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호(無號) 스님
평소 신부나 스님 친구가 한사람 있었으면 했다. 스님 친구라면 이 나이면 이미 선사(禪師)나 선지식으로 불릴 만 하다. 7일간 통도사 화엄산림 기도 끝난 후, 부산의 무호(無號)스님을 몇 번 연락한 끝에 만났다. 무차선원(無遮禪院)은 지하철 전포동 8번 출구 나가 삐걱거리는 대문 안에 있다. 무차란 이름이 묘하다. 뭐던지 차단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무호대사(無號大師) 계시오?’
이렇게 큰소리로 불러 서로 합장 한 후 악수 한번 하고 마주 앉았다. 무호(無號)란 법호는 호가 없다는 뜻이다. 피차 고교 졸업 후 40여년 만이다. 벽엔 그가 그린 대형 탱화가 있고, 탁자 옆에 벼루와 먹이 보인다. 서가엔 한의학 서적이 많다. 선친께서 진주서 한약방 하신 영향인 듯 하다. 무호는 어린 시절 서당도 다녔고, 선친 글씨는 진주 여러 곳에 현판으로 걸려있다 한다.
‘무호대사! 중생에게 글씨 하나 하사하시게.’
‘법성게 병풍 만들어 보내 드리까?’
‘병풍은 제작비가 황송하니 글씨만 보내주소.’
거사는 당장 메모지 달라해서 주소와 이름 적고 그 밑에 법성게라 쓰고, 옆에 동행한 부산 강모 친구 주소 이름 뒤에는 달마도라 썼다. 강은 키가 팔척이고 거구라 달마도가 어울릴듯 해서다. 그 옆의 거한은 진주 모래판 씨름판 달군 양점배 씨 아들인데 역시 고교 동기다.
무호가 보살을 부르더니 '그거 두 알과 즙'을 가져오라한다. 가져 온 걸 보니 공진단(供辰丹)과 사과즙이다. 공진단은 사향이 들어간 한약 처방 중에서 제일 비싼 약이다. 신선처럼 공진단 씹어먹으며 이야길 시작했는데, 먼저 침술부터 이야기 했다. 그러찮아도 옆 방엔 침 맞으로 온 노 보살님들 가득 누워있다. 불교 포교에 침술이 좋은 방편이라 한다. 나는 혈이 어떻고 인체 면역체계가 어떻고 하는 침술엔 문외한이다. 그러나 과거에 재벌 회장 경동시장 한약 심부럼 20여년 했다. 공진단이 어떻고 경옥고가 어떻고 사향이 어떻고 서로 아는 터라 죽이 맞자, 무호는 신이 났다. 두 돈짜리 사향을 내오라해서 보여주며 진품임을 자랑한다. 나도 사향은 안다. 두 돈이면 대략 2-3천만원 한다. 두어번 설악산이나 향로봉에서 나온 진짜 사향을 사본 적 있다.
그 다음에 무호는 정보살을 부르더니 나에겐 공진단, 사향소합원, 보명환 세 박스를 선물로 내놓고, 두 사람에겐 공진단 빼고 선물한다. 공진단은 옛날엔 황제만 먹었다는 사향 들어간 고귀한 단약이다. 보명환은 무호 선친 처방인데, 60 가지 약재 중 40개나 암 예방하는 약재가 들어간 것이라 한다. 법담 들으러 가서 보약을 뭉치째 선물 받은 셈이다. 우리 동기들은 대개 무호를 속명인 하종인이라 부른다. 불교신문 기자였던 나만 항상 그를 무호대사라 부른다. 그래 무호는 날 끔찍이 대한다.
선(禪)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그가 조사선, 달마선, 간화선의 경전 출처와 내력을 논하는데, 숱한 선지식 만나본 내 귀에 논리 정연하다. 통도사 노장급 스님들이 그와 친구다. 알만한 사람은 알아준다. 이런 동창 있는 건 청복(淸福)이다.
사실 무호는 기인이다. 암흑가 보스로 유명한 김*촌을 감방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 일당 탄원서를 써줬는데, 무호가 탄원서 써준 자는 전부 감형되고, 탄원서 거절한 자는 사형 선고 받자, 김*촌이 무호를 고문으로 모셨다고 한다.
저녁은 영도에 있는 그의 단골로 가서 이층 별실에서 백초(百草)가 들어간 흑미백초죽 먹었다. 옆에 동석한 두 거한을 위한 오리찜과 산삼주 두 병도 나왔다. 식사 시작되자 그 집 음식이 너무 깔끔하고 고급스러운지라 두 거한이 걸구처럼 마구 먹고 마셔대기 시작했다. 꼭 배고픈 청년 중국집 자장면 먹는 형용이다. 그래 내가 속도조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코스 요리는 첫 음식은 맛만 보고 나중에 메인 요리가 나올 때 그 진미를 감상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소가 경 읽는 소리 듣기나 하나. 초판부터 홀딱홀딱 깨끗이 청소하더니 막상 나중에 메인 나오자 배가 불러 먹질 못하고 눈만 끔벅꿈벅한다. 포복절도할 그 장면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내가 무호에게 부탁했다. 주인에게 말해서 남은 요리를 두 개 도시락으로 포장 해달라고. 그랬더니 나중에 깔끔히 포장된 도시락 두 개가 니왔다.
무호와 거사는 올라간 산이 비슷하다. 초년에 불교계에 몸 담아 불교신문 기자였다가 속세로 나온 사람이 거사고, 초년에 속세 헤매다가 뒤에 불교계 입문한 사람이 무호다. 30년 전에 서로 길은 교차되었으나, 회포 남다르지 않겠는가. 그는 학창시절 겁 없고 거침없던 사람이고, 거사는 백 잔 술 마신 이태백의 풍류 존경한 사람이다. 두 사람 다 한문과 불경 좋아하고, 한약 취미 있다. 오랜만에 마주앉아 천정 대들보가 흔들리도록 한번 통쾌하게 웃었다. 무호는
밤 9시에 다시 무차선원으로 돌아오는데, 그랜져 차도 그렇고 운전하는 분 풍채가 아무래도 보통 운전수 같지 않다. 그래 나중에 물어보니 작은 건설업체 사장인데, 무호와 얽힌 사연이 기구하다. 그가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무호가 진맥해보니, 구급차 부르고 병원 가고 시간 보내면 그동안에 목슴이 끊어질 상태였다. 무호는 의사 면허증 없다. 응급조치 하면 무면허 의료행위 된다. 그러나 사람부터 살려야 하지 않는가. 응급조치 해서 그는 살아났고, 그후 그는 자청해서 차 몰고 와서 생명의 은인 잔심부럼 해준다고 한다. 무호는 일주일에 한번 울산 정주영 누님한테 침을 놓아주었는데, 일회 왕복에 백만원 받았다고 한다. 정회장 누님한테 그 분 사연 소개하고 공사를 얻어준 후론 더 극진하다고 했다.
그날 우리는 잘 먹고 잘 떠들고 무차선원으로 돌아와 정수리 백회혈과 발바닥 용천혈에 쌀알만한 쑥뜸을 받았다. 백회혈에 뜸을 세 개 놓자, 기가 하늘로 통하는지 문득 머리가 시원하고 눈이 그처럼 맑아질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보살님들 침 놓으러 가고, 우리는 선물보따리 들고 돌아왔다. 무호는 기인(奇人)이다.
(2008년 12월)
후에 무호스님이 내 호를 만들고 돌에다 낙관을 직접 새기어 편지와 동봉하여 보내왔다.
동재(桐梓) 선생
길가에 서서 황급히 몇마디 나누다, 벌에 쏘인놈처럼 허겁지겁 그렇게 헤어져 오면서 과연 이렇게 살아가는 내가 잘사는 것 인지를 생각해보게 되더이다. 이제는 좀 여유롭고 좀은 편안해 보이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할 것인데도 잘못 보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 심리일런지. 나는 그렇게 아직도 다른 사람들이 당황해 할 삶을 살아가는구나 하고.
고등학교 졸업후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닌가하면서 부산에서 오랫만에 거사 얼굴을 보고 얼핏 생각난 말이 봉(鳳)이라는 말이었소. 마음대로 자란 반백의수염이랑 하얀 머릿칼이 더 없는 여유로움으로 세월을 즐기는 모습에 한번도 본 일 없는 봉황(鳳凰)이 왜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무위자연(無爲自然)이 어떤 경지인지를 가르쳐 주는듯한 느낌이었소. 그래서 봉황이라는 단어가 출현하는 문장을 찾아보니 마침 시경 '대아'(大雅)의 '생민지십' 편에 봉황이 들어가는 문구가 나옵니다.
鳳凰鳴矣니 于彼高岡이로다. 梧桐生矣니 于彼朝陽이로다. 菶菶萋萋하니 雝雝喈喈로다
봉황새가 저 높은 산등성이에서 우네. 오동나무가 저 밝은 산 동쪽 기슭에서 자라네. 오동나무 무성하고 봉황의 울음 들려온다.
鳳凰之性은 非竹實不食, 非梧桐不棲, 非醴泉不飮.
'봉황의 성격은 대 열매 아니면 먹지를 않고, 오동이 아니면 깃들지 않고, 예천이 아니면 마시지를 않는다.' 라고 했는데, 이글에서 봉황이 깃드는 곳은 오동나무인 것을 알고, 다시 동(桐)자가 들어가는 문장을 찾아 보니 맹자 고자(告子) 상편에 나옵니다.
孟子曰 拱杷之桐梓를
'여기서 공(拱)은 두 손으로 에워싸는 것이요, 파(把)는 한 손으로 잡는 것이다. 동(桐)과 재(梓)는 오동나무 가래나무 두 나무를 말한다.'
이 글을 보면 동(桐)자 재(梓)자가 연합하여 단어를 이루고 있어 거사의 호를 동재(桐梓)로 정하였던 것이고, 동(桐)과 재(梓)는 모두 예부터 귀한 재목으로 악기나 고급가구 또는 의식용 목재로 쓰인 고급 원자재라 세상을 이루는 격조 높은 밑바탕이 되고 있음을 의심치 않는 내 거사에 대한 믿음이고, 또 동재(桐梓)는 맹자에서 누구나 기르고자 하는 나무라고 하여, 세상을 두루 포용하는 거사의 성품과 열망을 모두 담고있다고 생각 했소.

첫댓글 鳴鳳在樹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