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역사 11월21일
임창열 부총리가 정부종합청사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1997년11월21일 IMF 구제금융 공식 요청
우리나라가 가진 외환이 너무 부족해 국제 통화
기금(IMF)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은 사건이다.
1997년에 일어난 IMF 경제 위기는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많은 기업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늘어나는 등 경제가 크게 위축되었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들이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예상보다 빨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① 정부는 1997년 11월에 우리나라가 심각한 외환 위기를
맞았다고 발표한 뒤 IMF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② 우리나라 경제가 위기에 처하자 국민들은 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국민들이 내놓은 금을 정부와 기업이 사들여 외환과 바꾸는
식으로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금 모으기 운동’은 ‘제2의 국채 보상 운동’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늘의역사(1900년대)11월21일🌺
🍂03년 일본 군인과 폭력배가 목포 파업 노동자와 조선인을 습격.
🍂14년 낙동강 유역에 진도 3의 지진
🍂28년 홍명회, 장편 '임꺽정'을 조선일보에 연재하기 시작(∼1929. 5. 20).
🍂58년 김일성, 중국·베트남 방문차 평양 출발.
🍂62년 경남 경찰국에서 부산시 경찰국 분리 발족
🍂64년 조선일보 필화사건(선우휘 편집국장 등 2명 구속)
🍂68년 시ㆍ도민증 없애고 주민등록증으로 대체
🍂72년 개헌 반대가 금지된 가운데 유신 헌법에 대한
국민 투표 실시(찬성 91.5%) : 대통령 간선제.
🍂81년 말레이시아 운수성, 한국과 항공운수 협정에 합의 했다고 언명
🍂82년 충북 청원군 경부 고속도로서 관광버스 전복. 37명 사상
🍂85년 민추협 간사장등 구속-전학련 범국민 대 토론회 참석
🍂85년 10여개 대학 2000여명, 서울대에서 토론회 마치고 시위
🍂86년 이웅희 문공부 장관,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에 대한
성명에서 공사 즉각 중지 촉구
🍂87년 일본 적군파 부두목 체포-서울 잠입 기도
🍂87년 부산시경 국민운동부산본부 사무실 수색, 유인물 4만 7000여점 압수
🍂88년 국회 문공위, '80년 언론대학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청문회 시작
🍂88년 현대종합상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 원산지가
그대로 표시된 모시조개 40㎏을 첫 수입
🍂88년 전교협 산하 초·중고 교사와 시간강사등 1만 여명,
여의도서 '민주교육법쟁취 전국교사대회' 개최
🍂89년 제6차 남북적십자 실무접촉, 예술단과 고향 방문단의 규모에 합의,
공연내용 시간 횟수등 합의 못봐
🍂89년 노태우 대통령·콜 서독 총리 회담. 한국 북방정책 전폭 지지,
북한 개방유도에 적극 협력 약속
🍂90년 건설부, 수도권 외곽 순환고속도로(판교∼안양∼일산∼하남) 건설 계획 발표
🍂90년 일본 정부, 재일 한국인 교포 1ㆍ2세에게도 외국인
등록증 발급시 지문채취 제도를 폐지키로 확정
🍂90년 안기부,전대협의 배후세력 자민통 총책인 최원극 씨(외국어대졸) 등
핵심요원 30여명을 검거,
🍂90년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미군정 정기보고 자료집성 전19권을 발간.
🍂91년 한ㆍ미연례안보협의회의,북한의 핵개발 위협\
주한 미군감축 계획을 무기한 연기 합의
🍂91년 일본 노무보 국회 동원부장 이었던 요시다 씨 (72),
일제말기 한반도 여성들 정신대로 강제연행-참회
🍂91년 도쿄컵 국제체조대회 마루운동과 뜀틀에서
경희대의 유옥렬 선수가 금메달 2개를 획득.
🍂92년 통계청, 자영 업체를 포함한 전국의 총 사업체
수는 211만 8247개로 5년 전보다 26.3% 증가 집계.
🍂94년 김영삼 대통령, 에두아르도 칠레 대통령과 청와대 정상회담
🍂95년 강삼재 민자당 사무총장,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20억+α' 정치자금수수 의혹' 검찰이 밝힐 것 주장
🍂95년 대기업과 일간 신문 및 통신 경영법인 위성 방송 사업 참여 가능 관련 법안 확정
🍂96년 유종하 외무장관, 도밍고 시아존 필리핀 외무장관 과의 회담(마닐라)?
🍂97년 임창열 재정경제원장관, 국제통화기금에 우선 200억 달러의
구제금융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고 밝혀
🍂97년 신한국당-민주당 합당, 한나라당 출범
🍂98년 김대중 대통령,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과의 정상회담
~~~~~~~~~~~~~~~
✿ 1968년11월21일 주민등록증 발급
현재의 주민등록 제도가 뿌리를 내린
것은 박정희 정권이 출범 하면서 였다.
주민등록제도는 멀리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16세 이상의 남자 에게 발급한
호패제도가 있었고 바로 전에는 6ㆍ25때 서울시와
각 도가 다급 하게 발급한 시민증 과 도민증이 있었다.
1962년 5월 10일 주민등록법이 공포
됨 으로써 주민등록 제도의 첫 윤곽이
드러 났으나 몇년이 지나도록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1968년 1월에 1·21 무장공비침투사건이
터지면서 박정희 정권은 주민등록법개정을 서둘렀다.
주민의 동태를 파악하고 남파간첩 등의 불온분자
색출이 용이하도록모든 국민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이었다.
1968년 5월 10일에통과된 1차 개정안
은 주민등록 제도의 양대 축을 이루는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번호를도입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11월 21일부터 18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면서 시민증과 도민증은자동 폐지됐다.
주민등록번호는 주민등록증 발급과 함께 각 개인에게 부여됐다.
번호는앞뒤 6자리씩 모두 12자리로 구성돼
예를 들면 박정희 대통령 내외의 경우는 110101
-100001,110101-200002였다. 앞 6자리는 지역,
뒤 6자리는 개인번호였다.
1975년 부터 현재의 13자리숫자 체제로 바뀌었다.
주민등록증의 재질은 1999년 종이 에서 플라스틱 으로
바뀌 었으며,2013년 부터 IC 칩이 내장된 전자주민등
록증이 발급될 예정이다.
1968년 주민등록증 발급을 통해 법죄 예방 및 수사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민감한개인정보가 담긴
13자리의 개인식별번호가 주민등록증상에 직접
노출되어 있어 개인정보유출 및 오·남용 가능성과
주민등록증의 위·변조 가능성, 주민번호를 통한 국가의
개인 통제가능성 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
1928년 11월 21일 오늘
1928년 홍명회, 장편
'임꺽정'을 조선일보에 연재하기 시작(∼1929. 5. 20).
《월간조선》은 지난 3월호를 통해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을 소개했다.
육당과 함께 가장 많이 떠오르는 인물이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1888~1968)와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다. 이번 호에는 홍명희를 소개한다.
~~~~~~~~~~~~~~~
1989년 11월 21일 오늘
1989년 노태우 대통령·콜 서독 총리 회담.
한국 북방정책 전폭 지지, 북한 개방유도에 적극 협력 약속
~~~~~~~~~~~~~~~
1998년 11월 21일 오늘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과의 정상회담
~~~~~~~~~~~~~~~
▶1982년 11월 21일 조선조 마지막 상궁의 한사람 박창복여사 사망
▶ 궁중요리사 황혜성, 마지막 상궁이었던 한희순, 박창복, 김명길, 성옥겸
박창복 상궁(1906 ~ 1982)은 김명길 상궁과 함께 대한제국의 황후이자 일제 강점기의 이왕비,
이왕대비였던 순정효황후 윤씨를 모셨던 창덕궁 낙선재 시절의 상궁이다.
처음에 그녀는 창덕궁 세답방 나인(洗踏房 內人)으로 들어왔다가
도중에 본방나인 정씨의 후임으로 지밀로 옮겨왔으며,
그 때 지밀 노상궁들이 네 번이나 와서 선을 보고 혈통을 조사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뚫고 당시 100여명의 젊은 궁녀들 중에서 발탁되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