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가난한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단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 마르셀 프루스트 -
2000년대 초 중반 정확한 기억은 안 남
월급쟁이 생활이 그렇듯 챗바퀴 돌던 인생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퇴근 후
스크린 경마장으로 향한다
몇 만원 가지고 소소하게 놀기에는
이만한 놀이가 없었다
ROYAL GRAND PRIX DERBY
로얄스크린경마
댓기리에 베팅하는데
전화 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오빠 저에요
"누구?"
와 실망이네
얼마전 우연이 알게 된
문자 한 두개 주고받은 그녀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지금 뭐하세요?"
걍 있습니다
"어딘데요? 우리 얼굴 함 봐염
제가 갈께요
헐!
요즘 애들이 당차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대충 장소를 가르쳐 주고
설마 올까
신경 끄고 배팅한다
그 전에 오래 사귀던 여자와
헤어진 후로 한동안 여자를 멀리 했다
뚜르르르르르
"여보세요"
저 왔어요
진짜로 왔다
입구로 나가니
제법 큰 키에 큰 눈에
피부 뽀얀 아가씨가 서 있다
"오빠 이런데 다녀요? 이거 불법 아닌감?"
불법이 대놓고 장사하는거 봤소?
"치~~~
바른생활 남잔줄 알았더만 실망이네"
바른은 개뿔
본 적도 없으면서
싫음 말고
커피나 한잔 하고 가던가
알아서 하소
큰 눈이 더 휘둥그래지며
어두컴컴한 곳을 두리번 두리번
기어코 따라 들어온다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딱 붙은 옆 자리에 착석하고
경마장 사장이
비타500 뚜껑을 "짜작" 따며
꼬맹이 아가씨에게 건낸다
나이차가 많이나 꼬맹이라 부르기로 했다
"워 싸장님한테 이런 이쁜 애인이 있었구마잉"
개오바한다
"오빠 이거 어케 하는거에여?
돈은 어디로?
꼬맹이 자리에 만원짜리 한 장 넣어주고
한 두판 먹더니
고함 지르고 신낫다
쪽팔려서 이내 델고 나온다
그 녀와 첫 만남이었다
주말이 되면 을지로로 향했다
필살2 야마토1 대공 루팡 대가리
이소룡 천축 화월 화만개 에바1 온천기행
그 때만 해도 아직 메달이 들어오기전이었다
지금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DAUM에 "마루하비" 라는 빠치 까페가 있었다
가입하니 내가 마흔 몇 번째 회원이었다
그 후 대한민국에 쓰레기 메달이 생기면서
회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급기야는 바다이야기 황금성같은
도 아니면 모! 성격의
조선게임도 생기기 시작했다
힘차게
야마토1 물고기 두 자리를 잡고 돌리돌리
한참 꼴아박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꼬맹이다
대 여섯번 안 받다가
조용한데 나가서 받는다
"오빠 왜 전활 안 받아여?
"아....그....싸우나 왔어"
오락쟁이는 항상 입에 거짓말을 달고 산다
"주말인데 오빤 전화도 한 통 안 하구
제가 싫어여?"
"그게 아니고...."
"지금 어디에여?"
"명보극장 근처.."
"잘됐다 저랑 영화봐염 ㅋㅋㅋㅋ"
미치 ㅡ.ㅡ
환타 사이다 콜라를 한꺼번에 모아놓은 성격이다
상대방이 뭐하는 중인지 누구랑 있는지 상관 없다
걍 직진이다
요즘 애들 하.......
돌리던 야마토가 나올때가 됐는데
들어간 돈이 30장
버릴순 없다
부장한테
"여자사람 하나 들어와도 되니껴?
조용히 돌리는 호구 손님이라 단방에 허락 받고
좀 있다가
꼬맹이를 만나 데리고 들왔다
구슬 튕기는 소리에 귀를 막고
오만상 찡그리는 꼬맹이
"오빠 여긴 또 뭐에여? 악 귀 아퍼"
닥치고
넌 이거 해 물고기
벌써 42장 들어갔다
웃고 즐길때가 아니다
둘 다 갖고 있던 구슬을 다 쓰고
한 박스 더 시키려는데
물고기떼가 지나간다
단타 리~~치
맞을까?
맞았다
휘리릭 연타로 바꿔준다
다라라라락~~~
구슬 쏟아지는게 신기한 꼬맹이
만지작 만지작 하다가 직접 커피 두 잔을 뽑아온다
물고기 그림이 신기하고 예쁜지
화면도 터치 터치
생글생글 웃는데 살짝 귀엽다
7연타 달릴 동안 야마토는 조용하다
해물어에서 나온 구슬은 야마토가 쳐 먹는다
"오빠 왜이리 못해여 좀 잘해봐여 나처럼 ㅋㅋ"
니똥 굵다
한 대에서 터져봤자
나머지 한 대에 고스란히 들어가면
박스가 쌓일 턱이 없다
구슬 다 쓸 무렵
쾅!
다이 야마토호 발샷!
부왕 부왕 부왕
엌
ㅅㅂ 에러
얼굴 벌개지는데
와토세!!
"오빠도 맞은거에여?"
응
"축하해염" ㅋㅋㅋㅋ
연단이다
꼬맹이 자리 어군이 지나간다
물고기떼가 지나가면
맞을 확율이 높다는 설명을 해 주...
아다리가 된다
단타였는데
시단에서 살려주더만 무려 12연타를 뱉어낸다
야마토는 잠깐 세워두고
꼬맹이랑 구슬을 받아냈다
박스 무게가 제법 무거워 비틀비틀거리는 여자사람
"쫌 이쁘게 쌓아봐라"
주위에 물고기 매니아 아줌씨들 지나갈때마다
내가 여기에 이번주에 얼마를 넣었느니
어쨌느니 한 마디씩 하고 간다
우짜라고 ㅋㅋㅋㅋ
다이가 미쳤는지
얼마 안 먹고 단타
5연타
2연타
8연타
하루종일 나온다
벌써 세 줄을 쌓았다
한 줄에 7박스
한 박스에 3만원!
새벽 2시인가 그때가 되면
슬슬 영업 종료시간이다
일명 세븐 달리기
마감때 세븐을 잡는 사람이 나옴과 동시에
영업을 종료한다
행운의 손님에겐 10박스를 선물로 준다
연타중인 사람이 유리하다
꼬맹이 연타중이고
옆에 하루종일 하마리 타던
야구선수의 대공(겐짱)에서
맨땅에 갑자기 불꽃이 솟더만
전회전이 왔다
내가 불법오락실에서 못 본 야구선수는
박찬호 이승엽 뿐이다
박사장이야 한창 메이저리그에서 날릴때고
승엽이는 워낙 자기관리가 투철하니
이런데 올리 만무
스타급 선수부터 듣보잡 패전처리까지
하나같이 고급 수입차를 끌고와선
덩치는 좀 크나 시끌벅적
2인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돌리곤 했다
암튼 겐짱 전회전
3
4
5
6
으아 불꽃이여 부와앙
칠
지나가고 ㅋㅋㅋ
암튼 옷인지 노란안전모로 아타리
지금은 연타 잡아봐야 소용없다
세븐을 잡아야한다
꼬맹이 물고기 6리치 걸리고
물고기떼다
이거 아다리 되면 7로 바꿔준다
부웅 부웅 부웅
지나가버리는데
뒤로 까딱 땡기더만
휘리릭 고래로 바꿔준다
종업원들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일제히 외친다
쎄븐~~~~~~~~~!
4줄 쌓고 있다가
10박스 행운까지
대박이다
꼬맹이랑
을지로 골뱅이 안주로 축하파티!
뜨거운 밤을 보낸다
여자사람과의 만남 횟수가 늘어나고
사랑이라기 보단
호기심이랄까
싫지는 않은 그런?
요즘 애들 말로는 썸 타는....
그런 관계였다
주말만 되면
"오빠 우리 구슬장 가염
저 십 만원 있뜸 헤헤" ㅋㅋ
20대 초반 꼬맹이를
지하로 델고 들어간 악마의 남자
그 후로 우린 데이트를
게임장에서 자주 했고
울고 웃으며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결혼은 가장 힘들때 아님
가장 행복할때 한다고 했던가
여자의 젖가슴을 움켜 쥐는것보다
방금 나온 따뜻한 구슬의 감촉을 사랑했던 나
취미가 같았던 우리
아니
내가 그렇게 되도록 만든거겠지
10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애기를 낳고
또 10년째 살고 있다
보잘것 없는
가진것 없는 남자의
더러운 취미를 이해 해 주는 여자가
몇 명이나 될까
"행운아" 라 생각하고
그럭저럭 잘 살고있는
내 자신이 신기하기도 하다
혼자
일본을 넘어가 돌리다 보면
별의 별 생각이 다 난다
어릴적
아침에 출근하는
우리네 아버지들을 보면
자신이 번 돈을 가정을 위해 내 놓고
어머니 또한 그 돈을
자식을 위해 아끼고 모은다
무언가를 바라고 하는게 아닌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난 이렇게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사는데
부모님도 분명 하고 싶은게 있었을텐데
꾹꾹 참고 묵묵히 일만 하시고
자식 셋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 보냈을 노고를 생각하니
숙연해질때가 많다
딸년 하나 있는거 잘 키울수 있을까?
한 푼 두 푼 모아
학원이라도 하나 더 보내고
시집갈때 보태주는데 ㅎㅎ
암튼 돌리돌리 하다보면
별의 별 생각이 다 난다
사고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도 아니고 수학도 과학도 아닌
빠칭코다
내가 왜 그 자릴 앉았을까?
아까 옆자리로 옮겼어야 했어
그때 그만 뺏어야 했는데 그놈의 확인빨
아 좀만 더 돌려볼껄
오늘 하필 이 업장에 왔을까 거기로 갈껄
이번 원정은 다른 지역으로 갔어야 했나?
박살이 나던 대박이 나던
별의 별 생각이 다 남
가족들 생각 부모님 생각
나는 왜 이 따위로 살고 있나
신세한탄까지 ......
이거 따 봐야 뭐하겠노
어차피 들어갈꺼
수학 과학은 24시간 못 돌리지만
빠치는 24시간 돌릴 수 있음
허구헌날 남들 대박나는 후기에
부러워 죽겠는데
영혼 없이
"축하드립니다"
이런 댓글 보단
가끔 개털린 후기도 쓰면서
"나만 박살 나는게 아니었구나" 라는
동병상련의 마음을 달래는
후기도 괜찮겠구나 라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합니다
이런게 진정한 힐링 아니겠습니까 ㅋ
이기고 오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근사해 보이고
박살나서 오면 안 그래도 미운데 더 미워 보이고
도박이냐 취미냐
둘 다 맞는 말입니다
내가 나를 도박중독자라 생각하는데
남들이
"아니야 넌 취미로 즐기고 있는거야"
이게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반대도 마찬가지죠
확실한건
비싼 취미고 위험한 놀이라는건 틀림없는것 같아요
맨땅에 무지개 보류나
슬롯으로 치자면
프리즈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
하마리 타다가
프리미엄급으로 똥구멍 한 번 핥아줍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어때 기분 살짝 풀렸지?"
오케이
니 지갑에 얼마가 있나 함 볼까?
아직 많이 남아 있군
그거 전부 싹 내놓고 가란 메시지입니다
다이가 줄려고 작정할땐
연타중에 프리미엄이 나오지
맨 땅에 나오지 않거든요
빠치가 무서운 이유!
예를 들어 북두무쌍 유저다
어느날 자리가 없어
다른 비인기 기종 건드렸다가
초대박이 남
스펙 공부하고
애니메이션 1편부터 정주행 하고
음악 찾아서 듣고 지랄발광
신세계에 빠져듬 ㅋㅋㅋㅋ
GO냐 STOP이냐
살면서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무수히 많습니다
우리네 인생과 비슷한 빠칭코
어차피 계속 할꺼 뻔하고
드문 드문 가야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 해 봅니다
잦은 원정
장기원정
연장
위험한거 우리 다 알자나요 ㅋ
아참
얼마전 오사카 원정
결과는 이렇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
몇년동안 본 글중에성 정말 최고의 글 입니다 김연아님 정말 솔직하고 매력있는 분이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앞에 회원분들의 댓글에서 제가 하고싶은 말이 다 나왔네요.....!!
감정이입 하면서 잘읽었습니다.....
혼자 원정가서 빠찌돌리면서 이런저런생각에 사로잡히는대목이 나를 댓글쓰게 만드네요.......
을지로는 몰라도 차병원 사거리에서 역삼역 사이에서 많이 돌렸고 장안동에서도 돌려봐서 ....느낌은 있네요... 앞으로도 재미있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맞아요 한강 이남에도 몇 군데 있었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
최최고의 글 입니다.
한번만나 고 싶을 정도 입니다.
컥 감사합니다
데이트 한번 하시져 ㅋ
소름돋는 필력이십니다. 부럽네요.
감사합니다 ^^
정독하며 정말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글씨 하나하나에 추억이 돋아 있는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울컥 눈물이 나네요.글 감사합니다.
엇 눈물이 왜...나실까요 ;;
멋진 인연이네요 앞으로도 쭉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
글을 너무 잘 쓰십니다. 두 번 정독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해물어 7번은 저도 고래인줄 알았는데 듀공 이라고 하더라구요. ^^
감사합니다
듀공 기억하겠습니다 ^^
와!진짜 글솜씨가 보통 아니시네요.백퍼 공감 가는글예요.저는 후쿠에 2주째있는데 제생각을 글로 써놓으신줄 ㅎㅎ
2주 부럽습니다
매일매일 승리하시길...
@김연아II인천 매일 승리...ㅠ 그러고싶네요 ㅎ즐건 휴일보내세요.
문구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인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잘 읽었읍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댓글을 이제 봤네요
과도한 칭찬이십니다 ;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김연아II인천 정말이지 언제 쐬주한잔 나누고 싶읍니다.
답글 감사합니다.
사모님과 늘 행복한 가정 이루시길 빕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11.09 21:0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11.1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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