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면서 사마리아를 통과하기로 결심하신다. 유대인이라면 사마리아 땅을 피해서 가는 것이 상식이지만 예수님은 의지적으로 그 땅을 거쳐서 가시려고 마음 먹었다.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는 동네에 야곱의 우물이 있는데 예수님은 길 가시다 피곤하여 그 우물 곁에 그대로 주저 앉으셨다. 한 낮쯤 되어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통행이 뜸할 시간, 마침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가고 없을 때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러 야곱의 우물로 나왔다. 예수님은 또 한 번의 상식을 깨고 그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요구하신다. 놀란 그녀는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인 여자에게 왜 물을 달라고 하는지 반문했다. 예수님은 그녀를 향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을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을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늘 갈증을 느끼며 살아간다. 성공에, 명성과 권력에 그리고 부와 지식의 축적에 또는 더 큰 이상과 이념에 타는 목마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각자의 야곱의 우물을 찾는다. 이 야곱의 우물은 조상들이 가르쳐준 경험이나 유산이 될 수도 있고 현자들의 지식이나 가르침이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더 높은 차원을 통달한 종교 지도자일 수도 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나갔고 청소년기에는 교회의 친구들과 찬양이 좋아서 교회를 찾았으며 청년 시절에는 맡은 봉사의 직무가 많아서 교회에 살다시피 했다. 그리고 결혼 후 남편이 목회자가 되고 나서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영적으로 무언가 채워지지 않아 목마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크로스웨이 성경대학이나 성경필사 그리고 각종 집회에도 열심히 참석하였다.
목마름이 어느 정도 해갈된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 어쩌면 오늘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완전히 해갈되지 않는 영원의 갈증을 위해 말씀 앞으로 나아왔는지도 모른다. 말씀이 답을 갖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고 선포하고 있지 않은가! 더 이상 여기 저기 기웃거릴 필요가 없다. 오직 예수님이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인간의 가장 깊은 목마름은 영원과 생명에 대한 갈증이다. 이 근본적인 목마름은 이 땅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만물 안에 갇힌 야곱의 우물은 언젠가는 마르게 되며 찾는 자가 없으면 사라지기도 하는 한정적이며 일시적인 우물이기 때문이다. 깊은 층의 목마름, 이것은 영생을 얻을 때에야 비로소 완전히 해갈되는 목마름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보다 더 확실한 보증은 있을 수 없다.
주님! 여기 또 다른 사마리아 여인이 있습니다. 주께서 작정하시고 찾아오셔서 만나 주셨으며 주님을 알려 주시고 야곱의 우물을 찾아 방황하던 저에게 마침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사람의 습관이 다시 야곱의 우물을 찾아 고개를 돌리려 할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를 믿는 것은 이 땅을 넘어서는 것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에 거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계신 곳에 나도 함께 거하는 완전한 생명과 빛 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알게 하셨으니 나를 통해 그 생명과 빛이 충만케 하시고 넘쳐 흐르는 은혜가 있게 하소서.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있기를 구하오니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구하는 저들에게 그 샘물로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듣고 손으로 만진 바 되어 그 생수의 기쁨으로 이 땅의 고통을 넉넉히 이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