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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二 )
사마전은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지폈다.
당철휘는 딴전을 부리며 이곳저곳을 쏘다녔지만 중간중간 하독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불가로 다가서며 한연지를 향해 씩 웃었다. 그러자 한연
지의 신형은 질풍처럼 쏘아졌다. 중독된 무림인들이 어느 문파
인지 확인하려는 행동이었다.
한연지는 일 다경 만에 돌아왔다.
"우리가 찾는 사람들은 없어요."
힘없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혈반사접을 만든 독문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나?"
당철휘는 한연지에게 반말을 스스럼없이 사용했다. 존대와 반
말을 섞었었는데 무애곡에 진입하면서부터 자신도 모르게 그렇
게 된 것이다. 그런 분위기는 한연지가 만들어 줬다. 극히 자
연스럽게...
"아니요. 단지 추측할 뿐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군요. 그들이
그림자도 비추지 않다니..."
"혈반사접을 만들어 낸 독문...음...! 짐작가는 곳은 어디지?"
"잠적한 오대독문이 아닐까요?"
"어디라고?"
당철휘는 앉은 자세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들일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당문의 공세를 두려워 해 지하로 숨어든 인간들이 무슨 여력이
있다고 독접을 개발할 여유까지 갖줬겠는가.
그러나 당철휘는 급히 말을 멈추고 귀를 쫑긋거렸다.
타다다닥...!
급박하게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 무애곡 쪽이었다. 무공을 익
히지 않은 듯 발걸음이 가볍지 못하고 경박스럽다.
"이, 이 소리는..."
"성공했단 말인가!"
당철휘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한소리가 튀어나왔다.
해가 저물고 밤이 지나 날이 밝아 오면서 포기했던 놈. 사방에
숨어 있는 무림인들에게 하독하는 중에도 혈반사접을 채집하는
일이 걱정스러웠는데...
그때였다.
휘익! 휘이익!
극히 가벼운 바람을 몰고 두 인영이 내려섰다. 위치는 일행과
단비하 중간, 달음박질하는 단비하를 가로 막고 선 것이다.
"혈반사접을 내놓아라!"
일성과 함께 날카로운 경기(勁氣)가 몰아쳤다.
"무, 무서워, 저리 가."
단비하는 깜짝 놀라 두어 걸음 뒷 걸음질쳤지만 이내 경기에
휘말리고 말았다.
"흥! 그렇게 쉽게..."
"멈춰라!"
사마전과 한연지의 신형은 일시에 튕겨졌다.
쉬익! 휘리릭!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성이 예리하게 들렸다.
그러나 길을 가로막은 두 인영은 노련했다. 한 명은 녹피주머
니를 노리고 쳐가던 일장을 늦추지 않았고 다른 한 명은 쏘아
져 오는 이인을 향해 독사 네 마리를 던졌다.
"흥! 이런 미물로..."
한연지는 쏘아가던 신형을 멈추지 않고 일검을 휘둘러 독사의
허리어림을 베어 갔다. 그때,
"안돼! 피햇!"
당철휘의 다급한 일성이 터졌지만 이미 독사들은 두동강으로
베어지고 있었다. 순간 안개처럼 확 피어오르는 독혈(毒血).
"히히힛!"
독사를 날린 괴인은 기이한 웃음을 흘리며 누런 봉지에 든 검
은 분말을 뿌렸다.
치이익...!
독혈과 검은 분말은 서로 섞이면서 기음을 쏟아냈다.
"헉!"
한연지는 비릿한 혈향이 코끝을 스치는 순간 전신의 모든 힘이
밖으로 쏟아져 나간다고 생각했다. 신법을 전개하는 발걸음이
둔해지고 몸이 휘청거렸다.
사마전은 달랐다.
한연지가 독사를 베는 순간 더욱 빠른 속도로 독혈 사이를 통
과해 괴인의 허리춤을 베어 갔다.
"히히힛! 네놈은 독을 조금 아는구나, 하지만 네놈이라고 별수
있어?"
소매 사이로 감춰진 손이 불쑥 튀어나오며 반 장 길이의 구렁
이 두마리가 손어림을 물어 왔다.
"무산이괴!"
뒤로 한걸음 물러선 사마전은 공수의 예를 갖췄다.
"후배 사마전이 무산이괴에게 인사드리오."
"히히힛! 아직도 우리를 알아보는 친구가 있었던가?"
괴인은 낄낄거리며 사마전올 쳐다보았다. 무섭도록 빠른 일식
을 받아보고도 전혀 긴장하는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 독사우공(毒蛇友公)이 아니신지..."
"히히힛! 그놈 눈깔은 제대로 박혔구먼."
사마전은 무림에 출도한 이래 가장 강한 적수를 만났다.
독사우공 무산삼괴의 둘째로 살아 있는 독사를 무기로 사용한
다. 전신에 몇 마리의 뱀을 숨기고 다니는지는 그만이 안다.
더욱 무서운 점은 독사의 몸에서 쏟아지는 독혈과 성분을 알
수 없는 독분말을 섞어 사용할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열이면 열
모두 중독사한다.
은거한 오대독문의 하나인 무산파를 이끌어 가는 중추 인물이
다.
"후후후! 무산삼괴라...죽지 못해 안달난 늙은이들이로군."
한연지에게 임시 처방을 한 당철휘가 느긋하게 웃으며 다가섰
다. 그래도 당문에서는 당문 십절을 제외하고는 첫손 꼽히는
독술의 명인이아닌가. 아무리 전대 고인이라 할지라도 멸문 직
전에 이른 무산파의 장로에 불과한 것을...이들조차 물리치지
못한다면 체면이 안선다.
"히히힛! 지렁이를 주물럭거리던 놈이라 입이 개차반이군."
당철휘는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무림인들을 중독시킨
독을 비웃고 있다. 용마독(龍痲毒), 인분과 독초를 먹고 자란
지렁이에서 추출한 독, 당문 십독에는 끼지 못하지만 전신을
마비시키는 데는 더 없이 지고한 독이다.
무산삼괴는 용마독을 알고 있을뿐 아니라 중독되지도 않았다.
하독하는 것을 알고 대비 했으리라.
당철휘는 소매 속에서 자포독을 준비했다. 하독에 대한 구상도
정리됐다. 지금은 바람이 불지 않는다. 내 쪽에서는 독을 전개
하기 힘든 반면에 상대는 독사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떠한 공격
도 가능하다.
'조독기(助毒器)를 쓰자.'
소매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은 자포독을 조독기의 머리
부분으로 집어넣었다.
독의 치명적인 약점, 자연 매개물이 없으면 하독할수 없다는,
자연현상을 이용한다 할지라도 상대가 사전에 미리 알고 방비
한다면 중독시킬 수 없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독제실에서
수십 년의 고련(苦鍊) 끝에 만들어 낸 것이 조독기였다.
길이는 세 치, 두께는 손가락 하나 정도로 극히 작았지만 안에
는 현철(玄鐵)로 만든 회선형의 철사가 삼십 개나 내장되었다.
철사들이 일제히 튕겨 내는 순간적인 힘은 무척 강했다.
효과 또한 대단히 좋았다.
방원 일 장 정도는 순식간에 중독시킬 수 있었고 목표한 곳을
정확히 겨냥할 수 있었으며 초절정고수가 아닌 다음에는 사정
거리를 벗어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당문은 조독기를 신속하게 보급했고, 전갈문양이 새겨진 당문
도들은 모두 두세 개의 조독기를 가지고 다녔다. 결과. 당문은
구파일방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근십 년 동안 숙련된 솜씨는 찰나간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
한편, 단비하의 맥문(脈門)을 움켜쥔 괴인은 득의로운 웃음을
지으며 녹피주머니를 잡아챘다.
"낄낄낄! 이 속에 혈반사접 다섯 마리가 들어 있..."
괴인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단비하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
았다.
"절대 놀라지 마시오. 무애객잔 구호실로 가시오. 갈홍아를 살
리고 싶다면..."
어깨를 맞닿는 순간 속삭이듯이 들려 온 말.
"네, 네놈이 어떻게..."
"쉬잇!"
단비하는 괴인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어떻게는 뭐가 어떻게야? 아프단 말야. 이거 놔줘. 나 울어
버린다."
괴인은 갈홍아에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
감했다. 그리고 이 청년이 바보처럼 행세하는 것에도...
"혈반사접의 독성은 무척 강하오. 감히 장담하건대 그런 독을
함부로 만질수 있는 곳은 오직 당문뿐이오. 녹피주머니를 여는
즉시 당신은 중독될 거요. 참 내 오른쪽 품속에 붉은 구슬이
있소. 무애곡에서 발견했는데 아마..."
빠르게 들려 온 말.
단비하의 음성은 세심하게 신경을 기울여도 거의 알아들을수
없을 정도로 나직했다. 하지만 그 음성도 곧 끊겼다. 틈새를
노리고 있던 당철휘가 한걸음 다가왔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낀 괴인이 빠르게 품속을 헤집었기 때문에,
"이, 이것은..."
괴인은 몹시 놀란듯 경악성을 토해 냈다. 그것도 잠시 눈가가
붉게 물들더니 가벼운 한숨을 몰아쉬었다.
"이제(二弟) 가세나."
단비하를 흘끗 쳐다본 괴인은 팔목을 놓고 신형을 날랐다.
그러나 그는 채 일 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황급히 비룡번운(飛
龍飜雲)의 신법을 사용해 공중에서 한바퀴 빙그르르 돈 다음
제자리로 물러섰다.
타악,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하얀 안개가 앞을 가로막은
탓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없을 정도로 지독한 독이란 건 눈
감고도 짐작했다. 치지직...! 까맣게 타버리는 나뭇가지들은
보기만해도 섬뜩했으니까.
"어린 놈의 심성치고는 독하군."
무산일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당철휘를 노려보았다.
"하나만은 확실하지, 노괴들이 여기서 죽는다는 것..."
자신이 깃든 말이지만 당철휘도 성급하게 달려들지 못했다.
조독기에 밀어넣은 독분은 단추를 누름과 동시에 발사된다.
사정(射程) 거리(距離) 일 장 안에 들어선 고수들은 손도 써보
지 못하고 중독되는 것이 당연지사, 그런데 무산일괴는 가볍게
피해 냈다.
그것도 제자리에서 피해 낸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달려나오다 뒤
로 물러섰다. 초절정고수라는 증거였다.
'남은 조독기는 네 개뿐인데...빌어먹을.'
당철휘는 마음이 급해졌다. 자신의 회심에 찬 일격이 실패로
돌아갈 줄은 꿈에도생각하지 못했는데...무섭게 뜬 눈으로 다
른공격 방법을 모색했지만 좀처럼 틈이 없었다.
사마전의 왼손도 소매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는 귀속칠가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당문주의 신임이 두터워 조독기를 사용하
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지니고 다니는 독은 자포
독처럼 절대적이지 못했다.
'좌상방(左上方)에 살포된 자포독의 독효는 일 각 정도 지속된
다.그리로는 이동하지 못할 테고, 뒤만 막을 수 있다면 승산이
있는데...'
쌍방간에 공격하기도 방어하기도 곤란한 대치 상태였다. 순간,
"받앗!"
괴인의 입에서 쩌렁 울리는 일갈과 함께 단비하에게서 빼앗은
녹피주머니가 날아왔다.
"헉!"
당철휘는 급히 한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날아온 녹피주머니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혹시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피수투(皮手套)를 꺼내 착용하면서...
그 찰나의 순간 두명의 노괴가 몸을 빼기는 충분한 시간이었
다.
퍼엉!
무딘 격타음이 들림과 동시에 노괴 두 명은 허공으로 몸을 솟
구쳤다.
"으아악!"
비명 소리는 단비하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뒤로 벌렁 넘어지
는 단비하의 몸뚱이는 빈 주머니를 받아 들고 노기 어린 눈으
로 조독기를 쳐내던 당철휘의 시야를 가렸다.
"헛!"
황급히 뒤로 한걸음 물러섰을 때 무산일괴와 이괴는 허공으로
신형을 띄운 후였다.
"낄낄낄! 다음에 보자, 어린놈."
"히히히! 이거나 받아라."
일괴와 이괴는 찰나간에 삼장을 나아갔다.
막 몸을 날리려던 당철휘와 사마전은 이괴가 던진 독사 일곱
마리를 맞아 급급하게 몸을 사려야 했다.
"빌어먹을 쫓아!"
당철휘는 급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몸을 띄우지 못
했다.
벌써 멀어져 간 무산일괴 이괴, 쫓는다고 잡힐 그들이 아니었
다. 과연 늙은 생강답게 하는 행동이 기민하고 약삭 빨랐다.
당철휘의 경험 부족, 사마전의 약독(藥毒), 한연지의 독에 대
한 무지(無知)는 판정패(判定敗)로 끝나고 말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본다고 달아나는 두 괴인을 멍하게 쳐다
보는 두 사람, 그들은 한연지의 입 속에 누런 단환이 물려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기는 일장 격돌시 무산일괴가 단비하에게
해약을 건네 주는 모습도 보지 못했으니...
"사...대협, 저들이 묵는 곳을 알아낼 수 있겠소?"
사마전은느닷없는 대협 소리에 쓴 웃음을 지었다. 일장의 격돌
후에도 오만하기 이를 데 없던 자가 자존심을 버리다니, 비록
당철휘의 얼굴색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가슴에서 들끓는 분노가
어떠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단면이었다.
"알아낸다면...칠 수는 있겠나?"
암울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되받았다. 당철휘와의 인간적인
갈등이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당문 사람이 무산삼괴에게 당했
다는 소문이 무림에 퍼진다면 문주를 대할 면목이 서지 않는
다.
'저들이 무산삼괴...갈홍아...강적을 만들었군.'
당철휘는 속이 무척 불편했다. 은거한 독문이라기에 가볍게 생
각했는데...독제실에서 취합한 정보에 의하면 두더지처럼 숨은
오대독문의 독술은 별거 아니었는데...
"알아만 주시오. 저들은 반드시 죽어야 하니까."
눈에는 살염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히히! 그 할아버지들, 엉뚱한 주머니를 가져 갔다. 내가 잡은
나방은 여기 있는데..."
단비하는 품속에서 녹피로 만든 작은 주머니를 꺼내 흔들었다.
얼굴 가득 자랑스런 기색을 역력히 담은 채...
* * *
"호, 홍아야!"
"세상에...!"
무산일괴와 이괴는 무애객잔 구호실 문을 여는 순간 놀란 경악
성을 감추지 못했다.
검게 그을린 살결에 푸른 반점이 가득한 미소녀, 죽은듯 고요
히 감은 눈가에 눈물 방울이 아롱졌다. 호흡은 편안했으나 전
신이 마비된듯 움직일 줄 몰랐다.
무안일괴는 다급히 갈홍아의 맥문을 쥐고 진맥을 했다.
"이건 자포독에 당한 증상인데...그럼 당문!"
"자포독요? 어떤 개 같은 자식이...응?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
다. 자포독이라면 일 각을 넘지 못하고 절명하는데..."
"아! 누군가 속명단(續命丹)을 복용시켰어. 심장을 보호하고
진독을 몰아냈네. 음! 상당한 내상...내상은 거의 아물었군."
"아니, 무산에 있어야 할 홍아가 여기 있는 것도 그렇고 자포
독에 내상까지...형님, 답답해 죽겠습니다."
"으...음! 그 청년..."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아까 무애곡에서 만난 멍청이 말일세. 그 청년이 홍아가 여기
있는 걸 가르쳐 주었네. 속명단은 분명 그 청년이 복용시켰을
거야."
"하지만 그 놈도 당문사람 아닙니까? 그리고 그런 멍청이
가..."
"그렇게 볼일이 아니네."
무산일괴는 단비하가 건네 준 붉은 구슬을 꺼내 들었다.
"그, 그건 막내의 의안(義眼)!"
무산이괴 독사우공은 붉은 구슬을 두손으로 감싸며 전신을 사
시나무처럼 떨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는가 싶더니 굵은 눈물
이 주름진 얼굴에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무산일괴도 등을 돌리고 어깨를 들먹였다.
그러기를 얼마간, 소매로 눈가를 훔친 무산일괴가 격정을 누르
며 말문을 열었다.
"그 청년은 막내가 당한 무애곡에서 혈반사접을 잡아왔네. 막
내의 독술은 자네도 알다시피..."
무산일괴는 다시 말문을 닫고 눈을 감았다. 가슴에서 치미는
오열을 삼키고 있음이 분명했다. 평생을 동고(同苦) 동락(同
樂)한 사제의 죽음이 평범할 수는 없었다.
"또한 당문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포독의 해약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속명단을 사용했네. 우선 심장만 보호하는 긴급 조처.
당문과는 연(緣)이 없는 사람이야."
독사우공 역시 눈물을 훔치고 경색된 얼굴을 들었다. 두 눈에
는 분노의 화염이 이글거렸다. 막내 사제의 죽음, 손녀와 다름
없는 갈홍아의 치명적인 상태가 몰고 온 충격이 인성을 망실시
켰을까?
"도저히 믿지 못하겠는데요? 멍청이가..."
"그가 나에게 속삭일 때는 멍청이가 아니었네. 정상적인 사람
의 또렷한 말투였어. 분명 무슨 사연이 있겠지. 그건 그렇고
이러고 있을 짬이 없네. 빨리 홍아를 무산(巫山)으로 데리고
가야겠네."
"형님은 홍아를 데리고 가십시오. 저는 여기 남아서 어떤 놈이
우리 홍아에게 자포독을 전개했는지 알아 봐야겠습니다. 그 멍
청이한테 막내의 마지막 모습도 물어 봐야겠고..."
무산일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괴의 독사다루는 솜씨라면 당문의 풋내기들에게 쉽게 당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막대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야 한다.
사랑스런 갈홍아를 이렇게 만든 놈도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
다. 분명 얼굴이 반반한 그놈, 서슴없이 절독을 터뜨린 그놈일
테지만.
"그럼 나는 홍아를 데리고 먼저 가겠네."
"잠깐, 형님 혈반사접이란 것 어떻게 생겼는지 좀 봅시다."
"어리석은...혈반사접을 꺼낼 용기가 있는가? 만약 중독이라도
된다면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죽게 될 거야."
"알았소..."
"조금만 참게. 장문은 대책이 있을 거야. 우리 무산파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세."
"알았다니까. 잔소리 좀 그만하쇼."
무산이괴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 무산일괴의 말
에 기분이 상해서가 아니라 현실이 비감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사천성 일각에서는 이름을 알아주던 무산파.
지금은 모든 문도가 떠나고자 신들만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 가
고 있다. 그나마 무산파의 이름이 기억되는 것은 무산삼괴와
무산파파의 위명이 워낙 지고하기 때문. 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령(高齡)들인지라 앞날이 막막하기만 했다.
형산에 가공할 독접 무리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희망에 들떠
달려왔다. 그런 독만 있다면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서...하지만 막내 사제를 잃게 될 줄은 몰랐다.
죽음과 맞바꾼 절독, 모든 희망이었다.
"휴우! 이제는 장문도 고집을 꺾겠지."
무산일괴는 너무도 처참하게 당한 갈홍아를 보면서 한숨을 내
쉬었다.
* * *
객잔으로 돌아온 당철휘와 사마전은 급전하는 상황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한연지에 이어 가볍게 생각했던 단비하까지 중태
에 빠진 것이다.
"이 늙은이들...한물간 인간들이야. 이건 꿈이야."
당철휘는 가슴 밑바닥에서 기어나오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공포였다. 난생 처음대하는 고수에 대한 죽음의 공포였다.
언제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객잔으로 돌아와 한연
지의 상세를 보면서 밀려오기 시작한 두려움.
"이건 내상이 아닌데? 독상(毒傷)이야."
사마전은 단비하의 상세를 살펴보고 경악했다.
머리는 물이 팔팔 끊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입으로는
연신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산란, 청색, 거미줄, 강모...알 수
없는 말. 전신에는 열꽃같은 붉은 반점으로 가득했다.
"독사우공의 독이 약해졌다면 첫째 미독환사(微毒幻士)의 독은
더욱 가공해졌어. 지금 이놈이 중독된 증상은 처음 보는 것...
증세를 알아볼수 있겠나?"
사마전은 당철휘를 돌아보며 내키지 않는 말투로 물었다.
출발하기 전 일장의 격돌까지 했던 입장에서 자신이 모르는것
을 묻는다는 게 여간 고역스런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독에 대
해서만은 한수 아래임을 인정하는 행동이니까.
당철휘는 단비하의 상세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한
연지에게만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연지를 업었을 때 등뒤로 와
닿던 불룩한 감촉, 손에 잡히던 부드러운 엉덩이의 탄력.
그녀가 입은 독상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자신이 시
간을 가지고 분석하면 충분히 해독약을 만들수 있다고 자신했
다.
오는 도중 내내 그의 손은 한시도 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한연지가 깨어 있음을 알지 못했다. 엉덩이를 주무르는
손에 힘이 들어갈수록 아미(蛾眉)가 찡그려지고 있음도...
그런데 지금 한연지의 상세는 그가 손 쓸수 있는 입장이 아니
었다.
독제실에서 온갖 독을 만져 본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종(種)을
알 수 없는 독은 손댈수록 독상만 깊어진다. 완벽한 해약, 그
것만이 한연지를 살릴 수 있다.
당철휘는 인상을 찡그리며 사마전에게 다가갔다.
"도대체 무슨 독이기에...음..."
당철휘는 자신의 지식이 형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원에
나와 처음 부딪힌 독공고수들, 그들이 사용한 독은 한결같이
파악할 수 없는 독들 뿐이었다. 대처할 방안은 고사하고 종류
조차 알아 낼 수 없으니.
특히 단비하에게 하독한 솜씨는...
'언제 하독했단 말인가...?'
유일한 기회라면 가슴에 일장을 가격했을 때였다. 하지만 옆에
서 보기에 독을 사용하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잠시 시
야를 가린 적이 있는데 그럼 그때 하독했단 말인가. 아무리 그
렇더라도 너무 빠르다. 조독기를 사용한 것보다도 더욱...
"미, 믿을수 없어..."
작은 중얼거림은 자괴감(自愧感)으로 이어졌다. 그때,
"실망할 건 없어요. 처음 무림에 출도하면 누구나 그렇죠. 하
지만 조금만 경험을 쌓게 되면 괜찮아져요."
당철위와 사마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보았다.
"괘, 괜찮아?"
"괜찮아요. 잠시 어지러울뿐..."
한연지 그녀는 약간 어지러운듯 머리를 짚었을 뿐 별다른 이상
없이 일어섰다. 독사우공의 독은 당문에 못지않았다. 해독약을
복용하고도 한참을 시달릴 정도였으니까.
해독약의 효과는 무척 빨랐다. 당철휘의 응급 처치가 빨라 혈
액에 침투하는 속도가 더디었던 까닭에 침투한 독이 거의 대부
분 해독되었다.
그러나 운신(運身)하려면 한참을 요양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
이라면 서너 달, 아무리 무인이라도 사오 일은 운기조식(運氣
調息)으로 여독을 몰아내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빨리 눈을 뜨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는 손의 임자가 누구인지 잘 아는
까닭에.
중이 고기 맛을 들이면 절간에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던가,
호색(好色)으로 널리 알려진 당철휘가 오랜 여정 동안 기루(妓
樓)에 들르지 않은 것은 갈홍아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갈홍아는 죽고 없다. 그의 육욕을 채워 줄 상대는 자신밖
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몸을 허락할 생각은 조금도 없
었다. 욕망을 달성하는 그날까지는...하지만 조금씩 맛을 보여
줄 필요는 있었다.
인간의 욕구는 미지의 세계를 탐할때 가장 극성을 부리니까.
그녀는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자신의 입으로 단약이 들어오
는 것을 느꼈다.
당철휘와 사마전은 늘 한약과 독물을 만지기에 손에서 묘한 냄
새가 풍긴다. 인(隣)이 박여 버린 것이다. 또한 독공을 전개하
는 데는 섬세한 손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손가락이 가늘게 변
한다. 검공을 익힌 사람의 손과는 전혀 다르다.
단약을 넣어 준 손은 냄새도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크고 투
박했다. 검이나 독을 익힌 흔적이 없었다. 일행 중 그런 사람
이라면 단비하뿐...그러나 단비하 같은 멍청이가 해독약을 가
지고 있을 턱이 없었다. 하물며 그는 자신 옆에 나뒹굴고 있지
않은가.
'누구였을까? 누가 해독약을 복용시켰을까?'
한연지의 눈은 자연스럽게 단비하에게 돌려졌다. 빨간 열꽃을
피우며 헛소리를 읊어 내는 단비하의 모습이 심상치 않게 비쳐
졌다.
"단비하의 상세는 어떤가요?"
"목숨이 경각에 달렸소."
"그렇게 위중한가요?"
"...!"
"그의 운명이겠죠. 살아날 사람이라면 살아날 테고, 죽을 운명
이라면 죽겠죠. 차라리 죽는 게 편할지도 몰라요."
당철휘와 사마전 역시 단비하의 목숨에는 연연하지 않았다.
그가 할일을 했고, 앞으로의 일에 그는 방해만 될 뿐이니까.
"앞으로의 일을 논의해요. 독접을 채집하는 것 만도 힘들었는
데 어떻게 멸살시킬 예정이죠?"
그녀의 눈길은 당철휘에게 돌려졌다.
"죽이는 것은 간단하오. 독(毒)의 극성은 불(火), 무애곡을 불
지를 참이오."
"혈반사접이 앉아서 당할까요?"
"문주께서 호남성(湖南省) 지부대인(知府大人)에게 서신(書信)
을 드렸을 것이오. 관병을 동원해 무애곡을 에워싸고 일제히
화공을 펼친다면 아무리 천하의 독물이라 할지라도 죽을 수밖
에 없소."
"언제 멸살할 예정이죠?"
"지부대인과 상의해 봐야겠지."
"좋아요. 그럼 독문을 추적하는 길만 남았군요. 먼저 짚고 넘
어갈 일은...당문에서 혈반사접의 해독약을 만들었다면 무산파
에서도 만들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점이에요."
"음...! 독술이 이 정도라면..."
무언의 긍정. 단비하의 상세는 당문 제일독이라는 무형지독에
버금갔다. 언제 무산파가 이토록 성장했던가. 독과 해약을 만
드는 기술은 비례적으로 성장한다. 충분히 혈반사접의 해독약
을 만들어 냈을것이다.
"형산에는 무산삼괴가 왔어요. 하지만 우리는 미독환사와 독사
우공만 만났어요. 막내, 독안독귀(獨眼獨鬼)는 어디 있을까
요?"
"무애곡!"
당철휘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요. 분명히 무애곡으로 들어갔을 거예요. 그리고 죽었죠.
다시 말해서 무산파에서 만든 해독약은 아무 소용도 없었어요.
그들이 아무렇게나 해독약을 만들었을까요? 분명히 무애곡에서
견본을 채취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성공했고 그들은 실패
했죠."
좌중의 일행들은 단비하가 당문에서 만든 해독약의 덕을 본 것
으로 착각했다. 아니 그렇지 않고 독접을 채취할 수 있는 방법
이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수 없었기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
다.
"비록 실패는 했지만 무산파의 독술은 놀라웠어요. 그럼...당
문과 무산파를 농락할수 있는 독문이 어디일까요? 문주는 분명
자연적으로 진화된 독물이 아니라고 했어요."
당철휘는 앵무새처럼 종알거리는 한연지의 입술이 참 예쁘다는
생각만 했다. 왜일까? 왜 이 여인하고만 같이 있으면 공포가
사라지고 투지가 샘솟을까.
하늘이 자신을 위해 내려 준 여인, 만약 이 여인을 다른 놈에
게 빼앗긴다면...생각하기도 싫다. 아마 그날부터 편히 두 발
을 뻗고 잠들지 못하리라.
"그럴 만한 독문 중 남은 곳은 네 군데뿐인데..."
사마전이 오랜만에 말참견을 했다. 그 역시 일사천리로 문제를
풀어가는 한연지에게 묘한 매력을 느꼈다. 그 동안 건방졌던
행동이 일시에 불식되고 한연지라는 이름의 여인이 새롭게 보
였다.
"그래요. 우리는 남은 독문 네 군데를 하나씩 뒤져 나가야 해
요. 기타 쓸데없는 곳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당철휘는 단비하가 혼절하기 직전 건네 준 녹피주머니를 꺼내
놓았다.
"혈반사접은 어떻게..."
그는 어느새 한연지에게 의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
다. 모든 일의 주관을 자신이 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
다. 그만큼 처음 느낀 공포는 절실했고 한연지의 조리있는 말
이 감명 깊게 받이 들여졌다.
"사대협께서 당문으로 가져가 주세요. 그 동안 저희는 사대 독
문을 훑어 나갈게요."
"사대 독문은 만우당(萬雨黨), 대붕파(大鵬派), 일독문(一毒
門), 사충전(蛇蟲殿). 당문이 그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치지 못
했던 이유는 근거지를 알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수로 그들
을 찾아간단 말이냐?"
"지금부터 방법을 찾아야죠?"
"일단 당(唐) 대가(大哥)는 호남 지부대인을 만나세요. 한 가
지 일부터 끝내 놓고 다른 일을 시작해야죠."
호칭이 바뀌었다. 예민한 당철휘는 그 뜻을 즉시 알아들었다.
얼굴이 활짝 펴지면서 만면에 미소가 가득 넘쳐 흘렀다.
"지금 바로 만나보고 오겠소."
"그러세요."
"단비하는 어쩔 예정이냐?"
"지금은 손쓸 방도가 없잖아요? 혈반사접을 불태워 죽일 때까
지만 기다려 보고 그때도 안 깨어나면..."
"그럼 나는 먼저..."
당철휘가 몸을 일으켰다. 그것을 기화로 한연지와 사마전도 각
기 할 일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 * *
단비하는 혈반사접에 중독 당한 상태였다.
혈반사접을 잡으면서 체내에 축적된 잔독의 독효는 능히 지옥
문으로 안내할 만했다. 오장육부가 뒤집히고 피가 거꾸로 흐르
는 통증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 모를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무산일괴가 물러가며 내친 일장에 기혈이 뒤틀리
면서 발작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험한 세상에 내팽개쳐진 몸뚱이. 하나 오직 자신의 몸이 독을
이겨내고 회복되는 길 밖에 다른 방도는 없었다.
혼미한 의식 속에서 삼인이 나누는 말을 모두 들었다.
한연지, 어쩌면 심성이 그리도 변했느냐, 착하고 곱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악독한 심계만 가득 넘쳐 흐르느냐.
맑고 청순하던 모습이 희미해졌다.
- 궈속칠가는 당문에서 벗어나야 해. 강하면 강한 대로 약하면
약한 대로 서로 도와 주고 알려 주는 가운데 의독(醫毒)은 발
전하는 거야.
- 너무 어려워서 모르겠어. 나는 오빠를 믿어. 이제부터 당문
을 미워할거야.
- 미워하면 안돼.
- 왜?
- 당문은 힘으로 우리를 짓눌렀어. 그리고 그 힘은 무척 강해.
설혹 많은 피를 흘리면서 독립했다고 해도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진정한 의술(醫術)이 무엇인지 참다운 독술(毒術)이 무
엇인지 일깨워 줘야 해.
- 공자님 말씀 같애. 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 하하하! 맞아. 참으면서 진정한 함을 길러야돼.
- 하지만 그럴 기회도 안 주잖아.
- 그래도 참아야지. 십 년, 이십 년, 백 년이 걸리더라도 진정
한 힘을 보여 줘야해. 그래야 서로 존중하면서 사는 세상이 되
는거야.
- 오빠는 그런 걸 어떻게 알았어?
- 아버지가 가르쳐 줬거든.
- 후아! 아저씨는 정말 똑똑하다. 그지?
그때의 한연지는 천진난만했다. 그런데 지금은...지금 한연지
는...
진한 슬픔이 느껴졌다. 사랑하던 여인은 죽었다. 지금 있는 여
인은 그 여인의 거죽만을 썼을 뿐이다. 죽었다. 진실한 사랑
은...
첫댓글 감사합니다
진실한 사랑을 나누다가
어제 모르는 사람으로
같이 있어야만 하는
운명이..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함니다.
좋은 꿈 꾸세요...
즐감합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감사...
즐독하였어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독 ㄳ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