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찾은 시진핑, 푸틴과 ‘反美 공동전선’ 강화
시진핑 “패권 횡포” 푸틴 “美가 억압”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초청으로 20일 2박 3일 일정으로 러시아를 국빈 방문했다. 각각 대만과 우크라이나를 놓고 미국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대미(對美) 공동전선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두 정상은 시 주석의 국빈 방문 첫날인 이날 나란히 상대국 매체에 기고문을 싣고 긴밀한 중-러 관계를 과시했다. 시 주석은 러시아 매체를 통해 ‘환난견진정(患難見眞情·참된 우정은 어려움 속에서 드러난다)’을 인용하며 “중-러는 최대 이웃”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스크바 공항에서는 “요동치고 변화하는 세계에서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 역시 중국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에 “중-러 관계는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 대한 경고 수위는 높았다. 시 주석은 “패권의 횡포가 심각해 세계 경제 회복을 지연시키고 있다”면서 “한 나라가 결정하는 국제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미국을 겨냥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은 그들의 지령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국과 러시아를 갈수록 더 억압하고 있다”며 미국을 직접 언급해 비난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9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많은 파트너들이 구축한 세계 질서를 흔드는 것이 중-러의 전략”이라고 받아쳤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시진핑 “우호적 이웃” 푸틴 “오랜 친구”… 美, 中의 러 무기지원 경계
시진핑 방러… 푸틴과 反美연대 강화
20일(현지 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브누코보 공항에 도착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 군악대의 환대를 받으며 활주로에 서 있다. 22일까지 러시아에 머무르는 그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미국 견제 전략 등을 논의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모스크바= AP 뉴시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3기’ 공식 출범을 알린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폐막 직후 첫 대외 일정으로 20일 러시아를 찾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맞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두 정상은 이날 기자회견과 비공식 만찬에 이어 21일 회담을 하는 등 최소 두 차례 이상 만난다. 앞서 상대방 관영지에 기고문을 교차 게재하는 ‘기고문 외교’로 밀착을 과시했다.
미국 등 서방은 이번 회담에서 중국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기로 할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백악관은 두 정상의 회동이 전쟁 장기화와 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행위라며 평가 절하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시 주석이 ‘피스메이커’ 노릇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習-푸틴, 한목소리로 美 비난
시 주석은 20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브누코보 공항에 도착해 “중-러 양국은 산과 물이 서로 연결된 우호적인 이웃 국가”라면서 “양국 공동 관심사인 중대한 국제·지역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하고, 새로운 시기의 중-러 전략적 협력과 실무적 협력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대한 국제·지역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새로운 시기’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과의 대결 구도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런민일보 20일자 1면(위). 오른쪽 상단에 ‘러시아와 중국: 미래 동반자 관계’란 제목의 푸틴 대통령의 기고문이 실렸다. 같은 날 러시아 국영 리아노보스티 홈페이지에 ‘중-러 우호의 새로운 전망을 향해 분연히 나아가자’란 제목으로 올라온 시진핑 국가주석의 기고문. 사진 출처 런민일보·리아노보스티 홈페이지
방러에 앞서 리아노보스티통신 등 러시아 매체 기고문에서는 “푸틴 대통령과 국제행사 등에서 총 40번을 만났다”며 “오늘날 최고조에 이른 중-러 관계를 소중히 여길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 기고문을 통해 “시 주석은 오랜 친구이며 중국 또한 러시아의 진정한 친구”라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한목소리로 미국을 비난하며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뒤흔들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 집단은 상실 중인 지배적 지위에 절망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 위기를 촉발해 불에 기름을 부었다”고 주장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아시아태평양으로 침투하고 있다고도 했다.
시 주석 또한 미국을 겨냥해 “세계가 다극화하고 있는데도 특정 국가가 ‘패권적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 외교부는 20일 홈페이지에 ‘2022년 미국 민주주의 현황’ 보고서도 게재했다. 이를 통해 양극화, 정치 분열, 총기 사고 등으로 미국식 민주주의가 왜곡, 무력, 분열의 악순환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 中, 러 지원 가능성 우려하는 서방
시 주석은 최근 중동의 앙숙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중재하며 ‘국제사회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9일 “시 주석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해 우크라이나의 관점도 들어보라”고 비판했다. ‘중재자’임을 내세우지만 러시아 편을 들고 있다는 얘기다. 미 언론도 시 주석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된 푸틴 대통령과의 밀착을 감추려고 방러 목적을 ‘휴전 중재’로 내걸었다고 비판했다.
서방은 특히 이번 회담에서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무기 지원에 합의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19일 일본 교도통신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중국산 탄약이 쓰였음을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대니얼 드렌즈너 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이날 정치매체 폴리티코 기고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핵개발 위협 등으로 대미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까지 3개국이 미국을 겨냥한 삼각 편대를 형성하며 밀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모습이 만화책 DC코믹스에 나오는 악당 무리 ‘리전 오브 둠’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실제 시 주석은 러시아 매체 기고문에 쓴 ‘환난견진정’(患難見眞情·참된 우정은 어려움 속에서 드러난다) 표현을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에게도 사용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워싱턴=문병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