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하고 쓰는 첫 글인듯 합니다. 좀 과격할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과는 다소 다른 주장이 많아서 비평을 좀 할까 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모쪼록 긍정적인 토론을 기대하면서...
유럽 전체 면적을 다 합쳐도 현재 중국, 한 개 국가의 면적보다도 작습니다.
물론 인구도 중국이 더 많습니다.
>물론입니다. 현재는 그렇죠...
그 이야기는 옛날에도 별로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아실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이라는 것이 언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중국이란 개념이 어디인지를 모르겠군요...당, 송, 원, 명 다 영역과 국력이 틀리죠...
14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 전체 전력을 다 합쳐도 중국 1개 국가의 전력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아니 미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14세기 초면...조선왕조의 성립이 15세기 이므로...중국입장에서는 원나라의 시기가 됩니다. 그러나 원나라의 국력이 역대 중국의 국력과 동일하였는가의 경우에 대해서는 뭐라 말하기가 어렵군요...그 이전의 송대에는 중국은 유럽이 아니라 일개 성에 웅거한 탕구트족에 의해서도 통제가 어려웠지요...바로 서하국입니다.
간단한 예로 14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몽골군이 유럽 동부를 휩쓸고 있었으니까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역시 같은 이유에서...더구나 14세기 후반부 15세기 정도에 들어서면 명 같은 국가는 국력이 형편없이 줄어들죠...해금으로 인한 해군력 손실도 상당합니다.
자 이제부터 14세기전까지 유럽이 전세계 역사에서 얼마나 후진 지역이었는가를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럽이 전세계역사에서 가장 후졌다는 건 좀 어패가 있네요...아프리카는 알려지지도 않은 상태였고...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고대 그리스 문명(미케네 문명)이 자랑찬 청동기를 문화를 꽃 피울 때, 고 옆에 소아시아에는 철기 문명이었습니다. 물론 중국, 인도도 철기죠.
그리고 그러한 이오니아 문명은 그들이 그렇게 바르바로이라면서 야만족으로 비유하던 마케도니아 지역의 철기 문명을 가진 도리아인이 남하하면서 끝장납니다.
>반드시 철기문명이 우수하다고는 할 수 없지요...변인이 있는 것입니다...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면...고조선의 경우 철기문화가 '정착된' 한의 무제와 싸워서 일년이상을 버티죠...글쎄요...꼭 철기로만 문명의 발전을 판가름할 수 있을까요...? 아 물론 철기가 전투에 유리하다는 점은 인정...그러나 전쟁이란 지원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 법...반드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 말이 좋아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마 제국 어쩌구 하는데, 로마 제국 최대 강성기의 면적을 다 합쳐도 진시황의 제국보다 작습니다. 문화는 더 말할 것도 없죠.
>제국이 작아서 문화가 열등하다는 판단은 버리시길...그러면 한국문화는 중국문화에 비하면 별거 아닌 듯 합니다.(저는 이 문장을 이렇게 파악했습니다...)
과학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던 서기 5세기까지 유럽에는 그 간단한 등좌도 없어서 전부 경기병뿐이 없었던 반면, 동양에서는 최소 기원전 2세기에 중갑기병이 등장합니다. (우리 고구려 벽화를 보세요.)
>동양이라는 개념이 모호한데요...제가 알기로 등좌는 동양이 아니라, 동양의 이민족인 훈족에 의해서 전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년 전쟁이 일어나던 14세기에 프랑스 기사대를 혼쭐내줬다는 영국 대궁병의 존재가 단순궁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죠.
뭐 동양에서는 최소 기원전 4세기 이전에 안감과 겉감을 달리한 복합궁이 개발되어 실전에 사용되었습니다. 뭐 서기 9~10세기에는 화약도 실용화하죠.
>이건 제 전공이 아닙니다만...여러아시는 분들께서 답변부탁합니다.
유럽사를 조금만 공부하신 분들은 금방 이해하시겠지만, 로마 제국 멸망후 유럽국가들간의 전쟁 배상금 혹은 포로에 대한 교환자금이 금은등 순수광물로 이루졌다는 사실은 그 당시에 제대로된 기축통화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로마 제국 시절에는 있었지만...
>반드시 기축통화가 문명의 척도는 아닙니다. 중국도 단순히 기축통화란 것이 만들어진게 진나라 시황제의 통합정책때문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는 상태에서 통화란 오히려 비효율적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그나마 로마제국 시절에도 전세계 역사에서 후진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던 유럽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중세 암흑기에 빠지게 되자 무려 700년 이상 발전은 커녕 퇴보를 면치 못했으니 말을 더 해 뭘하겠습니까?
>가장 전형적인 헤겔식 논리입니다. 고대는 빛의 세기요 그시대에도 형편없던 문화가 암흑인 중세를 걸쳐 퇴보. 빛인 근대에서 빛이 난다는 건가요? 오히려 잦은 전쟁은 전쟁기술을 발달시키죠...그런 식으로 말하면 투르 푸와티에 전투에서 이슬람을 막아낸 것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단순한 과학기술이나 전력지수만이 아닙니다. 문화도 형편없었습니다.
지금 당장 서양의 유명한 예술가 이름을 쭉 열거해보세요. 철학자여도 상관없습니다.
아마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 빼고는 전부 르네상스 이후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아마 철학과만 아니라면 이럴 공산이 크죠.)
>거듭나왔습니다...
뭐 과학기술적인 면에서는 15세기의 유럽인들이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인들이나 아프리카의 원주민보다 나을 수는 있겠지만, 형편없는 종교적 도그마에 취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원시 샤머니즘의 형태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14세기는 중세사회의 해체기입니다...이미 종교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사생아와 불륜이 늘어나는 한편...유언에 사후미사에 대한 언급이 없어지죠...기독교신관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습니다.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여자는 마녀라고 잡아죽이고, 갈릴레이를 지구가 돈다는 소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태워죽이려고 하고(뭐 그 갈릴레이가 교황청에 의해서 해금된지는 20년도 안된 일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맞아죽을까봐 지동설을 자신이 죽은 다음에 발표하게 만든 유럽인들이 미개하지 않다면 도대체 누가 있어 더 미개할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일종의 린치라고 보는게 좋을겁니다...페스트와 소빙하기가 인간을 미치게 만든거고...그리고 기존사상이 강고할 수록 반동에 대한 진압이 큰 것일뿐...
그러나 유럽인들이 종교적 도그마에서 탈출하게 되자 무섭게 발전합니다.
무려 700년 이상 긴 잠에 빠져있던 유럽 사회에서 그것이 다소나마 해소되자 그 동안 쌓여있던 과학과 기술에 대한 열정을 막을 것이 거의 없어진 것이 그들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그 발전의 토대가 바로...중세에 만들어진 도시와 이성입니다.
14세기에 이르러 르네상스와 함께 찾아온 대항해시대라는 탐험러쉬도 유럽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단 신대륙에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이 유입되자 유럽 사회는 이러한 광물을 통해서 지난 700년간 상실했던 기축 통화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상업 경제가 발전하게 되니 이가 바로 '상업혁명'입니다. (산업혁명이 아닙니다.^^)
>기축통화는 1차대전전까지만해도 골드스텐다드에 입각한 금본위제에요...신대륙의 발견이 자본주의의 발달을 앞당겼다는 것인데...글쎄요...그 자본주의를 행하기 위한 -이즘과 자본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건 중세의 도시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원격지무역이나...등등...
뭐 300명도 안되는 병력으로 강대한 신대륙의 잉카제국을 몰락시킨 것은 천운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여기에는 잉카의 전설이 큰 역할을 했는데 그건 언제 시간이 나면 설명하도록 하죠)
>천운까지야...뭐 이 부분은 약하게...
르네상스는 유럽 사회의 전반적인 것은 변화시키게 되는데, 그것은 특히나 신교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기존 구교가 가지고 있던 종교적 도그마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원인은 유럽 제국간의 전쟁이 잦았던 것도 유럽의 과학 기술 발전에 일조를 하게 됩니다.
원래 전쟁과 과학기술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거든요.
>전쟁의 규모가 커진 것은 맞습니다만, 전쟁은 중세에 늘 있어왔고...신교가 도그마를 붕괴했다기보다는 신교의 도그마가 커져가는 거죠...그부분에서 카톨릭적 도그마가 줄어드는 거고...종교전쟁이라는 사건은 바로 그와 관련한 것 아닙니까? 대립항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영역을 지키기위한 싸움과 뺏기위한 싸움이죠.
그리고 유럽과 동양과의 차이는 결정적으로 30년 전쟁을 지나고 나서는 완전히 역전됩니다.
유럽에서 제작된 화포와 총포가 동양의 그것을 능가하기 시작한 것이죠.(30년 전쟁기에는 유럽인들이 동양에서 화포를 산 흔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뭐 대항해시대로 캐러벌등의 원양 항해가 가능해진 함선에 이러한 신무기가 장착되었다면 상황은 뻔하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이 황금의 땅인 엘도라도는 찾았는지 몰라도 또 다른 동방의 황금 제국 중국을 침략하지는 못했습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유럽이 대항해시대로 신대륙과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향료제도를 장악해도 건드리지 못한 지역이 몇 군데 있죠?
일단 근처에 강성한 투르크 제국을 식민지화 할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와 동남부 유럽지역은 여전히 이슬람의 손에 떨어져 있었죠.
중국도 식민지화 할 생각을 한 것이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입니다.
그전에는 택도 없었죠.
조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참고로 유럽 세력들이 대항해시대에 유일하게 강제 개항시킨 일본 역시 솔직히 강제 개항이라기 보다는 제한적이고 자발적인 양식의 개항이었습니다.
뭐 당시에 일본은 임진왜란 전의 전국시대였으니 화약이 필요했기에 개항한 것이니까요.(일본에 화약 기술을 전래한 것은 중국이나 우리나라가 아니라 포르투칼인들이었습니다.-화약 기술은 중국과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극동에서 가지지 못한 최고급 기술이었으니까)
뭐 일본의 개항도 에도 시대에 오면 도쿠가와에 의해서 2개 항구에 제한적인 것으로 변하지 말입니다. (에도 시대에 일본은 또 낮잠자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안 하려고 총과 칼로 불상따위를 만들고 있었으니 과학기술이 발전할 리 만무!)
그렇다면 동양과 서양의 과학기술 차이가 역전된 또 다른 이유인 동양의 정체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극동 지역에서 국가간의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오직 임진왜란과 병자 호란 뿐입니다.
그것도 생각보다는 빨리 끝난 편이죠.
그 뒤로는 일본은 보수주의로 회귀하고 조선은 사회 변혁을 겪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정 불안에 시달렸고, 그나마 중국은 가장 많이 유럽의 변혁을 눈으로 실감하며 이러한 기술 역전을 느끼고 있었지만, 여전히 중국의 전력이 앞선다는 환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항해시대에도 외국 문물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이며 고래부터 있어왔던 육상과 해상을 통한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는데에 만족했습니다.
뭐 무협지나 무협영화를 즐겨보신 분들이라면 금새 아시겠지만, 중국에서 기축 통화로 은전이라는 은이 사용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생각해보세요.
답은 명나라 때부터 자주보입니다. 그리고 그건 유럽 대륙에 대규모로 신대륙의 은이 유입된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가집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그렇게 간단하게 매겨져서는 안됩니다. 에도막부가 열린것도 임진왜란의 덕입니다. 그리고 중국이 부축적에 만족했다고 하는데...부가 있어야 무기개발도 전쟁도 하는 거란 말이죠...
동양이 비교적 평화로웠던 반면 유럽 대륙은 그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단 말씀입니다.
멀게는 투르크 위시한 이슬람세력과 맞서고 내부에서는 신교와 구교로 갈라져서 싸우고, 국가간의 영토 싸움, 심지어는 국내에서 귀족파, 왕당파, 공화파로 나뉘어 내전 상태였으니, 군사력과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밖에 없죠.
유럽은 15세기 이후 하루도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단 말씀입니다.
또한 전쟁을 하려면 자원과 물자도 엄청나게 소모되죠?
그러니까 죽기살기로 식민지 개척해야 했고, 또 식민지를 안정화시키 위해서 군사력이 필요하게 되니 과학기술 발전하고....
>식민지 안정화와 군사력은 청대에 가야 나오는 이야기입니다...사실 강희건륭까지만해도...청이 훨씬 우월했지요...
물론 우리와 일본이 비교적 고립된 지역이기 때문에 평화로웠던 반면, 중국은 끊임없이 주변 민족들과 소규모 국지전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세력들이 과학기술 발전을 요구할 만큼 머리가 좋은 상대가 못되었더란 말씀입니다.
총 없이도 이기고, 포 없이도 이기는데 뭐하러 그런 것 개발하려고 하겠습니까?
>총없이 포없이도 이겼다면서...명나라의 영역을 보세요...청나라에 비하면 상대안됩니다...중국의 국경이 안정된 것은 유목민인 청이 중국을 접수하면서 평정했기 때문입니다. 또 명과 청의 교체기에도...중국은 화포에 의해 명맥을 이었지만, 결국 졌지요...총포가 전쟁의 다는 아닙니다. 글쎄요...과연 개발의사가 없었던 것이며...그 적들이 머리 좋은 상대가 못되었나요? 단지 관념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중국의 주변 민족들에게 딱히 부숴야할 성체가 있는 것도 아닌데 화포 기술을 발전할 필요도 없고, 중국 자체 넓이만 해도 유럽 대륙보다 큰데 더 영토 욕심 낼 필요도 없고....
>유럽이라는 개념, 얼마나 넓은가의 개념이 중국에게 있었을까가 의심스럽군요...고종이 개항할때, 외국대사관들에게...조선은 프랑스보다 다섯배크다고 했다죠? 영토욕심을 낼필요가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청나라의 경우 화포에 호되게 당한통에 화포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명의 홍화포덕이죠...
뭐 그런 이유죠.
저는 앞서 말씀드린데로 전사학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동양과 서양의 차이에 대해서 말하라면 이것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 그 구분이 꼭 필요한가요? 동서양의 차이는 발전상의 차이일 뿐입니다. 사실 동양과 시대개념도 모호한듯...
바로 기원전 3세기경에 쓰여진 '손자병법'과 19세기에 쓰여져 유럽 전술 서적의 효시가 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비교해보라고 하죠.
무려 2000년 이상 차이가 남에도 손자병법이 더 우수한 서적이라는데 이견을 달리할 사람은 없습니다.
>둘다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아마 전사학자이신 분이 맞겠죠?
동양과 서양이란 개념의 대립구도와 누가 더 잘살고 누가 더 못살았는데 역전됬다라는 식은...결국 과거만을 붙들어두는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요컨데 중요한 것은 현실입니다. 누가 더 방향을 올바르게 잡을까의 문제...그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긴요하겠지요. 그러나 필자분의 근거는...납득하기 어렵군요...저는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입니다만...반론기대하면서 맺겠습니다...
일단...시대에 대한 고증과 정확한 개념이 필요하신듯하군요...손자를 안 읽었다는 이유로 논하시는데...손자가 다는 아니죠...오히려 병참과 보급에 대한 문제부터 살피는 편이...졸전이라...프랑스가 유럽최강이면...미개한 국가인 건가요? 필자분의 글에서는 유럽이라는 개념으로 뭉뚱그리고 있는데요? 개념에 대한 명확
한 정의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고...나폴레옹이 손자를 읽었다는 사실은 원사료로 인용바랍니다...전 사실무근이네요...그리고 글제목이 동양이서양보다 잘살았던 이유...로 된 것인데...단순히 손자를 안 읽었다는 이유로 단정형문장을 쓰시면, 오히려 그쪽이 글제목을 바꾸심이 마땅할 듯합니다.
잘산다는 것은 사회경제적 관념이고, 무기만 강하면 잘사는게 아니니까요...전쟁이나...예를 들어 러시아가 우리보다 잘 사나요? 오히려 필자분의 논리에서는 이런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더 웃긴것 아닌가요?더욱이 완곡하게 긍정적토론을 기대한다고 했는데, 통신체의 매너란 무엇인지요? 저도 그러기에 맞대응하는 것이죠
손자가 동양역사에서 큰비중이 있다...과연 역사전반에 얼마나 큰 비중을 주었나요? 사회가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고전적 병법의 가치는 인정합니다만, 글쎄요...사회전반에 걸친 큰 비중이 있었다기에는 부족합니다. 전쟁이 그 나라의 부강을 좌지우지했다라...고려시대는 항상 그럼 못살았나요?
님이 어디서 공부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님 말에는 오류가 너무 많네요 전 셰게사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안다고 자신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히 먼저 말하는건 동양역사에서 중국이 너무 과대포장한게 많습니다 그건 다들 아실것이고 원래 강대국이란 자기 문화와 민족을 앞세우기 위해서 자기 민족과 문화의 우월성을
내세웁니다 유럽문명의 기초라 할수 있고 가장 내세우는게 로마제국인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읽고 착각 하는게 엄청 많습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기니깐 어쩃든 그시대에 로마의 병사체계가 잘 잡혀서 세계 최강이다 어쩌다 했는데 로마제국 전성기떄 인구가 백만이었습니다
한나라떄 장안의 인구가 백만일떄가 있었지요 그리고 근래 2백년이상 서양인들이 세계의 강점에 서있었기 유럽인들이 세계를 상대로 식민사관을 한것이라고도 볼수있습니다 일본이 우라나라에 한것처럼요 일본이 우리나라한장 민족말살정책 펼치기 전에 유럽국가들이 세계를 상대로 똑같은짓을 했으니가요
삼국지를 비롯해서 후에 이어지는 전쟁 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전략입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손자병법 읽었다는거에 의문을 가졋다고 하는데 이건 왠만한 프랑스인들도 아는이야기입니다 프랑스사람이 해준이야기입니다 전 나폴레옹 전기를 어렸을떄 아동용으로 읽어서 정확한 설명은 못드립니다 러시아의
먼나라 이웃나라 보고 이해하시는 거군요...이이토코토리(이게 정확한 발음이죠...)가 일본에만 있습니까? 그럼한국은 대당율령제도 받아들이면 안되려나? 거기다 고려는 그 대당율령제로 고려 율령제를 만들었는데요? 그리고 동양역사에서 중국이 과대포장됬다는 말은 중국이 못살았단 말인가요?
어디서 공부를 했는지 모르겠다는데 민족최대의 사학인 연대에서 공부했습니다. 답변이 되셨는지? 손자는 안 읽어봤어도, 무경칠서 대부분의 내용은 읽어봤는데요? 그리고 손자가 그렇게 대단했다면, 왜 손자는 송나라때에 국가적으로 인정을 받을까요? 공자가 병법을 읽었다? 글쎄요...자로라면 이해를 해도 제가 읽은
만일 任天堂님이라는 분이 무경칠서(武經七書)를 모두 완독하고 전쟁론, 기동전, 제공권과 같은 군사학 서적을 완독하시고 나서 님께 "이러한 책들을 읽지도 않고 이야기를 하시다니요?"라고 이야기했다면 님께서는 가만히 있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군요 ^^ (역지사지로 생각합시다.)
토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싸움으로 번지는 건가 싶어 읽어 내려오면서 내심 조마조마 했습니다만,,,바라보시는 입장이 다르고 서로의 지식과 인식이 다른지라 해석의 내용 또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역사라는게 후세에 내려와 씌여지는 소설이 아닐까요?..완벽한 진실만을 추구하는 역사기록은 없지요..
덧붙여,,상대방의 의견이 나와 다름에 흥분하지 마시고 비평이라는 성숙한 문화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토론이 가능하겠지요...자신을 한층 성숙시킬 수 있답니다~^^ 두 분의 의견 잘 읽고 갑니다..종종 이런 토론 해 주시면 냉큼 달려와 읽어 볼게요~^^ 두 분의 깊은 지식에 환호를 ~~~
첫댓글 손자병법도 읽어보지 않는 분이 이런글에다 비평을 다는 자체가 우습군요
손자병법이 동양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올린 글일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과거에는 전쟁이 그나라의 부강을 좌지우지 했다는건 아시겠죠 과거 영국이 아르마다를 꺨떄 스페인 장군들중에 한명이라도 손자병법의 내용을 알았다면 무기에 차이가 나도 지지 않았겠죠
아르마다가 꺠지면서 영국이 부각되기시작하니깐요 솔직히 자세히 보면 엄청난 졸전입니다 나폴레옹도 손자병법을 읽어 한마디 했죠 잠자는 사자를 건드리지 말라고 잠사는 사자는 중국입니다
그떄당시 프랑스는 유럽 최강이었죠 영국과 러시아만 점령 못했고 다 휩쓸었으니
일단...시대에 대한 고증과 정확한 개념이 필요하신듯하군요...손자를 안 읽었다는 이유로 논하시는데...손자가 다는 아니죠...오히려 병참과 보급에 대한 문제부터 살피는 편이...졸전이라...프랑스가 유럽최강이면...미개한 국가인 건가요? 필자분의 글에서는 유럽이라는 개념으로 뭉뚱그리고 있는데요? 개념에 대한 명확
한 정의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고...나폴레옹이 손자를 읽었다는 사실은 원사료로 인용바랍니다...전 사실무근이네요...그리고 글제목이 동양이서양보다 잘살았던 이유...로 된 것인데...단순히 손자를 안 읽었다는 이유로 단정형문장을 쓰시면, 오히려 그쪽이 글제목을 바꾸심이 마땅할 듯합니다.
잘산다는 것은 사회경제적 관념이고, 무기만 강하면 잘사는게 아니니까요...전쟁이나...예를 들어 러시아가 우리보다 잘 사나요? 오히려 필자분의 논리에서는 이런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더 웃긴것 아닌가요?더욱이 완곡하게 긍정적토론을 기대한다고 했는데, 통신체의 매너란 무엇인지요? 저도 그러기에 맞대응하는 것이죠
손자가 동양역사에서 큰비중이 있다...과연 역사전반에 얼마나 큰 비중을 주었나요? 사회가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고전적 병법의 가치는 인정합니다만, 글쎄요...사회전반에 걸친 큰 비중이 있었다기에는 부족합니다. 전쟁이 그 나라의 부강을 좌지우지했다라...고려시대는 항상 그럼 못살았나요?
끊임없는 전란이 항상 부를 가져다 주었나요? 거란은 졌지만 잘 살았습니다. 적어도 고려에는 졌지만요...좀더 논리를 세밀히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울러 명확한 개념정리를 해주셨으면 하네요...비교를 한다면 비교의 대상이 같아야겠지요...
님이 어디서 공부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님 말에는 오류가 너무 많네요 전 셰게사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안다고 자신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히 먼저 말하는건 동양역사에서 중국이 너무 과대포장한게 많습니다 그건 다들 아실것이고 원래 강대국이란 자기 문화와 민족을 앞세우기 위해서 자기 민족과 문화의 우월성을
내세웁니다 유럽문명의 기초라 할수 있고 가장 내세우는게 로마제국인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읽고 착각 하는게 엄청 많습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기니깐 어쩃든 그시대에 로마의 병사체계가 잘 잡혀서 세계 최강이다 어쩌다 했는데 로마제국 전성기떄 인구가 백만이었습니다
한나라떄 장안의 인구가 백만일떄가 있었지요 그리고 근래 2백년이상 서양인들이 세계의 강점에 서있었기 유럽인들이 세계를 상대로 식민사관을 한것이라고도 볼수있습니다 일본이 우라나라에 한것처럼요 일본이 우리나라한장 민족말살정책 펼치기 전에 유럽국가들이 세계를 상대로 똑같은짓을 했으니가요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후로 이코토코토리(정확한 어법인지 모르겟음)정신으로 서양 특히 독일이 하는데로 다 따라했지요 그리고 손무가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겟다 그랬는데 손무의 병법으로 중국의 모든 전생사가 바뀝니다 초한지
삼국지를 비롯해서 후에 이어지는 전쟁 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전략입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손자병법 읽었다는거에 의문을 가졋다고 하는데 이건 왠만한 프랑스인들도 아는이야기입니다 프랑스사람이 해준이야기입니다 전 나폴레옹 전기를 어렸을떄 아동용으로 읽어서 정확한 설명은 못드립니다 러시아의
국방력이 우리보다 강하다고 우리보다 잘사냐 그러셧는데
러시아는 오랜기간 동안 공산국가로서 국민들이 게으르고 정치판이 부패했기떄문에 지금 국민들만 못사는것이지 기초과학이나 우주 항공 이런건 우리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더군다나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은 우리나라와는 상대가 안되죠
우리나라를 비하하려는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다시 손자 애기하겟습니다 손자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느냐라
손자는 공자와 같은시대 사람입니다 공자는 현재 성인으로 추앙받죠 그들은 처음에는 서로에 대해 이해를 못해서 서로 안좋은 감정관계 였지만 손자가 나이가 들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생각이 바뀌고 공자도 손자병법을 읽음으로서 엄청난 꺠달음을 얻고 감격을 하죠
공자가 죽기 전에 둘은 만나려 햇지만 운이 안따라줘서 결국 공자가 먼저 죽고 말앗죠 후세 중국학자들은 이 두사람이 만났더라면 동양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님한테 이런설명을 하는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생각도 드네요
그리고 유럽은 근대들어서 워낙에 많은 민족들과 분쟁을 일으키고 또 종교문제로 해외로 나간것이지만 중국의 워낙 기름진 땅덩이가 넓고 물자가 풍부했기떄문에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세계의 역사를 바꾼 세계 4대 발명품은 다 중국에서 나왓죠 이렇게까지 말한다고 사대주의 정신이라고 하려나 하여튼 유럽적 식민사관에 속자 말라 이겁니다
먼나라 이웃나라 보고 이해하시는 거군요...이이토코토리(이게 정확한 발음이죠...)가 일본에만 있습니까? 그럼한국은 대당율령제도 받아들이면 안되려나? 거기다 고려는 그 대당율령제로 고려 율령제를 만들었는데요? 그리고 동양역사에서 중국이 과대포장됬다는 말은 중국이 못살았단 말인가요?
어디서 공부를 했는지 모르겠다는데 민족최대의 사학인 연대에서 공부했습니다. 답변이 되셨는지? 손자는 안 읽어봤어도, 무경칠서 대부분의 내용은 읽어봤는데요? 그리고 손자가 그렇게 대단했다면, 왜 손자는 송나라때에 국가적으로 인정을 받을까요? 공자가 병법을 읽었다? 글쎄요...자로라면 이해를 해도 제가 읽은
13경 안에는 병법에 관한 내용이 없군요...공자가 윤거한 나라를 좀 따져 그 행적을 살펴보실필요가 있네요...오히려 동양역사에서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군요...공자와 손자가 만났다라...아니었죠...초한지에서 이기는 결정적인 이유는 패왕의 실정입니다...
연대 사학이라고 그러니 달리 할말이 없네요 농구애기 하다가 프로선수오면 할말 없듯이 근데 님이 한 애기로는 전혀 신빙성없네요 아님 1학년이신가 내 친구도 사학과인데 뭐 님이 연대 사학인지 알길이 없으니 어쩃든 그렇게까지 나오신다면 전 그만 쓰겠습니다
나라의 일꾼님// 제가 볼 때에는 님께서 먼저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셨다는 점에서 잘못이 있다고 파악합니디만? 즉 "손자병법을 읽지도 않고 감히 글을 쓰느냐?"라는 식으로 논의를 몰고가신 것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만일 任天堂님이라는 분이 무경칠서(武經七書)를 모두 완독하고 전쟁론, 기동전, 제공권과 같은 군사학 서적을 완독하시고 나서 님께 "이러한 책들을 읽지도 않고 이야기를 하시다니요?"라고 이야기했다면 님께서는 가만히 있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군요 ^^ (역지사지로 생각합시다.)
물론 이 任天堂님이라는 분이 무조건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허나 님께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심으로써 토론의 방향을 혼란시키고, 상대에게 불쾌감을 유발하셨다는 점은 인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누구의 주장이 옳으냐의 제반문제를 떠나서 말이죠.
토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싸움으로 번지는 건가 싶어 읽어 내려오면서 내심 조마조마 했습니다만,,,바라보시는 입장이 다르고 서로의 지식과 인식이 다른지라 해석의 내용 또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역사라는게 후세에 내려와 씌여지는 소설이 아닐까요?..완벽한 진실만을 추구하는 역사기록은 없지요..
이 점으로 보아 두 분의 서로 다른 논리와 의식 체계 모두 충분한 토론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저같은 문외한 한테는 말이죠..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제 나름의 이론을 토대로 하는 잣대를 세울 수 있으니까요..이런 기회를 주신 두 분께 감사드려요~
덧붙여,,상대방의 의견이 나와 다름에 흥분하지 마시고 비평이라는 성숙한 문화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토론이 가능하겠지요...자신을 한층 성숙시킬 수 있답니다~^^ 두 분의 의견 잘 읽고 갑니다..종종 이런 토론 해 주시면 냉큼 달려와 읽어 볼게요~^^ 두 분의 깊은 지식에 환호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