혼이 깨어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말씀과 기도는 생명과 같은 경건입니다. 여러분, 그저 주일날 교회오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요.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천국백성으로 거룩한 삶을 사는 경건에 이르려면 말씀과 기도훈련이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구약의 거장, 다니엘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다니엘이 어떻게 바벨론과 페르시아제국이라는 거대한 우상숭배의 한복판에서, 그 온갖 정적들의 모함과 세속의 유혹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타오르는 영적 경건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까? 다니엘서 6장을 보면 아주 기가 막힌 장면이 나옵니다. 다니엘을 시기한 신하들이 왕을 부추겨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엄혹한 법을 만듭니다.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다니엘이 알았습니다.
기도하면 당장 사자 밥이 되는 죽음의 위기입니다. 그때 다니엘이 어떻게 합니까? (단 6:10)"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뒷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성도 여러분,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무엇입니까? 바로 "전에 하던 대로!"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이라는 무서운 공포가 찾아왔을 때 갑자기 기도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평소에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던 '기도의 습관', '말씀과 기도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던 사람입니다. 평상시에 날마다 영적 근육을 단단하게 키워놓았기 때문에, 죽음의 위협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가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운동하는 사람이 "이번 주는 바쁘니까 푹 쉬고, 다음 주 주말에 한꺼번에 20시간 운동해야지" 하면 몸이 만들어집니까? 그렇게 하면 몸이 만들어지기는 커녕 근육이 다 파열되고 병원에 실려 갑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주일에 교회 와서 1시간 예배드렸으니 일주일치 영적 공급은 다 끝났다" 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말씀 한 절 안 보고 기도의 무릎, 한 번 꿇지 않는다면, 그 신앙이 어떻게 사탄의 거센 유혹을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작고 사소한 문제만 찾아와도 금방 넘어지고 불평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매일 단 15분이라도 성경을 펼쳐 깊이 읽고 묵상하십시오. 15분이면 성경을 3장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단 15분이라도 골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토해내며 기도하십시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듭니다. 성경을 읽어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기도하려고 앉으면 온갖 잡생각이 다 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 근육이 아직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지루함과 답답함을 참고 날마다 말씀과 기도의 무릎을 훈련할 때, 어느 순간 내 안에서 영적 탄력이 생깁니다. 세상의 죄악을 이기고, 원수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며,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가 터져 나오는 진짜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펴서 읽고 묵상하고, 하루의 마무리를 하나님앞에 기도로 닫는 이 거룩한 습관을 절대로 멈추지 마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경건은 금생과 내생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왜 이렇게 육신의 정욕을 억제하고 땀흘려 경건을 연단해야 합니까? 그것은 경건의 훈련이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약속과 상급이 너무나 크고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다 함께 목소리 맞춰 봉독하겠습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육체의 연단, 즉 몸을 가꾸고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유익이 있다"고 분명히 인정합니다. 운동을 통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삶의 활력을 얻는 것, 성도에게도 유익하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육체의 건강과 근육은 아무리 잘 관리해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70년, 80년, 길어야 100년 지나면 그 단단했던 몸도 쇠약해지고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 세상에서 모은 많은 재산, 명예, 권력, 지식, 운동을 통해 만든 멋진 몸매를 하나님 나라로 가져갈 수 있습니까? 단 하나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경건의 연단은 '범사'에 유익합니다. 여기서 '범사'가 무슨 뜻입니까? 모든 일에, 삶의 모든 영역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이 쌓이면 우리의 가정생활이 거룩하고 화목해집니다. 우리의 직장과 사업터에 정직과 지혜가 넘치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고난과 병마, 재정적인 시련이 몰려와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넉넉히 승리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본문은 뭐라고 선포합니까?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경건의 연단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보호와 평강의 복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육체도 강건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들어가게 될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광스러운 면류관까지 확실하게 약속해 줍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영적 자산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보다 더 확실하고 남는 거룩한 투자가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평생을 주님과 복음을 위해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경건의 경주를 달렸던 사도 바울의 마지막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차디찬 로마 감옥의 어두운 바닥에서 그가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남긴 유언과도 같은 고백입니다.
(딤후 4:7-8)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달려온 피나는 경건의 연단 과정을 '선한 싸움'이라 고백했고, 그 싸움 끝에 주님께서 친히 입혀주실 영원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기쁨과 승리감으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남들 놀 때 무릎 꿇어 기도하고, 손해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며, 육신의 정욕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그 모든 경건의 연단은 단 하나도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피와 땀과 눈물을 하늘의 기록책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기록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해처럼 빛나는 면류관과 칭찬으로 되돌려 주실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사랑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명령하십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내 영혼을 병들게 하는 세상의 망령되고 허탄한 음성, 불신의 소리를 단호하게 끊어버리십시오. 매일 작더라도 말씀 묵상과 기도의 무릎을 통해 거룩한 영적 근육을 단단히 키워가십시오. 이 경건의 연단이야말로 이 땅에서의 참된 승리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면류관을 보장하는 가장 가치 있는 일임을 늘 기억하십시오.
신앙생활은 관람석에 앉아 남의 경기를 구경하는 구경꾼의 자리가 아닙니다. 은혜의 운동장에 직접 선수로 뛰어들어 하나님 나라를 향해 땀 흘려 달려가는 영적 경주자의 자리입니다.
"목사님, 저는 나이가 많아서 이제 훈련받기 힘들어요." "목사님, 저는 요즘 직장 일로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영적 게으름에 빠져 있지 맙시다. 오늘이 바로 내 신앙의 경건 근육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때입니다.
오늘 성령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마음에 거룩한 거룩한 부담감과 뜨거운 결단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부터 다시 하나님의 말씀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다시 골방의 기도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리하여 세상의 어떤 풍파도 감당하지 못하는 강한 경건의 능력을 소유한 거룩한 주님의 군사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나눔이야기-------------------------------------------------------
1. 최근 나의 영적 에너지를 빼앗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망령되고 허탄한 세
상 소리'나 불신앙의 습관은 무엇이며, 이를 끊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겠습니까?
2. 바쁜 일상속에서 매일 말씀묵상과 기도의 거룩한 습관을 지키기 위해 내가 실천
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는 어디입니까?
3. 경건의 훈련을 통해 내 삶에 일어난 유익한 변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