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술작(述作)의 유래
본초는 1268년 4월 5일 대성인 47세 때, 가마쿠라에서 쓰시어 호칸보(法鑑房)에게 주신 것입니다. 진필은 한문체이며, 나카야마(中山) 법화경사(法華經寺)에 현존하고 있습니다. 대고중인 호칸보에 대해 상세한 것은 없습니다.
일설에는 헤이노사에몬노조(平左衛門尉) 요리츠나(頼綱)의 아버지〔모리도키(盛時)〕라고도 하고, 또 다른 일설에는 ‘보(房)’라는 명칭이 붙은 것으로 보아 재속(在俗)의 입도(入道), 선문(禪門)이 아닌 원래 출가승이었다고도 합니다.
다만 본초에 「또한 선문(禪門)과 대면하여 상세히 이를 고하리라. 이것을 채택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후회가 있으리라.」라 있는데, ‘선문’ 즉 야도야사에몬(宿屋左衛門) 입도(入道) 미츠노리(光則)와 대면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시고 있는 점으로 보아 야도야미츠노리와 친밀한 관계이며 막부와 견줄 만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1260년 7월 16일, 전(前) 집권자였던 호조도키요리(北条時頼)에게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을 올렸는데, 삼재(三災) 칠난(七難)이 다투어 일어나는 원인은 사교(邪敎)가 만연하기 때문이며 방법을 퇴치하고 법화일불승(法華一佛乘)의 정법을 세우지 않으면 자계반역(自界叛逆)·타국침핍(他國侵逼)의 두 난이 일어날 것이라 예증하셨습니다.
그로부터 햇수로 9년 후인 1268년 윤1월 18일, 몽고에서 보낸 국서가 가마쿠라에 도착하였는데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에서 예증하셨던 타국침핍난이 현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본초는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입정안국론』의 저술 연유와 예증의 적중, 몽고를 퇴치하는 방도를 아는 것은 오로지 대성인 뿐임을 분명히 한 어서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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