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 18,25-28; 필리 2,1-11; 마태 21,28-32
+ 오소서, 성령님
명절 잘 쇠셨어요? 대전에는 비가 와서 보름달은 못 보았지만, 따뜻한 만남과 나눔으로 몸도 마음도 풍요로운 명절이셨기를 바랍니다.
해마다 순교자 성월에 순교자 얘기를 해 드렸는데요, 올해는 그러지 못해서 순교자 성월 마지막 주일인 오늘 순교성인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우선 오늘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습니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습니다.
한편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가겠습니다, 아버지”라고 대답해 놓고 가지 않았습니다. 원문에는 “예, 주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를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마태오 복음 7장의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라는 말씀입니다.
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지만, 둘째 아들에게는 이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둘째 아들은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일하러 갈 생각 없이 대답만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석 사제와 원로들에게 물으십니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대답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맏아들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순종하지 않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 순종한 이들은 세리와 창녀들이다. 순종하는 척하면서 불순종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너희들이다.”
자신들이 가장 멸시하던 이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으셨다는 점에서 그들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한편, 제1독서는 에제키엘서의 말씀입니다. 바빌론으로 유배를 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조상들의 죄 때문에 자신들을 벌하셨다면서, 주님의 길이 공평하지 않다고 투덜대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의 죄가 아니라, 오늘 네가 하는 실천이 너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무엇이 참된 실천과 순종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처럼 참된 신앙은 말로써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삶, 실천하는 삶으로 드러난다고 강조합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대학을 잠깐 다녔는데요, 얼마 전, 같은 과 동창이었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37년 만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아내와 자녀들은 모두 신자인데 자기만 아직 세례를 못 받았다면서, 조만간 꼭 세례를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모든 종교를 면밀히 조사해 보았는데, 한국 천주교회가 한국에 있는 모든 종교 중 가장 깨끗하고 올바른 종교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나중에 그 친구가 실망할까봐 “모든 점에서 그런 건 아냐~”라고 말했지만, 그 친구는 “다른 종교들에 비하면, 그 정도 단점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야기하다 보니, 저는 교회의 단점을 말하고 있었고, 신자가 아닌 그 친구는 한국 천주교회를 극찬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비신자인 친구에게 그런 인상을 갖게 했을까요? 사실 우리는 ‘무엇이’라고 묻기 보다 ‘누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바로 순교자들이십니다.
한국철학을 전공하신 어떤 교수님은 우리나라에 전래된 거의 모든 종교가 ‘무속의 세례를 받았다’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본래의 교리와 상관없이 기복적 측면이 지나치게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현세에서의 복을 구하는 ‘기복 신앙’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신앙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만 초점을 두게 되면, 종교는 본래의 뜻을 잃기 쉽습니다.
복음에서 입으로만 ‘주님’이라 부르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 둘째 아들에게서, 또한 제1독서에서 자신들의 고난이 하느님 탓이라며 불평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엇나간 기복 신앙의 모습을 봅니다.
그 교수님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거의 모든 종교가 기복적으로 변화하였는데, 이러한 영향을 가장 덜 받은 종교가 천주교라면서, 그 원인을 연구 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즉시 답을 드렸습니다. “순교자들 덕분입니다.”
천주교를 믿으면 죽임을 당하고 멸문지화를 당하는데, 어떻게 천주교가 ‘현세의 복만을 추구하는 종교’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순교자들께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변질되지 않고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지도록, 당신의 목숨을 바쳐 우리에게 참 신앙을 전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론 유배 중 하느님이 공평하시지 않다고 투덜거렸지만, 순교자들은 옥에 갇혀 고문당하고 매질을 당하시면서도 하느님의 공평하심을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당신들 안에 간직하시며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부제 때에 쓰신 “조선 순교사와 순교자들에 관한 보고서”라는 글이 있는데요, 그중 김 루시아 성녀에 대해 쓰신 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김 루시아는 어린 나이에 천주교의 규율을 배웠으며 양순하고 겸손하였습니다. 열네 살에 하느님께 동정을 서원하였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큰 사랑이 불타서 선행에 더욱 열중하였습니다.
박해가 심해지자 이 막달레나 등과 의논하여 포졸들한테 가서 자수하였습니다. 판관이 미인인 루시아를 보고 “이처럼 우아하게 잘생긴 여인인 네가 정말로 천주교 미신에 빠졌단 말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루시아는 “예,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판관이 “네가 한마디만 하면 너를 살려주마.”하고 말하였습니다.
루시아는 “비록 죽어야 할지언정 저는 하느님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
판관이 “누구한테서 천주교를 배웠느냐? 너는 몇 살이냐? 공범이 몇 명이냐? 너는 왜 결혼하지 않았느냐? 네가 말하는 영혼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너는 죽음이 무섭지 않느냐?”하고 물었습니다.
루시아는 “아홉 살 때 어머니한테서 천주교를 배웠습니다. 우리 천주교에서는 남을 해치지 아니하도록 엄하게 금합니다. 따라서 저는 죽을지언정 친구들을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스무 살인데 결혼하기에 너무 늦은 것은 아닙니다. … 영혼은 신령한 존재로서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저는 죽기를 두려워합니다만 살기 위하여 하느님을 저버리라고 명하시니 죽는 것을 무서워하지만 죽기를 더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판관이 “너는 하느님을 본 적이 있단 말이냐?”라고 물었습니다.
루시아는 “궁궐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백성이 어떻게 임금님이 계신 줄을 믿을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그들이 자기 눈으로 임금님을 본 다음에 믿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백성이 임금님을 눈으로 보지 못해도 임금님 계신 줄은 압니다. 마찬가지로 창조된 만물을 보면 자연의 어버이이신 하느님이 존재하심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판관이 달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였으나 루시아의 용맹을 극복할 수가 없자 격분으로 미쳐 날뛰었습니다. … 루시아는 고문당하면서도 … 놀라운 항구심으로 적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그들은 몹시 감탄하여 “단단히 마귀에 씌웠구나.”하고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지친 판관은 루시아를 형조 판관에게 보냈습니다. 그 판관은 루시아의 마음을 변하게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니 할 수 없음을 알자 매를 때리기 시작하였고 결국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루시아는 22세의 나이로 기해년, 즉 1839년 음력 6월 10일에 하느님께로 갔습니다.」
순교자들께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간직하시고,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셨습니다. 오늘 나의 삶에서 그와 같이 나를 비우고, 낮추고, 순종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만일, 내가 200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나도 순교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묻지 말아야겠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물어야겠습니다. ‘순교자께서 오늘날 태어나셨다면, 오늘 내가 앉은 이 자리에 앉아 미사를 드리고 계시다면, 어떤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고 계실까?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당신께는 너무나 간절하셨던, 신앙의 자유가 있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고 계실까?’
https://youtu.be/oK5B5e34SFc?si=5yUxD5olPjLO5iss
병인 순교자 노래 (가톨릭 성가 289번)
성녀 김 루시아 (윤영선 작)
출처: cpbc News : 성당과 성지에서 만난 32위 성인 화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