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0일 월요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3-5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53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우리나라 사람이든 서양 사람이든 사람들은 오른 쪽을 높여 생각하는 존우사상(尊右思想)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른 쪽은 올바른(right)쪽이며 바른(正義)쪽이며, 하느님을 지향하고 하느님의 마음(양심 : 良心)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리고 왼쪽은 부족한 나를 상징하였습니다. 죄 많고, 욕심 많고, 오욕과 사욕편정(邪慾偏情)에 찌든 세속적이고 사악한 것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래서 경례를 할 때는 오른 손을 올려서 머리 위로 경의를 표하거나 오른 손을 왼쪽에 있는 내 심장에 대는 것으로 예를 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양반들은 오른손은 배꼽 밑으로 내려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앉아 있을 때도 안석에 올려놓거나 의자 걸이에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대청에 서서 하인들에게 훈시를 할 때에도 오른손이 잡고 있을 줄이 있어야 했습니다. 양반은 걸을 때에도 팔을 배꼽위로 들어서 흔들며 걸었습니다.
교훈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들이 모르게 은밀히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주님께 하듯 하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주신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지만 한 번도 생색을 내신 적이 없습니다. 무수한 은총의 바다에 살게 하시지만 사람들이 그 눈치도 채지 못하게 은밀하고 오묘하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정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신 것입니다. 당신의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한 번도 자랑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주듯 하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뼈와 살을 나누어 낳은 자식에겐 모든 것이 아까울 것이 없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 때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드러내놓고 사랑을 베풀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 때문에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을 자주 의심하기도 하고 섭섭해 하기도 하고, 악마의 유혹에 빠져 성급하게 부모의 사랑을 빼앗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신들의 사랑을 정말 아낌없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은 조금만 주지 말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목숨까지 우리를 위하여 희생 제물로 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을 위해 살지 말고 죽음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할 일은 이 세상을 잘 살아서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삶이어야 하기 때문이고 우리의 한 일은 이 세상이 아니라 저 하늘 위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은 오른쪽엔 하느님이 계시고, 왼쪽에는 내가 살고 있기 때문에 남을 돕거나 선행을 할 때는 굳이 사람들에게 광고하거나 알리지 말고 조용히 그 하는 일을 자신도 모르게 도와주라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조그만 일도 크게 포장해서 나타내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을 정말 아무도 모르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이 모르게 하는 선행이 가장 큰 자선입니다. 금액의 과다에 의해 결정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스스로 자연스레 하는 자선이 가장 큰 공덕이며 참사랑이고 자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실한 마음으로 자선을 하는 공덕의 크기는 100 이라 하면 보이기 위한 자선은 그 공덕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각박한 이 세상에서는 보이기 위한 자선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실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이 사회를 건전하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옷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병을 고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손길이 닿지도 않았습니다. 정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그렇게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자랑하지도 않으시고 내세우시지도 않으셨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지 못해서 안달하시는 분 같이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셨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자선을 베풀어 사회를 밝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주님, 저희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