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더 잦아진다… 하수 재처리-해수 담수화 등 장기적 대책 절실
[남부 50년만의 최악 가뭄]〈하〉
이상기후 대비한 물관리 대책
하수 재이용 처리시설
50년 만의 기록적인 가뭄으로 남부지역의 농업·공업·생활용수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1년 전국 누적 강수량(1188.0㎜)은 예년의 90%지만, 전라도와 경상도 등 남부 지방 누적 강수량(973.0㎜)은 평년의 73% 수준이다. 문제는 갈수록 이런 국지적 가뭄이 잦은 빈도로 발생해 물 공급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2050년이면 지금보다 물 수요가 35%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가뭄 대응을 넘어 장기적 이상기후에 대비한 수자원 개발과 이용으로 국가적 차원의 물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극심한 가뭄을 겪었던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80년대 중단됐던 댐 건설을 다시 검토하는 등 수자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당장 댐을 건설할 여력이 되지 않는 국내에서는 있는 물부터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 댐 병렬 연결하는 워터그리드
‘워터그리드’는 댐, 하천, 상수도, 저수지 등 수원(水源)을 연계해 물이 넘치는 지역에서 물이 부족한 지역으로 물이 오고 갈 수 있도록 물 관리를 고도화하는 방법이다.
국토의 90% 이상이 주기적으로 물 부족을 겪는 호주의 경우 워터그리드를 통해 효율적으로 물을 관리하고 있다. 호주는 물이 풍부한 해안과 건조한 내륙지역 간 물 격차가 극심하다. 2004∼2007년 동남부 지역 가뭄을 계기로 호주 정부는 골드코스트 해안부터 브리즈번 안쪽 내륙지방까지 약 535㎞의 워터그리드를 건설해 해안에서 내륙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다.
국내에선 2015년 충남 지역에 심각한 가뭄이 발생했을 당시 구축한 보령댐 도수로가 워터그리드의 사례다. 보령댐 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비상 대책으로, 댐 상류와 금강을 도수로로 연결했다. 권현한 세종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2021∼2022년 가뭄은 물 사용을 제한했어야 할 수준인데, 보령댐 도수로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며 “국지적 이상기후가 심해지는 만큼 상대적으로 물이 넉넉한 곳에서 부족한 곳에 보내주는 워터그리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한 번 쓴 물 다시 쓰는 ‘대체수자원’
기술 발달과 함께 바닷물이나 한 번 쓰고 버리던 물을 재처리해 다시 쓰는 ‘대체수자원’도 새로운 수자원 확보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수 처리수 재이용 △해수 담수화 △온배수(발전소 등에서 열을 냉각하는 물) 재이용 등을 통칭한다.
하수 처리수 재이용은 버려지는 하수를 정화해 용수로 다시 이용하는 것이다. 식수로 쓸 순 없지만 화장실이나 조경수, 공업용수 등 쓰임별로 목표 수질을 정해 정화 처리한 후 활용한다. 1978년 가뭄으로 무려 287일이나 급수를 제한했던 일본 후쿠오카는 일본 최초로 ‘절수조례’를 제정하고 하수를 재이용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1994년 16년 전보다 심각했던 가뭄 때에도 제한급수 시간을 1978년에 비해 40% 감축할 수 있었다.
바닷물에서 염분 등 용해 물질을 제거해 민물로 만드는 ‘해수 담수화’는 바다와 가까운 산업단지의 공업용수 확보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풍부한 바닷물로 안정적인 수원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질적인 물 부족을 겪던 충남 서산시 대산임해산업지역은 2020년부터 국내 최대 규모 해수 담수화 시설을 짓고 나서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 지난해 현대오일뱅크에 일일 1.5만 t의 용수가 공급되는 시설이 우선 준공됐다. 현재 한국수자원공사에서 2024년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며, 완공되면 일 10만 t의 용수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산단에서 쓸 수 있는 대체 수자원으로는 ‘온배수’ 재이용도 있다. 공장의 생산공정에서 발생한 열을 식힌 후 바다에 배출하는 냉각수를 온배수라고 한다. 이 물을 정수한 후 재이용하는 것이다. 2019년 기준 해마다 바다로 버려지는 온배수는 연간 약 9억1000만 ㎥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행법에선 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만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그 양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법 개정을 통해 일반 산업공정에서 나오는 온배수도 재이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주헌 중부대 토목공학 교수(국가 물관리위원)는 “해수 담수화나 하폐수 리사이클링 등 대체 수자원은 기존 댐과 하천 중심 공급 체계를 보완할 수 있고, 강수에 의존하지 않아 이상기후 대응에도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 상수도 현대화, 물 한 방울도 소중히
정부는 이렇게 확보된 용수가 전달 과정에서 누수로 버려지는 경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환경부와 수자원공사, 지자체 등은 2017년부터 118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지방 노후 상수도관을 교체, 개량해 새는 물을 막는 현대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1단계 정비사업을 통해 노후 상수도를 교체한 전남 신안군 흑산도는 2016년 유수율(정수장에서 공급된 수돗물 총수량에서 요금 수입으로 받아들여진 수량의 비율)이 50.3%에서 지난해 87.9%로 37.6%포인트 올라갔다. 상수관을 지나며 새어버린 수도물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덕분에 지난해 11월 가뭄 중에도 정상급수가 이뤄지는 등 가뭄에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현재 전국 평균 유수율 86.5%를 90%로 끌어올리는 2단계 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2단계 현대화를 달성할 경우 절수를 통한 가뭄 대응뿐 아니라 온실가스도 연간 8만7000t까지 감축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