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패의 제자들이 서로 자기네 스승을 내세우며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한 패가 말했다. "우리 스승님은 강 이쪽 편에서 가르치시면 그 말씀 내용이 강 저쪽 편에 있는 제자의 노트에 동시에 기록된다. 놀랍지 아니하냐?". 이 말에 다른 한 패가 응수했다. "우리 스승님은 배고프면 먹고 잠 오면 잔다. 됐냐?" 배고프면 먹고 잠 오면 자는 것이 무어 대단한 일인가.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철든 이후 아무 생각 없이 배고플 때 먹고, 배부르면 먹지 않고, 잠 올 때 그냥 자고, 잠 오지 않으면 자지 않았던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 사자는 혼신의 힘으로 잡은 얼룩말을 배부를 때까지만 뜯어먹는다. 배만 부르면 잡은 정성쯤 아까워 않고 미련 없이 자리를 뜬다. 그 다음에 하이에나가 달려들어 내장을 파먹은 다음, 독수리 떼가 뼈에 붙은 고기를 뒤처리함으로써 초원의 순차적 포식행위는 마무리된다. 인간은 배가 불러도 먹기를 그치지 않는다. 배는 고프지 않지만 정해진 점심시간이라 지금 먹지 않으면 안 되고, 남기면 아까워서 먹고, 평소 잘 못 먹어 보던 음식이라 기회 있을 때 먹어 보고, 대접하는 사람의 정성 때문에 먹어 주고, 너무 맛있어서 더 먹고, 건강에 좋다 해서 먹고, 다른 식구들 먹을 때 같이 먹지 않으면 엄마(마누라)한테 혼나니까 먹어야 하고, 식은 밥과 묵은 반찬 없애려고 먹고,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위해 먹고, 심지어 설거지 준비단계의 일환으로도 먹는다. 그 뿐인가, 남들이 먹자 해서 먹고, 상사가 먹자 하면 먹어야 하고, 내 위장이 채소를 원하는데도 일행이 육식을 원하면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배가 아무리 고파도 살빼기 위해 안 먹고, 점심 시간이 아니어서 못 먹고, 회식 자리에 높은 양반이 아직 납시지 아니하여 모두 목젖 빼고 앉아 있고, 체면 때문에 혹은 내숭 떠느라 양껏 못 먹고, 바빠서 밥 때 놓치고, 손님 빨리 안 가서 저녁 밥상 못 차리고, 회의 질질 끌다 보니 밥 굶고, 술 먹느라 밥 안 먹고, 출근시간 늦은데다 입 안 깔깔해서 커피 한잔으로 때우고, 마누라한테 죽을 죄(?) 지은 게 있어 밥 내놓으라는 소리 못하고, 분노와 반항의 표식으로 숟가락 놓는가 하면 시간이 어중간해서 못 먹기도 한다. 잠의 경우는 어떤가. 생체리듬이 간절히 잠을 원하는 순간에도 이 땅의 모든 야근 때문에 못 자고, "남 잘 때 다 자고 언제 할래?"하는 수험생 엄마의 닥달 때문에 못 자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빌어먹을 격언이 마음에 걸려 하던 일 마저 끝내야 하고, 밀리는 한 밤의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느라 못 자고, 보던 '주말의 명화' 다 보고 자려고 눈꺼풀에 힘 주고, 빌린 비디오 반납일자 맞추려면 오늘 밤엔 기필코 다 봐야 하고, 아픈 아이 머리맡 지키느라 같이 밤 새고, 모처럼 콘도 가서 노느라 못 자고, 신혼여행이라는 특수상황에 처해져서 못 자고, 싸우느라 못 자고, 화해하느라 못 자기도 한다. 그러나 분하고 억울해서, 님 그리워, 걱정과 불안 때문에, 너무 들떠서, 불면증으로 인해 도저히 잠 안 올 때도 우리는 오직 내일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해야만 한다. 그리고 군대에서 예정된 야간훈련에 대비, 대낮에 강제로 취해야 했던 그 '충분한 수면'의 곤혹스러움…. 젖 뗀 이후, 특히 취학 이후, 그리고 사회 생활 내내 '잠 올 때 자고 배 고플 때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더욱 아이러니컬한 것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우리는 오는 잠 쫓아가며 밥 때 놓쳐가며 일하고 또 일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기적이다. 정말 배고플 때 먹고,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고, 잠 오면 자고, 잠 오지 않으면 자지 않을 수 있는 상태는 사회인 모두에게는 기적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내게는 아직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앞서 말한 그 '스승'이 정말 그렇게 살아도 아무 탈이 없었다면, 그는 분명 '도 터진 사람'임이 분명하다. 기적은 그런 사람에게나 맡겨 두고 나는 내 생활이나 참하게 꾸려가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