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
“그 나이에 그런 옷을 입게?”
옷장 앞에서 사람을 망설이게 하는 말이다. 누가 직접 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묻는다. 색이 너무 화려하지 않은지, 지나치게 눈에 띄지는 않는지. 옷 한 벌을 고르는 일에도 슬그머니 나이가 끼어든다.
생각하면 이상하다. 옷에는 사이즈가 있지만 나이표는 붙어 있지 않다. 빨강에 스무 살용과 예순 살용이 따로 없고 꽃무늬에도 사용 연령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가 들면 옷의 채도까지 낮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옷이 아니다. 그 뒤에 숨어 있는 통념이다. 우리는 나이에 맞는 행동과 취미, 때로는 꿈까지 요구한다. 젊은 사람이 조용하면 패기가 없다고 하고 나이 든 사람이 적극적이면 주책이라고 한다. 청춘에게는 빨리 어른이 되라면서 어른에게는 청춘처럼 살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예순의 가슴에도 설렘은 찾아온다. 일흔에도 처음 배우는 일이 즐겁고 여든에도 새 옷을 입으면 거울 앞에 한 번 더 서게 된다. 나이는 감정의 유효기간이 아니다. 숫자가 늘었다고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마음까지 늙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조금 과감해져도 좋다. 젊은 날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고 가족과 생활을 챙기느라 자신을 뒤로 미뤘다. 이제 시간이 조금 내 것이 되었다면 오래 미뤄둔 색깔 하나쯤 꺼내도 되지 않을까.
화려한 드레스와 왕관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옷이 아니라 ‘나는 이것을 좋아해도 된다’고 자신에게 허락하는 마음이다. 왕관은 남보다 높아지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오래 뒤로 물러나 있던 자신을 삶의 앞자리로 불러내는 상징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나이 듦을 말할 때 건강과 은퇴, 노후를 먼저 떠올린다.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은 몸과 통장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취향이 있고 설렘이 있으며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래서 ‘나이에 맞게’라는 말을 한번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시작하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떠나면 된다. 빨간 구두가 마음에 들면 신어보는 것이다. 어울리는지는 거울이 판단하면 된다. 주민등록증이 판단할 일은 아니다.
세월은 젊음을 가져가지만 대신 자유를 준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분명하게 해준다.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봄을 흉내 내지 않기 때문이다. 단풍은 새잎처럼 보이려 애쓰지 않는다. 한 계절을 건너온 뒤 오히려 가장 대담한 색을 꺼낸다. 사람의 계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 옷장을 열었을 때 유난히 마음이 가는 옷이 있다면 꺼내 입어보자. 조금 화려해도 좋다. 어제의 나와 달라도 괜찮다. 세월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색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마침내 자기 색으로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